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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소설아는 웃으며 말했다. "부인, 위원후부의 가풍이 무엇인가요?"위원후부에 가풍이랄 게 어디 있단 말인가.민씨가 말문이 막혀 어찌할 줄 몰라하자, 소명주가 얼른 말을 가로채며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언니, 어머니 말씀은 언니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거든 어머니를 따르며 가르침을 받으라는 뜻이에요." 소명주는 다시 민씨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딸 된 도리로 어머니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그제야 민씨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가자, 내 뒤를 잘 따라오너라. 장공주부는 무척 넓으니 바짝 따라붙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지난 생에 민씨는 이곳 장공주부의 단골손님이었다.그녀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저기서 왼편으로 꺾으면 능소화 담벼락이 나온단다. 마침 지금이 개화기이니 구경하기 딱 좋겠구나."일행이 걸음을 옮기자 정말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능소화들이 눈앞에 펼쳐졌다.푸른 잎새를 가득 펼친 초록빛 담장 위에 붉은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했다. 짙푸른 잎 사이로 주홍빛 꽃송이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소명지는 감탄했다."어머니, 정말 능소화가 있네요! 과연 어머니께서는 공주부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십니다."민씨가 흐뭇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여기서 더 앞으로 가면 그 유명한 낙성호란다. 옛날에 유성이 떨어진 곳이라는 전설이 있지."그녀는 마치 여러 번 와 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설명했다. 주변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부인들이 민씨를 돌아보며 호의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자 민씨는 순간 어깨가 으쓱해졌다.방금 전 관사 어멈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며 겪은 수치심이 씻은 듯이 날아갔다. 마치 지난 생에 수많은 부인에게 둘러싸여 추앙받던 후작 부인이 된 것만 같았다.장공주는 보통 화청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품계에 따라 앉는 자리가 엄격히 달랐기에, 민씨 일행은 가장 끝으로 안내받았다.비록 구석진 자리였지만, 어찌 됐든 장공주부 화연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손님 축에는 든 셈이었다.소명지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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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소명주는 민씨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외쳤다."어머니, 저 사람이에요! 저 자가 제 은자를 뜯어낸 사기꾼이라고요!"민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직하게 나무랐다."명주야, 똑바로 보거라. 함부로 입을 놀려선 안 된다."그는 다름 아닌 장공주의 적장자인 서 군왕이었다. 그러니 돈이나 뜯어내는 천한 장사꾼 무리일 리가 없었다."다시 잘 보거라. 그저 닮은 사람일 게다."소명주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서경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그녀가 기억하는 서 사장님은 온갖 금은보화를 걸치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부귀화처럼 화려하게 치장해, 온몸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던 자였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서 군왕은 완전히 딴판이었다.먹색 장삼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옥패 하나만 달랑 찼을 뿐인데도, 그 모습이 지극히 고결하여 마치 깊은 못이나 높은 산처럼 묵직한 위엄이 풍겼다.이목구비는 분명 같았으나, 서 사장님은 사람을 볼 때마다 눈빛에 농염한 기색을 담곤 했다.반면, 서 군왕의 눈매는 맑은 샘물에 씻어낸 미옥처럼 은은했고, 호박색 눈동자는 맑고 투명해 차갑고도 담담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미간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고귀한 기품이 자연스럽게 어려 있었다.소명주는 혼란스러워졌다.생김새는 판박이인데 어찌 풍기는 기운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자신이 잘못 본 것일까? 정말 다른 사람인 걸까?‘이따가 한번 슬쩍 떠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겠지.'서경수는 장공주를 향해 걸어가 공손히 군례를 올렸다.“어머니.”목소리는 같았으나 어조가 전혀 달랐다.서 사장님의 음색도 감미롭긴 했지만 말투에는 늘 묘한 경박함이 묻어났던 반면, 서 군왕의 목소리는 한없이 진중했다.서경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화청 안의 모든 명문가 규수들의 시선이 쏠렸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듣기로 서 군왕 전하께서는 어릴 적부터 강남 서씨 가문에서 자라며 서 각로의 가르침을 받으셨대요. 학문이 워낙 깊어 과거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을 만큼 뛰어나셨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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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여인의 해산이란 본디 귀문관을 넘나드는 법인데, 하물며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까지 마주했으니 오죽했을까.이연주가 겪은 파란만장한 일을 전해 들은 주변의 부인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그 어린 나이에 이토록 대범한 심성을 지녔다니, 참으로 보기 드문 재목입니다.""소 낭자는 한눈에 봐도 총명해 보이는군요. 위급한 순간에도 영민하게 대처하다니, 여느 규방의 규수들과는 결이 확연히 다르군요.""생김새 또한 어찌 이리 고운지…"그들의 말을 귀담아듣던 장공주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번졌다."과연 이목구비가 수려하구나. 이토록 어여쁘고 흠잡을 데 없이 잘 자란 아이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군."이날 화연에는 수많은 명문가 규수가 자리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소설아는 마치 깊은 산속 외로이 피어난 난초처럼 청아하고 고고하여 절로 시선을 빼앗았다.고개를 나직이 숙인 소설아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부인들의 칭찬 중 상당수가 장공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빈말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가슴 한구석에서 낯간지러운 부끄러움이 살며시 피어올랐다.지난 생에 그녀는 위원후부를 위해 뼈가 부서져라 헌신했고, 두 오라버니의 앞날을 위해 온갖 방도를 짜내며 노심초사했으나 단 한 번도 따뜻한 칭찬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었다.민씨는 그녀의 희생을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로 여겼다.무언가 눈부신 성과를 내놓을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고마움이나 칭찬이 아닌, 더욱 가혹한 압박뿐이었다. 민씨는 소설아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오만해질까 전전긍긍했고, 위원후는 딸의 날개가 자라 제 손아귀를 벗어날까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끊임없이 "너는 자격이 없다",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라는 말로 소설아의 자존감을 짓밟았다.온 힘을 다해 자식을 깎아내리면서도, 입으로는 늘 '다 너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다.소설아는 그것이 민씨만의 엄격한 자식 교육법인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민씨는 다른 자식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꺼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다정하게 격려해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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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민씨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대체 무엇 때문에 소설아는 장공주 곁에 붙어 앉아 온갖 각광을 받고, 자신들은 구석진 자리에서 찬밥 신세여야 한단 말인가.지난 생의 기억을 안고 돌아온 그녀였다. 이 자리에 남을 방도가 없을 리 없었다!민씨는 마음을 가다듬고 표정을 누그러뜨린 뒤 웃으며 말을 건넸다."공주 마마, 혹여 요즘도 두통으로 고생하고 계시는지요?"민씨는 지난 생에 장공주가 지독한 두통에 시달려 밤잠을 설치곤 했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제게 마침 두통을 다스리는 데 효험이 좋은 비방이 하나 있습니다. 마마께서 한번 써보심이 어떠실지요."그 말에 장공주가 비로소 민씨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마음을 써주니 고맙구나."민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친김에 대화를 이어가며 친분을 쌓으려는데, 장공주 곁을 지키던 하녀가 말을 가로챘다."부인, 이따가 그 처방전을 저에게 건네주시면 됩니다.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가시지요."민씨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두통 비방까지 바쳤는데, 고작 말 몇 마디 더 나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단 말인가.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이연주 옆에 꼿꼿이 앉아 있는 소설아를 바라보자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소설아, 저년은 대체 뭐 하는 거야?'이럴 때라면 마땅히 한마디 거들어 장공주가 자신들을 곁에 머물게끔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혹시 장공주가 이유 없이 자신들을 꺼리는 것이, 소설아 저년이 미리 마마 귀에 대고 험담이라도 늘어놓은 탓은 아닐까?'소설아, 네년이 감히 음흉한 짓을!'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민씨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집으로 돌아가기만 해 보아라. 반드시 따끔하게 본때를 보여주리라!민씨가 이를 악물고 두 딸을 데려가려던 찰나, 소명주가 갑자기 끼어들었다."언니, 머리에 꽂은 보요가 삐뚤어졌어요."그러더니 소명주는 쪼르르 다가가 소설아의 머리에 꽂힌 금보요를 매만지는 척했다.그제야 장공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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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지난 생에 민씨는 장공주 앞에서 감추는 것 없이 제 생각을 시원시원하게 말하곤 했다.당시 장공주는 그런 그녀를 두고 '성품이 강직하고 호방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장공주 역시 그런 대쪽 같은 성정의 소유자였기에, 매사를 시원하게 털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속내를 감추고 계산하는 모습은 도리어 소인의 비루한 짓거리라 여겨 혐오했다.소명주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무릎을 꿇었다."공주 마마, 어머니의 경솔함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그저 저희 자매를 지키고 싶으셨을 뿐입니다."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애틋한 모녀의 모습을 보이자 장공주 곁을 지키던 하녀가 사납게 꾸짖었다."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뭘 하고 계십니까! 더 고집을 부리시다가는 하인들에게 끌려 나가실 터인데, 그리되면 부인과 아가씨들의 체면이 어찌 되겠습니까!"장공주가 손짓으로 하녀를 만류했다."그만해라, 어디 말이나 들어보자구나."장공주는 민씨를 똑바로 응시했다."그래, 무엇이 그리 묻고 싶으냐?"민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제 승부수가 통했다는 확신이 들었다.장공주는 역시 지난 생과 다름없이 위선 없는 본연의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이번 기회만 잘 살린다면 장공주의 마음속에 새겨진 위원후부의 인상을 단번에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소설아의 그 음흉하고 간사한 속내까지 낱낱이 들추어낼 수 있으리라.민씨는 조금 전 했던 말을 다시금 힘주어 반복했다."소첩, 혹여 어떤 소인이 마마의 귀를 더럽혀 소첩과 두 딸을 악의적으로 모함한 것은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장공주의 안색이 한층 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내 앞에서 너희 두 사람의 험담을 늘어놓은 이는 아무도 없다. 애초에 너희를 대면하기 전까지, 나는 위원후부라는 곳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요컨대, 위원후부 따위는 장공주의 귀에 오르내릴 가치조차 없는 미미한 가문에 불과하다는 일갈이었다.사방에서 비아냥거리는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가당치도 않지, 지들이 대체 뭐라고 저리 유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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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여자 내빈들이 화청에서 차를 음미하는 동안, 남자 내빈들은 외원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이날 연회에는 여러 황자가 참석했는데, 태자와 삼황자, 그리고 구황자 추영우까지 모두 자리를 함께했다. 문벌 세가의 공자들은 자연스레 태자를 중심으로 모여들었으나, 정작 태자의 시선은 줄곧 구황자에게 머물러 있었다."요즘 조정에서 너를 탄핵하는 상소가 제법 올라오더구나."황후 소생의 적장자인 태자는 둘째 황자였다. 그는 열 살의 어린 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어 평생을 법도에 따라 길러진 인물이었다.올해로 서른이 된 그는 어느덧 이십 년째 태자의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황제는 여전히 정정하니, 대체 언제쯤 대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었다."지난번 네가 예고도 없이 호부 우시랑의 집안을 적몰하는 바람에 조정이 온통 술렁이지 않았더냐. 그 일로 불만을 품은 자들이 많으니, 당분간은 매사에 자중하는 편이 좋겠구나."현재 태자의 가장 큰 적수는 귀비 소생의 삼황자였다. 때문에 권력욕도 없이 철부지처럼 구는 아홉째 동생 추영우에게는 유독 너그럽게 대하고 있었다.추영우는 태자가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얹은 손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밀려오는 거부감을 억누르느며 그 손을 쳐내지 않기 위해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그는 짙은 속눈썹 아래로 어두운 눈빛을 감춘 채 순종적인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형님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태자는 추영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나와 네 사이에 이리 깍듯할 필요가 있겠느냐. 기억하거라. 앞으로는 결코 이리 무모하게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혹여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먼저 나를 찾아와 의논하거라."추영우가 툴툴거리듯 응수했다."그 호부 우시랑 놈은 무려 백만 냥이 넘는 은자를 탐하였으니 진작 목이 달아났어야 마땅한 자였습니다. 아바마마께서도 아무 말씀 없으셨거늘, 조정 대신들이란 족속들은 참으로 말이 많군요."그러자 태자가 껄껄 웃었다."네가 아바마마의 총애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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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비록 위원후부가 어느 구석에 처박힌 몰락한 가문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장공주부의 연회에 초청받을 정도라면 나름 쓸 만한 재주가 있을 터였다."결례를 범했구나.""아닙니다. 소인이 경솔하게 군 탓이지요."소명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삼황자는 과연 지난 생과 다름없이 누구에게나 허물없이 대하는 성정이었다."소인이 전하께 급히 아뢸 말씀이 있사온데,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삼황자가 소명준을 찬찬히 살폈다."너는 지금 어느 관직에 몸담고 있느냐?"소명준이 답했다."전하,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삼황자가 다시 물었다."그럼 진사에는 언제 급제했느냐?"소명준은 멋쩍은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전하, 부끄럽게도 소인은 아직 진사에 급제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내년 초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삼황자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명준은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말을 이었다."허나 내년 봄에는 필시 높은 등수로 급제할 겁니다!"진사 급제자도 아니고 조정의 관원도 아닌 자가 대체 무슨 대단한 말을 하겠다는 것인가?이 자, 혹 어디 나사 하나 풀린 것은 아닐까?하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니, 소명준의 눈빛은 맑고 형형하여 마냥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고모인 장공주가 초대한 손님이니 숨은 재주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세상에는 이름 없이 묻혀 지내는 기인이 적지 않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산으로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터였다. 조정의 대권을 쥐기 위해서는 단 한 명의 인재라도 허투루 놓쳐서는 안 되었다."그래. 그럼 걸으며 이야기해 보자구나."그러나 소명준은 오전 내내 서 있느라 다리가 피곤했던 터라, 눈치도 없이 넙죽 대꾸했다."황자 전하, 소인이 다리가 조금 고단하오니 앉아서 얘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삼황자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본인의 다리가 고단하다고 해서, 이 나라의 황자인 나더러 자리를 잡고 앉아 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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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삼황자는 오늘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나사 하나 빠진 놈과 이 귀한 시간을 낭비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겠는가.그는 소명준과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황제께서는 아직 건재하셨고, 태자 또한 한창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자신은 귀비의 소생인 데다 외삼촌들마저 군부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어 처지가 몹시 미묘했다. 온 가문이 황제의 경계를 사고 태자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몸을 한껏 낮추고 있는 판이었다. 부중에 책사를 많이 두지 못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그런데 이 멍청한 놈이 대낮부터 제 앞에서 '용상'이라 떠들어 대고 있으니, 제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모양이었다.삼황자는 이를 악물었다. 이 얼간이가 철관음을 말하던 순간 진작 내쫓았어야 했다.소명준은 삼황자의 돌연한 행동에 어리둥절했다.아직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는데, 삼황자 전하께서 대체 왜 저토록 화를 내며 자리를 뜨신단 말인가?그는 황급히 뒤를 쫓아가며 외쳤다."삼황자 전하! 부디 걸음을 멈추어 주십시오! 소인에게 아직 전하를 위한 계책이 남아 있습니다!"지난 생에 삼황자가 황위에 오르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구황자 추영우가 부왕을 시해하고 형제들을 도륙하는 참극이 벌어졌을 때, 조정에는 그 모든 일이 삼황자의 사주였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 때문에 초기에 대신들은 삼황자의 즉위를 결사반대했다.삼황자가 군권을 동원해 반대 세력을 강압적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충신들이 이에 항거하며 조정의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기까지 했다.그러니 이번 생에는 자신이 미리 판을 짜서 삼황자의 즉위가 더욱 명분 있고 탄탄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었다."삼황자 전하! 소인의 말을 한 번만 들어 주신다면 훗날 용상에 오르시는 길에 그 어떤 걸림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그 순간 삼황자가 홱 몸을 돌렸다. 눈매가 매섭게 치켜올라가고, 눈동자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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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만나기는 만났다만…"소명준은 마치 봄날에 떨어진 꽃잎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그리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삼황자 앞에서 호되게 퇴짜를 맞은 그는 지금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나 격려가 간절한 상태였다.하지만 소명천은 형의 기분을 달래 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그의 눈에 큰형은 변변한 능력도 없으면서 자존심과 허세만 가득한 사람이었다.예전 같았으면 소설아가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차분히 위로해 주었겠지만, 소명천에게는 그런 데 마음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부마께서 사람들을 데리고 정원에 가셨다 합니다. 이만 어머니와 누이들을 찾으러 가시지요.""그러자."두 사람이 남자 손님들을 따라 정원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소명천의 귀에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장공주 마마께 그토록 호된 꾸지람을 듣고도 버티고 있었다니… 낯이 두껍기도 하지.""귀하디 귀한 장공주부의 초청을 받았으니 쉽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겠지. 체면도 잊고 끝까지 눌러앉으려 한 모양이야."소명천은 한쪽에서 민씨를 발견하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어머니, 저 사람들은 대체 누구를 두고 저리 험담하는 것입니까? 누가 장공주 마마의 미움을 사고도 버티고 있었기에 저토록 손가락질을 받는 것입니까?"순간 민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소명천을 노려보듯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옆에 서 있던 소명주의 얼굴도 잿빛처럼 굳어 있었다.반면 철없는 소명지는 처음 보는 화려한 광경에 정신이 팔려 연신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소명천의 얼굴이 굳었다.사람들이 비웃으며 떠들어 대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소명준 역시 삼황자에게 당한 수모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그는 단 한 순간도 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민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등을 곧게 펴고 턱을 치켜들었다."어찌하여 우리가 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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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이 담화는 봉오리가 참으로 탐스럽군요. 아직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만개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이 부인은 평소 담화를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다.비록 아직 개화 전이었지만, 소설아가 들여온 담화가 극상품이라는 사실만큼은 단번에 알아보았다."조만간 더 좋은 품종이 들어오면 사람을 시켜 몇 화분 보내 드리겠습니다."이 부인의 부군은 형부의 여러 요직을 거치며 조정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인물이었다.그러니 이 부인과 좋은 관계를 맺어 두는 것은 소설아에게 손해 볼 일이 전혀 없었다.소설아는 미리 준비해 둔 꽃갈피를 꺼내 단이에게 건넸다.그리고 세가의 부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도록 했다."괜찮으시다면 앞으로 새로운 꽃이 들어올 때마다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소 낭자는 나이도 어린데 어찌 이리 빈틈이 없고 야무진지 모르겠습니다."한 부인이 감탄하며 말했다."듣자 하니 어려서부터 노부인 슬하에서 자랐다지요? 노부인께서 젊으셨을 적에는 여장부로 이름이 높으셨는데, 저도 젊은 시절 몇 번 뵌 적이 있답니다."뜻밖에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소설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 안에는 그리움과 애틋함이 어려 있었다.그때였다.민씨가 장공주부의 하인들을 거느리고 성큼성큼 다가왔다.소명주는 소설아가 명문가 부인들 사이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며 속이 뒤집히고 있었다.'저 사람들은 죄다 눈이 멀어버린 게 분명해!''나 같은 진짜 명문가 규수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어째서 소설아 같은 계집에게 저토록 잘해 준단 말이야!'소설아는 장사꾼 집안에서 자란 데다, 심지어 위원후부의 친혈육조차 아니었다.그런데도 저토록 사람들의 관심과 호의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소명주는 이를 악물었다.어머니가 나서서 소설아의 정체를 낱낱이 들춰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반면, 소명준과 소명천은 소설아의 행동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특히 소명준은 소설아가 이번 생에도 지난 생처럼 큰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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