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321 - Chapter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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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다행히 그들의 속내를 알아낸 덕에 미리 대비라도 할 수 있었다. 이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일어나거라."조원철이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강유영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갑자기 왜 일어나라는 거지?'조원철은 그녀를 한쪽으로 당겨 세우고는 자신이 의자에 앉았다.강유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을 삐죽 내밀었다.'결국 이런 거였어?'그녀는 살짝 어처구니가 없었다."이리 오거라."조원철은 허벅지를 톡톡 치며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저는 괜찮습니다."강유영은 딴청을 피우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느새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참으로 뻔뻔한 사내였다."네게 유용한 정보가 하나 있는데. 그것도 필요 없느냐?"조원철은 턱을 살짝 치켜들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강유영의 하얀 뺨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더 물러서며 두 손을 등 뒤로 감추고 그를 곱지 않게 흘겨보았다.그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중요한 정보를 미끼로 은근슬쩍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는 했다.'절대 안 넘어갈 거야.'시간을 두고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든 스스로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그럼 관두자."말을 마친 그는 책상 위 책을 집어 들었다.하지만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듯, 굳이 그녀를 강요하지 않았다."저희는 언제 저택으로 돌아가나요?"강유영이 조심스레 물었다.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한씨와 노부인의 감시가 살벌한 마당에, 밤에 몰래 빠져나온 걸 들키기라도 하면 뼈도 못 추릴 것이다.하지만 조원철은 묵묵히 책장만 넘길 뿐 대꾸가 없었다.강유영이 잠시 머뭇거리다 그가 안 돌아간다면 혼자라도 돌아가겠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탁!조원철은 책을 덮고 일어나더니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가자."강유영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이렇게 순순히 돌아가준다는 것이 이상했다.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일까?지금껏 그가 이토록 순순히 그녀의 뜻을 따라준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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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내가 전에 네게 셈을 맡겼던 장부들 기억하느냐."조원철은 발버둥 치는 그녀를 단단히 품에 가두며 나직이 물었다.강유영은 그 말에 흠칫 놀라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갑자기 장부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걸까?그에게 셈을 배운 뒤로, 날마다 그가 던져주는 산더미 같은 장부들을 들여다보며 골머리를 앓았었다.이상하게도 그 장부들은 하나같이 숫자를 교묘하게 조작한 가짜 장부였다.누가 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런 엉터리 장부를 만들었을까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조원철의 사람들이 벌인 짓은 아닐 터였다.그들이 감히 주군을 속일 리도 없고, 만에 하나 그랬다면 그가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 이렇게 꾸준히 가짜 장부가 나올 리 없었다.갑작스러운 장부 이야기에 그녀는 손에 힘을 빼고 생각에 잠겼다."그 장부들, 우리 국공부의 공금 내역이다."조원철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해 주며 덤덤히 말했다."집안의 장부요?" 강유영의 까만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설마.... 국공부의 공용 장부란 말씀이십니까?"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손에 확실한 패가 들어온 셈이었다."그래."조원철이 짧막하게 대꾸했다.강유영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국공부의 안살림과 재정은 모두 부인 한씨의 소관이었다.그렇다면 한씨가 그동안 공금에 손을 대어 엄청난 재물을 빼돌렸다는 뜻이 아닌가. 어림잡아도 수십만 냥은 족히 될 터였다.한씨가 주도한 모든 물품 구매가 실제 시세의 두세 배로 부풀려져 있었고, 거기에 전당포에서 빼돌린 자금까지 합산하면 그 규모는 수백만 냥에 달할지도 모른다.'도대체 왜?'한씨는 진국공부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굴었다.그런 그녀가 그 막대한 은자를 빼돌려 뭘 도모하려 했단 말인가?설마 세자인 조원철에게 물려주기 위해?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뒤로 빼돌리지 않아도 국공부의 모든 재산은 어차피 조원철의 것이 될 것이다.그렇다면 차남인 조원계를 챙겨주려고 빼돌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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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노부인은 도관에 머물며 수년째 수련에만 매달려 왔다.아마도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자 하는 바람일 것이다."틀렸다."조원철은 고개를 저었다."장생불로가 목적이라면 굳이 저택으로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지."강유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럼... 할머니께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국공부의 안위란 말씀이십니까? 아! 이제 알겠습니다."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다.한씨가 저지른 짓은 국공부의 근간을 해치는 일이었다.가문의 명운을 중히 여기는 노부인이 며느리가 재산을 몰래 빼돌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하실까?이 사실을 노부인의 귀에 흘린다면, 두 사람은 서로 대립하느라 그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질 것이다.완벽한 이간계책이었다."이제 감이 오느냐."조원철이 낮게 물었다.강유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그분은 오라버니의 어머니십니다. 제가 정말 그리해도 가만히 계실 건가요?"나중에 그가 말을 바꾸어 원망할까 봐 확실히 다짐을 받아두고 싶었다."잘못을 저질렀으면, 응당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조원철은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마치 자신과 무관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강유영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사람들은 그를 두고 공명정대한 군자라고 칭송하지만, 실상 그는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차가운 면이 있었다.자신의 어머니가 얽힌 일에도 흔들림 없는 그의 모습을 보니 왠지 다가가기가 더 두려워졌다.만약 언젠가 그가 자신을 내치게 된다면, 그때도 이토록 매정할까 싶어 마음이 절로 움츠러들었다.다음 날 아침.강유영이 막 단장을 시작하려는데 서유가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아씨, 청류님이 방금 다녀가셨습니다! 국공 부인께서 지금 요월원을 향해 오고 계신답니다."서유가 다급히 고했다.어젯밤 요월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서유에게 한씨의 동태를 주의 깊게 살피라고 일러두었다.한씨가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뻔했다.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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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강유영은 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맑은 차를 따랐다."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게냐?"노부인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왜 무턱대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혹시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아무것도 아닙니다."강유영은 두 손으로 찻잔을 받쳐 들고 노부인에게 내밀었다."연화가 늘 제가 할머니께 불효한다고, 병수발을 드는 것도 딴마음을 품어서라고 흉을 보더군요. 행여 오해가 생길까 두렵습니다."그녀는 나긋나긋한 어조로 자신을 변호했다.동시에 자신이 차에 아무것도 타지 않았다는 것을 노부인의 눈앞에서 똑똑히 보여주었다.조연화가 불효 운운했다는 것은 임기응변으로 지어낸 말이었다.어릴 적부터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조연화를 핑계 삼는 것쯤은 아무런 가책도 느껴지지 않았다."연화 그 아이가 헛소리를 즐겨 하는구나. 네가 어디 그런 아이겠느냐?"노부인은 찻잔을 든 채 은밀히 강유영을 살폈다.겉보기엔 순종적인 척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신중한 계집이었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니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강유영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온순한 모습이었다."옷이 이리 낡아서야 쓰나. 나중에 네 어머니에게 요즘 유행하는 부운 비단으로 옷 두어 벌 지어주라 이르마."노부인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강유영이 돌아가고 나면 병세가 악화된 척 연기할 셈이었다."가당치도 않습니다."강유영은 황급히 거절했다."연화 말로는 그 봄옷 한 벌에 은자 서른 냥이 넘는다고 하던걸요. 저는 이 옷으로도 족하니, 굳이 어머니께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그녀는 자연스럽게 한씨가 장부에 적어둔 옷값을 넌지시 흘렸다."터무니없는 소리. 부운 비단이 아무리 비싸도 한 벌에 열다섯 냥을 넘지 않는다. 서른 냥이라니, 금실로 짠 것도 아니고."노부인이 헛웃음을 쳤다.화씨 어멈도 곁에서 거들었다."아씨께서 잘못 들으신 게 아닙니까?""그럴 리가요."강유영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연화가 직접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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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서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속삭였다."안심하십시오, 아씨. 이따가 바로 손을 써두겠습니다."강유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지난번 국공부에서 도망쳤을 때, 서유는 끝까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마음 놓고 서유에게 일을 맡길 수 있었다."아씨."이화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체격이 늘씬하고 반반하게 생겼지만, 태도에는 오만함이 역력했다.양녀인 강유영은 원래 집안에서 투명인간과 같은 처지였다. 게다가 노부인과 한씨의 눈밖에 난 상황이었다.이화는 머지않아 비참하게 쫓겨날 강유영을 아예 윗전 취급도 하지 않았다. 화씨 어멈이 노부인의 뜻이라며 굳이 예우할 필요 없다고 넌지시 언질을 준 원인도 있었다.그러니 안하무인으로 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무슨 일이지?"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이화를 바라보았다.이화는 한눈에 봐도 만만한 상이 아니었다. 노부인은 시녀랍시고 보내주었지만, 실상은 감시하고 괴롭히려는 수작이 뻔했다.하지만 웃어른이 하사한 시녀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일손도 부족하던 터라 일단 받아두고 차차 생각하기로 했다."이치대로라면 미천한 시녀인 제가 감히 아씨께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닙니다. 허나 노부인께서는 법도를 중시하는 분이고, 저는 그런 노부인의 뜻에 따라 아씨를 모시게 되었으니, 한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아씨께서도 제 마음 이해하시겠지요?"이화는 대놓고 노부인을 들먹였다.노부인을 방패 삼아 효도 운운하면 양녀 따위는 찍소리도 못할 줄 알았던 것이다."말해보거라."강유영은 몸을 돌려 이화를 마주 보았다.그녀는 본래 유순하고 단아한 생김새라 가만히 있으면 한없이 만만해 보일 법도 했다.곁에 있던 서유가 보다 못해 나섰다."어찌 감히…."서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강유영의 앞을 막아섰다.그녀는 모시면 모실수록 강유영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그래서 모시는 상전이 이런 것에게 하대받는 꼴은 그냥 볼 수 없었다."서유야."강유영이 서유의 옷자락을 잡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어찌 됐든 이화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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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이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불만을 내비쳤다."아씨, 노부인께서 저를 보내신 건 아씨의 시중을 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잔심부름은 단비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노부인 곁에서 일등 시녀 노릇을 하던 그녀로서는 이런 잡일을 하기가 싫었다."뭐 좀 살 게 있어서 내보냈다."강유영은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가기 싫다면 관두거라. 내 곁엔 일손이 부족해 시녀들이 고생할 수밖에 없지. 이따가 할머니께 말씀드려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 해야겠다."주인의 지시를 거역한 것은 명백히 이화의 잘못이었다. 강유영이 정말 노부인을 찾아가 이 일을 고한다 해도 명분은 충분했다.곁에 있던 서유는 고소하다는 듯 이화를 흘겨보았다.'언제부터 이리 단호해지셨을까.'예전 같았으면 이런 일을 겪고 방에 숨어 혼자 눈물만 훔쳤을 것이다. 세자는 늘 아씨가 주관을 가지고 부당한 대우에 맞서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그 뜻대로 아씨가 조금씩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니 서유는 마음이 한결 뿌듯했다."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기왕 모시게 된 바에 제가 어찌 힘들다 하겠습니까.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이화는 굳은 얼굴을 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꼴좋다."서유는 이화의 뒷모습을 향해 통쾌한 듯 중얼거렸다."대놓고 싸움을 걸지는 말거라. 나는 상전이고 저 아이는 시종이다.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으마."강유영이 서유에게 당부했다."명심하겠습니다."서유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사람을 보내 오라버니께 단비를 돌려보내 달라고 전하거라."강유영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이화가 매일 저렇게 진을 치고 있는데 단비가 계속 안 돌아오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게다."조원철은 나중에 오씨 어멈에게 데려가준다고 약속해 놓고 오늘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녀는 내심 어멈이 걱정되었다.단비가 돌아오면, 오씨 어멈 곁에 아무도 없으니 그 또한 마음이 쓰였다.섣불리 시녀를 새로 들이자니 어떤 성정인지 알 수 없어 꺼림직했다."예, 알겠습니다."서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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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당연히 같이 가야지."강유영은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화는 이곳 일이 처음일 테니, 서유 네가 가서 좀 가르쳐 주거라. 방에 먼지 한 톨 없이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수법이야 한씨에게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동안 곁에서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예. 가자, 이화."서유의 눈이 반짝였다.이화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아주 자신 있었다.강유영은 두 사람이 나란히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는 식탁에 앉았다.맹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멀건 좁쌀죽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이화는 고작 이런 걸로 자신을 굶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점심 한 끼쯤이야 대충 아무거나 먹고 때우면 그만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평소 식탐이 없는 탓에 방 안에 요기할 거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뿐이었다.밖으로 나가 저잣거리를 한 바퀴 돌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움직이기가 귀찮았다.그녀는 아쉬운 대로 묽은 죽을 마셔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그때, 뒤쪽 창문 쪽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누구세요?"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마음속으로는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다."나다."역시나 조원철이었다.다가가서 창문을 열자, 수려하고 서늘한 그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그녀는 지금처럼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일은 드물었다. 이 각도에서 보니 곧게 뻗은 긴 속눈썹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무슨 일이십니까?"그녀는 창문을 조금만 연 채, 창살 뒤로 얼굴을 반쯤 숨겼다."할 말이 있다."조원철은 창문을 활짝 밀어젖히고 단숨에 방 안으로 넘어 들어왔다."할머니께서 저를 감시하라고 시녀를 보내셨습니다."감시가 붙었는데 왜 굳이 이곳까지 왔느냐는 타박이 섞인 말이었다.강유영은 뒷걸음질을 치며 그를 막아서지 않았다.어차피 그가 들어오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막을 방법도 없었다.밖에 있는 사람들이, 평소 고결하고 공명정대한 세자께서 대낮부터 양동생의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꼴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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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만약 이화가 불쑥 들어와 그가 방에 있는 모습을 본다면, 지금까지 세운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할머니 처소에 가서는 뭐라 했느냐."조원철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강유영은 낡은 옷을 입고 춘휘원에 가서 노부인에게 한씨의 장부 문제를 넌지시 흘린 일까지, 하나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어차피 그녀가 지금 쓰는 계책은 모두 그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고작 이런 일로 그를 속일 필요도 없었다.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상대로 계략을 꾸미는 그녀를 보며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그가 말리지 않는 이상, 그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더 이상 도마 위에 올려진 고기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할머니가 의심하지는 않더냐."조원철이 다시 물었다."화씨 어멈과 시선을 교환하는 걸 보니,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강유영이 답했다."서유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라 일렀으니, 할머니께서 장부를 확인하려 들면 곧바로 소식이 올 겁니다. 청류에게 못 들으셨습니까?""방금 성 밖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아직 녀석들을 만나지 못했다."조원철이 담담하게 설명했다.강유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가 자신의 행적을 굳이 변명하듯 설명하는 일은 드물었다. 불쑥 튀어나온 대답에 왠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네 처소 문을 들어서서 몇 걸음 가다 보면, 북쪽에 벽돌 하나가 헐거워져 있을 것이다."조원철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강유영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지?'이곳에 꽤나 오래 머물렀건만 벽돌이 헐거워진 곳이 있다는 건 여태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그가 왜 갑자기 그런 걸 신경 쓰는 걸까."어머니가 조만간 네 처소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진 척할 작정이다. 네 사주에 살이 끼어 액운을 부른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함이지."조원철은 여전히 남의 집 이야기라도 하듯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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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강유영은 고개를 숙인 채 조그맣게 입을 오물거렸다."어머니가 넘어지는 일에 이화를 써먹을 수 있겠구나."조원철이 불쑥 입을 열었다.강유영은 그 말에 젓가락질을 멈추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화는 노부인의 심복이니, 한씨가 다치는 일을 이화의 짓으로 뒤집어씌우자는 뜻인 듯했다."할머니도 이미 의심을 품고 계신다. 그러니 이화가 어머니에게 손을 썼다 해도 충분히 앞뒤가 맞겠지."조원철은 그녀가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짐작하고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알겠습니다."강유영이 작게 대답했다.겉으로는 여전히 얌전한 모습이었지만, 속으로는 거센 파도가 일고 있었다.이 일을 이화에게 덮어씌우려면, 한씨가 넘어지는 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짜로 넘어져서 다쳐야 할 것이다. 한씨가 다치지 않으면 일을 도모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감히 조원철 앞에서는 입 밖에 낼 수 없었다.어찌 되었든 한씨는 그의 어머니가 아닌가. 그가 아무리 냉정하다 한들, 생모가 다치는 것을 뻔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터였다.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불쑥 배짱이 솟구치며 그 생각을 진짜로 실행에 옮기고 싶어졌다. 한씨를 정말로 다치게 만들고 싶어졌다.한씨는 위선적인 사람이었다.걸핏하면 자신에게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것도 즐겼다. 그렇다면 이번에 꾸며낸 연기를 진짜 현실로 만들어주면 어떨까?강유영은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통쾌해졌다."어찌해야 할지 알겠느냐."조원철이 다시 물었다."예."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그의 눈치를 살폈다.'설마 내 속마음까지 꿰뚫어 본 건 아니겠지?'"신중하게 행동하거라."조원철은 더 캐묻지 않고 짧게 당부만 남겼다.강유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잘 먹었습니다."조원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강유영은 입술을 달싹이며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언제쯤 오씨 어멈을 뵈러 갈 수 있습니까?"내심 어멈이 그리웠다."며칠 더 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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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제가 하겠습니다."강유영은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가 가져온 밥을 얻어먹고 상까지 치우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닌 듯했다."되었다."조원철은 손을 내저었다.워낙 손놀림이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식탁 위가 말끔해졌다.상 위에 남은 건 멀건 좁쌀죽 한 그릇과 나물 반찬이 전부였다."며칠간 좀 바쁠 거다. 매사 조심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서유를 부리거라."떠나기 전, 그는 담담한 얼굴로 당부했다.강유영은 그가 창문을 넘어 나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이렇게 선을 넘지도, 겁을 주지도 않을 때면 그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그녀는 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을 열고 나갔다."아씨."마침 서유가 처마 밑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이화도 그 뒤를 따랐다.강유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제가 한 번 더 닦으라고 했는데 싫다며 버티고 있습니다."서유가 심통이 난 얼굴로 일러바쳤다."이미 먼지 한 톨 없이 닦아두었습니다. 정 못 믿으시겠다면 아씨께서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이화는 뻔뻔하게 빈방을 가리키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다."강유영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서유 넌 가서 밥을 먹어라. 이화, 너도 수고가 많았다. 저 죽은 내 입에 맞지 않으니 네게 상으로 내려주마. 점심으로 먹거라."상전이 하사한 것을 시종이 감히 싫은 내색을 하며 거절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본분을 잊은 격이었다.서유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감사합니다, 아씨."이화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억지로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했다.강유영을 굶길 속셈이었는데 오히려 제 무덤을 판 격이었다."밥을 다 먹고 나면, 앞마당 바닥돌을 전부 닦아놓거라."강유영은 가볍게 손을 들어 마당을 가리켰다."마당 바닥을 닦으라고요?"이화는 두 눈을 부릅뜨고 순간 예의도 잊은 채 따져 물었다.대청마루나 복도 바닥을 닦으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흙먼지 날리는 마당 바닥을 닦으라니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왜? 아씨께서 일을 좀 시켰다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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