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의 모든 챕터: 챕터 511 - 챕터 520

523 챕터

제511화

말을 마친 그녀는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통곡하기 시작했다.강유영은 눈을 깜빡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속으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황궁은 쓸모없는 자를 거두지 않는다고 하더니, 궁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참으로 하나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그녀는 본래 경화 공주가 속내를 숨길 줄 모르는, 그저 대놓고 악독하고 안하무인인 공주인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오산이었다.경화 공주는 다른 이들에 비해 희로애락을 겉으로 잘 드러낼 뿐이지, 꿍꿍이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방금 전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는 그 솜씨는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건정제는 곁에서 질타를 받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서서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웃으며 경화 공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경화 공주가 입에 거품을 물고 욕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전혀 딴 사람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조원철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눈동자 위에 그림자를 드리워서 그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그 자태는 범접할 수 없이 고고하고 반듯했다.건정제는 강유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미간을 찌푸렸다.'진국공부의 양녀라고 했었나?'그는 바로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서준이 지난번에 기어이 왕비로 맞겠다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던 여인이었다. 고분고분해 보이는 인상으로 조원철 곁에 서 있었는데,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경화에게 떠밀려 물에 빠졌다고 했던 이가 저 아이였나?이번에도 서준이 저 여인 때문에 나선 것인가?황제는 천천히 서안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아바마마…."한참을 곡을 하던 경화 공주는 황제가 아무런 말이 없자, 고개를 들고 애처롭게 황제를 불렀다.강유영은 조용히 시선을 돌려 그녀를 살폈다.예상대로였다.경화 공주의 얼굴에는 눈물자국 하나 없었다. 얼굴을 감싸 쥐고 우는 척했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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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마침내 황제가 사건의 핵심을 짚었다.찔리는 구석이 있는 경화 공주가 과연 무어라 변명할지 이목이 집중되었다."그, 그것이... 제가 저 아이와 장난을 좀 쳤을 뿐입니다."경화 공주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순식간에 핑곗거리를 찾아냈다."저는 본래 강유영과 사이가 각별합니다. 여자들끼리 장난 좀 친 것을 두고, 사내인 서왕이 참견하는 게 말이 됩니까? 제가 진국공부의 적녀 조연화와도 자주 어울린다는 건 아바마마께서도 다 아시는 일 아닙니까."변명을 늘어놓을수록 스스로도 찔렸는지, 공주는 괜히 말을 돌리며 조연화까지 끌어들였다. 강유영과 장난을 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증명하려는 듯했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당장이라도 반박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황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었다.그녀가 경화 공주와 각별할 게 어디 있단 말인가?조원철이 경성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는 경화 공주를 몇 번 마주친 적도 없었다. 나중에 조우했을 때도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다. 경화 공주가 대체 왜 사사건건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사람을 물에 던지며 장난을 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이 가을이라 망정이지 겨울이었다면 틀림없이 크게 앓아누웠을 것이다."폐하."조원철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예를 갖추고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신의 누이는 공주 마마와 친분이 없습니다.""자네가 안 친하다고 하면 안 친한 것인가? 강유영에게 직접 말하게 하게!"경화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유영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강유영 따위가 감히 자신을 거스를 수 있을 리 없다고 믿었다."유영아,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할 거다. 저 두 사람이 온종일 널 지켜줄 순 없지 않겠느냐."공주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강유영을 바라보았다. 퍽 다정하기까지 한 어투였다.강유영은 경화 공주가 대놓고 자신을 협박하고 있음을 알았다."저는 공주 마마와 말씀을 나눈 것이 두세 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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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이제 더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그렇다면 서왕 전하께서 공주 마마를 연못에 던진 것 또한 장난이라 해야겠지요. 헌데 공주 마마께서는 어찌하여 폐하 앞까지 와서 억울함을 토로하시는 겁니까?"조원철이 담담한 어조로 경화 공주에게 반문했다.강유영은 고개를 숙인 채 남몰래 웃음을 삼켰다.조원철은 말수가 적었으나 내뱉는 말마다 정확히 정곡을 찔렀다. 반면 경화 공주는 핑계를 대려다 오히려 제 발등을 찍고 말았다."일리 있는 말이오!"서준이 박수를 치며 조원철을 바라보았다.그는 연적인 조원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조원철이 확실히 남다른 식견과 기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게 무슨 억지인가!"경화 공주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적반하장으로 조원철이 억지를 부린다고 잡아뗄 뿐이었다.조원철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건정제를 향해 말했다."폐하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옵소서."상황은 이미 명백해졌으니, 경화 공주와 더는 실랑이를 벌일 필요가 없었다."설령... 설령 제가 저 아이를 물에 빠뜨린 게 잘못이라 쳐요. 그렇다고 서준이 저를 물에 던진 건 옳은 일입니까? 고작 계집 하나 때문에 누이를 이리 대접해도 되는 것입니까? 아바마마, 이 일에 대해서는 저 녀석이 제게 합당한 해명을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경화 공주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따져 물어야 할 대상은 서준인데, 조원철과 옥신각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황제 앞에서 갖춰야 할 예의마저 잊고 쏘아붙였다.건정제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왕, 이 일은 네 누이 말이 맞다. 설령 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내게 고했다면 내가 알아서 벌을 내렸을 텐데. 어찌 네가 직접 나서서 누이를 물에 던진단 말이냐?"강유영은 황제가 서준을 책망하며 따져 묻는 것을 듣고 내심 걱정이 앞섰다.서준은 그녀를 대신해 화풀이를 해준 것이었다. 강유영은 그가 이 일로 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만약 그리된다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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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깐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서용연의 시선이 조원철을 향하자, 그제야 그녀는 슬며시 시선을 들어 태자를 살폈다.서용연의 외모는 서준과 별로 닮지 않았다. 서준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다소 요염한 느낌을 준다면, 서용연은 매부리코에 눈이 깊숙하게 파여 있었다.그는 침착한 인상에 눈매와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띠고 있어, 퍽 올곧고 반듯한 인상이었다.하지만 강유영은 그의 바른 모습이 그저 위장일 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실상 이런 자들이야말로 속에 꿍꿍이가 많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만큼 잔혹한 법이었다.그녀는 예전에 태자가 저지른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녀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도 많았지만, 대충 앞뒤가 들어맞는 구석이 있었다. 태자라는 인물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조원철이 호주에서 한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태자가 은밀히 숨겨둔 광산을 찾아내고, 태자비의 오라비를 사형수로 만들어 감옥에 처넣지 않았던가. 태자가 그 원한을 잊었을 리 없었다."소자는 경화가 걱정되어 왔습니다."서용연의 시선이 마침내 경화 공주에게 닿았다."오라버니…."경화 공주는 마침내 기댈 곳을 찾았다는 듯 달려가 그의 팔을 끌어안고는 또 다시 거짓 울음을 터뜨렸다."경화는 천금 같은 몸이거늘, 서왕이 그런 아이를 연못에 던져버렸으니 이 일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서용연이 의연한 어조로 말했다."내 이미 다 물어보았다. 이 일은 경화가 먼저 진국공부의 양녀를 물에 밀어 넣으면서 벌어진 일이다."건정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설령 그렇다 한들 서왕의 행동은 너무도 오만방자합니다. 남매의 정을 저버리고 누이에게 손을 댔으니, 연유가 어찌 되었든 인륜을 저버린 짓이며 황실의 체면을 크게 깎아내렸습니다."서용연은 만반의 준비를 한 듯 서준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었다.서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지만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태자는 참으로 온 힘을 다해 사사건건 그에게 시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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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조원철의 반박은 빈틈이 없었다.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다툼을 조정의 기강과 변방의 안보 문제로 격상시켰다.건정제로서도 그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강유영은 무심하고 담담한 그의 모습을 보며 기가 차면서도 내심 감탄했다.내막을 몰랐더라면 당사자인 그녀마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이다.저리 꼿꼿하고 반듯한 군자의 얼굴로 해가 네모나다고 우겨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판이었다."태자, 말을 삼가거라."건정제가 서용연을 힐끗 보며 경고했다.서용연은 가슴이 철렁하여 고개를 숙였다."예. 아바마마, 허나 소자는 한 말씀 더 올리고 싶사옵니다."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조원철이 웬 여인과 함께 호주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허나 그 여인이 정말 강유영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감옥에 갇힌 그의 수하들은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어 접촉할 기회조차 없었다. 게다가 말만 들어서는 조원철이 데려간 여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방금 한 말 역시 조원철을 떠보려는 의도였으나, 아쉽게도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그렇다고 건정제에게 조원철이 여인을 데리고 공무를 보러 갔다는 사실을 알릴 수도 없었다.그 말을 꺼내는 순간, 자신이 호주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만약 황제가 태자인 자신이 은밀히 광산을 숨겨둔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태자 자리도 끝이었다.서용연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강유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태자가 조원철과 서준을 물고 늘어졌다가 실패했으니, 다음은 자신을 표적으로 삼지 않을까 불안했다."말해 보거라."건정제가 턱을 치켜들며 그를 보았다.서용연이 고개를 돌려 강유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소자는 진국공부의 강 소저가 참으로 수완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자가 직접 물에 뛰어들어 자신을 구하게 만들고, 황자와 공주 사이까지 불화가 생기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미인이 화를 부른다는 옛말이 하나 틀린 게 없습니다."조원철과 서준을 어찌하지 못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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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황제의 의중은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다. 강유영은 제 분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물론이거니와 조원철조차 건정제의 속내를 온전히 꿰뚫어 보지는 못할 것이다.그녀는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상황을 타개할 수밖에 없었다.경화 공주는 그녀를 핍박했고, 태자는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기댈 곳 없는 양녀 신분으로 일국의 태자와 시비를 가릴 자격 따위는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걸 체념하고 한없이 납작 엎드리는 편이 나았다. 행여나 조금이라도 반박하려 든다면 결코 불쌍해 보이지 않을 터였다.건정제는 일국의 군주였다. 지존의 자리에 앉아 이깟 일조차 분간하지 못할 리 없었다.만약 그렇다면 대놓고 경화 공주와 태자 서용연의 편을 든다는 뜻이리라."그만하거라."건정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서준을 훑어보았다."이 일은 네게도 잘못이 있다. 설령 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네가 누이를 물에 던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경화 공주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물에 던져져서는 안 된다는 말에는 동의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는 황제의 말에는 차마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찮은 양녀 하나를 손봐준 것이 어찌 잘못이란 말인가? 아바마마께서 강유영을 너무 띄워주시는 듯했다.건정제의 말을 들은 강유영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황제가 경화 공주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은 이 일의 시비를 제대로 가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일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서준은 콧방귀를 뀌었다."아바마마의 말씀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누이는 남을 빠뜨려도 되고, 저는 누이를 빠뜨리면 안 된단 말씀이십니까?"다소 어린애처럼 생떼를 쓰는 어투였다."당연히 안 될 일이지."건정제는 타이르듯 말했다."내게 먼저 고했어야 했다."서준이 또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였다."아우야. 아바마마께서는 천자이시거늘 어디 감히 말대꾸를 하려 드느냐. 이는 크나큰 불경이다."서용연이 한발 앞서 끼어들었다."태자도 그만하거라."건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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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경화 공주는 납득할 수 없었다.자신의 벌이 서준과 엇비슷하다니.분명 서준이 자신에게 해를 가했으니, 그가 훨씬 더 무거운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내가 명했으면 그저 따르면 될 일이다. 네 그 경솔한 성미는 이참에 좀 다스릴 필요가 있다."건정제의 어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경화 공주는 황제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채고 즉시 고개를 숙인 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조 세자,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네 누이가 까닭 없이 곤욕을 치렀으니, 남해의 명주 한 말과 비단 열 필, 그리고 안신약을 하사하마. 아이를 데리고 부저로 돌아가 푹 쉬게 하라."건정제가 손을 휘저었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강유영은 조원철을 따라 예를 갖추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건정제의 결단은 제법 공정했다.경화 공주가 근신 처분을 받았으니 당분간은 조용할 것이다. 적어도 당장 공주에게 보복당할 일은 없었다."오늘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리거나 왈가왈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기는 자는 결코 용서치 않겠다." 건정제가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훑어보며 명했다. "다들 물러가거라.""예, 폐하."사람들은 인사를 올리고 줄지어 자신전을 빠져나왔다.밖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경화 공주와 태자 서용연은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조원철과 강유영을 싸늘하게 흘겨보고는 매몰차게 돌아섰다."가자."조원철은 강유영을 부르며 서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를 뜨려 했다.허나 서준은 재빨리 따라붙으며 실실 웃었다."조 대인, 오늘 참 여러 사람 심기를 거슬렀군 그래. 게다가 저 안의 늙은 영감도 말이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착각하지 마. 속으로는 거울처럼 훤히 다 꿰뚫어 보고 계실 테니."그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유영을 훑어보았다.조원철은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강유영에게 물었다."춥지 않으냐?"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시선을 들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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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조원철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기다렸다."내게 은혜를 갚을 필요는 없어. 나중에 후회하게 되거든, 그때 날 찾아와도 좋고."서준이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강유영은 의아한 듯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서준은 어째서 조원철에게 변고가 생길 것이라 저토록 확신하는 걸까?조원철의 뒤를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주위가 조용해지며 귓가에는 조원철의 발소리만 들려왔다.강유영이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서준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원철 오라버니."강유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용히 그를 불렀다. 저도 모르게 그를 대하는 것이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웠다.조원철이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직 핏기가 덜 가신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걷기 힘든 것이냐?""아닙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조금 다가가서 나지막이 속삭였다."서왕 전하께서 저리 확신하시는 것을 보니, 혹여 인주의 곡창 일로 태자 전하께서 무슨 수를 쓰는 것은 아닐까 하여…."그 일은 줄곧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방금 전 서준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자, 무심결에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조원철에게 주의를 주고 싶었다."이미 대비해 두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조원철의 맑고 차분한 음성에 부드러운 위로가 배어 있었다."예."강유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그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허나 태자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아닌가. 그녀는 행여나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할까 늘 노심초사였다.두 사람이 황궁 밖으로 나와 막 마차에 오르려던 참이었다."조원철."경화 공주가 돌연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오며 웃음 띤 얼굴로 그를 불렀다.조원철은 마차에 오르려던 동작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린 채 공주를 쳐다보았다.강유영은 무의식중에 그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황제께서 공주에게 공주부로 돌아가 근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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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공주는 너무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조원철 또한 경화 공주에게 실성했느냐고 대놓고 쏘아붙였다.강유영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험한 말을 하는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경화 공주가 수치심에 분노하여 길길이 날뛸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경화 공주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공주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조원철이 자신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무조건 들어줄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조원철, 자네와 저 아이의 일은 내 이미 다 알고 있네. 자네도 자네와 양누이의 낯뜨거운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건 원치 않겠지?"공주는 강유영 쪽을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도발적이면서도 야릇한 눈빛으로 조원철을 쳐다보았다.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경화 공주가 뭘 안다고 저러는 걸까?'어쩌면 좋지?'순식간에 그녀는 머릿속이 하얘졌다.허나 앞을 막아선 조원철은 공주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는 뒤로 돌아 소매 너머로 강유영의 손목을 단단히 쥐고는 그녀가 마차에 오르도록 이끌었다."타거라.""조원철, 후회하게 될 거다! 내 당장 온 천하에 네가 겉으론 고고한 척하면서 뒤로는 누이와 몸을 섞은 파렴치한이라고 까발려 줄 테니!"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조원철의 태도에 화가 치민 경화 공주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조원철은 강유영을 마차에 먼저 태운 뒤, 고개를 돌려 경화 공주를 서늘하게 직시했다."전하께 증거가 있으시거든 얼마든지 떠벌리고 다니시지요. 허나 그 전에 나라의 율법부터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조정의 관원을 모함한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말입니다."말을 마친 그는 공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숙여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호위인 청운이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몰았다.마차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경화 공주는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이내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제자리에 우뚝 섰다."전하, 이만 돌아가시지요…."시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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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괜찮습니다. 제 몸은 제가 압니다."강유영은 단박에 거절하고는 쭈뼛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수영을 배우고 싶습니다."오늘 물에 빠졌을 때 코와 입으로 물이 밀려들던 고통과 죽음의 공포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하마터면 정말 죽는 줄 알았다.그가 물에서 자신을 건져 올린 순간, 그녀는 굳게 결심했다. 이번에 목숨을 건졌으니 기필코 수영을 배우겠다고.위급한 순간에 스스로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생존 기술이었다.평소 제 몸을 끔찍이 아끼는 그녀로서는, 예전에 그가 권할 때마다 번번이 거절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었다.조원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볼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강유영은 그가 흔쾌히 허락할 줄 알았다.예전에 그가 수영을 배우라고 몇 번이나 권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물이 무서워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미루기만 했었다.오늘 끔찍한 사고를 겪고 나서야 수영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것이다.헌데 어째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걸까?의아해진 그녀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그는 뚫어지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새까만 눈동자에 짙은 욕망이 일렁였고, 목울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석양의 금빛이 그의 옆모습을 비추며 마차 안의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했다.강유영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귓불부터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오르고 말았다.저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설마….경화 공주가 대놓고 그를 협박했고, 태자도 하마터면 황제 앞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할 뻔했다.이런 와중에 어찌 감히 딴생각을 한단 말인가?조원철은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응시한 채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강유영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수영은 무조건 배워야 했다. 그가 아니면 수영을 가르쳐 줄 사람은 없었다.그녀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조원철은 곁눈질로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낱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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