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831 - Chapter 840

852 Chapters

제831화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왜 갑자기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분명 경화 공주가 한씨에게 요구한 보상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그렇다면 청운이 말한 보상이라는 게 정녕 조원철이란 말인가?경화 공주가 한씨에게 조원철을 보상으로 내놓으라 요구한 걸까?그런데 사람을 어찌 보상으로 내어준단 말인가."경화 공주는 이미 혼인하지 않았습니까. 부마와 이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강유영은 눈을 굴리며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조원철도 그녀의 뜻을 알아들었을 것이다.설마 경화 공주가 부마와 이혼하고 조원철과 혼인하겠다는 뜻일까.청운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고 조원철의 눈치만 살폈다."뭐라 하더냐."조원철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경화 공주는 세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며, 국공 부인께 자리를 마련하라 요구했습니다. 그 대가로 부인께 은자를 두둑이 챙겨드리고 살림대권도 되찾아 주겠다 약조했지요. 심지어 공주는 부인에게……."청운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강유영은 호기심에 까만 눈을 동그랗게 떴다.조원철이 청운을 힐끗 보며 미간을 좁혔다."우물쭈물하지 말고 바른대로 고하거라.""예."청운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공주는 국공 부인을 어머님이라 불렀습니다."강유영은 청운의 말을 듣고 멍해졌다.경화 공주가 제 돈까지 얹어주고 한씨의 권력까지 되찾아 주면서, 조원철과 하룻밤을 보내려 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경화 공주의 행실이 방탕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무수한 남첩을 거느리는 등 온갖 해괴한 짓을 벌인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상식을 벗어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재빨리 조원철의 안색을 살폈다.늘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이 어느새 퍼렇게 질려 있었다.강유영은 눈웃음이 번지며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행여나 그가 화를 낼까 두려워, 얼른 고개를 돌리고 입을 가린 채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았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두 어깨가 이미 그녀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경화 공주는 조원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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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강유영이 꼼짝도 하지 않자 조원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등받이에 등이 닿아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다시는 웃지 않겠습니다……."그녀는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작게 다짐했다.고작 이만한 일로 또 억지를 부려 사람을 괴롭힐 속셈인 듯했다.조원철은 그녀의 앞까지 다가와 의자 양쪽 팔걸이를 짚고 허리를 숙였다.그녀는 그대로 그의 품 안에 갇히고 말핬다.그가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를 깊이 응시했다. 짙은 눈동자 깊은 곳에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제가 잘못했습니다."강유영은 겁에 질려 한껏 몸을 웅크린 채 어떻게든 그를 피하려 애썼다.하지만 조원철은 아무런 미동도, 말도 없었다.그녀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그의 깊고 짙은 눈동자와 시선이 얽혔다.평소 차갑고 메말랐던 그의 눈에 자잘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 속에 오롯이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강유영의 뽀얀 얼굴이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올랐고, 귓바퀴까지 뜨거워졌다.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쿵쾅거리는 박동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내게 입을 맞추면, 용서해 주마."조원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맑은 음성에 옅게 쉰 소리가 배어 있었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촘촘한 속눈썹만 요동쳤다. 부끄러움과 당혹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도망치고 싶었으나, 의자에 갇힌 상황이라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었다.조원철은 어두운 눈빛으로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기만 했다.강유영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한 번 마음먹은 일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었다.그녀는 붉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마침내 용기를 냈다. 살며시 고개를 들고 눈을 반쯤 감은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두 손으로 그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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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3화

주 과부의 속사정은 풍씨 어멈을 통해 낱낱이 알게 되었다.그녀는 재물을 탐내어 은자만 쥐여주면 무슨 일이든 할 인간이었다. 게다가 연기에도 능해 언제 어디서든 눈물을 쏟고 언변도 좋았다.강유영을 구슬리기에 주 과부는 꽤나 안성맞춤인 패였다. 그저 집으로 데려다가 할 말을 단단히 일러두기만 하면 될 것이다."주 과부는 안 돼."한씨는 싸늘한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하며 말했다."그 아이는 이제 예전과 달라. 어설픈 수작으로는 속이기 힘들 테지. 하물며 원철이가 뒤를 봐주고 있어. 그 과부는 출신이 너무 천하여 금세 탄로가 날 테고, 그리되면 일만 더 복잡해질 뿐이야."한씨는 앞뒤를 재어본 끝에 결국 주 과부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행여나 강유영에게 들통이라도 난다면 한씨는 완전히 힘을 잃게 되고, 숨겨둔 비밀마저 탄로날 위험이 있었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된다.풍씨 어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다물었다.풍씨 어멈은 이미 주 과부에게 선수금까지 쥐여준 상태였다. 부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으나, 감히 돈 이야기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 속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한씨가 풍씨 어멈을 흘끗 바라보더니 은조각 몇 개를 꺼내 건넸다."네 말을 들어보니 그 주 과부라는 자도 보통내기가 아닌 듯싶구나. 은자를 주며 잘 구슬려 돌려보내거라."한씨의 수중에도 은자가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이 정도 푼돈이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곁에 부릴 만한 수족이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풍씨 어멈마저 잘 다독이지 않으면 앞으로의 날들이 더욱 험난해질 것이다."감사합니다, 부인."풍씨 어멈은 황송해하며 은자를 받아 들었다.한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 근래 크고 작은 일들이 겹쳐 참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부인, 조 부인도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왕래도 없으셨는데, 과연 부인을 도와주려 하겠습니까?"풍씨 어멈은 한씨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은자를 받은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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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시녀가 하나 있긴 한데, 오늘 마침 집에 볼 일이 있어 돌아갔습니다."진 부인은 민망함을 꾹 누르며 애써 웃어 보였다."언니도 아시겠지만, 제 형편이 언니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요. 시녀를 하나라도 두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한답니다."한씨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사촌 자매가 마주 앉아 옛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의 어색함은 어느새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경수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느냐?"한씨는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경수는 진 부인의 외동아들이었다."그 녀석 말입니까."진 부인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언니 앞에서는 굳이 숨길 필요 없겠지요. 그 녀석은 어릴 적부터 도통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글공부도, 무예도 영 소질이 없어 온종일 빈둥거리기만 한답니다. 눈만 높고 딱히 할 줄 아는 일도 없어 제 속만 시커멓게 타고 있지요."진 부인 슬하의 유일한 혈육이니, 평소에 너무 애지중지 감싸며 오냐오냐 키운 탓이었다."며칠 전 국공 나으리께서 돌아와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청천의 병마사에 빈자리가 하나 났다는구나. 네가 아이를 멀리 떠나보낼 결심만 섰다면, 제법 괜찮은 자리일 게다."한씨가 느릿하게 말을 흘렸다.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숙여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아쉬울 게 뭐 있겠습니까!"진 부인은 놀라움과 기쁨에 들떠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하지만 경수는 워낙에 병약하여 무공도 익히지 못해서, 행여 고생을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진 부인은 한씨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속내가 깊고 이득이 없는 일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성정이었다.진 부인의 친정은 본래 한씨 가문보다 형편이 한참 안 좋았고, 그 탓에 혼처 역시 한씨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한씨는 줄곧 그녀를 깔보며 오랜 세월 왕래조차 거의 끊고 지냈다.그런데 돌연 집까지 찾아와 아들의 번듯한 벼슬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니, 진 부인 입장에서는 하늘에서 떡이 뚝 떨어진 격이었다.하지만 대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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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5화

진 부인은 한씨가 내건 조건에 마음이 크게 동했다.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벼슬자리 하나 얻겠다고 살인이라는 무거운 업보를 쌓는 것은은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었다.하물며 한씨를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애초에 두 사람은 그리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다.훗날 일이 탄로나기라도 하면 한씨는 모든 책임을 진 부인에게 떠넘기고 홀로 빠져나갈 사람이었다. 한씨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너 젊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이리 자비로운 성정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나."한씨는 화를 내는 기색 없이 미소를 지었으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촌 동생의 본성을 한씨가 모를 리 없었다.이제 와서 얄팍하게 자비를 운운하는 것이 가소로웠다."제 부군은 워낙 강직하신 분이라, 평소에도 저희 모자에게 천리에 어긋나는 짓은 절대 하지 말라 신신당부하십니다."진 부인은 적당한 핑계를 둘러댔다.그녀가 완강히 거절하면 한씨도 억지로 일을 맡길 수는 없을 터였다."제부가 통판으로 경성의 치안을 맡고 있으니, 그동안 살림살이는 제법 넉넉했겠구나."한씨는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채 불쑥 화제를 돌렸다."언니도 보시다시피 저희 집은 형편이 이렇습니다. 여느 귀족가와는 비교할 수 없고 평민보다는 나은 형편이지요. 그래서 분수에 맞게 살자고 다짐했습니다."진 부인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그녀도 한씨의 조롱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부군이 뒤로 재물을 챙기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꼬집은 것이다.하지만 두려울 것은 없었다.증좌도 없이 내뱉는 말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했다.게다가 경성의 관리 중 청렴한 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뒷돈을 챙기더라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진 통판 정도면 꽤 훌륭한 축에 속했다."내가 듣자 하니, 제부가 관할하는 거리에서 노점을 열려면 관아에 바치는 은자 외에도 수십 냥의 뒷돈을 따로 찔러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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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6화

날이 채 밝기 전, 창밖으로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조원철은 침상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고 느릿하게 옷을 입었다. 유려하게 아래로 축 처지는 붉은색 관복을 갖춰 입고, 탄탄하고 마른 허리춤에 금인과 옥패를 함께 매달았다.그는 희미하게 밝아오는 바깥의 여명을 빌려 동거울을 보며 머리를 묶고 관을 바르게 썼다.채비를 마친 그는 다시 침상 앞으로 다가가, 곤히 잠든 강유영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강유영은 비단 이불로 온몸을 감싼 채, 티 없이 맑은 얼굴만 반쯤 내밀고 있었다.풍성하고 검은 머리칼이 베갯머리에 흩어졌고, 그에 대조되는 새하얀 얼굴이 투명한 옥처럼 빛났다. 길게 내리깔린 속눈썹은 눈밑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일정한 숨소리를 내며 잠든 모습이 무척이나 얌전하고 사랑스러웠다.그녀를 바라보는 조원철의 눈에는 평소의 차갑고 무심한 기색 대신 부드러운 온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잠시 후,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서늘한 이마에 따뜻한 입술을 가볍게 맞추었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강유영은 눈앞의 사람을 보며 잠시 멍한 눈빛을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침상 머리맡에 기댄 채 그를 바라보았다."조회에 가시는 길입니까?""나 때문에 깬 것이냐."조원철은 그녀의 정수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었다."아직 시간이 이르니 좀 더 자거라.""아닙니다, 저도 일어날랍니다."강유영은 손을 뻗어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오늘이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어머니께 제 출생에 대해 여쭈러 가야 합니다.""단비를 들여 시중을 들게 하마."조원철은 그녀의 옷을 건네주며 당부했다."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든 절대 충돌을 일으키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라.""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강유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설령 한씨가 거짓말을 한다 해도, 굳이 속내를 까발리며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조원철에게 배운 대로 감정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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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7화

"부인, 유영 아씨가 도착했습니다."풍씨 어멈은 방 안으로 들어와 아침상을 내려놓고 서둘러 내실로 향했다.한씨는 막 잠에서 깨어 화장대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풍씨 어멈의 말을 들은 한씨는 심기가 불편해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아침 일찍부터 여긴 웬일이라더냐."한씨는 손에 쥐고 있던 머리 장식을 화장대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사흘의 기한이 다 되었지 않습니까."풍씨 어멈은 허리를 굽히고 조심스레 말했다."강유영은 출생의 비밀을 무척이나 알고 싶을 테니까요."한씨도 강유영이 찾아온 목적을 모를 리 없었다. 그저 아침부터 찾아와 성가시게 구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었다."들여보내거라."한씨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몸을 일으켜 내실 밖으로 나섰다.풍씨 어멈이 휘장을 걷어 올리며 문밖에 서 있는 강유영을 불렀다."유영 아씨, 부인께서 안으로 드시라 하십니다.""예, 어멈."강유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풍씨 어멈은 지나가는 강유영의 모습을 슬그머니 훑어보았다.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은, 침착한 자태였다.국공 부인의 치명적인 약점을 쥐고 있으니, 안하무인으로 문을 열고 들어올 법도 했다.하지만 강유영은 예전처럼 얌전히 통보를 기다리며 문밖에 서 있었다.어멈은 속으로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차라리 방자하게 굴면 상대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이토록 신중하고 차분하니 섣불리 대처하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유영아,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하구나."한씨는 식탁 앞에 앉아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강유영은 그 시선을 마주하며 다소곳이 무릎을 굽혔다."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눈꼬리를 휘며 상냥하게 웃는 얼굴이 마치 따사로운 봄볕처럼 맑고 순해 보이는 것이 전혀 시비를 걸려고 온 사람 같지 않았다."격식 차릴 것 없다."한씨가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거두었다."아침은 먹고 온 게냐."강유영은 참으로 무서운 아이였다. 진짜 모습을 몰랐더라면 필시 저 유순한 겉모습에 감쪽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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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감사합니다, 어머니."강유영은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가볍게 불어 입에 넣었다.그러고는 시선을 내리깐 채 도자기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삼켰다. 마치 자신의 처소에서 식사하는 것처럼 태연하고 자연스러웠다.한씨는 그런 강유영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남아있던 약간의 입맛마저 달아났다. 손에 쥔 구름떡을 씹었지만 모래알을 씹는 듯했다.강유영은 죽을 말끔히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한씨를 바라보았다."일전에 어머니께 사흘의 시간을 드렸는데, 생각은 다 하셨는지요."그녀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아내며 여유롭게 물었다. 이미 답을 얻은 듯한 나른한 어조였다."결정했다. 네가 그토록 간절히 알고 싶어 하니 모든 것을 말해주마. 허나 네 약조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네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 나면 공금 장부에 관한 일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두 번 다시 그 일로 나를 협박해선 안 된다."한씨는 입안의 구름떡을 억지로 삼키며 무겁게 입을 뗐다.그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강유영의 거만한 태도에 당장이라도 손에 든 구름떡을 그녀의 얼굴에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양녀 따위가 감히 자신의 머리 꼭대기로 기어오르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두고 보자.'"이미 약조한 사안이니 당연히 지킬 것입니다."강유영은 손수건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한씨를 재촉했다."어머니, 이제 말씀해 보시지요."그녀는 겉으론 무심해 보였지만 탁자 아래 감춘 손은 잔뜩 긴장하여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이번에는 과연 진실을 말해줄 것인지,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네 생모는 아직 살아 있다."한씨는 강유영을 정면으로 주시하며 한마디 했다."그렇다면 어찌하여 저를 찾으러 오지 않은 겁니까."강유영이 불쑥 물었다.한씨의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부모는 그녀에게 전당포를 남겨주었고, 한씨가 마음대로 차지하지 못하도록 금수상회에 관리를 맡기기까지 했다.그토록 그녀를 아끼는 부모가 살아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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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풍씨 어멈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조심스레 한씨에게 물었다."염려할 것 없다."한씨는 손사래를 쳤다."전당포라는 미끼까지 던졌는데, 지금쯤 친어미를 만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감히 나를 의심할 생각조차 못 하겠지."이번 계획에 한씨는 단단히 공을 들였다.어차피 강유영이 혼인하기 전까지는 전당포를 차지할 수 없으니, 전당포의 존재를 털어놓아도 무방했다.오히려 이 기회에 진 부인을 친어머니로 내세워, 적당한 혼처를 찾아 서둘러 시집을 보내버리면 그만이었다.강유영이 시집을 가고 나면 전당포는 자연스레 한씨의 수중으로 떨어질 것이고, 당장 빚쟁이들의 위협도 해결될 터였다.그녀는 석 달 안에 이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다.강유영은 시간이 얼추 맞다고 판단하고 본채로 향했다.가는 길목에서 마침 조원철과 마주쳤다. 붉은 관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조회에서 막 돌아오는 길인 듯했다."조회에서 돌아오시는 길입니까?"그녀는 조원철을 보자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느새 조원철을 대하는 태도에 어색함이나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많이 자연스러워져 있었다."그래."조원철은 강유영이 향하는 쪽을 바라보았다."이제야 어머니 처소로 가는 길이냐."아침 일찍 다녀오겠다고 하지 않았던가."아침 일찍 한 번 다녀왔습니다."강유영이 조원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머니께서 제 생모가 아직 살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미혼모의 몸으로 낳은 사생아라 그동안 저를 찾지 못한 것이라며, 정오에 제 생모가 직접 이곳으로 찾아올 거라 하셨습니다. 오라버니께서 보시기엔 이 말이 진실인 것 같습니까."그녀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한씨의 말에 진실과 거짓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생각에 잠겼다.본채를 나설 때부터 내내 고민하던 문제였다. 이때까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조원철의 안목이라면 단박에 허점을 짚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강유영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직접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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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0화

"상관없다."조원철은 앞을 주시하며 담담히 대답했다."조회에서 막 돌아왔을 뿐, 굳이 유난을 떨며 차려입은 것도 아니니."두 사람은 나란히 본채로 들어섰다.풍씨 어멈은 멀리서 조원철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허리를 굽히며 아뢰었다."세자를 뵙습니다."강유영은 어멈의 큰 목소리가 방 안의 한씨에게 귀띔하려는 수작임을 알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은 풍씨 어멈 곁에 서 있는 수수한 차림의 시녀에게 머물렀다.그 시녀가 걸친 옷은 국공부 하인들에게 지급되는 옷이 아니었다. 옷감도 거칠었고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었다.아마도 한씨가 말한 생모를 모시고 온 시녀인 듯싶었다.강유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생모라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시녀가 고작 한 명뿐이란 말인가. 방 안에 다른 하녀가 더 있는 것일까.설령 두 명이라 한들, 적은 수였다. 진국공부만 해도 그녀를 제외한 웬만한 주인 처소엔 열 명 정도는 거느리지 않던가.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다.생모의 신분과 지위가 높지 않다면, 대체 무슨 수로 그 거대한 전당포를 그녀에게 물려주었단 말인가."원철이 왔느냐."한씨가 방문을 열고 맞이했다."어머니."조원철이 가볍게 목례를 올렸다.강유영도 그를 따라 얌전히 예를 갖추었다."둘이 함께 왔구나."한씨는 강유영을 힐끗 보며 속으로 끓어오르는 불쾌함을 억누르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서 들어오너라."저 계집이 가짜 어미를 분간하지 못할까 두려워, 조원철을 끌고 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고작 양녀의 수발이나 들고 있으니 속이 끓었다.강유영과 조원철은 나란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자, 유영아. 저 분이 바로 네가 찾던 분이시다."한씨가 상석에 앉은 진 부인을 향해 손짓했다.짙은 자줏빛 덧저고리를 입은 부인은 옷감도 훌륭하고 몸단장도 깔끔했지만, 화려한 치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강유영이 들어서자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강유영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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