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421 - Chapter 430

453 Chapters

제421화

강유영이 낑낑대는 동안, 조원철은 이미 갓 꺾은 나뭇가지들을 가져와 동굴 입구를 막아두었다."자거라. 내일 아침이면 다 될 거다."그는 푹신한 나뭇잎을 깐 바닥에 동굴 벽을 기대고 앉아, 곁으로 오라고 손짓했다.강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가가 그에게 기대어 앉았다.속으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부른다고 쪼르르 다가가다니 참으로 못난 짓이었다.하지만 야생에서 그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조원철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당겨 함께 누웠다.강유영은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그가 겉옷을 벗어 덮어주는 것이 느껴졌다.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귓가에는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소리와 그의 고른 숨소리만 들려왔다. 동굴 안은 고요하고 평온했다.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그녀는 내심 망상까지 품었다.만약 시간이 이대로 멈춰 영원히 산속에서 둘이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세상의 뜬소문이나 이상한 시선을 마주할 필요도 없고, 암투를 벌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어?"강유영은 갑자기 덮고 있던 그의 겉옷을 밀쳐내고 몸을 일으켰다."왜 그러느냐?"조원철은 눈을 뜨고 그녀를 보며 물었다.강유영은 대답 없이 다시 누웠다.이번에는 그의 팔을 베지 않고 바닥에 귀를 바짝 댔다.조원철도 몸을 일으켰다."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들어보십시오."강유영은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손짓했다.깡, 깡, 깡.쇳덩이로 돌을 깨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조원철은 그 말을 듣고 허리를 숙여 바닥에 귀를 대어보더니 다시 몸을 일으켰다."그 광산이 이 근처에 있어서 누군가 광석을 캐고 있는 것 아닙니까?"강유영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았다.두 사람은 오늘 깊은 산속으로 꽤 많이 들어왔다.광산에 점점 가까워진 데다, 밤이라 산속이 고요하여 돌 깨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그래."조원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청운 일행에게 알아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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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호각 소리는 어떤 새의 울음소리 같았다. 다소 날카로워서 꽤 멀리까지 퍼져나갔다.강유영이 말린 토끼 고기 두 개를 다 먹었을 무렵, 청운이 도착했다."세자, 아씨."청운은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밤에 바닥에 귀를 대보니 돌 깨는 소리가 들렸다. 광산이 여기서 멀지 않은 모양이다."조원철은 지체 없이 그에게 명했다."사람들을 데리고 소리가 나는 쪽을 조사해 보거라. 광산이 어디에 있는지, 안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떤지 살피고 소식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거라. 또한 경성으로 전갈을 보내 폐하께 이곳의 상황을 아뢰고, 사람을 더 보내달라고 청하거라."아무리 강한 세력이라도 현지인을 완벽히 제압하기는 어려운 법이었다.그가 데려온 인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예."청운은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고는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졌다.그 후 며칠 동안, 조원철은 계속 강유영을 데리고 산속을 돌아다니며 활쏘기와 사냥을 가르쳤다.강유영도 잠시나마 골치 아픈 일들을 잊고 사냥에 푹 빠져 지냈다.어느덧 해 질 무렵이 되었다."손은 아직 아프냐?"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살피며 물었다."이제 별로 아프지 않습니다."강유영은 자신의 손가락을 매만지며 답했다.불과 며칠 동안 매일 활시위를 당기다 보니 처음엔 참기 힘들었던 통증도 이젠 제법 적응이 되었다.다만 손끝이 조금 거칠어졌다.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굳은살이 박일 것 같았다."동굴을 찾아 불을 피우시지요."그녀가 제안했다. 눈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오늘 잡은 오소리는 조원철의 도움 없이 그녀 혼자 힘으로 사냥한 것이었다.물론 빗맞히긴 했다. 오소리는 상처만 입고 죽지 않았고, 결국 조원철이 화살을 한 대 더 쏴서 잡을 수 있었다.하지만 스스로 오소리를 맞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기뻤다."그래."조원철이 고개를 끄덕였다.강유영은 앞장서서 적당한 동굴을 찾겠다고 나섰다.하지만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동굴은 보이지 않았다."근처에 동굴이 없는 것 같습니다."그녀는 난처한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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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저 혼자서도...."강유영은 몸이 굳은 채로 어색하게 그를 밀쳤다.조원철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청류에게 사람을 몇 명 붙여 산 밑에서 널 지키게 하겠다.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거라."조원철이 당부했다."아닙니다. 저 혼자 있어도 됩니다."강유영은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작게 거절했다.광산 일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태자의 사람들은 분명 온 힘을 다해 결사적으로 반항할 것이다.조원철은 안 그래도 일손도 부족한데, 청류까지 자신을 위해 남겨두면 그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요 며칠 매일같이 붙어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친밀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막상 헤어질 때가 되니 갑자기 입을 맞추는 것이, 혹시 그도 자신처럼 헤어짐이 아쉬워서 이러는 것일까.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냈다.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입만 열면 소운경을 찾지 않았던가.한편, 서준은 가느다란 풀줄기를 입에 물고 관목 덤불 뒤에 숨어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모닥불 가의 두 사람을 지켜보는 찢어진 눈매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조원철이 강유영에게 입 맞추는 것을 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나뭇가지를 쥔 손에 꽉 힘을 주었다.뚝 하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부러졌다."전하...."남풍이 깜짝 놀라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하지만 조원철은 이미 기척을 눈치채고 예리하게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왜 그러십니까?"강유영이 물었다."저기 누군가 있다."조원철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준이 있는 방향을 응시하며 답했다.강유영은 순간 바짝 긴장했다."가보자."조원철은 그녀를 이끌며 말했다.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숲속은 칠흑 같이 어두웠고, 미지의 공간은 언제나 두려움을 자아냈다. 숲속에 거대한 맹수가 숨어 있다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그녀는 조원철의 손을 꽉 쥐고 눈을 크게 떠 주변을 살폈다.하지만 시야가 제한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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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서준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언제는 그렇게 좋아서 입을 맞추더니!'태자의 매형은 제법 많은 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한꺼번에 이리 많은 수를 보냈으니, 조원철도 한동안 꽤나 애를 먹을 터였다.조원철의 무공은 뛰어났다.등 뒤의 강유영을 보호하면서도, 열 명 가까이 되는 자객들이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순식간에 두 명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제법이군. 내가 직접 상대해 주마."서준은 목에 걸어둔 검은 복면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전하, 소인들이 다녀오겠습니다. 직접 나서시면 위험합니다!"남풍은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칼부림이 난무하는 곳에 주군을 보낼 수는 없었다.남풍 역시 검은 복면을 쓰고 있어, 조원철과 싸우고 있는 자객들과 겉모습이 다를 바 없었다.조원철이 자객들과 치열하게 합을 겨루는 사이, 앞쪽에서 검을 든 네 명이 추가로 전투에 난입했다.강유영은 조원철의 등 뒤에 숨어, 눈앞에서 번뜩이는 검날과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를 견뎌야 했다.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그녀는 조원철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아무리 강한 무공 실력을 지녔다 한들, 이렇게 많은 상대에게 둘러싸여 시간이 지체되면 결국 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다.그녀는 곁눈질로 발치에 놓인 대나무 바구니를 보고는, 조원철이 챙겨주었던 화살을 떠올렸다.상황이 다급해지자 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잊혔다. 그녀는 화살 하나를 뽑아 단단히 쥐었다.그러고는 눈앞에 누가 있는지도 따지지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자들을 향해 화살을 마구잡이로 찔렀다.조원철이 아니라면 모두가 적이었다.승기를 잡아가던 조원철은 서준 일행 네 명이 가세하자 다시 수세에 몰렸다.남풍은 주군의 의도를 간파하고 고의로 조원철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서준은 애초에 전투에는 뜻이 없었다. 오로지 화살을 쥐고 있는 강유영의 손만 주시하며, 어떻게 하면 그녀를 조원철의 등 뒤에서 끌어낼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그렇게 서준이 점차 강유영에게 다가갔다.강유영은 그의 정체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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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칠흑 같은 어둠 속, 강유영은 누군가에게 안긴 채 어지러운 숲속을 이동했다. 혈투의 소리는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점점 사라져갔다.그녀를 안은 자가 점점 멀어지면서 귓가에 맴돌던 싸움 소리도 완전히 사라졌다.손에 쥐고 있던 화살은 진작에 그에게 빼앗겨 어디로 내동댕이쳐졌는지 알 수 없었다."이거 놔!"강유영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두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절망에 가까운 공포가 밀려왔다. 울 겨를조차 없었다. 오로지 이 자를 뿌리치고 돌아가 조원철의 안위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사람의 가장 약한 곳은 눈이었다. 이 자의 눈을 멀게 하면 자연스레 자신을 놓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쓰읍."서준의 안정적이던 걸음걸이는 그녀가 끈질기게 발버둥 치는 바람에 엉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마터면 얽히고설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그가 몇 걸음 비틀거리자 바닥의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이 부러지며 바스락거렸다. 그의 걸음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유영아, 나다! 너무 매섭게 굴지 말아."서준은 고개를 뒤로 젖혀 강유영의 손톱을 피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제법 매서운 여인이었다. 예전에는 이토록 앙칼진 면이 있는 줄 어찌 몰랐을까. 할퀸 목덜미가 화끈거렸다."서준? 서왕 전하?"강유영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흠칫하더니, 이내 더 큰 분노를 터뜨렸다.예전에 자신을 속인 것으로도 모자라, 호주성까지 쫓아와 괴롭힌단 말인가."서왕 전하, 대체 뭘 어쩌려는 겁니까? 놓으십시오!"그녀는 놀람과 분노로 숨을 헐떡이면서도 더욱 격렬하게 발버둥 쳤다.서준이 조원철을 호주로 끌어들인 것은, 태자가 몰래 광산을 채굴하는 일을 대신 해결하게 하려는 속셈이 아니었던가.어째서 그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걸까. 게다가 이런 비열한 짓까지 벌이다니!'나쁜 사람!'"놓아줄 테니 좀 가만히 있어라.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서준은 걸음을 멈추었지만 바로 그녀를 놓아주지는 않았다."헛소리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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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내가 무사할 거라고 말했는데,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냐."서준은 몸을 돌리며 다소 체념한 듯한 어투로 말했다."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내 공격하게 해놓고, 무사할 거라고요?"강유영은 그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아이고, 아씨. 내 수하는 나까지 합쳐 고작 네 명뿐이었고, 내가 빠지면서 그들도 철수했다. 조원철을 에워싼 나머지 놈들은 전부 태자의 무리야. 나는 억울하다니까."서준은 난처한 기색으로 해명했다."상관없습니다. 돌아갈 겁니다."강유영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같은 말만 반복했다."내가 다쳐서 더는 버티기 힘들다. 일단 동굴에 가서 상처부터 싸매고 데려다주마, 어떠냐?"서준은 그녀를 달래며 자연스레 손목을 쥐었다."거짓말하지 마십시오!"강유영은 홱 손을 빼내려 했으나 마음처럼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내가 널 속여서 무엇 하겠느냐. 내 상처를 만져보거라."서준은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허리춤에 꾹 눌렀다.손끝에 축축하고 끈적이는 뜨거운 액체가 닿았고, 허공에 피비린내가 퍼졌다.강유영은 그만 몸이 굳어 버렸다.정말로 피를 많이 흘린 모양이었다."이건 네가 아까 찌른 상처다. 조원철은 수하가 그토록 많은데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오히려 이대로 상처를 싸매지 못하면, 피를 다 쏟고 이 자리에서 죽을 사람은 나다."서준은 작정하고 엄살을 피웠다.어둠 속이라 강유영은 그의 안색은 물론, 입꼬리에 걸린 미소조차 보지 못했다.그렇게 서준은 그녀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강유영은 비틀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한참을 걷자 전방의 나무들이 듬성듬성해졌다."이쪽이다."서준은 한 손으로 그녀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동굴 입구의 장애물을 걷어냈다.눈앞에 모닥불 불빛이 일렁였다.서준은 그녀를 동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강유영은 동굴 안의 풍경을 보고는 부아가 치밀었다.그곳에는 그의 옷가지와 온갖 먹거리, 생필품들이 놓여 있었다.이토록 철저히 준비한 것을 보면, 진작부터 이곳에 매복하여 그녀와 조원철을 칠 기회를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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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정말로 그가 여기서 목숨이라도 잃는다면,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원철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 있었다.강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손을 내렸다.서준은 상의를 벗은 채 그곳에 기대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춤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렀고, 그의 옆 바닥에는 붉은 피웅덩이가 작게 고여 있었다.목덜미에는 갓 생긴 붉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아까 그녀가 할퀴어서 생긴 상처인지 알 수 없었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미쳤습니까?"자신이 약을 발라주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약을 바르지 않고 이대로 죽기를 기다릴 셈인가 싶었다."네가 내가 죽어가는데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줄 알았다."서준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약은요?"강유영은 능글맞은 그의 얼굴을 외면한 채, 손을 내밀며 퉁명스럽게 물었다.서준은 하얀 도자기 병 하나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강유영은 병의 마개를 열고 그의 상처를 살피다가 흠칫 놀랐다.화살에 갈고리가 달려 있어 억지로 뽑으면서 살점이 함께 뜯겨 나간 것이다. 벌어진 상처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흉측했다.강유영은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상처 주위의 핏자국을 닦아내고는, 재빨리 하얀 약가루를 뿌렸다."듬뿍 뿌려야 지혈이 될 거다."서준은 고개를 돌려 상처를 내려다보며 일러주었다.그의 표정은 여전히 나른했고 심지어 옅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마치 남의 몸에 난 상처를 대하는 듯했다.강유영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약가루를 더 부었다.무슨 약재로 만든 것인지 지혈 효과는 뛰어났다. 상처에 닿아 피를 흡수하더니 순식간에 갈색으로 변하며, 꿀렁꿀렁 솟구치던 피가 단번에 멎었다."다 됐습니다."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자기 병을 돌려주었다.무심코 그의 몸으로 시선이 향했고, 그제야 그의 상반신 곳곳에 흉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자연스레 조원철의 몸에 있던 흉터가 떠올랐다.조원철은 변방에서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치렀기에 그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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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서준은 눈을 내리깐 채 그녀를 보지 않았다. 얼굴에는 다소 쓸쓸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평소처럼 농담을 섞어 말하지도 않았다.어조는 차분했고 큰 기복이 없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내 어머니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원래는 궁녀에 불과했다. 우연한 기회에 황제의 승은을 입어 단 한 번에 나를 가졌지. 하지만 궁 안의 후궁들에게 질투를 샀고, 그들은 밖의 조정 대신들과 결탁하여 어머니가 시위와 사통했다고 모함했다. 엄격한 황궁의 율법을 들먹이며 내 핏줄이 불순하니 폐하의 아이가 아니라고 우겼지. 결국 우리 모자를 궁에서 쫓아냈고, 몇 번이나 목숨을 가져가려 자격을 보냈다."강유영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어느새 그의 곁에 바짝 당겨 앉았다. 유순한 두 눈에는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어렸다.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다.지금까지 그녀는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가여운 줄 알았다. 그런데 멀쩡히 부모가 있는 서준이 이토록 비참하게 살았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다행히 우리 모자는 목숨이 질겨 멀리 도망쳤지만,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내가 살아남아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건 전부 어머니가 남의 옷을 가져다 기워주고 삯빨래를 한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미모가 뛰어났고, 그 작은 마을에는 어머니를 노리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깨진 사기그릇 조각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어 간신히 그들의 흑심을 끊어냈지."서준은 바닥에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어릴 적, 사람들은 날 사생아라 불렀고 밖에 나가면 얻어맞기 일쑤였다. 겨울이면 우리 모자는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했지. 어머니는 유일한 솜옷을 투박한 전병 몇 장과 바꿨다. 자신은 한 입도 먹지 않고 전부 내게 내어주었어. 키는 너보다 조금 더 컸지만, 몸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앙상했다."서준은 앞을 지그시 응시했다.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눈동자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오랜 세월, 우리 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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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강유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경성의 귀한 가문에서 타고난 귀공자와 귀녀들을 제외하면, 그녀나 서준, 혹은 오씨 어멈이나 단비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살아간다.그들 같은 사람들에게 세상살이는 참으로 고달픈 일이었다."인정하마. 처음 네게 접근한 것은 분명 목적이 있어서였다. 조원철 때문이었지. 그놈의 약점을 잡고 싶었거든."서준이 한 점 숨김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강유영은 내리깔고 있던 속눈썹을 미세하게 떨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그분의 약점이라니.'서준이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었다.지금 조원철의 진정한 약점은 황궁 안에 있었다."그 후에 내 어머니가 위중하다 한 것도 널 속이려 한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너는 두말없이 가진 은자를 전부 내게 가져다주었지. 유영아, 난 지금까지 살면서 어머니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그런 진심 어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다. 네 덕분에 알게 되었지. 이 세상에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서준의 눈가와 미간에는 진심이 가득 서려 있었고,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그 뒤로 널 속인 것은 그저 네 곁에 머물고 싶어서였다. 내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너와 혼인하고 싶다고, 내 모든 걸 바쳐 널 지키겠다고." 서준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당장 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안다. 강요하지도 않으마. 오늘 널 이곳으로 데려온 건, 그저 모든 걸 솔직히 털어놓고 이번 한 번만 용서해 달라 빌고 싶어서였다...."무겁게 내뱉는 그의 말투에 옅은 울음기가 서려 있었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서준 역시 그녀를 마주 보았다.그녀의 두 눈에 뺨을 타고 흐르는 그의 눈물이 보였다."우... 울지 마십시오...."강유영은 그가 진짜로 눈물을 흘리자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다.그의 기구한 과거를 듣고 난 후, 그녀의 가슴 한구석은 줄곧 묵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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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그게 정말입니까?"강유영은 반신반의하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온통 조원철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니, 어찌 되었을지 너무 걱정됐다."내가 또 널 속인다면, 평생 날 모른 척해도 좋다. 이 정도면 되겠느냐?"서준이 시원스레 답했다."그 약속,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강유영은 손에 쥔 손수건을 꽉 쥐더니 이내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렸다.잠시 머뭇거리며 허공에서 손이 멈칫했지만, 이내 그녀의 손길이 그의 뺨에 닿았다.서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그 손길을 음미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강유영은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을 가볍고 빠르게 닦아주었다.수려하고 뚜렷한 그의 이목구비가 눈앞에 있었다.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지나치게 선을 넘은 친밀함이었다.그녀는 서둘러 눈물을 닦고는 즉시 손을 거두었다.하지만 그녀가 미처 손을 빼기도 전에 서준이 불쑥 손을 뻗었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단단히 잡았다.따뜻한 손바닥이 손목의 연한 피부에 밀착되었다. 쥐는 힘이 그리 강하진 않았으나,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완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왜 이러십니까?"강유영이 뒤로 주춤 물러서며 자신의 손목을 쥔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가만히 있거라."서준의 목소리는 다소 잠겨 있었다. 그는 손목을 쥔 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손, 놓으십시오."강유영은 불안한 기색으로 손을 빼려 힘을 주었다."이대로 조금만 가만히 있어 다오. 부탁이다."서준은 붉어진 눈가로 금방이라도 다시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애처롭게 애원했다."이, 이러지..."강유영은 그가 또 눈물을 보일까 두려워 차마 손을 강제로 뿌리치지 못했다.서준은 잠시 그녀를 응시하더니, 돌연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손수건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조금 전 눈물이 흘렀던 자신의 뺨을 그녀의 부드럽고 서늘한 손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이내 편안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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