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71 - チャプター 280

467 チャプター

제271화

여인 넷이서만 나서는 길인 만큼, 매사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이내 덜컹거리던 마차가 멈추고 밖에서 단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씨, 어멈. 제가 부축할 테니 천천히 내려오십시오.”오씨 어멈은 조심스레 면사포가 달린 모자를 내밀었다.“아씨, 이걸 쓰시지요.”오씨 어멈이 정성스레 모자를 씌워 주자, 강유영은 직접 모자챙을 반듯하게 매만졌다.이윽고 단비의 손에 의지해 마차에서 내려서려던 순간, 발목이 살짝 꺾이며 몸이 휘청거렸다.“괜찮으십니까, 아씨?”단비가 황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괜찮다.”면사포 아래로 감춰진 강유영의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출행 전야에 조원철과 뜨거운 밤을 꼬박 새운 탓이었다.길을 나선 지 벌써 이틀박에 안 됐음에도 체력은 영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아랫배도 여전히 아파왔다.그래도 남몰래 부어오른 생채기에 약을 발라 둔 덕분에 걸음걸이는 한결 자연스러워졌다.객잔 안으로 들어선 서유는 가장 으뜸가는 상급 객실 두 개를 잡았다.강유영은 오씨 어멈과 한 방을 쓰고, 단비와 서유가 한 방을 쓰기로 했다.강유영은 불필요한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객잔 일꾼에게 식사를 방으로 보내 달라 이르고는 객실로 향했다.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은 강유영은 홀로 들어오는 단비를 보며 물었다.“서유는 왜 같이 안 오고?”“서유가 오지 않았습니까?”단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밖으로 향했다.“제가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강유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고요히 침묵을 지켰다.사실 그녀는 애당초 서유를 이번 여정에 동행시킬 마음이 없었다.최근 서유가 보여 준 맹목적인 충성심과 간절한 애원에 마음이 약해져 거두긴 했으나, 그녀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가는 길에 서유의 언행을 찬찬히 살펴보고,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구석이 보이면 그 길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단비가 문을 열고 들어섰고, 서유가 눈치를 보며 그 뒤를 따랐다.“아씨, 서유 왔어요.”단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유영의 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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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하지만 밤이 깊어지도록 머릿속에는 서유가 전해 준 말이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맴도는 탓에, 그녀는 쉽사리 잠을 청할 수 없었다.건정제가 회남왕의 말을 믿고 조원철을 옥에 가두었다고 했다.그녀는 그에 대한 상념을 모질게 지워 내려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눈을 감아도 며칠 전 뜨겁게 살을 맞댔던 그 밤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가슴을 헤집었다.오씨 어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넌지시 바라보았다.강유영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으나, 까만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고 숨결도 불규칙하게 흐트러져 있었다.“잠이 오지 않습니까?”오씨 어멈이 나지막이 묻자, 강유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오씨 어멈은 그녀의 찬 손을 꼭 쥐어 주며 부드럽게 다독였다.“정말 돌아가 보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안 갑니다.”강유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어멈에게 하는 대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힘도 없습니다. 경성에 돌아간다 한들, 그분에게 보탬이 될 일은 없을 겁니다.”경성에 돌아간다고 한들 그녀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그를 감옥에서 빼낼 방도 따위는 없었다.그녀는 그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뿐, 돌아가든 말든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그래도 마음이 쓰이지 않습니까?”오씨 어멈은 강유영의 유모이자 친어미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어찌 이 가엾고 작은 아이의 속내를 모를까.본디 마음이 여리고 잔정이 깊은 아이였다.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세자에게 그런 큰일이 닥쳤다는데 어찌 속이 타들어 가지 않겠는가.“제가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강유영은 쓰디쓴 조소를 지으며 옅게 웃었다.“그분은 매사에 치밀하고 빈틈없는 분입니다. 수하들도 많고 진국공부라는 든든한 뒷배도 있으니, 이번 일 역시 해결할 방도가 있으실 겁니다. 제 걱정 따위는 그분께 필요치 않습니다.”애당초 그녀가 주제넘게 끼어들어 걱정할 문제도 아니었다.아까는 경황이 없어 묻지 못했지만, 명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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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어젯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전에 늘 안고 자던 비단 이불을 요월원 내 방 장롱 맨 아래 칸에 두고 온 것 같구나. 수고스럽겠지만 네가 다시 가서 그것 좀 가져다줘야겠다.”강유영의 목소리는 비록 나직하고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단호함이 느껴졌다.매사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기백이었다.오씨 어멈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으나, 이내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예, 그리하겠습니다. 말을 몰고 다녀오면 하루면 충분할 겁니다.”서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그럼... 아씨께서는 여기서 기다리실 건가요?”서유는 강유영의 속내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그녀가 아는 유영 아씨는 얄팍한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섣불리 시험할 위인이 못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우리는 예정대로 서쪽으로 이동할 거다. 어차피 하루밖에 차이가 안 나니, 너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목적지에서 합류하자꾸나.”강유영은 품에서 묵직한 은괴 한 정을 꺼내 서유에게 건넸다.“말을 구해서 다녀오너라. 가는 길에 조심하고.”“말을 구하는 데 이리 많은 은자는 필요 없습니다.”서유가 놀란 얼굴로 황급히 말했다.“남는 것은 네가 쓰거라. 나중에 만나면 남은 것만 돌려주면 된다.”강유영은 손을 저으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예.”마지못해 은자를 받아 든 서유는 홀로 남겨질 강유영이 마음에 걸리는 듯, 오씨 어멈에게 거듭 신신당부했다.“어멈, 우리 아씨 좀 잘 보살펴 주십시오. 해가 저물면 무리해서 이동하지 마시고, 제가 금방 뒤따라갈 테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알겠다. 우리 걱정은 말고 다녀오너라.”오씨 어멈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안심한 서유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아씨, 그 비단 이불이라면 우리 마차에 있지 않습니까?”오씨 어멈은 그제야 참았던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강유영이 직접 바느질했던 그 비단 이불은 어릴 적부터 애착을 두던 물건이 맞았다.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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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마차는 방향을 틀었다.그렇게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덧 보름이 훌쩍 지났다.마차는 관도를 따라 계속 내달렸다.삼월로 접어들면서 남쪽으로 향할수록 날씨는 한결 온화해졌다.길가에는 들꽃들이 바람에 나부꼈고, 하늘에는 새 떼가 자유로이 날갯짓을 했다.강유영은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모처럼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아씨, 저 앞에 역잔이 보이네요. 객잔과 다루도 있는데, 잠시 쉬어 가실까요?”마부석에 앉은 단비가 돌아보며 물었다.“찻집에 가서 요깃거리로 할 만한 다과가 있는지 살펴보자꾸나.”강유영은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저만치 늘어선 누각들을 내다보았다.“예, 아씨.”단비는 쾌활하게 대답하며 찻집 앞 공터에 마차를 세웠다.“강 소저?”마차에서 내려 찻집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밖에서 누군가 놀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강유영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도경진이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도 대인?”도경진은 분명 경성의 요직을 맡고 있었다.그런 그가 왜 수백 리나 떨어진 이곳에 불쑥 나타난 것일까?“소저께서 어찌 이런 곳에 계십니까?”도경진 역시 이 우연이 믿기지 않는 듯 놀라움과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강유영에게 다가가며 가슴이 두근거렸다.맑고 깨끗한 얼굴, 흰 피부는 여전했다.예전보다 야윈 듯했으나, 주눅 들어 있던 과거와 달리 한결 생기가 돌고 눈빛도 또렷했다.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재회에 그는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말하자면 깁니다.”강유영은 복잡한 사연을 얼버무리고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어찌 되었든, 저는 더 이상 진국공부에 머물지 않습니다. 양주에 터를 잡고 조용히 지낼 생각인데, 대인께서는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그녀도 말을 건네며 그를 찬찬히 살폈다.그림처럼 수려한 이목구비와 반듯한 군자의 풍모는 여전했다.“고과를 무사히 마쳐, 소주 통판으로 발령받았습니다.”도경진은 애써 감정을 누르며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소저, 저와 함께 소주로 가시는 것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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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조원철은 침묵이 내려앉은 마당을 무섭게 가로질러 갔다.서유가 숨을 죽이고 슬쩍 고개를 들어 보니, 바람에 나부끼는 도포 자락과 흙먼지 묻은 가죽 장화가 눈에 들어왔다.끼익!조원철이 안채의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자, 서유는 소스라치게 놀란 듯 재빨리 곁에 엎드린 청류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지금은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 처지야.”청류는 짧은 몇 마디만 던지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강유영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두가 입을 모아 주군을 기만한 꼴이 되었다.오늘 마당에 엎드린 자들 중 성한 몸으로 걸어 나갈 이는 없으리라.다들 꼼짝없이 형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조원철은 느릿하게 문지방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방 안은 먼지 한 톨 없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탁자 위의 다구들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방 안은 그녀가 처음 머물렀던 그때와 다름없이 깨끗했다.마치 그녀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실 자체가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린 듯했다.조원철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움켜쥔 주먹의 뼈마디가 하얗게 불거졌다.그는 굳은 채 서 있다가, 이윽고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침상의 휘장과 이불은 정갈하게 개여 있었다.그녀가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머리맡 촛대의 각도조차 흐트러짐이 없었다.살을 섞던 뜨거운 그 밤이 한낱 허망한 꿈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몸을 돌리자,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나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걸음을 옮겨 상자 안을 내려다보는 순간, 그는 숨이 턱 막혔다.성년례를 올리던 날 건네주었던 옥패, 왕연령에게 모욕을 당한 날 안겨 주었던 장신구들, 마차 안에서 직접 꽂아 주었던 순금 비녀, 처음 입궁하던 날 사 주었던 머리 장식들까지.그가 그녀에게 주었던 모든 장신구가 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심지어 서재에서 억지로 쥐여 주었던 은표 뭉치까지도 그대로 들어 있었다.그녀는 단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고스란히 남겨 둔 채 떠났다.조원철은 짙은 속눈썹을 내리깐 채 상자 속 물건들을 하염없이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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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강유영이 미련 없이 떠나가자, 조원철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참담한 기색을 내비쳤다.한편, 서유는 금방이라도 목이 달아날까 두려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고, 청운은 재빨리 주위 수하들에게 눈짓한 뒤 입을 열었다.“청란, 너부터 고하거라. 세자께서 너희 넷에게 유영 아씨의 안위를 당부하셨거늘, 어찌 처소를 지키지 않고 밖으로 나돌았느냐?”가장 먼저 문책해야 할 대상은 당연히 청란 무리였다.네 명이서 아씨 한 명을 지키지 못한 것은 명백한 그들의 실책이었다.“세자께서 아씨의 명을 따르라 하명하셨습니다.”청란은 고개를 숙인 채 또박또박 대답했다.“아씨께서 먼저 제게 전당포 일을 알아보라 명하셨고, 그 후 금수상회의 하 낭자를 만나셨습니다. 뒤이어 금수상회의 내막을 조사하라 명하시기에, 저는 아씨께서 그저 본인의 출생을 캐려 하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저희를 멀리 따돌리기 위한 술책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모든 건 저의 불찰이니,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청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납작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서유, 너는 어찌 된 것이냐?”청운은 서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서유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소인은... 사실 아씨께서 떠나실 거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알고 있었다고?”청류가 번쩍 고개를 들며 발끈했다.“알았으면서 왜 진작 고하지 않았어!”그는 순간 욱하는 마음에 고함을 내질렀다.하지만 이내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님을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조원철의 눈치를 살폈다.조원철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청류는 흠칫하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그는 서유가 답답했다.떠날 것을 알았다면 진작 고할 일이지, 그녀가 입을 다문 탓에 모두가 이 꼴이 된 것이다.“감히 고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씨께서 제게 그 일을 흘리신 건 충심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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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청운도 세자가 극도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단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풀어 강유영을 찾아야 할 때였다.이들은 세자의 수족이자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형제들이기도 했다.청운으로서는 이들을 변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강남 일대로 사람을 풀어 찾거라.”조원철은 잠시 생각한 뒤 명을 내렸다.청운이 막 명을 받들려던 그때, 서유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세자, 아씨께서는 분명 서북쪽의 작은 성에 터를 잡겠다 하셨습니다...”서유는 끝까지 자신이 따라잡지 못해 길이 엇갈렸을 뿐이라 믿고 싶었다.“시키는 대로 하거라.”조원철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유를 노려보며 말했다.예전 강유영에게 글을 가르칠 때, 그녀는 늘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강남의 풍경을 동경했었다.이번에 큰마음 먹고 길을 나섰으니 분명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서북쪽을 운운한 것은 애초에 추적을 피하기 위한 얄팍한 연막에 불과했다.“예.”청운은 황급히 대답하고 엎드린 이들을 향해 손짓했다.“원철아, 서왕 전하께서 오셨다. 헌데 이 아이들은 왜 이러고 있느냐?”밖에서 들어온 한씨는 마당에 무릎 꿇은 수하들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그러고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아무 일 아닙니다. 나가시지요.”조원철이 담담하게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유영이는 어디 갔느냐?”이내 한씨가 텅 빈 방 안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강유영의 물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듯했다.“당분간 밖에서 지내라 일렀습니다. 어머니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조원철은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대체 어딜 보냈기에 그러느냐?”한씨가 다급히 뒤를 쫓으며 캐물었다.“아무리 그래도 네 누이동생이거늘, 너...”한씨는 늘 강유영이 제 아들을 홀릴까 경계해 왔다.조원철의 냉혹한 성격에 저깟 계집애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 여겼건만, 지금 돌아가는 꼴이 영 심상치 않았다.집안이 역모에 휩쓸려 풍비박산 날 위기에서 강유영만 홀로 피신시킨 것이다.저도 모르는 새에 흔적도 없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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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예!”청운은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강유영 일행이 수저우(蘇州: 중국 장쑤성에 위치한 도시)에 당도한 날, 마침 촉촉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여기서 잠시 멈춰라.”강유영은 돌다리 앞에서 마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섰다.단비가 재빨리 다가가 우산을 씌워 주었다.“참으로 아름답구나.”강유영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다.소주의 비는 얇은 안개처럼 부드럽고 몽롱했다.빗물에 짙게 물든 돌담과 물가에 낭창하게 늘어진 수양버들의 푸른 잎사귀는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사람들이 왜 강남을 수묵화에 비유하는지 알겠습니다.”도경진도 마차에서 내려 그녀의 곁에 서며 찬탄했다.“이곳이 참 마음에 드네요.”강유영은 진심으로 이 정취에 매료되었다.“갑시다. 저는 관아로 가서 먼저 부임을 알리겠습니다.”도경진이 말했다.“아마 관저가 마련되어 있을 겁니다. 소저께서도 당장 묵을 곳이 마땅찮을 테니, 제 거처가 정돈되는 대로 저와 함께 쉴 만한 집을 알아보러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내심 그는 강유영을 자신의 관저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소주 통판으로 부임했으니 꽤 번듯한 저택이 배정되었을 터였다.하지만 행여나 그녀에게 부담을 줄까 조심스러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아닙니다. 대인께선 부임 절차로 바쁘실 테니 제 걱정은 마시고 관아로 가십시오. 저 혼자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강유영이 화사하게 웃으며 거절했다.그녀는 소주에 완전히 뿌리를 내릴지 아직 고민 중이었다.우선 몇 달 지낼 만한 셋집을 구하고 천천히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알겠습니다.”도경진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도 부인의 약을 챙겨 드리는 것, 잊지 마세요.”강유영이 당부했다.“부인의 옥체가 한결 나아지시긴 했으나 아직은 무리하셔선 안 됩니다.”“모두 소저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도경진은 깊숙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천만에요, 제가 한 일이 뭐 있습니까. 단비가 잔심부름을 거들었을 뿐입니다.”강유영은 쑥스러운 듯 손을 내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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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도경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아, 아무것도 아니다. 저 앞엔 누가 있는 게냐?”마차가 멈춰 서자, 도부인은 이내 사람들이 모여있는 바깥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지부 대인께서 저희를 마중하라 보내신 이들입니다. 저는 먼저 관아로 가 부임 인사를 올릴 테니, 어머니께서는 저들을 따라 관저로 가 짐을 푸시지요.”“알겠다.”도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남풍은 도경진이 떠나자마자 재빨리 걸음을 옮겨 마차 행렬에 끼어들었다.관아에서 온 이들은 남풍을 도경진의 하인으로 여겼고, 도 부인은 그를 관아 사람으로 착각했다.덕분에 그는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무사히 관저 안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남풍은 짐을 나르는 틈을 타 도 부인에게 다가가 붙임성 좋게 말을 건넸다.“부인, 대인께선 용모도 출중하시고 젊은 나이에 탐화랑까지 지내셨다 들었습니다. 저희 지부 대인께도 혼기가 찬 따님이 계신데, 두 분이 참으로 잘 어울릴 듯합니다.”“그래?”도 부인은 눈이 번쩍 뜨였다.“지부 대인께 혼기가 찬 따님이 있다고?”소주는 물산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이다.이곳 지부의 여식이라면 그 배경과 재력이 훌륭할 터.쥐뿔도 없는 강유영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훌륭한 혼처였다.“그렇고말고요.”남풍은 너스레를 떨며 덧붙였다.“헌데 아까 대인과 함께 오신 강 소저가 대인과 꽤 정분이 두터워 보이시더군요. 그 소저가 이번에 경성에서 내려오며 가져온 은표만 해도 오천 냥은 거뜬히 넘는 눈치였습니다. 게다가 경성의 그 유명한 전당포도 그 소저의 것이라지 뭡니까.”서준의 지시로 강유영의 뒷조사를 낱낱이 마친 남풍이었다.서준은 사내들이 강유영 곁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막으라 명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경진을 무력으로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래서 생각 끝에 탐욕스럽고 셈이 빠른 도 부인을 장기말로 쓰기로 했다.강유영은 누구와 번거롭게 얽히는 것을 질색하는 성격이니, 도 부인이 극성을 부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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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강유영은 의아한 눈으로 도 부인을 바라보았다.그녀와 살갑게 대화를 나눌 만큼 각별한 사이도 아니고, 도 부인이 내심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도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그런 도 부인이 어찌 찾아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다른 게 아니라...”도 부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어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참으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구나.”“무슨 일이십니까? 편히 말씀하십시오.”도 부인과 그녀 사이에 그리 뜸을 들일 만한 중대한 사안이 있을 리 없었다.“우리가 이제 막 소주에 자리를 잡지 않았느냐.”도 부인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수중에 남은 은자가 영 쪼들리는구나. 경진이 그 아이가 걱정할까 어미 된 도리로 말도 못 꺼내겠고. 하여 네게 은자를 조금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왔다. 며칠 뒤 경진이가 첫 녹봉을 받으면 바로 갚으마.”도 부인은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이며 자세를 낮추었다.“얼마나 필요하십니까?”강유영은 별다른 경계심 없이 맑은 눈으로 되물었다.타향에서 의지할 곳이 마땅찮으면 일시적으로 곤궁해질 수 있었다.도 부인의 청이 그리 무리한 부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우선 천오백 냥 정도만 빌려다오.”강유영이 흔쾌히 나오자, 도 부인은 당초 생각했던 오백 냥을 훌쩍 뛰어넘어 거액을 불렀다.큰돈을 빌려 약점을 쥐고 흔들 심산이었다.은자를 못 갚는다고 하면 꼼짝없이 아들의 첩으로 들어앉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아들의 출중한 용모와 재주를 생각하면, 상인 집안 핏줄인 강유영이 감히 첩실 자리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부인, 열다섯 냥을 잘못 말씀하신 건 아니신지요? 열다섯 냥이라면 당장 내어 드릴 수 있으나, 천오백 냥이라니요. 농이 지나치십니다.”강유영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단칼에 거절했다.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경계심이 일었다.하 낭자에게 빌린 오천 냥의 은표가 품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오씨 어멈조차 모르는 비밀이었다.헌데 도 부인이 어찌 다짜고짜 천오백 냥이라는 거액을 요구한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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