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841 - Chapter 850

852 Chapters

제841화

진 부인은 강유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그녀의 눈시울이 점차 붉게 물들었다."딸아……."그녀는 손을 뻗어 강유영의 뺨을 어루만지려 했다.강유영은 가만히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이성을 유지하며 진 부인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하지만 진 부인의 표정은 제법 진실해 보였다.강유영은 내심 진 부인이 정말 생모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녀에게도 마침내 혈육이 생기는 것이고, 더 이상 고생하며 출생의 비밀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진 부인의 손은 끝내 강유영의 뺨에 닿지 못했다. 허공에서 떨리던 손은 이내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더니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했다."그만 울거라. 모녀가 이렇게 상봉했으니 기뻐할 일이지."한씨가 진 부인의 어깨를 다독이며 강유영을 향해 말했다."유영아, 어서 네 어미에게 인사하거라.""정말 제 어머니가 맞습니까?"강유영은 한 걸음 다가서며 감격에 찬 얼굴로 물었다.사실 속으로는 아직 완전히 믿지 않았다.진 부인이 진짜 생모인지는 몇 가지 더 캐물어야 알 일이었다."그래, 맞다……. 내가 널 버렸다. 이 어미를 용서하렴……."진 부인은 얼굴을 감싼 채 오열했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벅찬 감격 같기도 하고, 깊은 죄책감에 짓눌린 것 같기도 했다."이건 네가 태어나기 전 내가 손수 지은 배냇저고리란다."진 부인이 소매 속에서 자그마한 옷 한 벌을 꺼냈다."네가 갓난아기 때 입었던 옷이지. 널 그리워하며 여태껏 간직해 왔다."강유영은 조용히 옷을 건네받았다. 빛바랜 연노랑빛 아기 옷은 반듯하게 개켜져 있어, 주인이 얼마나 애지중지 아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가까이서 살펴보니 바느질이 제법 성글고 엉성했다. 그 서툰 솜씨가 오히려 진 부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더해주었다.강유영은 다시 고개를 들어 진 부인을 바라보았다."그토록 그리웠다면, 어찌하여 지금껏 단 한 번도 저를 찾지 않으셨습니까."그녀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내 사정은 필시 국공 부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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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2화

"세자 말이 맞다. 그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 그분이 쉰셋이 되던 해 경성으로 장사를 하러 왔고 그때 우리가 연을 맺은 것이다."진 부인은 조원철의 말을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부인 말씀대로라면 당시 부인께선 젊은 처녀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토록 나이 차이가 나는 자와 연을 맺은 겁니까."강유영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진 부인을 살폈다.지금의 진 부인도 꽤 고운 인상인데, 젊은 시절에는 오죽했을까. 어째서 반백의 노인과 얽혔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그녀는 진 부인의 말을 선뜻 믿을 수 없었다."그게……."진 부인은 대답 대신 강유영의 손을 잡으려 했다.강유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우리 모녀끼리만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겠느냐."진 부인은 무안한 듯 조원철의 눈치를 살폈다.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외간 사내인 조원철 앞에서 털어놓기가 껄끄러운 모습처럼 보였다."여인의 내밀한 사생활이니 여러 사람 앞에서 떠벌릴 일은 아니지. 유영아, 네 어미를 모시고 내실로 들어가 편히 이야기를 나누거라."한씨가 재빨리 나섰다.한씨 역시 진 부인이 조원철 앞에서 말을 길게 하다간 꼬리를 밟힐까 내심 전전긍긍하던 참이었다.강유영을 속이는 것은 수월해도, 날카로운 조원철의 눈을 속이기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강유영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네가 날 어미로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이리 면박을 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세자는 내 조카뻘 되는 사람인데, 어찌 낯부끄러운 옛일을 그 앞에서 미주알고주알 떠벌린단 말이냐……."진 부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훔쳤다.강유영은 잠시 갈등했다.그녀는 조원철을 돌아보았다. 마음 같아선 조원철이 곁을 지키며 진 부인의 사연을 명백히 파헤쳐 주길 바랐다.하지만 진 부인이 저리 눈물로 호소하니 억지를 우길 명분도 궁색해졌다."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거라. 밖에서 기다리마."조원철이 차분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강유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의 의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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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강유영은 진 부인을 바라보며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그녀가 늘어놓는 사연도 이치에 맞다고 여겼다.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자꾸만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나도 널 위해 앞날을 헤아려 두었단다."진 부인은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국공 부인 명의로 된 전당포에 대해 알고 있느냐.""보흥 전당포 말씀이십니까."강유영의 마음이 순간 흔들렸다.진 부인이 먼저 전당포 이야기를 꺼낼 줄은 예상치 못했다.한씨가 사주한 것인지, 아니면 진 부인이 정말 생모인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그렇다. 그 전당포는 네 아비가 나에 대한 보상으로 남긴 것이지. 허나 그자는 본래 교활하여 내게는 내어주지 않고 오직 네 명의로만 남겨두었다."진 부인이 정색하며 말했다."그 전당포의 진짜 주인은 바로 너란다.""어머니께선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진 부인이 생모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자신의 패를 온전히 다 보여줄 수는 없었다."그 여자가 네게 순순히 털어놓을 리 없지."진 부인은 손수건을 거칠게 털어내며 분통을 터뜨렸다."네가 혼인하지 않는 이상 전당포의 수익은 모조리 그 여자의 수중으로 들어가니까. 널 키운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네 아버지는 금수상회와 계약을 맺었다. 네가 혼인한 후 혼인 서약서를 가져가야만 전당포를 물려받을 수 있게 해두었지."진 부인의 분노는 진심이었다.한씨는 팔자도 좋았다. 진국공 부인 자리를 꿰찬 것도 모자라, 그 거대한 전당포의 수익까지 오랫동안 공짜로 삼켰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는가.진 부인 자신도 전에는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이번에 한씨가 양녀를 함정에 빠뜨리려 계획을 짜면서 비로소 알려준 것이었다.양녀 하나를 상대하려 한씨는 가진 밑천을 꺼내 든 셈이었다."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강유영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진심으로 놀란 것은 맞지만, 전당포의 존재 때문은 아니었다.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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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화

진 부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울음을 삼키더니, 급기야 강유영의 앞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이러지 마십시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뿐, 크게 잘못하신 것도 없지 않습니까."강유영은 황급히 진 부인을 부축해 무릎을 꿇지 못하게 말렸다.혼인도 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고, 사내는 도망쳤으며, 새살림을 차린 탓에 차마 딸을 찾지 못했다. 모든 상황이 앞뒤가 맞았다.진 부인의 이야기는 빈틈이 없이 완벽했다."다들 딸자식이 최고라더니, 오늘에야 그 뜻을 알겠구나. 이 모진 어미를 이리 다정하게 대해주는구나……."진 부인은 더 크게 오열했다.강유영은 남을 위로하는 데 서툴러, 그저 곁에 앉아 가만히 어깨를 다독여줄 뿐이었다.진 부인이 한참을 더 운 뒤에야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강유영은 그사이 문득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십수 년 전, 제 포대기 안에 물건을 하나 남겨두셨더군요."강유영이 진 부인을 주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는 그녀의 시험이었다.진 부인이 제 목에 걸린 이 금자물쇠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만약 알고 있다면, 진 부인이 진짜 생모는 아닐지언정 과거의 내막을 꿰뚫고 있는 자임이 분명했다.만약 모른다면, 상황은 달라질 터였다."무슨 물건 말이냐."진 부인은 무심결에 반문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난 네 포대기에 그 어떤 물건도 남긴 적이 없다."한씨는 이 일에 대해 전혀 귀띔해주지 않았다.무슨 물건인지 모르니 아는 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섣불리 둘러대다간 꼬리를 밟혀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이 뻔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딱 잡아떼는 편이 가장 안전했다."확실하십니까."강유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구심을 품었다."그렇다."진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딸아, 솔직히 말하마. 난 집안이 넉넉지 않아 어릴 적부터 한씨 일가에게 숱한 무시를 당했고, 그 탓에 맹목적으로 부귀를 좇았다. 그 시절 내 수중엔 아무것도 없었고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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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5화

진 부인은 강유영의 손을 잡고 고집스레 팔찌를 채워주려 했다.강유영은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결국 진 부인이 손목에 벽옥 팔찌를 끼우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마음이 복잡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했으며,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이토록 그럴싸한 이야기를 듣고도 진 부인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혼자 조용히 머리를 식히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착하기도 하지."진 부인은 강유영의 손을 다독이며 흐뭇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유영은 가볍게 웃어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친어머니의 애정을 그토록 바랐건만, 막상 이런 순간이 오니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몸이 굳어버린 듯 어색했다."한씨가 네 혼처를 알아보겠다는 말은 없었느냐."진 부인이 불쑥 화제를 돌려 물었다."예전에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탐화랑이었는데, 인물은 괜찮으나 집안이 가난하고 노모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또 소금의 유통을 관할하는 주지상이라는 자도 있었고요……."강유영은 입술을 축이며 작게 대답했다."뭐라? 감히 주지상 따위를 네 짝으로 소개했단 말이냐."진 부인이 역정을 냈다."네 아비가 죽었다고 날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구나."강유영은 진 부인을 바라보았다. 온전히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조금 따뜻해졌다."작년 일입니다. 그 후로는 제 혼사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뻔한 속셈이지. 그 탐화랑이라는 자는 홀어머니만 모시고 있으니 주무르기 쉬웠을 테고, 네가 시집간 뒤에도 전당포를 제 수중에 쥘 수 있었을 테지. 주지상 그놈은 전처 두 명을 괴롭혀 죽인 놈이다. 네가 거기로 시집가 죽어버리면 한씨가 전당포를 고스란히 차지할 수 있으니까."진 부인은 곧장 사건의 핵심을 짚어냈다."이제 와 혼사 이야기가 쏙 들어가고 너와 세자의 추문을 퍼뜨리는 건, 널 세자의 첩으로 들여 전당포를 국공부의 소유로 묶어둘 심산인 게다!"진 부인은 눈을 부릅뜨고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한씨의 기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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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6화

한씨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역시 친모녀라 그런지 빨리 가까워졌구나. 어서 와서 앉거라."강유영과 조원철은 남아서 한씨, 진 부인과 함께 식사를 했다.작별할 때 진 부인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훔치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강유영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진 부인이 진짜 생모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애틋하게 이별을 고하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어머니,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강유영은 한씨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뜨려 했다."우리 사이의 약조는 이걸로 끝이다. 앞으로 장부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말거라."한씨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앞으로 강유영이 장부 문제로 자신을 협박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이었다."염려 마십시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한씨를 보며 옅게 웃었다.조원철은 한씨에게 인사조차 남기지 않고 강유영의 뒤를 따라나섰다.한씨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대문 모퉁이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순식간에 웃음기를 거두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요망한 것, 대체 얼마나 꼬리를 쳤길래 원철이를 저렇게까지 홀려 놓았을까.'한시도 강유영과 떨어지지 않으려 곁을 맴도는 아들을 보며 한씨는 속이 끓어올랐다.'그래, 며칠이나 더 살아 숨 쉬는지 두고 보자.'"이모님이 뭐라 하더냐."조원철은 뒷짐을 지고 회랑을 걸으며 조용히 물었다.강유영은 앞을 주시하며 진 부인이 한 말을 낱낱이 전했다."오라버니가 보시기엔 그 말이 앞뒤가 맞는 것 같습니까? 혹시 미심쩍은 부분은 없었습니까?"강유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눈빛에 혼란이 서려 있었다.생모를 만난다는 것이 고작 이런 기분일까.그녀는 자신이 무척 감격하고, 슬퍼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을 줄 알았다.하지만 막상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진 부인을 마주하고도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심지어 혈육을 만나도 별거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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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조원철은 다정한 어투로 그녀에게 당부했다."알겠습니다."강유영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누가 기다린다고.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차라리 돌아와서 그녀의 처소에 걸음하지 않기를 바랐다.물론 이런 말은 속으로만 삭일 뿐,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조원철이 떠난 후, 강유영은 요월원 정원에 앉아 오후 시간을 보냈다.그녀는 반나절 내내 손목의 벽옥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퉁퉁 부은 진 부인의 눈과 그녀가 한 말들을 곱씹었다."아씨, 진지 드십시오."단비가 찬합을 들고 오며 그녀를 불렀다."그래."강유영은 짧게 대답하고는 방으로 향했다.그때 누군가 와서 처소의 대문을 두드렸다."누구십니까."서유가 강유영의 눈치를 살피며 바깥을 향해 물었다."국공 어르신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밖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유영은 걸음을 멈추고 서유에게 문을 열라 눈짓했다."무슨 일이지?"서유가 문을 열며 물었다."국공 나으리께서 대청에 계십니다. 유영 아씨를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시녀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국공 나으리께서?"서유는 당황하며 강유영을 돌아보았다."아버지께서 갑자기 날 왜 찾으신다더냐. 대청에 다른 분도 계시느냐."강유영 역시 의아해하며 물었다.진국공의 눈에 그녀는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청으로 부르다니, 필시 어떤 손님을 만나는 자리일 것이다.'설마 서왕이 또?'"소인은 잘 모릅니다."시녀가 고개를 저었다."가보아야겠다."강유영이 말했다."너희 먼저 밥을 먹거라.""소인도 같이 가겠습니다."서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를 뒤따랐다."아버지."강유영은 대청에 들어서며 진국공에게 인사를 올렸다.상석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난초가 수놓인 옥색 비단치마에 꽃무늬가 은은한 흰색 덧옷을 걸친 차림이었다. 풍성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는 순금 비녀가 꽂혀 있었고, 온화한 이목구비에서 우아한 기품이 흘렀다.단번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동궁의 태자비였다.예전 궁중 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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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8화

태자비는 온화한 얼굴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조금의 오만함도 없이 그저 평범한 명문가 규수처럼 친근한 모습이었다."강 소저는 과연 듣던 대로 청아하고 뛰어난 미모를 가졌군. 서왕의 눈에 든 것도 무리가 아니야.""마마, 과찬이십니다. 소녀는 그저 보잘것없는 여식일 뿐, 그런 과분한 칭찬은 당치 않사옵니다."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깔고 황송한 기색을 지어 보였다. 태자비를 뵙게 되어 어쩔 줄 모르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린 처자처럼 행동했다.그녀 같은 일개 양녀가 지체 높은 태자비를 마주했을 땐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여야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태자비는 그녀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불쑥 찾아와 꼭 집어 그녀에게 과분한 칭찬을 늘어놓을 이유가 없었다.태자비는 겉보기와 다르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분명했다.게다가 방금 서왕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설마 서왕이 태자비를 앞세워 그녀를 측비로 들이려는 속셈일까?아니 그럴 리 없었다.태자와 서왕은 일찍이 사활을 걸고 암투를 벌이는 앙숙이었다. 태자가 태자비를 앞세워 서왕의 혼사를 도와줄 리 만무했다."강 소저, 그리 긴장할 것 없네."태자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유영의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긴장한 것은... 아... 아닙니다...."강유영은 빳빳하게 굳은 채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입으로는 아니라 하면서도 온몸으로 긴장감을 전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국공이 답답한 듯 참견했다."유영아, 태자비 마마께서는 늘 아랫사람을 자애롭게 대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겁먹지 말고 마마의 말씀에 차분히 대답하거라."그는 최근 한씨에게서 강유영이 꽤나 영악하게 변해서 자신을 옭아매려 한다는 불평을 몇 번 들은 적 있었다.하지만 태자비 앞에서 이토록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 겁 많고 주눅 들어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영악해지기는커녕 여전히 무능하고 겁쟁이였다."예, 아버지."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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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9화

태자비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강유영의 의중을 묻고 있었으나,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소녀는... 출신이 미천하고 언변도 없어 마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할까 우려됩니다.....”강유영은 겁먹은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문득 조원철이 떠나기 전 남긴 말이 떠올랐다.그는 경성 외곽의 군영에서 살인 사건이 났는데 누군가 사건을 덮으려 한 정황이 발견되었다고 했다.태자비가 찾아온 것이 조원철이 조사하려는 일과 관련이 있는 걸까?하지만 그렇다기엔 앞뒤가 맞지 않았다.그녀와 조원철의 관계는 두 사람만이 알고 있고, 어렴풋이 눈치챈 사람은 서왕 정도가 있었다.이치대로라면 태자와 태자비는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러니 그녀를 인질 삼아 조원철을 협박할 이유는 없었다.지금 태자비의 행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상관없네. 소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친근함이 느껴져서 그러는 것이니. 이 또한 인연이지.”태자비가 웃으며 그녀를 이끌었다.“마차는 이미 준비해 두었네.”“아버지....”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진국공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마마께서 네가 마음에 드신다고 하니 어서 다녀오거라.”진국공은 손을 휘휘 저으며 덧붙였다.“장방에 가서 은자를 넉넉히 챙겨 가거라.”그는 속으로 불만을 터뜨렸다.‘겁만 많고 어리석은 것!’은자를 들려 보내도 태자비가 물건을 고를 때 선뜻 나서서 계산을 치르지도 못할 것 같았다.물론 그도 태자비가 불쑥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다.아마도 서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어쩌면 강유영과 서왕의 혼사를 방해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어찌 되었든 태자비가 이미 명을 내렸으니,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지금으로서는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조원철이 저택을 비운 것이 못내 아쉬웠다.아들이 있었다면 의논이라도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예, 아버지.”강유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태자비를 따라 대청을 나섰다.앞서 걷는 태자비의 뒷모습을 볼수록 의구심만 깊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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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0화

태자비는 그제야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동궁의 마차는 경성에서 가장 큰 비단 점포 앞에 멈춰 섰다."내려서 쓸 만한 옷감이 들어왔는지 한번 보자고."태자비가 마차에서 내리며 강유영을 불렀다.강유영도 서유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린 뒤, 태자비의 뒤를 따라 점포 안으로 들어섰다."이리 와보게, 이 옷감은 어떤가?"태자비는 다정하게 강유영의 손을 잡고는 비단 하나를 가리켰다."소주에서 올라온 비단인데, 소저에게 아주 잘 어울리겠어.""색상이 너무 화사하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저었다.당장이라도 손을 빼고 싶었다. 태자비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온몸에 거부감이 일었다.하지만 대놓고 뿌리칠 수도 없으니 꾹 참았다."젊은 처자는 응당 화사하게 입어야지. 이 색이 그대의 얼굴을 잘 살려주는군. 저기 금실로 짠 옷감도 저고리로 만들면 무척 고울 것이야."태자비가 비단을 집어 들고 강유영의 몸에 대보았다.강유영은 그 틈을 타 슬그머니 손을 뺐다."이걸로 하지. 주인장, 포장해 주게."태자비가 짤막하게 지시했다.곁에서 대기하던 점포 주인은 지체 없이 달려와 비단을 건네받았다.강유영은 사양하려다 입을 다물었다.굳이 사준다고 한 것도 아닌데 섣불리 나섰다간 오히려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저 앞에 장신구 점포가 있는데, 새로 들어온 물건이 많다 하더군. 가보지."태자비는 다시 강유영의 손을 덥석 잡고 점포를 나섰다.반나절 내내, 강유영은 태자비에게 이끌려 여러 거리를 돌아다녔다.태어나서 이토록 많은 점포를 쉬지 않고 돌아본 것은 처음이었다.태자비는 계속해서 그녀의 손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마마, 날이 많이 저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녁을 준비해 두셨을 터이니, 마마께서도 국공부로 함께 가시어……."강유영은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넌지시 운을 띄웠다.사실 그녀의 시선은 노을이 아닌 저편의 사내들을 향해 있었다.평상복 차림의 사내들은 얼핏 평범해 보였지만, 자세히 살피면 체구가 건장하고 몸놀림이 날랬다.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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