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401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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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그 말을 들은 강유영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원철을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보기에는 까마득히 어려워 보였던 일도 막상 입을 떼고 나니 생각보다 쉬웠다. 그가 가르쳐준 것은 모두 옳았다. 무슨 일이든 일단 부딪혀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성공하지 않았는가?"어르신, 제가 돕겠습니다."조원철은 노파가 짊어진 땔나무를 선뜻 받아 들었다."아이고, 고맙소. 이렇게 신세를 지네."노파는 연신 고마워하며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저는 허영주라고 합니다. 시어머니는 진씨 성을 가졌지요. 아씨는 이름이 뭔가요?”허영주는 강유영을 보며 살갑게 물었다."저는...."강유영이 막 이름을 말하려던 때였다."이 아이는 조소연입니다."조원철이 불쑥 나서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강유영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밖으로 나돌 때는 가명을 써야 한다는 것쯤은 그녀도 익히 알고 있었다. 허영주의 인상이 워낙 선해 보여서 한 순간 그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하지만 가명을 지어주는 건 그렇다 치고 왜 굳이 조씨 성을 붙여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소연이라, 인물도 고운데 이름도 참 예쁘군요." 허영주는 그녀를 찬찬히 보다가 조원철을 슬쩍 훔쳐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부부지간입니까?"강유영의 뽀얗고 투명한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다급히 해명하려 했지만, 조원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그렇습니다." 그는 담담한 어투로 덧붙였다. "올 봄에 혼례를 올렸지요."강유영은 아연실색했다.어째서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다들 두 사람을 부부로 오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둘 사이에는 선을 넘는 친밀한 행동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게다가 이 사내는 어찌 이리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내뱉는단 말인가? '대체 누가 혼인을 했다고....'"어쩐지, 혼인한 지 몇 달 안 돼서 한창 좋을 때겠군요." 허영주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내 한눈에 알아봤어요.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군요."강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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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강유영은 내일 떠날 때 이 고부에게 은자를 조금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전 오늘 밤 어머니와 잘 테니, 두 분은 제 방에서 하룻밤 묵어가세요."허영주는 두 사람을 서쪽 방으로 안내했다.산골 사람들은 무척이나 검소했다.방 안에는 촛불 하나만 켜져 있어 꽤 어두침침했다.그 희미한 빛을 통해 침상 위의 이불이 정갈하게 개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맙습니다."강유영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방 밖으로 배웅했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누추한 침상에 걸터앉아 벽에 몸을 나른하게 기댔다.하루 종일 산길을 걸었더니 온몸이 쑤시고 몹시 고단했다.조원철은 어느새 챙겨온 얇은 이불을 침상에 깔고는, 그녀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었다.촛불에 비춰보니 손바닥 반만 한 육포였다.배를 채우지 못한 것을 어찌 알았을까. 그녀는 육포를 한 입 베어 물며 조원철을 바라보았다.식감이 퍽 질기고 누린내가 약간 났다. 평소라면 턱이 아파 즐겨 먹지 않았을 음식이지만, 지금 먹으니 꽤 새로운 풍미가 느껴졌다.조원철은 그녀의 곁에 앉으며 침상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턱짓했다.강유영은 육포를 오물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밖으로 나돈 요 며칠 사이, 그녀는 이미 그와 숙식을 함께하는 것에 퍽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취하는 친밀한 행동도 이제 무뎌진 지 오래였다.조원철은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강유영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육포를 씹으며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머리를 얹고서 일정한 박자로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묘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두 마을을 지나오면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느냐?"조원철은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나직하게 물었다."있습니다." 강유영은 입안의 육포를 삼키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두 마을 사람들은 유독 타박상 약을 많이 샀습니다.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는 것만으로는 그토록 약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요."그녀는 이 방에 들어설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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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그들이 상소를 올린 것이 아니다." 조원철이 말했다. "호주 지부는 현 태자비의 친오라비다. 만약 정말 광산이 있다면 태자와 무관할 수 없지. 상서로운 징조를 보고한 것은 분명 서왕의 소행일 것이다. 폐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 태자가 광산을 은닉한 일을 조사하게 하려는 속셈이겠지.""그 사람이 계략을 써서 오라버니의 손을 빌려 태자를 견제하려 한 것입니까?"강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전말을 깨달았다.알고 보니 이는 서준이 짠 판이었다. 조원철을 앞세워 태자를 칠 심산이었던 것이다.조원철은 실로 날카로웠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도 그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데, 그는 벌써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 아주 타당한 추론을 끌어낸 것이다.서준 또한 조원철을 끌어들일 정도니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과거 두 번이나 서준에게 속았던 일을 떠올렸다.서준은 허구한 날 진중함이라고는 없이 실없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멀쩡한 황자가 대체 무슨 풍파를 겪었기에 저런 성정을 지니게 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그래,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조원철은 그녀를 다시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만약 광산에 관한 일을 밝혀낸다면 서준의 계략대로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되면 서준을 돕고 태자와는 적이 될 터. 하지만 조원철은 이런 일을 보고도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차차 생각해 보자꾸나."조원철의 눈가에 깊은 상념이 스쳤다."더는 못 먹겠습니다."강유영은 남은 육포를 그에게 건넸다."입을 헹구거라."조원철은 맑은 물을 떠다 그녀에게 주었다.강유영은 입을 헹구고 그의 팔베개를 벤 채로 눈을 감았다.하루 종일 너무 고단해서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녀는 서둘러 한숨 자고 기력을 보충하기로 했다.조원철은 그녀를 안고 가볍게 등을 다독여 주었다.그녀는 그의 몸에서 나는 청량한 감송향을 맡으며 단단한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금세 평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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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강유영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게다가 오씨 어멈이 그러시길, 어떤 곳에서는 여인이 달거리를 시작하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지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몸이 깨끗해져야만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요."조원철은 원래 정갈함을 중시하는 사내였다. '대체 잠을 어떻게 잤기에...'어떻게 그의 옷까지 더럽혔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 정도 되었으니 그는 분명 질색하며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헛소리." 조원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천하의 여인들은 장성하면 누구나 달거리를 하는 법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지. 결코 더러운 것도, 수치스러운 것도 아니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순간 수치심도 잊은 채,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어릴 적부터 지금껏 달거리에 대해 들은 말이라고는 하나같이 더럽고 수치스러우며 남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될 흉한 것이라는 얘기뿐이었다.심지어 여인들조차 이를 입에 올릴 때면 늘 쉬쉬하며 숨기기 급급했다. 입에 담기 민망하다는 이유로 대놓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달거리가 결코 더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는 말은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내려오거라." 조원철은 어느새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강유영에게 말했다.강유영은 붉어진 얼굴로 침상에서 내려와 자리를 정돈하려 몸을 돌렸다. 속으로는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그가 침상 위에 얇은 이불을 깔아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허영주의 이불을 더럽힐 뻔했으니, 그랬다면 더더욱 면목이 없었을 터였다.조원철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더니, 얇은 이불을 반듯하게 개어 침상 한쪽에 올려두었다."여기 앉아서 기다리거라." 그는 그녀를 다시 침상 쪽으로 끌어당겨 반듯하게 갠 이불 위에 앉혔다.그러고는 옷을 갈아입으려 옷고름을 풀었다."어디 가십니까?" 강유영은 고개를 들고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그가 윗옷을 벗자, 희고 탄탄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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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제가 하겠습니다...."강유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할 줄은 알고?"조원철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천천히 배우면 되지요."강유영은 무안한 얼굴로 슬그머니 손을 거두었다.사실 그녀 본인의 문제도 있었다. 원래부터 바느질에 영 흥미가 없기도 했지만, 그녀를 애지중지하던 오씨 어멈이 자신과 단비가 곁에서 모시면 되니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감싸고돈 탓이었다. 그 후로 바늘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다."배울 필요 없다."조원철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어째서입니까?"강유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늘 그녀에게 글을 깨우치고, 장부를 보며, 계책을 세우고, 말 타는 법을 익히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다그쳤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배우길 바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바느질은 예외일까?"이런 궂은일은 아랫사람들을 시키면 그만이다."조원철은 바느질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강유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야 평소라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하지만 곁에 시종 하나 없는 지금은 어쩌란 말인가?"넌 달거리 주기가 고르지 않은 모양이구나."조원철이 불쑥 물어왔다."예."강유영은 뺨을 붉히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들, 사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국공부의 후원에서 자라 뼛속 깊이 새겨진 해묵은 관념이 그의 말 몇 마디에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었다."얼마 만에 한 번씩 하느냐?"그가 다시 물었다."일정치 않습니다." 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 "어떨 때는 두세 달에 한 번이고, 가장 길었을 때는 반년 만에 찾아온 적도 있었습니다...."워낙 날짜가 들쭉날쭉하여 확실한 답을 줄 수는 없었다."아랫배에 통증은 없느냐?"조원철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예전에는 무척 심했습니다." 강유영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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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제가...."강유영은 그를 만류했다.하지만 조원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옷가지를 안아 든 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강유영은 문가에 선 채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가 이런 궂은일까지 대신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밖으로 나갔던 조원철이 돌연 발걸음을 돌려 문가로 다가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왜 그러십니까?"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안고 있는 옷가지를 보자니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단비라도 데려왔으면 좋았을 것을.'그녀는 국공부의 후원에서 무시를 당하면서 컸지만, 단비와 오씨 어멈은 그녀를 끔찍이 아꼈다. 그 덕분에 이런 간단한 일조차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것이다."따라오거라."조원철이 턱짓을 하며 말했다.강유영은 그가 무엇을 시키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입술을 꾹 깨문 채 그의 곁을 따라나섰다.조원철은 앞을 주시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었다."허영주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보거라. 부군과 시아비의 행방을 슬쩍 떠보는 거다.""제가 할 수 있을까요?"강유영은 영 자신이 없었다.이 일은 조정에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었다. 만에 하나 자신이 말을 잘못 꺼내거나 엉뚱한 것을 물어 그의 일에 지장이라도 줄까 두려웠다."요 근래 모든 일을 잘 해내지 않았느냐."조원철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보기 드물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어투였다."그럼 한번 해보겠습니다."강유영은 그의 격려에 용기를 얻고 표정도 자못 비장해졌다.이것은 그녀가 평생 마주한 일 중 가장 큰일이었다. 게다가 조정의 중대사이니 마땅히 신중하게 임해야 했다."긴장할 것 없다. 너무 애쓸 필요도 없고. 설령 알아내지 못한다 해도 큰 지장은 없으니."조원철은 가벼운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강유영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냇가에 다다랐다.허영주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만삭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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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허영주는 푹 한숨을 내쉬며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그 아이는 태어난 지 석 달 남짓 되었을 때 고열이 나서... 결국 살리지 못했어요.""죄송합니다...."강유영은 미안한 기색으로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첫 아이가 그리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오죽 가슴이 아팠을까."괜찮아요. 이렇게 곧 새 생명이 태어나니깐요."허영주는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럼 이 댁 부군께서는요?" 강유영은 수면을 응시하며 짐짓 무심한 척 물었다. "어제는 댁에 안 계신 것 같던데요.""바깥에서 일을 하느라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온답니다."그 말을 꺼내자마자 허영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그녀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손에 쥔 빨랫감에만 집중했다.강유영은 경계하는 기색을 알아차리고는, 빙그레 웃으며 짐짓 가벼운 투로 말을 이었다."아, 읍내에 계신가 보군요. 주부에서 이리로 오는 길에 보니 번듯한 노점들이 꽤 있더라고요."그녀는 최대한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아낙 행세를 했다.허영주의 태도만 보아도 부군의 행방에 말 못 할 사정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조원철의 짐작이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그게 아니라...."허영주는 말을 하다 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강유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조금만 가까이 와 봐요. 새댁한테만 말해줄게여."허영주가 손짓했다."무슨 일인데요?"강유영은 바짝 다가가 맑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티 없이 순진한 얼굴은 상대의 경계심을 허물기에 충분했다."관아 사람들에게 선발되어 가서 일을 돕고 있어요."허영주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속삭였다."관아요? 그럼 포졸 일을 한단 말인가요?"강유영은 이제 알 것 같았다.관아와 얽혀 있다면 필히 태자비의 오라비와 엮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유지했다."아니요, 나도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요."허영주가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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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아... 아직요...."강유영은 얼굴이 확 붉어지며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이런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새댁은 뭘 그리 부끄러워해요?" 허영주는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작게 웃었다. "둘 다 혼인한 처지에 이런 얘기가 뭐 어때서요."강유영은 어색하게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이 흘렀다.여직껏 조원철을 두려워하고 국공부를 빠져나갈 생각만 하느라 이 문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조원철과 자신도 이미 여러 번 밤을 보내지 않았던가. 회임의 가능성을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아직 아무 소식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만에 하나 그의 아이라도 가졌더라면... 감히 뒷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득했다.다행히 간밤에 달거리가 왔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마음 편히 허영주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가슴을 졸였을지 모를 일이었다."집안 어르신들이 재촉하지 않나요?"허영주가 다시 물었다."그다지...."강유영은 뭐라 둘러대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말 안 해도 다 알아요. 천하에 손주 재촉 안 하는 어른이 어디 있다고." 허영주가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일을 치르고 나서 씻겠다고 바로 일어나지 말고, 허리춤을 높게 두고 누워 있어 봐요. 그러면 금방 애가 들어설 거예요. 내 뱃속에 있는 이 녀석도 그렇게 한 번에 생겼다니까요."강유영은 귀밑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쪼그려 앉은 그대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저... 그게... 아직 급하지 않아서요...."수치스러움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이가 들어서면 그건 참으로 큰일이었다."새댁은 참, 부끄럼도 많네요."허영주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신나했다.강유영은 행여나 민망한 얘기가 더 이어질까 얼른 화제를 돌렸다."참, 어머님은요? 어째 안 보이십니다.""아침 일찍 밭에 나가셨어요." 허영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이따가 점심 드시러 오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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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소연 새댁, 어찌 댁의 부군은 의원의 제자나 떠돌이 의원 같지가 않네요."허영주는 조원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어디가 다른가요?"강유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여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설마 정체를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꼭 높으신 양반 같달까요. 분명 나중에 크게 출세할 상이에요. 당대 최고의 명의라도 되려나? 새댁은 나중에 호강할 일만 남았어요."허영주가 빨래를 널며 덧붙였다.강유영은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다행히 의심을 산 것은 아니었다.조원철은 이미 충분히 출세한 몸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호강할 사람은 결코 자신이 될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조원철은 한 시진쯤 지나서야 돌아왔다.그가 돌아왔을 때, 강유영은 부엌에서 허영주를 도와 점심을 짓고 있었다."다녀왔어."조원철이 부엌 문가에 서서 슬쩍 눈길을 주었다.아궁이 앞을 지키던 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짧게 대답했다.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지만, 뭘 하고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굳이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일에 감히 참견할 처지가 아니었다."들어오자마자 부인한테 눈도장부터 찍고. 참 다정하기도 하셔라."허영주는 부뚜막을 닦으며, 멀어지는 조원철의 뒷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점심상이 다 차려질 즈음, 밭에 나갔던 진 노파도 돌아왔다."다들 어서 앉아 식사하지."진 노파가 두 사람을 불렀다.조원철은 강유영 곁에 앉으며 은자 조각 몇 개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어르신, 제 처가 몸이 좋지 않아 며칠 더 머물러야 할 듯합니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본래는 서둘러 깊은 산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유영의 몸이 불편하여 험한 산길을 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고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올랐다.처라는 표현을 쓰다니, 마치 모든 것이 진실인 양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태도였다."넣어두게. 하룻밤 더 묵는 게 뭐 대수라고. 다만 우리 집에 변변한 찬거리가 없어 그게 미안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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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설탕물입니까?"강유영은 달큰한 흑설탕 냄새를 맡고 저도 모르게 허리를 세워 그를 바라보았다.단것이 먹고 싶은 줄은 또 어찌 알았을까."흑설탕을 넣고 달인 익모초 물이다. 생강도 몇 조각 넣었지."조원철은 한 숟가락을 떠서 가볍게 불어 식힌 뒤,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제가 마시겠습니다."강유영은 대접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뜨겁다."조원철이 대접을 살짝 뒤로 빼며 피했다.찰나의 순간 그릇 가장자리에 손등이 스쳤는데, 과연 델 듯이 뜨거웠다."입 벌리거라."조원철은 고집스레 숟가락을 내밀었다.강유영은 얌전히 숟가락에 담긴 물을 삼켰다. 흑설탕을 듬뿍 넣었는지 생강 특유의 매운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따끈하고 달큰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훈훈한 기운이 아랫배까지 퍼지면서 뻐근하던 통증도 한결 가시는 듯했다.그녀도 입안에 단맛이 감돌자 기분이 좋아져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접었다.어릴 적부터 유독 단것을 좋아하던 터라, 지금 이 순간 내어주는 달콤한 흑설탕물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조원철이 말없이 몇 번 더 물을 떠먹였다.강유영은 그제야 퍼뜩 의문이 들어 물었다."흑설탕과 익모초는 어디서 나신 겁니까?""설탕은 짐을 꾸릴 때 챙겨두었다. 익모초는 부하들을 시켜 산에서 캐오게 했고."조원철은 다시 숟가락을 내밀며 담담히 대답했다.강유영은 동그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언제 설탕까지 챙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대나무 바구니 맨 밑바닥에 넣어두어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허영주의 부군과 시아비, 시동생까지 모조리 관아 사람들에게 불려 가 일을 한답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관아에서 발설을 금하여 본인도 모른다고 하더군요."강유영은 행여 누가 들을까 문가를 힐끗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언제부터라더냐?"조원철이 다시 한 숟가락을 떠먹였다.강유영은 꿀꺽 물을 삼키고는 기억을 더듬었다."재작년부터랍니다. 동네 장정들이란 장정들은 죄다 끌려갔대요. 그리고 여기서 두 마을만 더 지나면 나오는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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