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811 - Chapter 820

852 Chapters

제811화

강유영은 그 말을 듣고 눈가에 슬며시 웃음기를 띠었다.장 의원의 말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고단산은 흔치 않은 약이라 태의도 진맥으로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그럼 고통을 덜어줄 방도라도 없소? 아이가 이리 아파하는데……."한씨는 딸을 아끼는 마음에 다급히 물었다."따뜻한 수건으로 이마와 뒷목을 찜질해 주십시오. 부인께서 왕비 마마의 합곡혈과 내관혈을 꾹 눌러주시면 조금 나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초 환을 입에 물려 보시지요."황 태의가 감초 환을 꺼내어 건넸다.강유영은 두어 걸음 물러나 구석진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장 의원이 말하길 고단산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나, 그 고통을 가라앉힐 해독제도 없다고 했다. 아무리 귀한 해독 영약이라 한들 고통의 십 분의 일이나 이 정도밖에 덜어주지 못할 것이다.조연화는 결국 스스로 뿌린 씨앗을 거두어야만 할 것이다.한씨는 당장 시녀들에게 뜨거운 물을 내오라 호령했다. 시녀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방 안이 순식간에 분주해졌다.강유영은 조원철의 시선을 느꼈다.고개를 돌리자 그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짙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는 서늘하고 예리하여, 단숨에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강유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찔린 마음에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오라버니는 분명 이 모든 상황을 간파하셨을 텐데.'강유영이 지닌 재주는 모두 조원철이 가르쳐 준 것들이니 짐작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지금껏 그녀와 국공부 식구들이 부딪힐 때면 늘 그녀의 편이 되어주었으니 이번에도 비밀을 들춰내진 않을 것 같았다.그녀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하지만 왜 저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한두 시진쯤 고통에 시달리고 나서야 조연화는 마침내 상태가 안정되었다.한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모진 고초를 겪은 조연화가 식사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한씨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조연화를 안채로 옮기게 했다.강유영도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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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2화

"세자."서유는 조원철을 향해 예를 갖추고 고개를 숙인 채 멀찍이 물러났다.조원철은 강유영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엇을 묻고 싶으신 겁니까."강유영은 그의 시선이 불편해 발밑의 작은 돌멩이를 걷어차며, 한 손을 등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방금 춘휘원에서 나오자마자 따라온 듯했다.조금 전의 일을 그도 모두 지켜보았으니 조연화가 어찌하여 그리된 것인지 물을 것이 뻔했다.그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조원철은 그녀가 등 뒤로 돌린 손을 힐끗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아무 일 없으면 부르지도 못하는 것이냐."그가 덤덤한 어투로 물었다.강유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까만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그가 이런 대답을 할 줄은 몰랐다.그는 예전에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조원철은 그녀를 향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아닙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뒤통수를 보였다.그는 늘 이랬다. 한때는 한없이 잘해주다가도 어느 순간엔 더없이 매몰차게 굴었다.굳이 신경 쓸 필요 없었다.조원철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걸으며 묵묵히 걸음을 맞췄다.얼마쯤 걷다가 강유영은 그를 슬쩍 바라보고는 끝내 입을 열었다."화씨 어멈이 아침 일찍 제게 일러주었습니다. 조연화와 어머니, 할머니 세 사람이 작당하여 차에 독을 타려 했다고 말입니다. 제가 강왕비를 독살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할 작정이었지요."그녀도 그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어차피 그가 알고자 한다면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녀와 국공부 식구들이 얽힌 일에서 그는 늘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그에게조차 말하지 않는 것은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음."조원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캐묻지 않았다."그 말을 듣고 서유를 시켜 약재 몇 가지를 사 오게 하여 고단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연화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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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3화

요월원 대문에 다다르고 나서야 강유영은 조원철을 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강왕은 겉보기처럼 그리 어리석고 무능한 자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은 적잖은 지략을 갖춘 자 같습니다. 만약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면 황실에서 이토록 오랜 세월을 폐하의 눈을 피해 살아남진 못했을 것입니다."수많은 황제의 형제들이 피바람 속에 목숨을 잃었건만, 유독 강왕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그렇게 생각하니 강왕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조원철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넌지시 말했다."혼례 날 있었던 일을 잘 떠올려 보거라."강유영은 요월원 문지방을 넘으며 미간을 좁혔다.조연화와 강왕의 혼례 날 벌어졌던 일이라니.자연스레 경화 공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조연화가 보란 듯이 경화 공주의 면사포를 벗기고 끔찍한 흉터를 만천하에 드러냈던 순간이었다."급할 것 없다. 천천히 생각해 보거라."조원철은 다가와 강유영의 흘러내린 옆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남은 정무가 있어 이만 가보아야겠다. 밤에 다시 들르마.""아, 알겠습니다!"강유영은 무언가 번뜩 깨달은 듯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더니 다급히 조원철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돌아서려던 조원철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짙은 눈동자 깊은 곳에 웃음기가 어렸다."말해 보거라.""강왕은 겉모습처럼 단순한 인물이 아닙니다. 암암리에 자신만의 세력을 촘촘히 구축해 두었을 수도 있겠군요. 폐하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깊숙이 숨겨두었겠지요."강유영은 묘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아무도 몰랐던 강왕의 은밀하고도 거대한 비밀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무엇을 보고 그리 확신하느냐."조원철이 물었다."그날 연화 언니가 공주의 면사포를 벗겨냈을 때 말입니다. 공주의 불같은 성정이라면 당장이라도 연회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았을 텐데, 너무도 순순히 물러났습니다. 게다가 강왕이 정말 보이는 것처럼 조정에서 평판도 나쁘고 아무런 실권도 없는 자라면, 그때 앞장서서 공주를 뜯어말렸던 그 조정 대신들은 대체 무슨 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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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4화

사실 오늘 조연화의 자작극이 어떻게 끝나든 노부인에겐 당장 해가 될 일은 없었다.강유영이 화를 당하든 조연화가 낭패를 보든, 진국공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노부인과는 무관한 일이었다.다만 강유영이 조원철과 불미스럽게 얽혀 있다는 소문이 내내 거슬렸다.게다가 조연화는 어찌 되었든 명실상부한 강왕비였다. 비록 강왕이 무능할지언정 황실의 며느리라는 신분은 무시할 수 없었다.자연히 천한 양녀에 불과한 강유영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고, 내친김에 이번 기회에 아예 치워버려 조원철의 앞길에 짐이 될 후환을 끊어낼 생각이었다.그런데 평생을 충직하게 자신의 뜻을 따라온 화씨 어멈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노부인."화씨 어멈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애절한 목소리로 읍소했다."소인은 오늘 아침 요월원에 심부름을 갔다가, 문밖에서 유영 아씨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걸음을 늦춰 가만히 들어보니 오씨 어멈이 유영 아씨를 설득하고 있더이다. 그것을 듣고 독단적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일단 일어나 보거라. 그래, 대체 무슨 소리를 엿들었단 말이냐."노부인의 호기심이 동했다. 그녀는 화씨 어멈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물었다.그녀는 오랜 세월 곁을 지킨 화씨 어멈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어멈의 다급하고도 진실된 표정을 보니 허튼소리를 할 리 없었다."노부인, 오씨 어멈은 유영 아씨에게 서왕 전하의 측비 자리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며 집요하게 설득하고 있었습니다."화씨 어멈이 다가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유영 아씨도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서왕부로 시집가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소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노부인께선 늘 우리 국공부의 처자들이 출가하여 가문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길 바라시지 않았습니까. 연화 아씨가 비록 정비이긴 하나, 강왕 전하는 무늬만 황족일 뿐 조정에 아무런 끈도 실권도 없는 분입니다. 반면 유영 아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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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5화

"듣고 보니 옳은 말이구나."노부인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화씨 어멈을 치하했다."오늘은 네 기지가 돋보였다. 참으로 수고 많았다."만약 강유영이 진심으로 서왕의 측비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결코 함부로 내쳐서는 안 될 패였다. 훗날 가문에 가져다줄 이득으로 따지자면 조연화보다 훨씬 쓸모 있고 요긴할 재목이 분명했다.*"부인……."풍씨 어멈이 낯빛이 허옇게 질려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왜 이리 호들갑이냐."방금 전에 조연화를 배웅하고 돌아온 한씨는 딸이 가져온 화려한 비단과 패물들을 매만지고 있었다."왕비 마마께선 무사히 환궁하셨습니까."풍씨 어멈이 닫힌 문을 힐끗거리며 조심스레 물었다."방금 돌아갔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로 이리 부산을 떠는 게냐."한씨는 어멈의 불길한 기색에 표정을 굳히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소인이 장을 보러 거리로 나갔었는데, 웬 수상한 자가 갑자기 길을 막아서지 않겠습니까. 놈이 부인께 전갈을 남겼습니다. 은자를 바치기로 한 기한이 이미 지났으니, 이번에도 돈을 내놓지 않으면 그들이 직접 국공부 대문으로 쳐들어오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풍씨 어멈은 숨을 죽인 채 한씨의 낯빛을 살피며 전후 사정을 낱낱이 고했다.그녀가 한씨 곁에서 수발을 든 지도 제법 오래 되긴 했지만, 처음부터 함께한 심복은 아니었다.한씨가 대체 무슨 연유로 그 막대한 은자를 정기적으로 저들에게 뜯기고 있는지, 왜 항상 돈줄이 말라 전전긍긍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분명한 사실 하나는, 한씨는 긁어모은 은자들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그 수상한 자들에게 바치고 있다는 점이었다.이제 노부인에게 살림대권마저 빼앗겨 전당포의 은자도 융통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한씨는 돈줄이 완전히 끊어졌는데도 어떻게든 밖의 자들에게 보낼 은자를 구해야만 했다.대체 어떤 끔찍한 치부가 얽혀 있길래 명색이 국공 부인인 한씨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풍씨 어멈의 보고를 들은 한씨의 얼굴은 무참히 일그러졌다.그녀는 눈앞에 놓인 화려한 예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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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안 그래도 보기 흉했던 한씨의 안색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분노로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협박, 또 협박이었다.어떻게 다들 하나같이 자신을 협박하지 못해 안달인 건지.하지만 그저 가만히 당하는 것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한씨는 발칙한 강유영의 목숨을 조만간 끊어놓으리라 다짐했다."부인, 꾹 참으시고 일단 만나나 보시지요. 지금 상대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좋을 게 없습니다."풍씨 어멈이 다가와 조심스레 권했다.강유영이 한씨를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풍씨 어멈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한씨가 국공부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을 어멈 역시 알고 있었다.한씨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그녀는 꼿꼿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손짓했다."들라 하라."강유영이 또 무슨 속셈인지 지켜볼 참이었다.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손에 쥘 만한 흉기가 없는지 살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자 이판사판으로 강유영을 이 자리에서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고작 양녀 하나 죽였다고 진국공부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라 하진 않을 것이다. 조원철 역시 어쨌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죽일 순 없을 것이다.문이 열리고 강유영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아까 춘휘원에서 보았던 그 화사한 차림 그대로였다. 과하지 않게 우아하고 유려한 이목구비가 유독 도드라졌다.그녀의 뒤를 서유가 바짝 따랐다.한씨는 순간 이성을 되찾았다.서유는 조원철이 심어둔 심복이었다. 무작정 덤벼들었다간 강유영의 옷깃에 닿기도 전에 서유에게 먼저 제압당할 것이다."유영아, 갑자기 내 처소엔 무슨 일로 찾아온 게냐."한씨는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국공 부인의 위엄을 갖춘 채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언뜻 보면 예전의 자애롭고 기품 있는 안주인의 모습 그대로였다."어머니께 제 출생의 비밀을 여쭈러 왔습니다."강유영은 맑고 투명한 눈동자로 한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혼자 방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 문득, 자신이 한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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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7화

한씨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터질 듯 요동쳤다.강유영이 대체 누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과거 그 일을 알 만한 사람 중 입이 가벼운 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처리한 뒤였다. 그런데 어찌 아직도 강유영에게 귀띔을 해줄 자가 남아있었단 말인가.'천박한 것. 죽기 전에 강유영 곁에 사람을 심어두고 날 감시하겠다던 말이 사실이었단 말인가.'어쩌면 누군가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자신을 지켜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강유영은 한씨의 말을 반박하는 대신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랜 세월 동안 저는 제 부모님이 누구인지 너무도 알고 싶었습니다. 만약 어머니께서 끝까지 입을 다무신다면, 제가 어머니를 굳이 국공부에 모셔둘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이는 명백한 경고였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당장 공금 횡령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이었다.그렇게 되면 한씨는 외곽의 장원으로 쫓겨나거나 차가운 사당에 갇히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 누리는 이 화려한 안방마님 자리와는 영영 작별이었다."너……!"한씨는 순간 등골에 소름이 돋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강유영을 손가락질했다.강유영은 여전히 평온한 미소를 띤 채 한씨를 마주 보았다.이럴 때일수록 태연하게 굴어야 한씨의 불안감이 커져 결국에는 유용한 단서를 토해낼 것이다.한씨는 강유영의 확신에 찬 얼굴을 보며 속으로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다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유영아, 이 일은 워낙 중대한 사안이니 며칠만 생각할 시간을 다오."말을 마친 그녀는 이마를 짚고 고단한 척하며 강유영의 압박을 피하려 했다.강유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한씨를 살폈다."사흘 드리겠습니다."사흘 뒤에도 입을 다문다면 가차 없이 장부를 까발릴 것이다. 한씨는 번쩍 고개를 들어 강유영을 바라보았다."만약, 내가 네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네가 쥔 그 장부를 돌려주고 이 일은 영영 덮어주겠느냐."자신이 너무 다급해 보였음을 깨달은 한씨는 곧바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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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석양이 지고 붉은 노을이 요월원 뜰에 내려앉았다.강유영은 뜰 한가운데서 저녁 무예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오씨 어멈도 그 옆에서 어설픈 몸짓으로 강유영의 동작을 흉내 내며 땀을 흘렸다. 서유가 곁에 서서 어멈의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강유영이 직접 오씨 어멈에게 무예를 권한 것이었다.조원철은 무예를 익히면 기력을 보충하고 수명을 늘리는 데 탁월하다고 말한 적 있었다.강유영은 하루 종일 좁은 처소에 갇혀 바깥출입도 없이 소일하는 오씨 어멈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차라리 함께 몸을 움직이며 건강이라도 챙기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두 사람이 수련을 마치고 숨을 고르자, 단비가 더운물을 떠 와 수건을 적셔 강유영에게 건넸다.강유영은 수건을 받아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오씨 어멈이 대야에 손을 씻으며 물었다."오늘 본채에 다녀오셨다지요. 국공 부인께선 뭐라 하시던가요.""생각할 시간을 달라 하더군요."강유영은 수건을 대야에 던져 넣으며 답했다."그래서 사흘의 시간을 주겠다 하였습니다."오씨 어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워낙에 속이 시커먼 양반이니, 순순히 참말을 털어놓을지 의심스럽습니다.""두고 보면 알겠지요."강유영 역시 한씨에게 큰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 어멈을 바라보았다."어멈, 정녕 제 친부모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전혀 없으십니까?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좋으니 한번 곰곰이 떠올려 보십시오."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오씨 어멈도 국공부에서 보낸 세월이 적지 않으니, 무심코 스쳐 지나간 말이라도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그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재차 물었다.오씨 어멈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었다."아, 그러고 보니 아씨가 아주 어렸을 적 일입니다. 제가 부엌에 찬을 가지러 갔다가, 예전에 부인의 수발을 들던 해씨 어멈이 다른 이와 흘리듯 나누던 말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분명 운귀사라는 절 이름이 나왔었지요. 혹여 아씨께서 그 사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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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오늘은 어찌 이리 일찍 돌아오셨습니까."강유영은 까만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무심한듯 물었다.하지만 묻고 나니 아차 싶었다. 마치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들릴 수 있었다.그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시선을 돌렸다.눈치 빠른 서유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오늘은 공무가 그리 바쁘지 않았다."조원철은 그녀 곁으로 다가와 고개를 들어 자목련을 바라보았다."저 꽃이 탐나느냐.""아닙니다. 너무 높이 있으니, 나중에 아래쪽 꽃망울이 피어나면 꺾을 생각입니다."강유영은 손을 내저었다.본래 서유가 사다리를 가져오겠다 했을 때도 만류할 생각이었다.너무 번거로웠다.그녀는 어릴 적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번거로운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 속 편했다.아무리 서유가 대신 해준다 해도, 그런 수고를 끼치면서까지 꽃을 꺾을 마음은 없었다.조원철은 묵묵히 제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며 잔근육이 잡힌 탄탄한 팔뚝을 드러냈다.강유영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나무를 타려는 건가 싶었다.조원철은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자목련 나무 밑으로 다가갔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위를 한 번 확인하더니, 긴 장포의 자락을 걷어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강유영의 눈이 커다래졌다. 정말로 그녀에게 꽃 한 송이를 꺾어주려 저 높은 나무를 오를 작정인 듯했다.그녀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조원철은 날렵한 동작으로 나뭇가지를 쥐고 단숨에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강유영은 그의 거침없고 날랜 몸놀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그가 나무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예전 호주에 머물 때, 숲속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나무에 올라 새알을 꺼내 삶아준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야생에서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금 이 평화로운 곳에서 굳이 저리 번거로운 수고를 자처할 이유가 없었다.단지 그녀가 자목련을 원한다고 했기 때문에 저러고 있었다.아는 이를 마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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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왜 그러느냐."조원철이 물었다."옷이 다 더러워졌고, 상투관도 흐트러졌습니다."강유영은 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꽃잎 한 장을 떼어내려 했다.손이 그의 어깨에 닿기 직전, 그녀는 마음을 바꿔 꽃잎만 살짝 걷어내고는 그 꽃잎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손안에 쥐었다."시녀들에게 물을 끓이라 이르거라. 목욕을 해야겠다."조원철은 앞장서서 요월원 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오씨 어멈이 벌써 물을 데우고 있습니다."강유영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이곳은 분명 그녀의 처소인데, 그가 마치 제 안방인 양 굴며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얄미웠다.방 안에 들어서자 조원철은 대뜸 두 팔을 벌리고 섰다."먼지 좀 털어다오.""서유를 부르겠습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에 담긴 목련을 책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네가 하거라."조원철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강유영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가가 그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자신을 위해 수고를 자처했으니 이 정도 시중은 들어줄 수 있었다.조원철은 두 팔을 벌린 채, 눈을 내리깔고 품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를 묵묵히 응시했다.강유영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 없을 만큼 깊은 눈빛이었다.순간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다 털었습니다. 저는 꽃을 꽂으러 가겠습니다."묘한 분위기가 영락없는 부부의 일상 같아 그녀 스스로도 낯이 뜨거워졌다.조원철은 꽃무더기를 안고 내실로 쏙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잠시 후, 그는 고개를 돌려 밖을 향해 명했다."서유, 더운물을 들이거라."내실로 들어온 강유영은 책상 위에 목련을 늘어놓고 백자 화병을 꺼내왔다.살짝 고개를 돌려 밖을 살피니 그는 따라 들어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그녀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꽃무더기 속에서 아까 그의 어깨에서 떼어냈던 꽃잎 한 장을 조심스레 골라냈다. 그리고 곁에 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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