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801 - Chapter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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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1화

"할머니."조연화는 고개를 돌려 노부인을 바라보았다."사실 제가 오늘 돌아온 것은 할머니와 집안 자매들이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상의 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그녀는 이제 어엿한 왕비였다. 그러니 그녀의 어머니가 진국공부의 살림대권을 되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한씨는 딸의 표정만 보고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더욱 긴장했다.말을 반쯤 꺼내다 말고 돌연 혼절해버리면 어찌 수습해야 할지 난감했다."오?"노부인은 고개를 돌려 조연화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 어디 들어나 보자꾸나.""할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이제 강왕부에 들어가 후원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조연화는 몸을 살짝 틀어 미소를 지으며 노부인을 바라보았다."오라버니는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소은경의 부친이 역모죄를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할머니께선 진작에 증손주를 안아보셨을 테지요.""다 하늘의 뜻이지. 네 어미 말로는 정월 안에 네 오라비와 선을 볼 규수들이 몇 명 있다 하더구나. 혼사도 몹시 시급한 일이니 서둘러야 할 게다."노부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한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집안의 장손인 조원철의 혼사는 노부인 역시 가장 마음을 쓰는 일이었다."이미 안배해 두었습니다. 며칠 내로 자리를 마련할 참입니다."한씨가 대답했다."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할머니, 오라버니는 어전에서 폐하를 모시는 귀한 신분이고, 저 역시 이제 강왕비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연세도 적지 않으신데 언제까지 이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고생하실 순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오라버니의 선자리에 동행하셔야 할 텐데, 명색이 안주인이 아니시면 오라버니 체면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조연화는 짐짓 부드럽게 에둘러 말했다.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조연화는 노부인이 여태껏 국공부의 안살림을 틀어쥐고 있는 것에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노부인이 살림을 장악한 뒤로 한씨의 수중에는 은자가 늘 부족했고, 덩달아 조연화의 치장마저 초라해졌었다.강왕부에 시집가고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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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2화

노부인의 낯빛은 평온했고, 한씨를 대하는 어조도 부드러웠다. 시어머니의 위세로 억누르기보단 사리를 따져 타협하자는 투였다.한씨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그 장부들은 이미 시일이 꽤 지난 것들이라, 당장 셈을 맞추려면 저도 찬찬히 채비를 좀 해야 할 텐데요……."그녀는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권한을 내어주기 싫으면 말 것이지, 기어이 장부 타령을 하며 사람을 압박하고 있었다.장부의 구멍만 제대로 메울 수 있었다면 자신이 천한 양녀에 불과한 강유영에게 이리 쩔쩔매며 눈치를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저 늙은 여우와 어린 요물이 쌍으로 작당하여 자신의 숨통을 죄어대는 꼴이 찢어 죽이고 싶도록 증오스러웠다."급할 것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천천히……."조연화는 찻잔을 든 채 한씨의 사색이 된 얼굴을 보고 장부 문제가 당장 해결될 일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녀는 서둘러 말을 보태 시간을 벌어주려 했다.하지만 그 순간.조연화의 미간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뜨거운 찻물이 사방으로 튀었다."연화야!"한씨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노부인이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었다.조연화의 몸이 중심을 잃고 푹 고꾸라지더니 의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쓰러졌다.한씨는 허둥지둥 달려가 딸을 끌어안았다."연화야, 어찌 된 일이냐! 연화야!"그녀는 울부짖으며 고개를 돌려 채하에게 소리쳤다."빨리! 당장 뛰어가 의원을 모셔 오거라!""예!"채하가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연화야!"한씨는 품에 안긴 딸의 창백한 얼굴을 살피며 코밑에 조심스레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숨이 어찌 이리 미약한 것이냐."강유영은 한 걸음 떨어져 그 촌극을 서늘하게 지켜보았다.조연화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영락없이 실신한 모습이었다."어서 평상으로 모셔라."노부인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축을 거들었다.조연화는 완전히 축 늘어져 꽤 무거웠다. 고부 두 사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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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3화

그가 다가가 조연화의 맥을 짚었다.한씨는 그제야 한 발짝 비켜서며 조원철을 돌아보았다."원철아……."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반사적으로 강유영 쪽을 바라보았다.일전에 그녀는 강유영에게 모진 짓을 저지르다 조원철에게 현장을 들킨 적이 있었다.그 일 이후로 늘 조원철이 자신을 경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조원철과 강유영 사이의 불미스러운 추문을 생각하면, 정작 자신이 고개를 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정작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해야 할 쪽은 강유영이었다.그런데 당사자인 강유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의자 곁에 버젓이 서 있었다."어머니,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조원철은 차분하게 상황을 물었다."네 동생이 갑자기 실신하여 쓰러졌다."한씨는 연상에 누운 조연화를 가리키며 울먹였다."의원이 진맥 중이니 결과를 들어봐야겠다."그때 마침 의원이 조연화의 손목에서 손을 떼어냈다."의원, 왕비의 상태는 어떠한가."노부인이 초조한 기색을 띠며 한 걸음 나섰다.한씨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의원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노부인, 왕비 마마는 맥이 몹시 어지럽고 기혈이 꽉 막혀 있습니다. 필시 맹독을 드신 듯합니다. 독 기운이 혈관을 타고 오장육부를 공격하는 중이라 갑작스레 혼절하신 겁니다.""이럴 수가,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한씨는 사색이 되어 호들갑을 떨었다.조원철은 말없이 방 안을 둘러보며 미간을 살짝 좁히고는 한걸음 물러서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의원, 살릴 방도는 있겠는가?"노부인은 한결 침착한 태도로 의원에게 물었다."천만다행으로 늦지 않게 저를 부르셨습니다. 독이 아직 오장에 깊이 퍼지진 않았습니다. 제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해독 영약이 있으니, 이 약을 드시고 며칠 안정을 취하시면 쾌차하실 겁니다."의원은 품에서 작은 백자 병을 꺼내 짙은 갈색 단약 두 개를 덜어 한씨에게 내밀었다.한씨는 채하와 시녀들을 시켜 서둘러 조연화의 입을 벌리고 약을 삼키게 했다."의원, 멀쩡하던 내 딸이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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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4화

강유영은 그 자리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서, 한씨의 눈을 담담히 마주 보았다.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이미 철저히 대비해 둔 터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한씨가 연극을 좋아하니 기꺼이 장단을 맞춰줄 생각이었다."네가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만인 줄 아느냐. 차는 네가 직접 들고 들어오지 않았더냐. 너희 자매가 평소 앙숙인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너는 연화의 다리를 주무르고 차 시중을 들게 된 것에 앙심을 품은 게지. 왕비가 된 언니를 시기하여 찻물에 독을 타 해치려 하다니, 참으로 흉악한 심성이로다!"한씨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강유영을 몰아세웠다. 드디어 강유영을 몰아세울 기회를 잡았으니, 그간 쌓였던 울분을 모조리 쏟아낼 심산이었다.그녀는 강유영이 조연화를 독살하려 한 동기까지 친절하게 지어내어 갖다 붙였다. 어떻게든 강유영을 강왕비 독살범으로 몰아 단숨에 목숨을 거둬버릴 생각이었다.그래야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어머니, 그것은 틀린 말씀입니다."강유영은 한씨를 바라보며 조급함 없이 차분하고 맑은 음성으로 반박했다."왕비를 독살하는 것은 참수를 면치 못할 대죄입니다. 제가 진정 언니를 해칠 작정이었다면, 이리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손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 차를 올렸는데 그 안에 독을 타서 언니가 죽는다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아 목숨을 내놓아야 할 사람은 바로 저일 테니까요.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제가 제 목숨을 내던질 만큼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십니까."강유영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한씨를 응시했다. 길고 곧은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지만, 표정은 순진무구하면서도 지극히 냉정했다.조원철이 곁눈질로 강유영을 살폈다.저리 담담하고 침착한 자태로 보아, 확실히 조연화에게 손을 쓴 사람의 태도는 아니었다.하지만 한씨는 그런 이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강유영의 논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자, 한씨는 아예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노부인을 향해 통곡하기 시작했다."어머니, 부디 우리 연화의 원통함을 풀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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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5화

하지만 노부인은 어찌 되었든 집안의 최고 어른이었다. 한씨는 속으로 불만이 끓어올라도 감히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무슨 일이냐, 어멈."노부인 역시 미간을 찌푸린 채 화씨 어멈을 바라보았다.어멈은 노부인의 오랜 심복이었다.오늘 강유영을 쳐내려는 계획도 어멈에게 미리 귀띔을 해둔 터였다.그런 어멈이 강유영의 죄를 물으려는 순간에 뛰어들어 훼방을 놓는 데는 필시 합당한 연유가 있을 터였다. 일단 연유를 들어보아야 했다."그 독은 결코 유영 아씨께서 탄 게 아닙니다."화씨 어멈이 목청을 높여 고했다."진짜 독을 탄 자가 누군지 소인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그 폭탄 같은 발언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랐다.계략을 꾸민 노부인과 한씨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한씨는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채하와 채운 역시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하얗게 질린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오? 그게 대체 누구란 말이냐."노부인은 잠시 침묵하다 조심스레 물었다.반평생을 제 수족처럼 부린 어멈이 아무 이유 없이 강유영 편을 들 리 만무했다.노부인은 짧은 망설임 끝에 어멈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바로 저 아이입니다!"화씨 어멈이 손가락을 뻗어 한 사람을 정확히 지목했다."왕비 마마를 모시는 시녀, 채운입니다."강유영은 조용히 시선을 들어 채운을 바라보며 치맛자락을 단정히 쓸어내렸다.화씨 어멈의 말은 빈말이라 할 수 없었다. 채운이 부엌으로 들어갔을 때 화씨 어멈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채운은 화씨 어멈이 자신들과 한통속이라 굳게 믿었으니, 약을 타면서 굳이 어멈의 눈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 뻔했다."모함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마마를 모셨고, 시집가실 때도 따라간 몸입니다. 마마께서 해를 입으시면 제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감히 옥체에 손을 댄단 말입니까!"본래 말재주가 좋았던 채운은 화씨 어멈의 지목을 받자마자 핏대를 세우며 변명을 쏟아냈다.하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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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6화

강유영은 한 걸음 물러선 채 아무 말 없이 눈앞의 상황을 관망했다.그녀가 짐작했던 대로였다.노부인은 화씨 어멈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 어멈이 돌연 방향을 틀어 판을 엎었음에도 노부인은 잠깐 멈칫했을 뿐, 이내 어멈의 주장에 동조했다.초반에 어멈의 첩자 노릇을 덮어두고 살려둔 것이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큰 패가 되어 돌아왔다.한씨의 낯빛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조연화가 짠 이 자작극의 전말을 그녀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 판은 오직 강유영을 옭아매기 위해 치밀하게 짜인 덫이었다.그런데 어째서 화씨 어멈이 돌연 튀어나와 채운을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한씨는 당장이라도 나서서 막고 싶었다.하지만 노부인이 이미 화씨 어멈의 말을 믿고 의원에게 검안을 허락한 마당에 나설 명분이 없었다.무엇보다 조원철이 직접 나섰다.그녀는 오랜 세월 아들을 지켜보며, 그가 한번 입 밖으로 낸 뜻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일이 틀어지려던 찰나에 그가 나타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그가 이 자작극을 미리 간파하고 강유영을 구하러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가 진정 강유영을 그토록 끔찍이 아낀단 말인가.한씨는 의식을 잃은 딸의 얼굴을 보며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입술을 깨물며 침묵을 택했다.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서 섣불리 나섰다간 모든 계획이 들통나고, 아들과의 골만 더욱 깊어질 것이 뻔했다.지금 상황을 모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채운을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소저, 손을 보여주시오."의원이 다가가 채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채운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사색이 되었다. 세자가 서슬 퍼런 눈으로 그녀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치 단칼에 목을 벨 듯한 기세였다.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왕비는 쓰러져 있고, 국공 부인은 외면했으며, 노부인마저 세자의 기세에 눌려 한발 물러난 상황이었다.오늘 그녀는 꼼짝없이 덫에 갇힌 셈이었다.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간신히 내밀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의원은 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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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7화

"이 일은 강왕비 마마의 안위가 달린 중대한 사안입니다. 어찌 이리 성급히 시녀 하나를 처벌하고 넘어가려 하십니까. 마땅히 강왕 전하께 이 사실을 알리고, 배후에서 왕비 마마를 노린 자가 누구인지 샅샅이 파헤쳐야 합니다."강유영은 한씨를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한씨는 서둘러 채운을 처리하고 이 사건의 꼬리를 자르려 했다. 일이 틀어질 때마다 아랫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유유히 빠져나가는 수법이었다.이런 행태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이전의 하인들을 처리할 때는 어떻게든 그럴싸한 명분이라도 만들어 냈다.하지만 채운의 경우는 달랐다. 채운은 조연화의 심복 중 가장 신뢰를 받는 심복이었다. 그런 자가 아무런 까닭 없이 제 주인을 해칠 리 만무했다.그 동기를 명백히 밝히는 것이 순서였다."강왕 전하께 기별할 것 없다."한씨가 펄쩍 뛰며 거절했다. 그녀는 이내 채운을 힐끗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내가 저 계집을 잘 아는데, 평소 앙심을 잘 품는 성정이다. 십중팔구 평소에 뭔가 일을 잘못하여 연화에게 꾸지람을 듣자, 앙심을 품고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이야."한씨는 눈짓으로 채운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채운은 흐느낌을 멈추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마, 맞습니다……. 어제 아침 식사 수발을 들 때, 데운 우유가 조금 뜨겁다며 왕비 마마께서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제 몸에 우유를 집어 던지시니, 순간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눈이 뒤집혀 그만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말을 마친 채운은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그녀가 지어낸 이 일화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다.본래 조연화는 이토록 시중들기 까다로운 성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왕과 혼인한 뒤로 그를 끔찍이 혐오하면서도 매일 밤 얼굴을 마주해야 하니, 그 분통과 역겨움을 참지 못해 죄 없는 시녀들에게 화풀이를 해대기 일쑤였다.최근 시녀들은 조연화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작은 실수 하나라도 눈에 띄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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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8화

강유영이 태의원 원사를 부르겠다고 나서자 의원은 혼비백산했다.태의원의 명의가 당도해 진맥 한 번 짚어보면, 이 어설픈 촌극은 단박에 들통날 것이다.끝까지 버티다 목이 달아나느니 차라리 제 입으로 이실직고하여 선처라도 구하는 편이 현명했다."그렇다면 대체 누구 사주를 받고 맹독이라 거짓을 고한 겁니까."강유영은 의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말간 얼굴에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뿜어져 나오는 위압과 흔들림 없는 단호함은 묵직한 압박감을 주었다.조원철은 그 의연한 자태를 지켜보며 눈동자 깊은 곳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왕비 마마, 강왕비 마마의 하명이었습니다! 시녀가 약을 탄 것 역시 마마의 지시였습니다. 마마께서 소인에게 은표 오십 냥을 쥐여주시며 입을 맞추라 사주하셨습니다. 받은 은표는 여기 제 품에 있습니다!"의원은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품속 깊숙한 곳에서 은표 한 장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바들바들 떨며 치켜들었다."아하, 그런 것이었군요."강유영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조롱기 섞인 미소로 한씨를 바라보았다."어머니, 들으셨습니까. 약을 탄 것은 채운이고, 저 의원을 매수해 흉계를 짠 것은 연화 언니였습니다. 이 모든 작태가 저를 범인으로 몰아 죽이려던 계략이었군요.""그, 그럴 리가……. 네가 단단히 오해한 게다……."한씨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렸고, 억지로 쥐어 짜낸 미소는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비단 손수건이 찢어질 듯 꽉 움켜쥐었다.의원이 제 살길만 찾겠다고 다 실토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조연화가 이리 입이 가벼운 자를 고용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자신이 직접 사람을 구하는 편이 나았다."오해인지 진실인지는 이 자리에 있는 분들 모두 속으로 다 아실 테지요."강유영은 한씨의 구차한 변명을 자르고 노부인을 향해 돌아섰다."할머니께선 매사에 공명정대하신 분이시니, 저 두 사람을 어찌 처단할지 판결을 내려주십시오."그녀는 노부인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남의 눈을 의식할 때면 유독 대의명분과 공정함을 내세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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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9화

사실 한씨의 마음속에는 이미 안도감이 번지고 있었다.채운도 매를 맞고 쫓겨났고, 의원도 관아로 끌려갔다. 자신이 개입한 사실을 입증할 꼬리가 모두 잘려 나간 셈이었다."어머니, 대체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한씨를 고요히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맑고 투명하여 무해해 보였다. 하지만 계속 마주하고 있자면 속내마저 낱낱이 간파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한씨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연화는 이제 막 강왕부에 시집가 위엄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니더냐. 헌데 네가 이 일을 끝까지 추궁하면, 연화가 어찌 강왕부의 수많은 첩실 앞에서 고개를 들겠느냐. 연화의 명예가 훼손되면 결국 우리 진국공부에도 좋지 않다. 어머니, 제 말이 틀립니까."한씨는 노부인을 향해 동의를 구했다.시어머니의 성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노부인은 가문의 체면을 누구보다 중시했다. 게다가 조연화는 황실의 일원인 강왕비이니, 노부인이 가문의 위신을 위해 조연화를 챙길 것이라 확신했다.더군다나 오늘 일이 꼬인 데는 노부인의 심복인 화씨 어멈의 책임도 있었다. 이 점을 의식해서라도 노부인이 강유영 편을 들어 조연화를 탓하지는 않을 터였다."네 어미 말이 맞다. 유영아, 네 비록 우리 집안의 소생은 아니나 이 국공부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더냐. 마땅히 대국을 위해 사소한 억울함은 덮을 줄 알아야지."노부인은 강유영을 바라보며 가르치듯 타일렀다.한씨의 예상대로였다. 노부인에게 진국공부의 체면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조연화가 강왕부에서 누리는 지위가 곧 진국공부를 대표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게다가 화씨 어멈이 함정을 망친 탓에 내심 찜찜함도 작용하여, 자연스레 한씨의 말을 거든 것이다."할머니 말씀이 맞습니다."강유영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순종적인 태도를 취했다."저 역시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연화 언니를 탓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언니는 악인의 꼬임에 넘어간 것일 테니까요. 게다가 저리 혼절하여 몸도 불편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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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0화

"연화야,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한씨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빨리! 당장 뛰어가 태의를 모셔 오너라!""어머니, 심려치 마십시오. 필시 채운이 약의 분량을 조절하지 못해 과하게 쓴 모양입니다. 연화 언니도 잠시 후면 괜찮아지실 겁니다."강유영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짐짓 다정한 얼굴로 한씨를 위로했다.아까 조연화가 거짓 중독에 빠졌을 땐 굳이 의원을 부르라 하더니, 이제는 태의를 찾고 나선 상황이 우스웠다.그녀의 말 중 앞부분은 거짓이었지만, 잠시 후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은 진실이었다.그녀가 조연화에게 쓴 약은 고단산이었다.예전 장 의원의 약방에 있을 때 어느 부인이 이 독에 당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장 의원이 이르기를, 자신이 젊은 시절 우연히 고단산이라는 독약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장부를 상하게 하거나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중독자에게 목이 불타는 듯한 고통과 골이 쪼개질 듯한 두통을 안겨준다고 했다. 나아가 사지가 저리고 아프며 온몸에서 진땀을 쏟게 만든다는 것이었다.고통이 끔찍하여 평생 잊지 못할 정도였다.가장 중요한 점은, 평범한 의원이 진맥을 해도 그저 독기가 기맥을 침범해 통증을 유발했다는 결론밖에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독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중독자가 한두 시진 앓고 나면 증세는 서서히 스스로 호전될 것이다.경성 천지에 장 의원 외에는 이 고단산을 알아볼 자가 없었다.한씨는 평소 태의를 맹신했고, 조연화가 왕비가 되었으니 태의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강유영이 과감하게 고단산을 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시간이 지나 증상이 사라지고 나면, 신선이 온다 해도 조연화가 왜 그리 고통받았는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한씨는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딸이 이리 고통스러워하는데, 강유영은 헛소리나 늘어놓고 있었다.조연화는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극통에 시달렸다. 눈시울이 시큰거리고 눈앞이 점차 캄캄해졌다. 몸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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