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의 모든 챕터: 챕터 291 - 챕터 300

467 챕터

제291화

밖에서 청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나처럼 흐트러짐 없이 깍듯하고 정중한 말투였다.강유영의 의복은 이미 형편없이 흐트러진 상태로, 그녀는 조원철의 품에 안겨 힘 없이 있었다.청운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그녀는 황급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오랜 시간 마차 안에서 시달렸는데, 청운이 밖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은 건 아닐지 수치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가만히 있거라."조원철은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 마침내 평소의 덤덤한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그는 구석에 내팽개쳐져 있던 자신의 겉옷을 집어 들어 그녀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는, 그대로 번쩍 안아 올렸다.강유영은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그녀는 수치심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그의 겉옷에 머리를 숨기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조원철은 겉옷 안에서 동그랗게 웅크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짙게 가라앉았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마차 곁에 서 있던 청류가 그 모습을 살피고는 곁에 선 서유의 어깨를 툭 쳤다."아씨 덕분에 우리 목숨은 건진 모양이야."세자의 기분이 눈에 띄게 누그러진 것을 보니, 경성으로 돌아가더라도 매질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서유도 가슴을 쓸어내렸다."모두 유영 아씨 덕이죠."아씨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수하들 중 누구 하나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조원철은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강유영을 안고 객잔 이층으로 향했다.방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그녀를 침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강유영은 겉옷을 뒤집어쓴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달리는 마차 안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수치심이 밀려왔다.'참 미운 사람.'경성을 떠나올 때부터 그녀는 이미 두 번 다시 이 사람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그는 더 이상 은인이 아니었다.다음번에 기회가 온다면 기필코 다시 도망칠 것이다.'이젠 정말 싫어.'이번엔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 같았다.강남으로 온 것부터가 패착이었다.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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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가려져 있던 휘장이 걷히며 환한 빛이 쏟아졌다.하지만 강유영은 침상 안쪽으로 돌아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일어나거라."조원철이 쟁반 위의 옷을 침상 가장자리에 내려놓으며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강유영은 손목을 비틀며 버텼지만, 사내의 억센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억지로 몸을 일으킨 그녀는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 분통이 터져 조원철의 다리를 걷어찼다.순간, 허리와 아랫배가 당겨오며 묵직한 통증이 전해졌다.수치심과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돌아앉아 버렸다.조원철은 별다른 핀잔 없이 묵묵히 손을 뻗어 겉옷의 끈을 당기려 했다."무슨 짓입니까?"강유영은 기겁하며 동그란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그토록 괴롭혀 놓고...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옷을 갈아입혀 주려는 것이다."조원철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제가 입겠습니다."강유영이 그의 손을 강하게 밀어냈다.이대로 버티다간 그는 정말 몸을 닦아주고 옷을 입혀줄 기세였다.그의 거친 손이 닿는 것은 싫었다.조원철은 침상 곁에 선 채 조용히 손을 내렸다.강유영은 겉옷 자락을 단단히 여미고 온몸에 번지는 통증을 참아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휘장을 내려 그의 시야를 차단했다.조원철은 장막 밖에 우두커니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휘장 틈새가 아주 살짝 벌어지더니 하얗고 가느다란 팔이 나와 잽싸게 옷가지를 안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원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휘장 안에서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려왔다.그렇게 한참이 지나 기척이 잦아든 후에도 휘장은 걷히지 않았다.조원철은 손을 뻗어 휘장을 걷어 올렸다."나와서 밥 먹어야지."그의 시선이 강유영의 뒷모습에 머물렀다.그녀는 침상에 등 돌리고 앉아 있었다.상아색 저고리에 붉은 석류빛 치마는 참으로 화사하고 아름다웠다.웅크린 뒷모습에서조차 묘한 교태가 묻어났다.하지만 한 달이나 넘게 밖을 떠도는 동안 부쩍 야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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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방금 전까지 밥을 먹는 내내 그녀만 지켜보더니, 이제 와서는 그녀가 먹다 남긴 밥을 태연히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을 떼려던 강유영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켰다.'마음대로 하라지.'그녀가 먹으라 권한 적도 없는데, 얄미워서 더는 상대도 하기 싫었다.그녀는 식탁을 떠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조원철이 밥그릇을 거의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잠시 후, 그녀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어멈에게는 언제 데려가 주실 겁니까?"오씨 어멈의 안위가 크게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조원철이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오씨 어멈을 해칠 사람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다만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무엇보다 오씨 어멈의 상황을 파악해야, 다시 한번 도망칠 틈을 엿볼 수 있었다.조원철은 일찍이 병법을 가르치며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일러주었다.그는 방금 도망치다 붙잡힌 그녀가 지금 이 순간 다시 도주를 꿈꿀 거라곤 생각지 못할 것이다.그의 가르침대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그 꼴로 어멈을 만날 셈이냐."조원철은 고개를 들어 은근한 눈빛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강유영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뭘 보고 저러는 거지?'영문을 몰라 하던 찰나, 마차 안에서 그가 이빨로 목덜미를 짓이기듯 깨물던 감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설마...'강유영은 황급히 몸을 돌려 벽에 세워진 동거울을 마주 보았다.거리가 제법 멀었음에도 목덜미를 수놓은 얼룩덜룩한 흔적들이 한눈에 들어왔다.희고 고운 피부 위로 붉고 푸른 자국들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모두 그가 남긴 흔적들이었다."어찌 이런..."강유영은 황급히 손으로 목덜미를 가렸다.하얗고 고운 뺨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부끄러운 줄도 모르고!'평소엔 목덜미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그토록 애를 쓰더니, 오늘 마차 안에서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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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이거 놓으십시오...!"강유영은 다리로 걷어차고 손으로 밀어냈지만 그의 품에 갇혀 있는 탓에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홧김에 그의 어깨를 꽉 물어버렸다.마차에서 그토록 시달렸는데 또 이러다니.원망스러운 마음에 제법 힘을 주어 깨물었다.옷감을 사이에 두었음에도 꽤 깊숙이 파고든 느낌이 났다.하지만 조원철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오히려 강유영 쪽에서 놀라 슬그머니 입을 뗐다.어깨 부근의 옷깃이 젖어 있었고, 입안엔 옅은 피 맛이 돌았다.'피가 날 정도로 문 건가.'"이쪽도 물지 그러느냐."조원철은 그녀를 침상 가장자리에 내려놓고는 반대쪽 어깨를 내밀었다."이거 놓으십시오. 정말 싫습니다. 밉다고요..."강유영은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을 내리쳤다.목소리엔 울음기가 배어 있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자신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한 채 마음대로 몰아붙이고 모욕을 주는 그가 야속했다.어린 시절엔 누구보다 다정했던 오라비였거늘, 대체 어쩌다 이리 변한 걸까."한 번만 다시 말해 보거라."조원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강유영은 숨을 들이켜고 입을 다물었다.손목을 움켜쥔 커다란 손은 거칠면서도 따뜻했다.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다.마차 안에서 느꼈던 무력감이 다시금 밀려왔다.'마음대로 하라지.'강유영은 결국 고개를 돌렸는데, 이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몇 번이나 일렀느냐. 울지 말라니까."서늘했던 그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는 손목을 놓아주고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하실 거면 그냥 하십시오. 위선은 떨지 마시고요."강유영이 그의 손을 쳐내며 붉어진 눈시울로 쏘아붙였다.그는 늘 그녀에게 그런 짓만 강요했다.인륜을 저버린 자극적인 관계에 푹 빠져, 곧 들킬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즐기고 두려움에 떠는 그녀를 보며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어차피 반항할 힘도 없었다.달리 무슨 방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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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강유영은 몸을 웅크린 채 그를 등지고 돌아누웠다.그 모습은 마치 도마 위에 오른 어린 양 같았다.그녀는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 입술을 꾹 깨물었다.등 뒤로 이불이 걷히더니 그가 바짝 다가왔다.서늘한 옷감의 감촉에 강유영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옷을 벗고 있는 건가?'서러움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그의 눈에 그녀는 그저 이런 취급을 받기 위한 존재일 뿐이었다.아무런 애정도, 절제도 찾아볼 수 없었다.마치 물건이나 다름없는 취급이었다.그가 그녀의 발목을 쥐었다.강유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오히려 매끄럽고 시원한 감촉이 통증과 부기를 덜어주었다.코끝에 익숙하고 달착지근한 약초 향이 맴돌았다.강유영은 흠칫 놀라 잠시 우는 것조차 잊어버렸다.'약을 발라주는 건가?'그가 종종 내어주던 회춘고였다.문득 첫날 밤이 떠올랐다.그때도 너무 아파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사당 뒤뜰에서 그가 발라주었던 것도 이 연고였다."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 줄 알았느냐."조원철은 강유영의 머리 위에 턱을 기댄 채 나직이 물었다.정신을 차린 그녀의 얼굴은,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도 잊은 듯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제가 하겠습니다."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와 달리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멀찍이 떨어졌다.아까는 그렇게 애원해도 모질게 굴더니, 병 주고 약 주는 꼴이었으니 말이다.그녀는 결코 마음이 약해지거나, 품어선 안 될 헛된 기대를 갖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다 되었다."조원철은 순순히 손을 거두더니, 다시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강유영은 본능적으로 발버둥을 쳤다.지금은 그의 몸에 닿는 것조차 피하고 싶었다."가만히 있거라. 안 그러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장담 못 하니."조원철은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경고했다.강유영의 몸이 단번에 굳었다.또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것이 야속했다."옷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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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강유영은 온몸이 뜨거운 화로 속에 갇힌 듯, 훅훅 찌는 열기에 숨을 쉬기조차 벅찼다."도경진과는 어디서 마주친 거냐."얼마나 지났을까, 조원철이 불쑥 물었다."소주로 가는 거리에서 만났습니다."강유영은 길목을 상세히 말해주며 사실대로 대답했다.그러면서 속으로 가벼운 한숨을 삼켰다.그는 여전히 자신과 도경진 사이에 무언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앞으로는 그자와 왕래하지 말거라."조원철은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그 말에 강유영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꼭 도경진과 얽히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통제는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대답."그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에 힘을 주며 재촉했다."예."강유영은 마지못해 작게 대답했다.물론 진심은 아니었다.누구와 어울리든 그것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더는 그가 짜놓은 틀 안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또 어물쩍 넘어가려고..."조원철은 다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글을 가르치기 전만 해도 마냥 주눅이 들어 누구에게나 순종적이던 아이였다.하지만 지금은 제법 배짱이 두둑해진 데다 성격마저 단단해졌다.심지어 그에게도 굽히지 않고 꼿꼿하게 맞서고 있었다.'이거, 글을 잘못 가르친 건가.'착각이었을까?짧게 내뱉은 그의 말투에 희미한 웃음기가 묻어난 듯했다."또 도망칠 테냐."조원철은 다시 팔을 옥죄며 그녀에게 물었다."아니요."강유영은 본능적으로 재빨리 대답했는데,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몸을 빈틈없이 밀착시켜오는 이 억압적인 기운은, 누가 봐도 명백한 협박이었다.그녀는 감히 주저할 수 없었다."착하지. 자거라."조원철은 그녀의 고개를 돌려 이마에 입을 맞췄다.쉽게 잠들지 못할 줄 알았건만, 이리저리 치이며 수많은 일을 겪은 탓에 강유영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그녀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품에 안겨 있다가,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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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그럼 나와 같이 옥청원에 있을 테냐?"조원철은 그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표정은 한없이 담담했으나, 그 말에 담긴 뜻은 영 짓궂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소은원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그의 노골적인 농담에 강유영은 얼굴을 붉히며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서 답했다.예전 같았으면 저 올곧고 고결한 장남이 자신에게 이리 짓궂은 농을 던지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이 사내가 정녕 내가 알던 오라버니가 맞단 말인가.'"거긴 너무 후미지지 않느냐."조원철은 단호히 선을 그었다."전 거기가 편합니다."강유영이 눈치를 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조원철에게 학문을 배우며 세상물정에 눈을 떴고 생각도 깊어졌다.많은 이치들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하지만 태생적으로 사람들과 얽히는 것이 버거웠다.그녀에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후미진 구석이 가장 편안했다.소은원이 딱 그런 곳이었다.남의 눈을 피하기 좋고, 밖으로 나다니기도 수월했다."우선 요월원으로 돌아가거라."조원철은 강유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거처는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자."강유영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잘라 말하면, 더 고집을 피워봤자 소용없게 된다."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하거라."조원철이 마차 벽에 기대며 무심히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럼... 조금 더 지켜보고 정하겠습니다."강유영은 남들의 시선이라는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그렇다.그렇게 요란스레 집을 떠났다가 갓 돌아온 처지에 짐부터 빼겠다고 유난을 떨면, 한씨의 눈에 더 띄고 말 것이다.생각이 꼬리를 물자 그녀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두 달 가까이 훌쩍 집을 비운 데다 천 리 밖 소주까지 다녀왔으니, 한씨도 알아챘을 것이다.여인으로서 가문의 예법을 저버린 큰 죄였다.좋게 말해 일탈이지, 대놓고 말하면 천박하고 수치를 모르는 황당한 짓이었다.이대로 돌아가면 한씨가 이를 빌미 삼아 가혹한 형벌을 내릴 수도 있었다."어머니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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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마차가 멈추자 조원철은 먼저 내려 강유영을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강유영은 두 손을 꽉 쥔 채 입술을 깨물었다.보는 눈이 많은 진국공부 저택에서 그와 손을 맞잡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둘은 명목상 남매지간이 아니던가!조원철은 고개를 들어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손은 여전히 굳건히 내밀고 있었다.강유영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손끝에 살짝 얹었다.여기서 고집을 피웠다간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원철아, 무사히 돌아왔구나!"막 마차에서 내려 바닥을 딛으려는 순간, 한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강유영은 황급히 잡았던 손을 빼냈다.하지만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상태라 몸이 속절없이 앞으로 쏠렸다.눈앞엔 조원철이 서 있었다.그는 기민하게 팔을 뻗어 넘어지려는 그녀를 잡아주었다.다행히 한씨의 눈을 의식했는지 평소처럼 허리를 옭아매진 않고, 꽤 점잖게 어깨만 잡아 부축했다.강유영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버렸다.'난 참 잘하는 게 없구나.'"어디 다친 덴 없니?"한씨가 다가오며 살갑게 물었다.하지만 속으로는 요망한 것이라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두 달 가까이 집을 비운 사이, 강유영의 안색은 많이 좋아져 있었다.옷차림도 최상급 재질에 요즘 한창 유행하는 차림이었다.밖에서 꽤나 호사를 누리다 온 모양이었다.지금 그녀의 모습은 친딸인 조연화보다 훨씬 기품이 흘러넘쳐 한씨의 눈에는 몹시도 거슬렸다.'여우 같은 것. 어미를 닮아 사내 홀리는 데는 타고났구나.'국공부 정문 앞, 자신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서 있는데도 기어이 어떻게든 아들을 유혹하려는 모습이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문제는 조원철이었다.대체 저 요망한 계집의 어디에 홀려 저리 감싸고돈단 말인가.강유영이 저리 살이 오르고 치장을 한 것도 전부 아들의 주머니에서 나간 듯했다."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강유영은 서둘러 조원철에게서 떨어져 한씨에게 고개를 숙였다.창백하게 질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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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강유영은 시선을 아래로 깐 채 조용히 물러섰다.그녀는 순식간에 과거의 겁 많고 소심했던 진국공부의 양녀로 변해 있었다.한씨의 의심을 덜기 위한 최선의 방어였다.조원철이 황궁으로 떠나자, 공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한씨의 입가에 걸렸던 자애로운 미소도 씻은 듯 사라지고 어느새 서늘한 기운만 맴돌 뿐이었다."따라오너라."한씨는 몸을 돌려 안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강유영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뒤를 따랐다.한씨는 늘 그녀를 못마땅히 여기며 뒤에서 박대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정말 오라버니와의 일을 알아채신 걸까.'서유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국공부인이 강유영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바 아니었다.그녀의 소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강유영을 지키는 것이었다.상대가 진국공부의 안주인일지라도 상관없었다.안채로 들어선 한씨는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가운 눈매를 치켜뜨며 강유영을 노려보았다."꿇어라."한씨의 뒤에 선 풍씨 어멈도 턱을 치켜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쏘아보았다.강유영은 겁에 질린 듯 어깨를 움츠리며 눈물을 글썽였다."어머니, 갑자기 어찌 이러십니까? 제가 무얼 잘못했단 말입니까?"두 손을 꽉 쥔 그녀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다짜고짜 무릎부터 꿇리다니, 정말 확실한 꼬투리라도 잡은 모양이었다."너와 원철이 사이의 일을 정녕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한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아들과 양녀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아직 명확한 증좌는 없었다.그저 찔러보기 위한 허세였다.글도 모르고 멍청하리만치 유순한 강유영이라면 이런 겁박만으로도 충분히 실토할 거라 믿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강유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소맷자락 안에서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꽉 말아 쥐고 있었다.'역시, 눈치를 채셨구나.'하지만 그녀 역시 한씨가 그저 떠보는 중이란 걸 꿰뚫어 보았다.조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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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이 요망한 것이 기어이 진국공부를 파멸로 몰고 가려는구나.'"어머니께서 원하신다면 무릎을 꿇겠습니다. 제발 노여움을 푸십시오."강유영은 바닥에 엎드려 겁에 질린 채 서럽게 흐느꼈다."아무리 화가 나셔도 어찌 오라버니와 저를 엮어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이는 오라버니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행여 밖으로 새어 나가면 오라버니의 앞길을 가로막을지도 모릅니다..."겁에 질린 척 연기할수록 그녀의 생각은 더욱 또렷해졌다.‘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입을 열어선 안 된다!’한씨는 물증이 없어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이니, 지금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실토하는 순간, 그녀의 목숨은 온전치 못할 것이었다."네가 감히 그 아이의 앞길을 운운해?"한씨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그걸 아는 년이 오라비에게 꼬리를 쳐?'늘 쥐죽은 듯 움츠려 있어 다루기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찔러보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강유영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죽여 울기만 했다.가까스로 이성을 찾은 한씨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내 하나만 묻자. 전당포 일은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한씨는 이 일로 그녀를 추궁하려 벼르던 참이었다.금수상회 쪽에서 돌연 문서 발급을 거부하고 은자 지급마저 멈춰버리는 바람에, 당장 쓸 은자가 없어 막대한 이자를 주고 밖에서 돈을 끌어다 쓴 상황이었다.거기에 겹친 집안의 변고와 무산된 혼사로 나간 은자만 해도 산더미였다.지금 한씨는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문서에 제 지장이 필요하시다면 당장이라도 찍어 드리겠습니다."강유영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 올리며 한없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한씨는 몰래 그녀에게 속한 은자를 쥐고 주무르더니, 이제 빼가지 못하게 되자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그녀는 이참에 빼앗긴 은자들을 되찾을 방도를 찾아봐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그리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겠다면, 처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말고 네년의 죄를 곰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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