Semua Bab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Bab 11 - Bab 20

30 Bab

제11화

조원철은 뒷짐을 지고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조연화를 응시했다.“유영이가 부용원으로 옮긴 일로 네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얘기는 이미 들었다. 네가 오늘 여기 와서 난동을 부릴 거란 걸 듣고 일부러 일찍 와서 병풍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게야.”강유영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바짝 타들어가던 속이 안정되고 긴장되어 꽉 쥐었던 손도 힘을 풀었다.이런 이유라면 설득력이 있었다.조월아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귀띔해 줄 정도면 조원철의 귀에 들어가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처음부터 조연화를 훈계하러 온 거였구나. 그는 집안의 동생들을 늘 엄하게 다루었지만, 유독 강유영에게는 벌을 주거나 훈계한 적이 없었다.어쩌면 그녀가 조용히 지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강유영은 근본적인 이유가 자신이 진국공부의 진짜 가족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한낱 양녀에게 굳이 관심을 줘서 뭐 하겠는가.조연화는 그 말을 듣고 흠칫하더니 표독스러운 눈으로 조사예를 노려보았다.“네가 오라버니께 고자질했어?”“아니에요, 저도 맞았는걸요.”조사예는 황급히 손을 저으며 부인했다.강유영을 괴롭히는 게 취미인데 고자질했을 리가 없었다.“내 계획을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조연화는 그 말을 믿지 않고 분노에 휩싸였다.강유영은 뒤늦게 조원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말 몇 마디로 그렇게 견고할 것 같았던 조연화와 조사예가 서로 의심하고 다투게 만들었다.참으로 절묘한 이간계였다.전장에서 군사를 지휘하고 책략을 세우는 대장군이고 그 사납기로 유명한 막북의 대군마저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인물이니, 조연화 같은 어린 처자들을 다루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을 것이다.“되었다. 때도 늦었으니 각자 처소로 돌아가거라.”한씨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꾸짖듯이 한마디 했다.그렇게 사람들은 밖으로 향하고, 조원철 또한 걸음을 옮겼다.강유영은 뒤따라가 그들을 배웅했다.전방을 바라보니 한씨는 조연화의 손을 잡고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마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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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보름 후.왕연령이 처음으로 진국공부를 찾았다.마침 단오절이 가까워진 터라, 한씨는 성의를 표하기 위해 특별히 정원에서 연회를 열었다.각 가문의 부인과 아씨들을 초대하고 귀공자를 위한 연회상도 따로 마련했다. 오찬 후에는 교외로 나가 마구(馬球: 말을 타고 하는 공놀이)시합도 벌일 계획이었다.이른 아침, 단비가 강유영의 방을 찾았다.“아씨, 청운님께서 장신구와 의복을 가져오셨네요. 세자께서 오늘 이것들을 차려입고 정원으로 나가 손님들을 만나라 하셨대요.”강유영은 침상에 기대어 몽롱한 눈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단비의 손에는 흑금색 상자와 의복이 들려 있었다.의복은 어느 복장점에서 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장신구 상자에는 경성 제일 금은방인 취향루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강유영은 몸을 곧게 세우고 단비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그날 냉랭하게 돌아서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은 어쩐 일로 사람을 시켜 이런 걸 보내왔을까? ‘조연화가 무례를 저지른 것에 대한 보상인가?’어쩌면 그녀를 곱게 단장시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진국공부가 양녀에게도 인색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고 싶을지도 모른다.사실 강유영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부하면 또 이상한 소문이 나돌 테고 한씨도 불참을 허락할 리 없었다.“자, 이제 일어나 보셔요.”단비가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고 어디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자세히 살폈다.월백색 비단 저고리에 붉은색의 긴 치마를 맞춰 입고 치맛자락에는 저고리와 같은 색의 동백꽃 자수가 수놓아져 있었다. 질감이 매우 좋은 옷이었다.“아씨, 옷이 너무 잘 어울리네요. 혹, 부인께서 아씨를 데리고 재단방에 가셔서 치수를 따로 재셨나요?”단비의 눈에는 감탄이 가득했다.강유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언제 치수를 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씨는 근래 기성복 점포에서 아무거나 사서 그녀의 처소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조원철은 어떻게 치수를 정확히 맞추었을까?그날 술 취한 상태에서 손의 감각만으로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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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녀와 조원철의 혼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에, 왕연령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여동생인 조연화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이곳에 오기 전 조연화가 강유영 때문에 엄벌을 받았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고 이 기회를 빌어 강유영을 짓밟아 준다면 조연화의 호감을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강유영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사람들도 많은데 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왕연령은 조연화를 이끌고 계단을 올라왔다.강유영은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보고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왕연령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그녀를 밀어버릴 줄이야!아무런 대비도 못하고 있던 강유영은 그대로 밀려서 비명을 지르며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왼쪽 발목에서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다친 곳을 만져보았다. 계단에 휩쓸려 살갗이 까진 듯했다.비명을 들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오셨습니까, 세자.”누군가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섰다.조원철은 앞으로 나오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강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일어나.”강유영은 쓰린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계단을 짚고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발목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지만 긴 치마가 핏자국을 가려주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강유영에게로 쏠렸다. 그중에는 그녀의 미모를 감탄하는 듯한 눈빛도 적지 않았다.강유영에게 꼭 어울리는 차림새였다. 화려한 색상의 치마가 말갛고 청순한 그녀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쓰라림 때문에 살짝 찌푸린 미간은 더욱 안쓰럽고 보호욕구를 자극했다.조원철은 시선을 거두고 조연화를 바라봤다.조연화는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급하게 선을 그었다.“저 아니에요….”아직 왼손에 붓기도 채 빠지지 않은 터라, 이 시국에 난동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강유영이 밉고 싫지만, 왕연령이 이렇게 성급하게 움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물론 아파하는 강유영을 보고 있자니 통쾌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그녀는 깨고소하다는 듯이 강유영을 힐끗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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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사죄 드리거라.”조원철은 강유영을 바라보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주변에서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로써 조원철이 왕연령에게 아예 마음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왕연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질투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조원철은 전도가 유망하고 용모도 출중한 선망의 대상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왕연령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더니 거만한 눈빛으로 강유영을 힐끗 노려봤다.사실 그가 입을 떼기 전까지는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맞선을 본 날에 그가 비녀를 꽂아주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그러나 그가 사람들 앞에서 강유영에게 사과를 요구했다는 것은, 그만큼 왕연령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였다.강유영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양녀는 역시 양녀일 뿐이다.강유영은 두 손을 맞잡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악물자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번졌다.손이 떨리고 누군가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쓰라린 아픔이 몰려왔다. 조원철처럼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 진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강유영,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거라.”조원철이 재차 입을 열었다.강유영은 눈물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마침내 왕연령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왕 소저, 송구합니다. 제가 무례를 범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원철은 분명히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진실 따위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곧 약혼할 사이니, 감싸는 게 당연하겠지.’강직하고 올곧기로 소문난 조원철도 누군가에게 사심을 품는 날이 온 것이다. 그만큼 왕연령이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일 거라, 강유영은 생각했다.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앞으로는 그의 뜬금없는 행동에 마음 졸일 일이 없을 것이다.“되었네.”왕연령은 대범한 척, 손사래를 쳤다.“앞으로는 다시 그러지 말게. 나도 소란을 싫어하는 사람이니.”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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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겨우 여차여차 대화를 끝내고 막사 밖으로 나온 강유영은 좀 더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 있고 싶었다.“언니.”이때 앙증맞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숙였더니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 소녀가 보였다.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아이는 손에 탐스럽게 핀 목련꽃 몇 송이를 쥐고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이거 언니 드릴게요.”아이가 목련꽃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니?”강유영은 짙고 그윽하면서도 청량한 향기를 맡으며 의아한 얼굴로 아이에게 물었다.“저기 있는 오라버니가 언니에게 갖다드리랬어요.”아이가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강유영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어? 안 보이네요? 아까는 분명 저기 서계셨는데.”아이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다.강유영은 손에 들린 목란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목란꽃은 가지를 떠나면 바로 시들어 버리는 연약한 꽃이었다. 누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꽃을 꺾어서 자신에게 보냈을지 궁금해졌다.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커다란 손이 다가와서 꽃을 가로채더니 바닥에 던져버렸다.강유영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조원철이 어느새 등 뒤로 다가와 있었다.싸늘한 그의 눈빛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까지 느껴졌다.강유영은 오후에 정원에서 당했던 수모와 억울함이 떠올라 건성으로 인사하고는 뒤돌아섰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몸이 허공으로 떴다.대체 뭐에 화가 난 건지, 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들어올려 겨드랑이에 끼운 채로 막사로 향했다.강유영은 겁에 질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소리를 낼 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바둥거렸다.대체 왜 이러는 걸까?왕연령이라는 약혼녀도 생겼으면서 왜 자꾸 와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사방이 탁 트인 마구장에서 보는 눈도 많은데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그러나 조원철은 한팔로도 그녀를 단단히 잡고서 벗어나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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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입술에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강유영은 머릿속이 하얘져서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렸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조원철은 동작을 멈추더니 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유영은 그제야 자신이 깨문 것이 그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힘을 빼고 뒤로 물러났다. 울먹이는 목소리에서 당황함이 느껴졌다.“죄송해요….”하얗고 가는 손가락에 짙은 이빨자국이 나 있었고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조원철은 그녀에게 있어 신명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그런 사람을 깨물었으니 조용히 넘어가려 하진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조원철의 표정은 오히려 부드러워졌다.“아까 모함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지 그랬느냐?”그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강유영은 그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서러움이 속에서 부글거렸다.‘모함이었다는 걸 알고 계셨구나.’그럼에도 그는 그녀에게 사죄를 강요했다.하지만 그를 탓할 수 없었다. 한쪽은 마음에 든 약혼녀이고 한쪽은 별로 중요치 않은 양동생이니 누구라도 왕연령을 택했을 것이다.조원철은 검지로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매만졌다.어쩐 일인지 그 손길에서 다정함이 느껴졌다.강유영은 몸을 곧게 세우고 손길을 피했다. 입술에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고 코끝에는 감송향이 맴돌았다. 심장은 놀란 토끼처럼 주체할 수 없이 뛰고 볼에는 홍조가 피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바짝 굳은 채로 있었다.한참이 지나, 코끝에 회춘고의 향기가 닿았다.그제야 그녀는 오전에 깨물어서 갈라진 입술에 그가 약을 발라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런 사람을 괜한 오해를 하고 물어버렸으니….수치심에 발가락이 오그라들고 어디로 숨고만 싶었다.“이제 괜찮으니 이만 놓아주세요.”그녀는 그에게 잡힌 두 손을 비틀며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작게 애원했다.조원철은 그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압박이 풀린 순간, 강유영은 곧바로 몸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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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다행히 청운은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일을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조원철이 담담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청운은 지시에 응답하더니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강유영은 어리둥절했지만, 감히 그가 하려는 일에 대해 물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행동하는 걸 보면 밖에 망을 봐줄 사람을 세워놓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그제야 약간 안심하고 긴장을 풀었다.강유영은 몸을 일으키고 침상 앞에 쭈그려 앉은 조원철을 바라봤다.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따뜻한 물에 적셔 발목에 난 상처를 살살 닦아주고 있었다.그녀는 그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참으로 사내이지만 아름다운 용모였다. 이목구비는 날카롭고 속눈썹은 길고 풍성했다. 쭈그려 앉아 있는데도 우아한 기품이 흘렀다.그녀는 그렇게 시선을 내리고 부드럽게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속이 쓰라리고 마음이 아팠다. 이런 다정함이 앞으로는 모두 왕연령에게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많이 아프냐?”조원철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시선을 피하고는 고개를 저었다.이 정도 부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조원철은 붕대를 가져다가 발목을 감싸주었다.그녀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뒤로 피했다.조원철이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너무 조입니다….”강유영은 수줍게 그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얘기를 들은 조원철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유영은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시선을 돌리고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갈 곳을 잃은 두 손은 애먼 옷자락만 꽉 쥐고 있었다.뜨거웠던 그날 밤에 그 역시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서 같은 말을 속삭였던 기억이 났다.“그만 깨물거라. 상처도 채 낫지 않았는데.”조원철이 그녀의 턱을 잡으며 말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피하고 입술에 힘을 풀었다.조원철은 붕대를 다시 그녀의 발목에 감아주고 양말을 집어 들었다.“제… 제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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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왕연령은 크게 다쳤는지 처참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조원철이 말에서 내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말에서 내렸다.의술을 알 줄 아는 강유영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다가가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왕연령은 그녀를 믿지 않을 것이고 지금 다가갔다가 오히려 비웃음을 당할 수 있었다.게다가 자신이 장 의원 옆에서 일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관람대의 사람들도 마구장으로 내려갔다.강유영은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들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가장 먼저 달려간 교씨가 안쓰러운 얼굴로 딸을 안았다.왕연령은 왼쪽 다리를 끌어안고 식은땀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한씨가 사람들을 시켜 의원을 불러오게 했다.“당장 말을 타고 가서 의원을 불러오거라! 당장!”강유영은 사람들 틈에 끼어 상황을 관찰했다.조원철은 한켠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왕연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얼마나 다쳤는지 관심도 없는 듯했다.강유영은 워낙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니 속으로 걱정된다 하더라도 감추는 거라 생각했다.딸 걱정에 조바심이 난 교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청했다.“국공 부인, 일단 딸아이를 막사로 옮겨야 할 것 같으니, 좀 도와주십시오.”귀족가의 딸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명을 지르고 통곡하는 것은 굉장히 품격이 떨어지는 일이었다.한씨는 사람들을 시켜 거들게 했다.강유영은 그 모습을 보고 걱정스럽게 귀띔했다.“아직 부상 정도가 어떤지 확인이 안 되었으니 함부로 옮기면 안 좋을 듯합니다. 그러다 부상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어요.”하지만 말을 내뱉은 순간 바로 후회했다.조원철은 고개를 들고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당황하여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한씨 일행은 그 말을 듣고 동작을 멈추었다.그런데 왕연령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저 사람 말 듣지 말고 일단 안으로 옮겨주세요!”왕연령은 너무 아프고 짜증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꼴보기 싫은 강유영인데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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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강유영은 멈칫하다가 답했다.“에둘러 거절한 적이 한번 있어.”한씨가 병풍 밖에서 얘기를 꺼냈을 때, 조원철이 시켜서 한 말이었다.조월아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속삭였다.“어머니께서는 언니가 큰 오라버니께 마음이 있다고 의심하고 계신 것 같아요.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주제도 모르고 오라버니를 유혹하는 애가 있다며 비꼬던데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또 혼처 얘기를 꺼내면 조심하세요.”조월아는 어릴 때부터 강유영이 좋았고 그녀의 처지를 진심으로 안쓰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힘없는 서녀로서 자신도 지키기 힘든 마당에 강유영에게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아는 만큼 강유영에게 전해주는 일뿐이었다.“알겠어.”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알려줘서 고마워, 월아야.”“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는 언제나 언니 편이랍니다.”조월아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앞으로 걸었다.“하물며 큰 오라버니처럼 차가운 사람에게 언니가 다른 마음을 품었을 리가 없잖아요.”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강유영은 괜히 찔려서 대충 둘러댔다.“난 늘 그분을 친오라버니처럼 생각해왔어.”이어지는 며칠 동안, 강유영은 조월아의 말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였다.만약 한씨가 정말 두 사람 사이의 일을 알게 된다면 발가벗겨서 거리에 내쫓을 수도 있었다.“유영아, 왜 그렇게 시든 배추처럼 축 처져 있어?”그녀가 생각에 잠든 사이, 서준이 다가와서 농을 걸었다.그는 약방에서 며칠 전에 새로 받은 일꾼이었는데 약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장 의원은 그를 시켜 강유영의 밑에서 일을 배우게 했다.“스승님이라 불러야지. 어디서 반말이야?”강유영은 그를 힐끗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서준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실눈을 뜨며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예, 스승님….”“저리 가.”강유영은 손을 휘휘 저어 그를 쫓아내고는 계속해서 하던 일을 했다.대체 게으르고 산만한 이 녀석을 장 의원이 왜 받아주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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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강유영은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한씨가 장신구 몇 가지를 들고 오더니 말했다.“그래도 우리 집안에서 가장 먼저 맞선을 보는 아씨인데 하나 골라서 내일 하고 가거라.”강유영은 상 위에 놓인 비녀를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괜찮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해요.”그녀는 더 이상 진국공부에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그건 어린 소녀들이나 하는 거지.”한씨가 말했다.“그 탐화랑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힘겹게 살아온 사람이라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단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고 왜 한씨가 수수한 장신구들을 꺼내놓았는지 알게 되었다. 아마 상대의 집안이 매우 빈곤한 듯했다.“아니면 원철이 네가 하나 골라주렴?”한씨가 조원철을 바라보며 물었다.조원철은 시선도 들지 않고 대충 아무거나 집었다.“이게 좋겠군요.”간단하고 수수한 은비녀였다.“이건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한씨는 비녀를 들고 강유영의 머리에 대보았다.“현숙하고 조용한 사람. 그 탐화랑의 어머니가 그런 여인을 원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조원철은 강유영을 빤히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강유영은 말에 가시가 있다고 느끼며 다급히 비녀를 받고 일어섰다.“이거로 하죠. 그럼 천천히 드세요. 저는 이만 돌아가서 준비해야겠어요.”한씨가 당부했다.“내일은 옷도 소박하게 입고 나오렴.”강유영은 대충 대답하고는 도망치듯 방 문을 나섰다.경화 공주의 저택 앞은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대문에는 등불이 걸리고 화려한 장식이 더해져 있었다.강유영은 공주부에서 연회를 연다는 것만 알았지, 주제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고개를 들자 조원철이 대문 앞에 서서 무표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강유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오라버니.”“오전엔 어디 갔었어?”조원철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시장에 잠시 들렀어요.”강유영은 미리 준비해둔 변명을 늘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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