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341 - Chapter 350

460 Chapters

제341화

"내려."조원철은 차가운 목소리로 방금 전의 말을 반복했다."싫습니다…."강유영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뒤로 물러섰다.조원철은 인내심을 잃은 듯, 단숨에 마차 위로 올라오더니, 몸을 숙여 그녀를 낚아채듯 밖으로 끌어냈다."이러지 마십시오!"강유영은 기겁하며 소리쳤다.단단한 팔이 허리를 옥죄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허리를 꺾으며 저항했고, 두 손으로 조원철의 가슴을 마구 때리며 허공에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조원철에게 그녀의 반항은 솜방망이질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그를 자극해 팔에 힘을 더 들어가게 만들 뿐이었다.조원철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고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향했다."서왕과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가 먼저 말을 건 겁니다. 오라버니가 오는 걸 보고 일부러 그러신 거예요. 전 정말...."발버둥 치는 사이 틀어 올린 머리가 풀려 흘러내렸다. 검은 머리카락이 뺨에 어지럽게 달라붙어 더 애처롭게 보였다.강유영은 손톱으로 조원철의 살갗을 파고들며 횡설수설 해명했다.서준이 자신을 품에 가두듯 몰아붙인 그 광경을 보고 그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네가 여지를 주지 않았다면 그놈이 청혼 운운했겠느냐?"조원철은 강유영을 침상 위로 내던지며 옷깃을 거칠게 풀어 헤쳤다. 붉게 달아오른 그의 눈빛에 억눌러왔던 분노가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푹신한 이불 위로 쓰러진 강유영은 곧바로 침상 가장자리로 도망쳤다."저는 그를 상대도 하지않았습니다, 그가 먼저…."하지만 손끝이 침상 모서리에 닿기도 전에 다시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그녀는 눈앞이 아찔해져 본능적으로 일어나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단단한 조원철의 몸에 짓눌려 속절없이 다시 쓰러졌다.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틀어쥐어 머리 위로 고정했다.그러고는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키며 미처 내뱉지 못한 말들까지 모조리 막아버렸다.그의 입맞춤에는 맹렬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짙은 소유욕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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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그는 그녀의 해명을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애초에 그녀를 존중한 적이 없었다.소주에서 기어이 그녀를 잡아온 것도, 그저 곁에 두고 원할 때마다 안기 위함이었다.인륜을 저버린 이 뒤틀린 관계가 주는 자극을 즐기고, 그녀가 괴로워하며 우는 모습을 지켜보길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다시는 서왕 곁에 얼씬거리지 마라."한참 뒤에야 조원철은 낮게 입을 열었다.목소리가 살짝 잠겨 있어, 평소의 싸늘함 대신 묘한 부드러움이 배어 있었다.강유영은 입을 꾹 다문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서준과 엮인 적 없다고 분명히 말했건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대답."조원철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강제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그제야 눈가에 얼룩진 눈물 자국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어째서 또 우느냐."그의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그는 몸을 숙여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는 눈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상관하지 마십시오."강유영은 차갑게 그의 손을 쳐냈다.입술에는 하도 세게 깨문 탓에 짙은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럼 누가 널 신경 써줬으면 하느냐?"조원철은 그녀의 입술에 남은 작은 잇자국을 조심스레 매만졌다.그 손길에는 묘한 애달픔이 묻어났다."서왕께서 청혼하러 오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강유영은 말을 마치고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았다.더 이상 조원철과 이렇게 얽히고 싶지 않았다.차라리 여기서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서준이 아무리 변덕스럽다 해도 적어도 이토록 자신을 짓밟지는 않을 것이다.지금은 그저 조원철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뿐, 누구에게 시집가든 상관없었다."감히!"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강유영은 대답 없이 고집스레 고개를 돌려버렸다."강유영,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다른 사내를 품으려 하느냐?"그의 목소리에 또다시 짙은 분노가 서렸다.강유영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을 내리쳤다.참으로 뻔뻔한 이였다.한 번으로 모자라 또 이러다니.밖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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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며 젖은 머리카락은 뺨에 달라붙었다.강유영은 조원철의 품에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마침내 그가 손을 뻗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침상 휘장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노부인께서 오셨다지 않습니까!"그녀는 그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희고 단단한 어깨에는 전장에서 생긴 옅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그리고 조금 전 그녀가 남긴 붉은 잇자국들이 창백한 살갗 위로 선명하게 남아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겁낼 것 없다."조원철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마치 달래는 듯한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강유영은 당장 그와 다툴 여력이 없었다.공포에 질려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다시금 생기를 띠었다.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물이 맺힌 눈가에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이제 어찌합니까!"강유영은 지금 속이 타들어가서 그와 온기를 나눌 정신이 아니었다.그녀의 목소리에는 짙은 울음기가 가득했다.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노부인은 한씨와 달랐다.한씨는 조원철을 아끼면서도 어려워해 매사 그의 눈치를 보았다.하지만 노부인은 성정이 대쪽 같고, 조원철 역시 할머니를 깍듯이 예우했다.만약 노부인이 억지로 들이닥치려 한다면 청운 일행은 감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내가 나갈 테니 잠시 쉬고 있어라."그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강유영은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겨 몸에 남은 흔적을 가렸다.조원철은 휘장을 걷고 흩어진 옷가지를 주워 들며 물었다."먼저 씻겠느냐?"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지극히 태연하게 질문을 던졌다.강유영은 얼굴이 화끈거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이불을 꽉 안은 채, 침상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됐습니다."당장 씻을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날개라도 달고 당장 요월원으로 도망쳐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조원철은 느릿느릿 옷을 입으며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얇고 투명한 피부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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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이불 곳곳에 남은 흔적이 방금 전의 격렬함을 말해주고 있었다.강유영은 더듬거리며 속옷 끈을 묶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그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뜻은 무시한 채 원할 때마다 유린당하는 느낌이 들어 분노가 치밀었다.그리고 자기 자신이 수치스러웠다.어느새 그와 몸을 섞는 일에 적응해 버린 것 같았다. 나중에는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각에 젖어 들기까지 했다.하지만 그가 쓴 수법들이 전부 기녀들에게서 배운 것이라 생각하니 한층 더 수치스러워졌다.침상에서 내려오자 허리와 아랫배에서 밀려오는 뻐근함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속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조원철은 야설에나 나오는 겉과 속이 다른 나쁜 놈이었다.바깥에서 어렴풋이 조씨 노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 발 저린 강유영은 침상을 짚고 숨을 죽인 채 뒷창문 쪽으로 다가갔다.그녀는 소리가 날까 두려워 창문을 아조금씩 열었다. 옷을 입을 때 이미 속으로 세워둔 계획이 있었다.조원철이 서류를 부르지 않았다면, 혼자서라도 창문을 넘어 도망칠 생각이었다. 옥청원만 빠져나가면, 설령 대문 앞에서 노부인과 마주친다 해도 발뺌할 수 있었다.이 침실에 한시라도 더 머물렀다가는 들킬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다행히 창문을 열었더니 바짝 긴장한 서유가 보였다.강유영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의자를 가져다가 딛고 창턱을 올라갔다.서유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부축했다.옥청원 본채 앞.청운과 청류가 문 양쪽에 버티고 서서 조씨 노부인을 막아섰다."고얀 놈들...."노부인은 성난 얼굴로 두 사람을 손가락질했다."세자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고 문을 지키라 명하셨습니다. 노부인,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청운이 고개를 숙이며 깍듯이 말했다. 하지만 한 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청류 역시 마찬가지였다."너희가 정신이 나간 게로구나! 이 국공부의 노부인이시다. 세자께서도 늘 깍듯이 모시거늘, 그 아무도에 설마 노부인까지 포함되겠느냐? 냉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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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청운과 청류는 조원철을 바라보았다.그가 아무리 노부인을 깍듯이 모신다 해도, 두 사람이 모시는 주군은 오직 세자뿐이었다.조원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둘은 예를 표한 뒤 문을 닫고 물러났다."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강유영이 네 방에 있느냐?"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노부인이 물었다. 노인의 시선은 굳게 닫힌 침실 쪽을 향해 있었다."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조원철의 눈동자에 옅은 의문이 스쳤다."할미에게도 숨길 셈이냐?"노부인은 의자 팔걸이를 꽉 쥐며 초조한 얼굴로 타일렀다."너는 젊은 나이에 이미 조정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앞날이 창창한 녀석이 계집 하나 때문에 관직 생활에 오점을 남겨서야 되겠느냐."물론 그의 능력이라면, 설령 평판에 흠집이 난다 해도 큰 타격은 없으리란 걸 알았다.하지만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서, 노부인은 적장손이 한 치의 티끌도 없이 완벽하기를 바랐다.그래야 진국공부의 가문을 온전히 떠받칠 수 있을 것이다."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통 모르겠습니다."조원철은 담담한 어조로 일축해 버렸다.노부인은 그의 뻔뻔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리며 다시 침실 쪽을 노려보았다."어디, 내 직접 방에 들어가 봐도 되겠느냐?"조원철은 결코 여색을 밝히는 아이가 아니었다.도대체 강유영 그 아이의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대쪽 같은 성정의 그가 앞뒤 재지 않고 저리 감싸고 도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갑갑했다.심지어 그는 할머니인 자신마저 기만하고 있었다!"정녕 이래야겠습니까."조원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체를 뒤로 젖히고 턱을 치켜들었다.지극히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순식간에 노골적인 불쾌감과 서늘한 거리감이 뿜어져 나왔다."원철아, 할미는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게야."노부인은 손자의 서늘한 기세에 한풀 꺾여 부드러운 어조로 달랬다."네가 어떤 여인을 좋아하든 반대하지 않는다. 원한다면 첩으로 들여도 좋아. 하지만 유영이는 네 누이가 아니냐. 선을 지켜야 한다. 한 번 명성에 흠집이 나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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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조원철은 싸늘한 목소리로 청운에게 지시를 내렸다.조씨 노부인이 이 시점에 찾아온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노부인이 자신의 곁에 첩자를 심어두었음을 알아차렸다. 이 눈엣가시는 속히 뽑아내야 했다."예."청운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답했다.그 시각, 노부인은 화씨 어멈과 시녀들을 거느리고 중문 안쪽 샛길을 걷고 있었다."노부인, 춘휘원으로 돌아가시는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화씨 어멈이 묻자 노부인은 이를 악물었다."요월원으로 가서 기다릴 테다. 그 요망한 것이 안 돌아오고 배기나 보자꾸나."조원철이 작정하고 자신을 속이려 드니 방도가 없었다. 강유영이 뭐라라 변명할지 두고 볼 참이었다."부인께서는 어찌 그 아이를 굳이 거두려 하셨을까요. 이리 화근이 될 줄 아셨다면 애초에 노부인께서 막으셨어야 했습니다."화씨 어멈은 조부인을 부축하며 맞장구를 쳤다."그땐 그저 어린 계집이었고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셈 치자고 했지. 오늘날 이리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노부인 역시 후회막급이었다.강유영이 요월원에 들어서자,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음침한 표정으로 복도에 서 있던 이화가 고개를 돌렸다."아씨, 어딜 다녀오셨습니까?"이화는 강유영과 그 뒤를 따르는 서유와 단비를 훑어보며 애써 화를 억누른 채 따지듯 물었다.강유영은 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오는 내내 마음을 졸인 데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 이화와 말씨름을 벌일 여력이 없었다. 조원철이 노부인을 어찌 상대했을지 몰라 여전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깐깐한 노부인이니 분명 끝까지 파고들 것이다"아씨께서 어딜 가시든 네게 고해야 하느냐?"서유가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그런 뜻이 아니라…."기세가 꺾이는 듯하던 이화는 이내 뻔뻔하게 대꾸했다."노부인께서 물으시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그럽니다. 다 아씨를 위해 드린 말씀이니 고깝게 듣지 마십시오."애초에 강유영이 자신만 남겨두고 서유와 단비만 데리고 나간 것부터가 불만이었다. 게다가 방문까지 걸어 잠가 안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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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예, 아씨.”단비가 부용과자 하나를 꺼내 강유영에게 내밀었다.강유영은 과자를 받아 한입 베어물었다.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누가 왔는지 보고 오렴.”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과자를 내려놓고 단비에게 일렀다.단비는 문가로 가 내다보더니 다급히 돌아와 속삭였다.“아씨, 노부인께서 오셨습니다.”강유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검은 눈동자에 찰나의 두려움이 스쳤다. 예상대로 노부인이 찾아온 것이다.문가에서 노부인을 본 이화가 반색하며 맞이했다.“노부인, 오셨습니까.”“강유영은 어디 있느냐?”노부인이 그녀를 힐끗 보며 물었다.“방에 계십니다.”이화가 황급히 답했다.“나간 적이 없단 말이냐?”노부인이 멈칫하며 물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분명 강유영이 조원철의 마차를 타고 옥청원으로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어찌 된 일일까?“잠깐 나갔다 왔습니다. 간식거리를 좀 사서 돌아오셨어요.”이화는 눈을 굴리더니 대충 둘러댔다.그녀는 감히 행방을 몰랐다고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다. 노부인은 그녀에게 강유영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할 것을 명했다.그런데 그녀가 어딜 다녀왔는지 모른다고 답할 용기는 없었다.노부인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단비가 들고 온 꾸러미를 기억하고 눈치껏 지어낸 거짓말이었다.“네가 따라갔었느냐?”노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예,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노부인의 뜻이라 하니 아씨께서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셨습니다.”이화는 천연덕스럽게 아부를 떨었다. 그제야 노부인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할머니, 오셨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강유영은 방에서 나와 예를 갖추었다. 노부인은 이미 한참이나 이화와 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더 지체했다가는 의심만 살 뿐이었다.노부인은 싸늘한 얼굴을 하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강유영을 훑어보는 노부인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얼굴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보면 사내와 살을 섞은 것 같지는 않았다.정말 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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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한씨는 부모님이 그녀에게 남겨준 전당포를 차지하고 원래 그녀의 몫으로 돌아와야 할 은자를 모조리 가로챘다.그러니 어찌 노부인이 말한 것처럼 모자람 없이 대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알면 되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은혜를 원수로 갚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네 오라비는 장차 가문에 걸맞은 짝을 맞아들일 것이다. 너는 양녀이고 친누이도 아니지 않느냐. 흉흉한 소문이 돌아 오라비의 명성에 먹칠하지 않도록 평소에 거리를 두거라."노부인은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경고했다. 어조에는 근엄함과 함께 짙은 멸시가 배어 있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를 근본 없는 계집이었다.신분도 모를 천한 핏줄이 수양오라비나 꼬여내는 짓을 보니 그 부모의 근본도 뻔하다는 기색이었다."할머니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강유영은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염려 마십시오. 오라버니와는 반드시 거리를 두겠습니다."속으로는 코웃음이 났다. 노부인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정작 그녀 역시 그와 얽히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조원철이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노부인이 호통쳐야 할 상대는 그녀가 아니라 조원철이었다.노부인은 그녀의 대답에 심기가 뒤틀렸다. 강유영의 무덤덤한 대답은 조금 전 조원철이 얼버무리며 했던 말과 거의 비슷한 결이었다. 우연인 줄 알면서도 손자와 비슷한 화법을 썼다는 것에 불쾌감이 치솟았다."그럼 내 앞에서 맹세하거라. 입으로만 하지 말고."그 말에 강유영은 까만 눈을 들어 노부인을 응시하며 옷자락을 꽉 쥐었다."맹세라니요?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누구를 걸고 맹세한단 말인가? 오씨 어멈? 부모님? 아니면 자기 자신? 그 누구도 걸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조원철과의 일에서 자신의 잘못은 없었다.정 안 되면 조원철을 걸고 맹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아씨는 그것도 모르십니까?"화씨 어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손을 가슴에 얹고 하늘을 향해 다짐하십시오. 세자께 다시 접근하면 천벌을 받아 제 명에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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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아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미가 자식을 돌보는 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가요?" 화씨 어멈은 애써 태연한 척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씨, 이 늙은이의 사생활에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그녀는 손에 땀을 쥐었다. 노부인의 물건을 몰래 빼돌려 처분한 것은 그녀와 방상철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후원에서만 사는 일개 양녀가 그 비밀을 어찌 알았을까?어멈은 일단 오리발부터 내밀고 강유영의 반응을 보면서 대응하기로 했다."네 녹봉으로 도왔다면 전혀 탓할 일이 아니지." 강유영은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맑은 눈으로 어멈을 똑바로 응시했다. "허나 할머니의 물건을 몰래 빼내 노름빚을 갚아주는 것은 선을 넘은 짓이야."강유영의 안색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쉽게 인정할 리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조급할 것 없었다. 그녀의 손에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은 그녀에게서는, 가녀린 처녀의 모습이 아닌,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화씨 어멈은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아씨, 생사람 잡지 마십시오…." 화씨 어멈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눈앞의 강유영은 너무도 낯설었다.예전의 만만하던 강유영이 아니었다. 화씨 어멈은 늘 강유영을 맹하고 어리석은 아이라고 무시해왔다.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반항 한 번 못하던 그 맹탕 같던 아이였다.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뿜어내는 기세만으로 사람의 기를 죽여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서늘한 눈빛과 자태에서 묘하게 조원철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네가 마지막으로 방상철에게 물건을 건넬 때, 푸른빛 명주에 둥근 무늬가 수놓아진 보자기를 썼지?" 강유영은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롭게 물었다. 물증은 조원철의 수중에 있었고 그녀는 그 보자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그것은 화씨 어멈의 수놓이 솜씨였다.설마 이것도 아니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녀는 조용히 화씨 어멈을 응시하며 답을 기다렸다.예전에 겪은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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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강유영은 두 가지 선택지를 두 가지 주었지만, 사실상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도둑질이 알려지는 순간 돌아오는 건 죽음뿐인데, 누가 살 길을 마다하겠는가? 화씨 어멈이 노부인의 장신구를 훔친 것도 결국 못난 아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제 처지가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터였다."일어나세요, 어멈."강유영은 손을 뻗어 어멈을 가볍게 부축했다.이는 조원철이 일러준 가르침이었다. 기강을 잡을 땐 가차 없이 몰아붙이되, 굴복하면 적당한 아량으로 품어주어야 상대도 마음속 깊이 복종하게 된다는 술수였다.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단비와 서유에게는 쓸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화씨 어멈 앞에서는 이런 강단이 필요했다."감사합니다, 아씨."부축을 받아 일어난 화씨 어멈의 얼굴에는 황송한 기색이 역력했다. 본래 이렇게 큰 약점을 잡혔으니 자신을 마구 부려 먹으려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리 정중하게 대하니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그제야 어멈은 자신이 강유영을 잘못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유영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처럼 나약하고 만만한 계집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똑똑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할머니께서 방금 분부하신 일, 어찌 고해야 할지 잘 알겠지요?"강유영은 미소를 머금은 채 어멈을 바라보았다. 조씨 노부인은 자신의 심복이 강유영의 수족이 되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자연히 화씨 어멈이 전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터였다. "소인은 노부인께 아씨께서 이미 맹세를 마쳤다고 고하겠습니다."화씨 어멈이 서둘러 대답했다. 이런 사소한 일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요."강유영은 눈을 내리깔았다. 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로 옅은 그림자가 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어멈에게 하나 부탁할 일이 더 있어요."이 일은 화씨 어멈이 남겨졌을 때부터 그녀가 마음속으로 세워둔 계획이었다. 노부인이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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