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331 - Chapter 340

460 Chapters

제331화

"어멈,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뭔가 눈치채신 것 같지?"정원을 걷는 한씨의 얼굴은 잔뜩 일그려져 있었다.그녀는 평소와 달리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국공부에 시집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안주인 자리에 오르기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어떤 위기든 능수능란하게 넘겨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뒷방 늙은이가 갑자기 장부를 들추기 시작하다니, 이는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풍씨 어멈은 그녀의 옆에서 반보 뒤처져 걸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부인,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장방 선생은 부인의 사람이고, 노부인께 올린 장부 두 권은 미리 손을 써둔 가짜입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실 겁니다."풍씨 어멈은 한씨의 심복으로서 그녀가 벌인 일들을 웬만큼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런 어멈조차 모르는 잘 알지 못하는 일도 존재했다.한씨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감히 캐물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것들은 한씨의 역린이었다."하지만 집안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양반 아니더냐? 아무 까닭 없이 어째서 갑자기 장부를 보겠다고 나섰지?"한씨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이 모든 게 강유영 때문이었다.그 천한 계집을 쫓아내겠다고 늙은이를 불러들여 제 발로 제 발등을 찍은 격이었다."어쩌면 그저 변덕이실지도 모릅니다."풍씨 어멈은 계속해서 그녀를 달랬다."아니면, 누군가 옆에서 부추겼을 수도 있지요.""혹시 강유영 짓이 아닐까?"한씨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풍씨 어멈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부인, 너무 과한 염려이십니다. 유영 아씨에게 그럴 머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노부인의 의중부터 떠보시지요. 제 생각엔 별일 아닐 겁니다."한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춘휘원."국공 부인, 오셨습니까."마침 마루 아래에 서 있던 화씨 어멈이 무릎을 굽혀 예를 표했다."어멈, 어머니는 안에 계시는가?"한씨는 턱을 치켜들고 안주인 특유의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물었다.실상은 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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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한씨는 도무지 이 늙은이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그건 네 알아서 할 일이지."노부인은 눈을 반쯤 뜬 채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영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화씨 어멈을 장방에 보내 언제든 은자를 가져다 쓰십시오. 제 허락을 받을 필요 없다고 이미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한씨는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서둘러 비위를 맞췄다.그러면서 어떻게든 노부인의 표정에서 단서를 찾아내려 눈을 떼지 않았다."정성이 갸륵하구나."노부인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그 계집을 치기로 한 일은 어찌 아직 소식이 없느냐?"노부인은 이미 한씨에게 자신이 먼저 병난 척을 하면, 이틀쯤 뒤 한씨가 강유영에게 다가가 다친 척 연기를 하기로 입을 맞추었다. "안 그래도 곧 다녀올 참이었습니다. 허나 생각건대, 어머니와 저 두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흠집을 내기에 부족하지 않겠습니까?"한씨는 공손한 어조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노부인이 지시한 일은 당연히 해야 했다. 하지만 그전에 강유영을 이용해 집안의 눈엣가시 하나를 더 처리하고 싶었다. 이미 머릿속에 셈을 다 마친 상태였다.다만 늙은이가 허락하지 않을까 봐 오늘 은근슬쩍 운을 떼볼 참이었다. 그런데 노부인의 표정이 계속 싸늘한 것을 보니 마음이 영 불안했다.'틀림없이 무언가 눈치채셨어. 그렇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장부를 뒤질 리가 없지.'"또 누구를 끌어들일 셈이냐?"노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일이 체통 깎이는 짓인 줄 모르느냐? 그 계집애가 세자를 홀리려 드는 천박한 짓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내 이런 치졸한 수를 쓰진 않았을 게다.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노부인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고부지간에 이런 작당을 하는 것 자체가 남부끄러운 짓인데, 어찌 제삼자에게 알린단 말인가. 며느리의 아둔함에 한숨이 나왔다."어머님, 오해하셨습니다."한씨가 황급히 해명했다."누구에게 발설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다른 이에게 덮어씌워 강유영 때문에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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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고개를 든 강유영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했다."단비야!"그녀는 책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아씨."단비 역시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이화는?"강유영이 퍼뜩 생각난 듯 서유를 보며 물었다.세 사람의 대화를 이화가 듣게 할 수는 없었다.이화는 지금 속으로 강유영을 한껏 원망하며 꼬투리 잡을 기회만 노리고 있을 터였다."걱정 마십시오. 제가 장방에 녹봉을 받아 오라 심부름을 보냈으니 한동안은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서유가 웃으며 답했다."다행이구나."강유영은 안심하며 단비의 손을 꼭 쥐고 이곳저곳을 살폈다."그동안 어찌 지냈어? 오씨 어멈은 잘 계시고?""아씨 덕에 어멈은 무사하십니다. 그저 아씨 걱정뿐이시지요."단비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우리 아씨, 안 본 새 혈색이 아주 좋아지셨습니다.""오라버니가 너희를 어디에 데려갔던 거니?"강유영이 물었다."성 밖 외곽에 있는 저택이었습니다. 담장이 아주 높은 곳이었지요. 늘 마차만 타고 오가서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습니다."단비가 설명했다."세자께서 저희를 박대하신 건 아닙니다. 다만 오씨 어멈께서 혹여라도 세자께 누를 끼칠까 봐 저희더러 함부로 나다니지 말라 하셨을 뿐입니다."'담장이 높은 저택?'강유영은 조원철이 방상철을 심문했던 그 저택이 떠올랐다. 설마 그곳이었나?그때는 한밤중이라 길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교외라는 건 알 수 있었다.그날 밤, 오씨 어멈과 지척에 있었음에도 그는 끝내 어멈의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정말 매정한 사람이었다."예."단비는 강유영을 안심시켰다."걱정 마십시오. 세자께서 의원도 불러주셔서 오씨 어멈의 몸은 예전보다 훨씬 정정해지셨습니다."강유영은 그 말을 들으니 한시름 놓였다."참, 오는 길에 얘기 하나를 들었습니다."단비가 말을 이었다."무슨 얘기?""장 의원님 말씀입니다." 단비가 대답했다. "의원 근처를 지나는데 길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며칠 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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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은자가 넉넉했다면 좋았을 텐데."그녀는 약봉지를 챙겨 나오며 중얼거렸다."그랬다면 장 의원님께 사향 가루를 사다 드렸을 텐데."사향 가루는 혈갈보다 효능이 좋았다. 아쉽게도 워낙 귀한 약재라 지금의 그녀의 형편으로는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우리 아씨라면 나중에 얼마든지 사실 수 있을 겁니다."서유가 곁에서 웃으며 거들었다.강유영이 전당포를 떠올리며 막 입을 떼려던 찰나였다."유영아."그때, 길가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르는 소리가 들려왔다.강유영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서준이었다.그녀를 발견한 서준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늘씬한 체격에 날렵한 이목구비가 참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그는 요염하게 찢어진 눈매로 그녀를 빤히 응시하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한량 같은 모습이었다.강유영은 단박에 예전 일이 떠올랐다.소주에서 헤어진 뒤로 서준을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가끔 그를 떠올릴 때면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서준은 그녀에게 접근하려고 신분을 속인 것도 모자라, 수하들을 시켜 골목에서 불한당으로 위장해 그녀에게 공격을 가하게 만들었다.그러고는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나 그녀를 구하는 영웅 행세를 했다.그때는 정말 무서워서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고, 그에게 마음 깊이 고마워했었다. 두 사람이 친해진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그녀는 진심으로 그를 벗이라 여겼다.그런데 그 모든 게 그의 계략과 거짓이었던 것이다.누구라도 이는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녀는 서준을 힐끗 보고는 차갑게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아예 모르는 사람인 양 고개를 홱 돌려 마차로 향했다."어라? 나 명색이 서왕인데!"서준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강유영은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서왕 전하를 뵙습니다."예전에 하도 격 없이 지냈던 터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진짜 신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서준은 황자였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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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그녀의 의사도 묻지 않고 덜컥 청혼부터 했다가는, 허락하지 않을 게 뻔했다.물론 황제가 반대하는 까닭도 있었다.그때, 창문 휘장이 걷히며 강유영이 뽀얀 얼굴을 드러냈다. 맑고 순진해 보이지만 어딘가 새침한 구석이 있는 예쁜 얼굴이었다.그녀를 본 서준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여우 같은 눈매가 반짝거렸다."드디어 나와 대화할 마음이 생겼구나.""따라오지 마세요."강유영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따가 서왕부로 사람을 시켜 은표를 보내드릴 것입니다."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있었다.예전에 경성을 떠날 때, 그녀는 서준에게서 큰돈을 빌렸었다.아직 그걸 갚지 못했던 것이다.오늘 외출길에 그를 마주칠 줄 알았더라면 은자를 챙겨 나왔을 텐데, 지금 수중에 그만한 액수의 은표는 없었다."누가 돈 갚으랬어?"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나랑 기 싸움 그만하고, 차라리 한 대 치라니까?"강유영은 대꾸 없이 휘장을 확 내려버렸다.서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성난 여인 달래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네.'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느긋한 태도로 마차 곁을 따라붙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장 의원의 약방 문 앞에 멈춰 섰다.강유영은 선물을 들고 마차에서 내렸다.서준 역시 말에서 내려 고삐를 던져두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강유영은 못 본 척 걸음을 빨리했다.서준은 두세 걸음 만에 훌쩍 따라붙더니, 다짜고짜 그녀가 들고 있던 선물을 낚아채 버렸다.갑작스러운 기습에 강유영은 꼼짝없이 물건을 빼앗기고 말았다."돌려주십시오!"그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서준은 물건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싫어.""주시라고요!"강유영은 발돋움을 하며 손을 뻗었다.하지만 그녀에 비해 그는 머리 하나는 더 컸다. 팔을 높이 치켜들고 있으니 도저히 닿을 턱이 없었다. 행여 몸이라도 닿을까 봐 섣불리 덤벼들지도 못했다."나랑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하면 돌려줄게."서준은 고개를 숙여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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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약방 안의 환자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참으로 통 큰 사내였다."어디서 큰돈이라도 벌었느냐?"장 의원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큰돈이랄 것까진 없지만, 예전보다 형편이 제법 나아졌습니다. 그간 돌봐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서준은 탁자에 비스듬히 기대며 씩 웃었다.장 의원은 당연히 사양했다. 하지만 서준은 한 번 꺼낸 은괴를 도로 받으려 하지 않았다.강유영은 장 의원과 몇 마디 나누다가, 정신없이 바쁘고 어수선한 약방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정리를 돕기 시작했다.서준은 슬그머니 뒤뜰까지 따라왔다.강유영이 대나무 채반에 널린 약초를 부지런히 주워 담는 동안, 그는 마루 기둥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유영아…."서준이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그녀를 불렀다.강유영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유영아, 유영아, 유영아...."서준은 끈질기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귀찮게 왜 자꾸 이러십니까?"강유영은 홱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서준은 성큼 다가와 그녀가 쥐고 있던 약초 자루를 잡아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네가 날 용서해 주면, 내가 사람을 풀어서 널 도와줄게. 네 출생의 비밀이든, 전당포 일이든 모조리 샅샅이 캐내 주마. 어때? 이 정도면 내가 예전에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고도 남지 않아?""제 일을 어찌 아셨습니까?"강유영의 낯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녀의 출생은 극비나 다름없었다. 조원철만 아는 줄 알았는데 서준은 어떻게 알았을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는 서왕이었다. 황자가 마음만 먹으면 그깟 뒷조사쯤이야 일도 아닐 터였다."그건 알 것 없고, 어쨌든 난 할 수 있으니까."서준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달콤한 목소리로 꾀었다."어때? 나랑 거래할래?""필요 없습니다."강유영은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짙은 눈동자를 마주 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곰곰이 따져보면 서준은 황제를 쏙 빼닮아 있었다. 황제가 변덕스럽고 잔인한 성정을 가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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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서준은 고개를 들어 조원철을 똑바로 마주 보다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웃었다."이건 유영이와 나 사이의 일이야. 자네가 낄 자리가 아니지."애초에 조원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참에 강유영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보여줄 생각이었다.조원철의 굳은 얼굴이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주먹을 쥔 채 두 사람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놓으십시오…."강유영은 인상을 찌푸린 채 서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손목을 비틀었다.팔에 소름이 돋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조원철의 소유욕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지금 이 상황을 보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뻔했다. 서준과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해명한들 그가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워낙 고집이 센 사람이니 또 이성을 잃을까 두려웠다.어떻게 해야 그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요 며칠 겨우 평온을 되찾았는데 또 소주에서 그에게 붙잡혔을 때가 떠올라 절로 몸이 떨렸다.하필 서준은 그녀의 손목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조원철을 쳐다보며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조원철은 코앞까지 다가와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펴고 손날을 세워, 강유영의 손목을 쥔 서준의 손을 향해 내리쳤다."한번 해보자는 거지?"서준도 물러서지 않고 팔을 뻗어 막아냈다.두 사람은 더 이상의 말도 없이 곧바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전하, 놓으시라고요! 아픕니다!"강유영은 손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다급히 소리쳤다.그제야 서준은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었다.두 사람의 싸움은 처마 밑에서 마당까지 이어졌다.강유영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십여 차례 합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어느 쪽도 자신의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두 분 이제 그만...."강유영이 겨우 용기를 내어 입을 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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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세자, 그만두십시오...."남풍은 청운 일행에게 가로막힌 채 약방 뒷문에서 안절부절못했다.그냥 강유영이 마음에 들면 친하게 지내면 될 일인데 왜 굳이 조원철을 자극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호위도 곁에 없는데 서왕이 다치기라도 하면 그는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계속 막아서면 정말 사람 잡겠네!"남풍은 청운을 거칠게 밀쳤다.청운 역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급히 다가가 만류했다."세자, 고정하십시오."감히 손을 뻗어 말리지는 못했지만, 청운도 속이 타들어 갔다.조원철은 늘 냉정하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충동적으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빛에는 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 진심으로 서왕을 죽일 기세였다.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서왕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자였다. 조원철의 손에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황제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게다가 지금 서왕을 건드리면 이후의 계획은 어찌 된단 말인가. 청류 역시 나서서 만류했다.그러나 조원철은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세자, 제발 진정하십시오…."남풍은 손에 땀을 쥐며 애원했다.그러다 문득 고개를 든 남풍의 시야에 강유영이 닿았다. 그는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매달렸다."유영 아씨, 제발 세자 좀 말려주십시오…."두 사람 모두 강유영을 마음에 두고 있으니, 그녀가 나서면 들을 수도 있었다.청운과 청류 역시 그 말에 강유영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세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강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치맛자락을 쥐고 계단을 내려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그녀는 조원철이 두려웠다. 나중에 그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 뻔했다. 차라리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도망치다 붙잡히면 더 가혹한 벌을 받을 뿐이었다.지금은 꾹 참고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그 사이 서준의 얼굴은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르고 숨이 막혀 헐떡이면서도 절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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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하지만 서준은 남풍을 밀어내고 소매로 대충 얼굴을 훔쳤다. 그러고는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다시 조원철을 도발했다."처형이 손을 써준 덕분에 살았군."조원철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그가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세자, 고정하십시오...."청운과 청류가 기겁하며 막아섰다.남풍 역시 서준을 질질 끌다시피 밖으로 향했다. 서준은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보더니 활짝 웃어 보였다."가서 얌전히 기다려. 며칠 뒤에 청혼하러 갈 테니까.""전하, 제발 좀 가세요...."남풍은 그 말을 듣고 더욱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주군이 어찌 저리 매를 버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서준은 남풍에게 끌려 나가면서도 아쉬운 듯 연신 강유영을 뒤돌아보았다.청운과 청류는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물러났다.마당에는 강유영과 조원철 두 사람, 그리고 볕에 말리려고 널어둔 약초 채반만이 덩그러니 남았다.조원철은 천천히 강유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시선이었다.강유영은 감히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시선을 내리깐 채 눈동자만 굴렸다. 당장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돌아가자."그는 무미건조하게 내뱉고는 걸음을 뗐다."오라버니 먼저 가세요. 전 이 약초들 마저 거두고 가겠습니다."강유영은 그를 따라가기가 두려웠다. 그가 애써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좀 끌면 화가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었다."안아서 데려갈까. 아니면, 여기서 할까."조원철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강유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러움과 수치심이 동시에 밀려왔다.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았다. 조원철은 자신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유영은 차마 거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행여 그가 이성을 잃고 정말 자신을 번쩍 안아 들까 봐 두려웠다.뒤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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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그녀는 너무 두려웠다.예전 소주에서 그에게 붙잡혔을 때처럼 굴까 봐 겁이 났다.그런 굴욕감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다행히 조원철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마차가 서서히 출발했다.강유영은 곁눈질로 그가 줄곧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꼈다. 좌불안석이었다.도저히 불안을 참지 못하고 힐끗 살피니, 그의 시선은 그녀의 손목을 향해 있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그곳에는 서준이 남긴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투명할 만큼 하얀 피부 위에 찍힌 자국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황급히 소매를 끌어내려 자국을 가리려 했다.하지만 조원철의 손이 더 빨랐다.그가 그녀의 팔을 낚아채더니 단숨에 앞으로 끌어당겼다."이러지 마십시오…."강유영은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가늘게 몸을 떨었다."제발, 여긴 밖이지 않습니까...."그녀는 사력을 다해 그의 손을 밀어냈다. 지난번의 일이 떠올라 수치심이 밀려왔지만, 그보다 두려움이 훨씬 컸다. 그가 마차 안에서 또 몹쓸 짓을 할까 봐 너무나 무서웠다.하지만 조원철은 끝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그녀를 품으로 억지로 끌어당기지도 않았다. 그는 시선을 내리깐 채 그녀의 손목에 남은 자국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강유영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몸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이윽고 그는 불쑥 고개를 숙이더니 붉은 자국 위로 입을 맞추었다.강유영은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뒤로 몸을 움츠렸다.그의 입술은 데일 듯이 뜨거웠다. 마치 낙인이라도 찍듯 입술에 닿은 곳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고, 그에게 붙잡힌 손마저 덜덜 떨려왔다.조원철은 옅은 붉은 자국 위로 입술을 깊게 포갰다. 붉게 멍든 곳을 지그시 빨아들이며 날카로운 이로 살짝 깨물었다."아픕니다…."손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지자 강유영은 참지 못하고 작은 신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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