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481 - Chapter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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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1화

하 낭자의 확답을 듣자 강유영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선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품행이 단정한 사내여야 합니다. 값은 쳐드리겠습니다. 허나, 일이 끝난 뒤에는 저와 털끝만큼도 얽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상단에서 보증하실 수 있겠지요?"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친모가 남긴 전당포를 되찾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는 일이든, 경성을 떠나 진국공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일이든 든든한 은자가 없이는 불가능했다.그러니 당장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당포부터 온전히 되찾고, 뒷일은 천천히 생각할 계획이었다.하지만 이 일에는 위험이 따랐다.관아에 가서 혼서를 받고 나면, 율법상으로는 엄연한 부부가 되는 셈이다. 행여 시정잡배와 엮였다가, 혼서를 받은 뒤 갈라서려 할 때 발목을 잡히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다."그야 당연하지요."하 낭자가 웃으며 답했다."유영 아씨, 저희 상단은 철저히 의뢰인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다른 조건이 더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시지요.""가급적이면... 그자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으면 합니다."강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 편이 훨씬 안전하리라 판단했다."혼서를 받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하 낭자가 말했다."허나 관아에 가서 혼서를 받을 때는 두 사람이 함께 가야만 하지요. 그래도 그때 아씨께서 면사포를 써서 얼굴을 가리시면 되니, 문제없을 것입니다.""좋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값은 얼마입니까? 계약서를 쓸 수 있겠습니까?"그녀는 하 낭자와 금수상단을 믿었다.그도 그럴 것이, 친모가 상단에 일을 맡긴 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금수상단은 여전히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약조를 이행하고 있었다.상단의 신용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었다.하 낭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문서로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다만 값은 아씨와 의논을 해봐야 할 듯합니다. 복잡한 일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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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화

"그렇다면, 한씨가 그 많은 은자를 어디에 썼는지 알아봐 주실 수는 있습니까?"강유영은 잠시 생각하다 조용히 물었다.그녀는 그게 늘 궁금했다. 한씨는 그 막대한 은자를 대체 어디에 쓴 것일까.만약 그저 옷이나 장신구를 사는 데 썼다면, 그동안 전당포에서 빼돌린 은자만으로도 두 모녀가 몇 년을 흥청망청 쓰고도 남을 돈이었다.그런데 어찌 한씨의 수중에 은자가 이렇게 빨리 말라버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게다가 진국공부 자체도 궁핍한 집안이 아니었다. 집안의 씀씀이는 진국공과 조원철의 녹봉만으로도 국공부 전체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그렇다면 한씨는 대체 그 많은 은자를 어디로 빼돌린 것일까. 혹시 그 은자의 행방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능합니다만, 무조건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하 낭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진국공 부인은 신분이 높으신 분이니, 뒷조사를 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알아냈을 때만 은자를 지불하는 겁니까? 아니면 결과와 상관없이 수고비를 내야 합니까?"강유영은 이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알아내지 못하면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하 낭자가 대답했다."알아낸다면 정해진 값어치대로 받을 뿐이지요. 누구든 값은 똑같습니다."말을 마친 하 낭자는 품에서 단가가 적힌 문서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강유영은 그것을 집어 들고 찬찬히 살피더니 물었다."기한이 정해져 있습니까? 시일이 얼마나 걸립니까?""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하 낭자는 고개를 저었다."이걸로 하겠습니다."강유영은 단가표의 항목 하나를 짚으며 말했다."알아내면 그때 제게 알려주세요. 은자는 그때 치르겠습니다.""알겠습니다."하 낭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강유영은 저잣거리를 한 바퀴 돌며 먹거리를 몇 가지 샀다."단비가 이걸 좋아하니 좀 사 가야겠다. 넌 뭐 먹고 싶은 거 없니?"강유영은 고기 조림을 파는 노점 앞에 멈춰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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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예." 화씨 어멈은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그럼... 노부인께는 아씨께서 몸이 고단하여 일찍 쉬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지금 그녀는 강유영의 손에 목숨을 맡긴 거나 다름없으니 감히 심기를 거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가보세요."강유영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처소로 돌아오자, 오랜만에 모인 주종 세 사람은 탁자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식사를 했다.강유영은 두 시녀와 함께하며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목욕을 마치고 침상에 눕자, 문득 오씨 어멈이 그리워졌다.밖으로 나돈 지 한참이 지났는데, 오씨 어멈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조원철의 수하들이 오씨 어멈을 홀대하지는 않겠지? 나중에 조원철의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오씨 어멈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해 볼까? 아니면 아예 처소로 모셔 오게 해달라고 청해 볼까?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귓가에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불 좀 꺼주렴."강유영은 단비인 줄 알고 침상 휘장 안에서 지시했다.하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그녀가 몸을 돌려 휘장을 걷어보려던 순간이었다. 미처 손을 뻗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한발 앞서 휘장을 걷어 올렸다.침상 앞에는 훤칠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를 온전히 덮었다.다름 아닌 조씨 노부인의 가족 연회에 참석했어야 할 조원철이었다."어찌 오셨습니까?"그를 본 강유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침상 안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빛을 등지고 선 탓에 그의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 먼 길을 동행하며 함께 지낸 시간이 길었던 탓일까. 그가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가 이 밤중에 자신의 처소를 찾은 것에 대해서도 예전만큼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남들의 눈에 띌까 걱정될 뿐이었다.조원철은 아무 말 없이 침상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희미한 촛불이 그의 옆얼굴을 비췄다.강유영은 그제야 수려한 그의 얼굴이 유난히 붉게 달아올라 있음을 알아챘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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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4화

그는 가족을 흉보는 것을 듣고 언짢아할 수도 있었다.막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어둠 속에서 조원철이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를 끌어안은 손이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잘했다. 앞으로 누군가 네가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거든, 그게 누구든 거절하고 반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강유영은 그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글을 가르치고, 세상사를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며 주관을 갖게 하고, 거절과 반항을 가르친 것까지. 이 모든 것을 떠올려보면 조원철은 늘 그녀를 위해 배려해 주는 듯했다.이런 면만 본다면, 조원철은 그녀에게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만약 그가 억지로 강압하지 않고 그녀를 존중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애석하게도 그는 선을 넘었다.게다가 두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앞길을 망가뜨린 것이나 다름없었다.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주면 무슨 소용일까.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는데.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머리는 맑아졌고, 맑아질수록 고통은 배가되었다.차라리 예전처럼 겁 많고 나약한 여인으로 남아 아무런 이치도 몰랐더라면, 이리 마음을 졸이며 고통스럽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조원철은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두 눈을 조심스레 덮었다.강유영은 눈을 감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황궁에 보고를 올리러 가신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폐하께서는 무어라 하시던가요?"오씨 어멈을 만나려면 우선 그의 기분을 맞춰주어야 했다. 그가 흡족해할 때를 타서 자연스레 말을 꺼낼 셈이었다."모두 순조로웠다."조원철이 대답했다."폐하께서 치하하시며 상도 넉넉히 내리셨지. 며칠 뒤 황궁에서 연회가 열릴 터인데, 그때 너도 함께 가자꾸나.""태자는요? 태자를 뵙지는 않았습니까?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던가요?"강유영은 자못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하기정이 그의 처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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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5화

그가 조금 더 바짝 다가왔다."뻔뻔하십니다!"강유영은 허리를 비틀며 그를 피했다. 순간 화가 나고 무서운 마음에 불쑥 원망이 튀어나왔다.그는 어찌 하루 종일 이런 생각만 한단 말인가.그녀는 그저 그와 단둘이 있는 것,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며 심지어 한 침상에 눕는 것까지는 익숙해졌다.하지만 그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평생 가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그저 욕망을 푸는 도구로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여지없이 그녀를 찾아왔으니 말이다.조원철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긴 다리로 그녀를 짓눌러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다."어차피... 저를 정실로 맞이할 수도 없으시면서, 어찌 이리 괴롭히기만 하십니까.... 제가 기댈 뒷배도 없고, 아껴줄 이도 없으니, 이리 마음대로 유린해도 따져 물을 사람이 없어 이러시는 겁니까...."강유영은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자,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녀는 아예 반항을 멈추고 울먹이며 그를 원망했다.그는 정말 너무했다.지난번 그녀가 제 발로 떠나려 했던 그 한 번을 제외하고는, 그와 몸을 섞은 일은 전부 그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평소에는 그리 고고하고 단정해 보이건만, 이 일에만 얽히면 짐승처럼 굴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곧고 바른 세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그 말을 들은 조원철의 움직임이 멈칫하더니, 부드러운 목덜미에 닿아 있던 뜨거운 입술이 떨어졌다.강유영은 자신의 눈물이 먹혀들 줄은 미처 몰랐다.예전에는 아무리 울고불고 애원해도 결코 그녀를 놔주지 않았던 그였다.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일까?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전의 몇 번은 그가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그의 이성이 남아있기에, 그녀의 말이 귀에 닿은 것이다.그는 아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었다."저희는 남매입니다. 애초에 맺어질 수 없는 사이인데, 앞으로 저더러 어찌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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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조원철은 오늘 술을 마신 탓에 욕구가 평소보다 강했다.강유영이 잠든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한참 서성였지만 그녀의 곁에서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결국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옷을 단정히 챙겨 입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강유영이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는,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다행히 예전부터 한씨와 조씨 노부인은 그녀를 마땅찮게 여겨 얼굴조차 보기 싫어했다.덕분에 매일 아침 일찍 문안 인사를 올리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춘희원에 가서 조씨 노부인이 아침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소로 돌아왔어야 했다. 밤에도 노부인이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할 수도 있었다.지금 보니, 국공부에서 천대를 받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아씨, 깨셨습니까?"단비가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세안을 도와드리겠습니다.""아씨, 세자께서 사람을 시켜 보내신 겁니다."서유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몇 개가 놓여 있었다."이건 무엇이냐?"강유영이 고개를 돌려 그것을 쳐다보았다.조원철은 아침에야 돌아갔는지 어젯밤 돌아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물론 어찌 됐든 그녀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양고기 선짓국과 만두입니다. 가을로 접어들었으니 세자께서 양고기로 몸보신을 하라 하셨습니다."서유가 탁자 위에 그릇을 내려놓으며 답했다.강유영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세수를 마친 뒤, 탁자 앞에 앉아 양고기 만두를 베어 물고 선짓국을 마셨다.어느 주루에서 만들어 온 것인지 몰라도 맛이 훌륭했다. 만두는 육즙이 가득하면서도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아씨, 오늘 아침에 들으니 노부인께서 또 병이 나셨다더군요."서유가 곁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이번엔 또 어디가 편찮으시다니?"강유영은 입안의 국물을 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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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7화

"무슨 일인데 그러니?"강유영은 주판을 튕기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당비를 보며 물었다."노부인께서 아씨를 직접 오라 하십니다." 단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무슨 법사 같은 자들을 여럿 불러들여 방 안에서 펄쩍펄쩍 뛰고 춤을 추는 것이, 꼭 굿판이라도 벌인 것 같았습니다.""또 누가 있더냐?"강유영은 쥐고 있던 붓을 내려놓고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가볍게 물었다."국공 부인과 연화 아씨, 사예 아씨도 다 모여 계십니다." 단비가 잔뜩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아씨, 행여나 그 사람들이 합심하여 아씨를 해코지하려는 건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아씨를 부르시겠습니까?""상관없어. 서유와 함께 가마." 강유영은 딱히 겁내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 법사들이란 자들은 누군지 아느냐? 낯이 익은 자들이었어? 혹여 무리 중에 태소 도사도 섞여 있었느냐?"십중팔구 조씨 노부인이 또 무슨 해괴한 술수를 부리는 게 분명했다.그녀는 그동안 조원철에게 배운 것이 꽤 있었다. 내심 배운 것을 써먹어보고 싶어, 자신이 노부인의 간계를 어디까지 대처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다.물론 감당하지 못할까 봐 은근히 걱정도 되긴 했다. 하지만 이미 코앞에 닥친 일,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예전처럼 주눅 들어 있을 수는 없었다.그녀는 일단 직접 가서 부딪쳐보기로 마음먹었다."아닙니다. 한 명도 아는 얼굴이 없었습니다." 단비가 말했다. "저도 아씨를 따라가겠습니다.""가자꾸나."강유영은 몸을 일으키며 손짓했다.주종 세 사람은 곧장 춘휘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춘휘원.마당에 들어선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향로에서는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르고 있었고, 승려 차림을 한 자들이 사방 모퉁이에서 향을 쥐고 절을 하는 것이 무슨 의식을 치르는 듯한 모양새였다."유영 아씨, 오셨습니까."화씨 어멈은 그녀가 올 줄 알고 일찌감치 회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강유영이 대문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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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8화

강유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지방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방 한가운데에는 신상이 놓여 있었고, 사방에 향 연기가 자욱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스님 한명이 신상 앞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중얼중얼 염불을 외고 있었다.조씨 노부인이 그곳에 없는 것을 본 강유영은 곧장 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내실 안.조씨 노부인은 눈을 감은 채 침상에 누워 있었는데, 얼굴이 흙빛이었다.한씨는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다친 다리를 올려둔 채,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노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강유영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키며 한씨의 연기력에 감탄했다.마음속으로는 노부인을 죽도록 미워하면서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보니, 조연화와 조사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강유영이 들어오자 두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유영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할머니, 어머니께 문안 올립니다."허리를 꼿꼿이 편 모습이 여유로우면서도 당당했다. 예전의 그 겁 많고 위축되어 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그 모습을 본 조연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표정이 굳었다.예전부터 그녀는 강유영의 미모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행히 강유영이 겁이 많아 사람을 마주하면 고개조차 들지 못한 덕에, 아무리 예뻐도 그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을 뿐이다. 온종일 눈치만 보며 쭈뼛거리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그런데 지금 강유영은 버젓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으니, 대체 누가 저런 배짱을 심어 준 것일까?저런 모습으로 서왕의 눈을 사로잡고 서왕비의 자리까지 꿰차려 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분한 마음이 들었다.조사예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도경진과의 혼사가 틀어진 일로 진작부터 강유영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지금 강유영이 뿜어내는 기품은 영락없는 명문가 규수의 분위기였다. 일개 양녀 주제에 서녀인 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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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9화

강유영은 조연화의 표정만 보아도, 앞으로 벌어질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노부인, 국공 부인. 혜통대사의 의식이 끝났습니다."화씨 어멈이 밖에서 들어오며 보고했다.강유영은 그제야 큰스님의 법명이 혜통이라는 것을 알았다.조씨 노부인이 어멈을 향해 손을 뻗었다."부축해다오."화씨 어멈이 황급히 다가가 노부인을 부축했다.조씨 노부인은 몸을 일으켜 푹신한 베개에 기대앉더니 입을 열었다."대사를 모셔 오거라."화씨 어멈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혜통 대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아미타불."그는 침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아 노부인에게 예를 표했다."의식을 마쳤습니다. 통증은 좀 가라앉으셨는지요?""처음 발작했을 때보다 훨씬 낫군요."조씨 노부인은 가슴을 부여잡고 말했다."지금은 크게 아프지 않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사."감사해하는 표정은 결코 거짓 같지 않았다.강유영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았다.짐작건대, 다음 순서는 그녀를 겨냥할 차례였다.조씨 노부인은 또 무슨 꿍꿍이일까?또 절에 가서 수십 일 머물라고 할 작정인가?백번 양보해 그녀가 순순히 따른다 해도, 조원철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그런 요구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조원철이 알아서 막아줄 것이다."효험이 있다니, 사악한 기운이 장난을 친 것이라는 소승의 진단이 맞은 듯합니다."혜통 대사가 말을 이었다."허나, 소승의 방도는 노부인의 고통을 잠시 덜어줄 뿐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못합니다. 뿌리를 뽑으려면 비방을 써야만 영영 발작을 막을 수 있습니다.""그게 뭡니까?"조씨 노부인이 다급하게 물었다.혜통 대사는 난처한 기색을 띠며 머뭇거렸다."그것이... 처방에 들어가는 약재가 제법 값나가긴 하나 구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약효를 끌어내기 위한 약인(藥引)이 문제인데....""대사, 어머님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약인이 무엇이든 편히 말씀하십시오."한씨가 재빨리 나서서 효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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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0화

한씨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물었다."소승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분들은 국공부의 아씨들이자 노부인의 손녀들이 아닙니까?"혜통대사가 입을 열어 물었다."그렇습니다." 한씨가 웃으며 답했다. "모두 이 집안의 아이들입니다."혜통대사는 손가락을 짚어가며 셈을 해보더니 말했다."소승의 짐작이 맞다면, 댁에 아씨가 한 분 더 계시지 않습니까?""예, 제일 어린 막내가 한명 더 있습니다." 한씨가 웃으며 조씨 노부인을 힐끔 보았다. "대사님은 참으로 신통하십니다."조월아가 이 자리에 오지 않았으니, 혜통대사가 말하는 이는 분명 그녀였다.조연화와 조사예도 놀란 얼굴로 대사가 어떻게 맞췄는지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하지만 강유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조씨 노부인이 사전에 일러두었을 테니 아는 게 당연했다.게다가 이런 사소한 일이 무슨 대단한 재주라고 저러는 걸까."이 약인은 말입니다." 혜통대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부인의 손녀들 중 가장 복이 많고 귀한 운을 타고난 이의 심방혈을 빼서 처방에 섞어야 합니다. 그것을 마셔야만 노부인의 두통과 가슴 통증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습니다."그는 느릿하게 말하며 강유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강유영은 맑은 눈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입술을 살짝 앙다물었지만, 표정에는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조씨 노부인은 참으로 독한 사람이었다.이런 판을 벌인 이유가 고작 그녀의 심방혈을 얻기 위함이라니.손끝이나 손목의 피를 내는 정도라면 악독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심방혈은 예리한 칼을 가슴에 찔러야지 구할 수 있었다.칼에 찔렸을 때 그 자리에서 죽지 않는다 쳐도,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자칫 상처가 덧나거나 곪기라도 하면 결국 목숨을 잃게 될 수 있었다.조씨 노부인과 한씨, 이 고부는 애초에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작정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복이 많기로는, 저 아이가 가장 복이 많지."조씨 노부인은 손을 뻗어 강유영을 가리키며 힘겹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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