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Chapter 321 - Chapter 330

336 Chapters

제321화

왕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태… 태워 버린다고요? 소 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도 믿는 구석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저희 뒤를 봐주는 든든한 뒷배도 있단 말입니다…”하지만 눈앞에 늘어선 고문 도구들을 보는 순간, 그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작아졌다.소설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당신들 배후에 있는 자들까지 모조리 뿌리 뽑아 없애면 되겠군요.”왕준은 말문이 막혔다.소설아는 빈틈이 없을 만큼 치밀하고 영리했다. 어설픈 잔꾀 따위는 그녀 앞에서 통하지 않았다.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난 것이었다.소설아가 다시 물었다.“민씨는 어떻게 당신들을 찾아온 겁니까?”소설아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왕준은 더는 속임수를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그는 곧장 입을 열었다.“민씨 부인도 예전에 우리 같은 자들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빠져나가기 위해 다른 먹잇감을 하나 소개해 줬지요. 우리가 그 사람에게서 크게 한몫 챙긴 뒤에야 민씨 부인을 놔준 것입니다.”소설아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랬군.'민씨는 처음부터 피해자가 아니라 상습적으로 얽혀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참으로 재미있는 일이었다.“그 먹잇감은 누구였습니까?”왕준은 본래 말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다.“그 여인은 예전에는 후작 부인의 절친한 벗이었고, 지금은 강북을 관할하는 최고 지방관의 부인입니다.”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린 그 집 문 앞까지 찾아가 은자를 뜯어냈습니다. 하지만 최고 지방관이 계속 승진하는 바람에 보복이 두려워 더는 찾아가지 못했지요.”'그분이었군.'순간 소설아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민씨는 참으로 인면수심이었다.제 목숨을 건지기 위해 절친한 벗을 함정에 밀어 넣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으니 말이다.전생에 소명천이 군영에서 공을 세우고 출세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부인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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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다시 눈을 떴을 때 민씨는 침상에 누워 있었고, 곁에는 웬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민씨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리고는 뒤로 몸을 물리며 날카롭게 외쳤다.“무슨 짓이냐?”“부인,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저희는 부인을 위해 일을 처리해 드렸으니, 약조한 대가를 받으러 왔을 뿐입니다.”왕준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그 눈빛에는 원망마저 서려 있었다.이 멍청한 여자만 아니었다면, 그가 금의위의 표적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인두에 데인 상처가 은근히 욱신거렸다.“어째서 내가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말이냐? 소설아를 너희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나 아니더냐?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가 어찌 소설아에게서 은자를 뜯어낼 수 있었겠느냐? 돈을 좀 벌었다고 의리마저 저버릴 셈이냐?”민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악을 썼다.“오 대인을 불러오너라! 내가 직접 오 대인과 이야기하겠다!”“안심하십시오, 부인. 부인처럼 나이 든 여인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습니다. 다만 부인의 물건 몇 가지를 챙겨 두었을 뿐이지요.”왕준은 새빨간 원앙 수가 놓인 속옷을 흔들어 보였다.“부인께서 아직도 오 대인을 마음에 두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오늘 밤 이곳에서 묵고 가시지요. 제가 오 대인을 불러 회포라도 풀게 해드리겠습니다.”민씨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입에 올린 오 대인이란, 예전에 자신을 속여 사기를 친 바로 그 사내였다.“너, 너… 내 물건을 가져다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민씨가 황급히 몸을 살펴보니, 속옷뿐 아니라 비녀 한 개와 손수건 한 장도 사라져 있었고, 목에 걸고 있던 염주마저 감쪽같이 없어져 있었다.그녀는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달싹였다.“애초에 약조하지 않았더냐! 향로는 너희가 강남으로 가져가 팔고, 경성에서 나는 수익은 내 몫으로 하기로 했잖느냐. 그런데 이제 와 내 물건까지 훔쳐 가다니, 약조를 저버릴 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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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천배취 별실.서경수의 손에는 오색 보석이 촘촘히 박혀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이는 금 밥그릇 하나가 들려 있었다.“가산 몰수는 보름쯤 더 기다려야겠습니다. 그 정도는 지나야 일이 확정될 듯합니다.”소설아가 옅게 미소 지었다.“서 사장님께서 그리 다급하게 저를 부르시길래, 저는 당장이라도 가산을 몰수하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 지난번에 제가 사장님의 은자를 따 간 일로 앙심을 품고 일부러 헛걸음하게 하신 건 아니겠지요?”서경수는 그 말에 소리 내어 웃었다.“사실,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눈앞에서 수만 냥의 은자를 놓친 일을 떠올리니, 지금도 이가 갈릴 만큼 분통이 터졌다.“그보다 구황자 전하께서 우승하실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하는 성미가 워낙 괴팍해서 이런 시합엔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웬일인지 싫은 기색도 없이 끝까지 전력을 다해 장원을 차지하더군요.”소설아는 빙긋 웃었다.“당연히 제 묘책 덕분이지요.”“허풍은 여전하시군요.”서경수는 웃음기를 거두고 이내 정색했다.“원씨 가문의 가산을 몰수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장사판과는 달리 관직 사회는 훨씬 복잡하더군요.”도찰원은 소문만으로도 상소를 올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거리낌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각 부서의 이해관계를 두루 살펴야 했고, 겉으로는 청렴결백하고 법도를 중시하는 관리인 척도 해야 했다.아무리 그의 신분이 높다 해도, 이제 막 도찰원에 발을 들인 신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소설아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그럼 일이 틀어졌다는 말씀이십니까?”“그럴 리가요.”서경수는 입꼬리를 비죽 치켜올리며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다 손써 두었습니다. 아니었다면 제가 뭐 하러 이곳까지 아가씨를 불렀겠습니까?”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보름 후면 좌도어사(都御史: 도찰원의 최고 책임자)와 우도어사가 동시에 지방으로 공무를 나갑니다. 그 틈을 타 제가 직접 폐하께 아뢴 뒤, 조사를 명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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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아…”명심은 그제야 나직이 탄성을 흘리며 미안한 눈빛으로 소설아를 바라보았다.“미안해요, 설아 언니. 명주 언니의 일이 너무 기쁜 나머지 언니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네요.”소설아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내 기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처제나 넘보는 인간쓰레기 따위, 갖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렴. 나도 마침 떼어내지 못해 골치 아프던 참이었거든.”소명주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자, 명심이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설아 언니, 왜 그렇게 말씀에 가시가 돋으셨어요?”소명주가 얼른 거들었다.“명심아, 그만해. 더 말하면 설아 언니 정말 화내겠어.”명심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스쳤다.“아? 설아 언니가 그렇게 속이 좁으셨어요? 하긴 그럴 만도 하겠네요. 같은 집안에서 동생이 먼저 혼인을 치르게 됐는데, 언니는 파혼까지 당했으니 남들 보기에도 민망한 일이잖아요. 설아 언니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해요.”소명주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설아 언니, 태준 오라버니를 원망하진 마세요. 다 제 잘못이예요. 원망하려면 절 원망하세요.”명심은 소명주의 손을 꼭 붙잡았다.“명주 언니, 언니를 원망하다니요. 언니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두 사람이 서로를 감싸며 애정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자 소설아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그녀가 담담히 물었다.“혼례일은 정해졌니? 사주단자는 주고받았고?”소명주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끝났어요.”명심이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설아 언니, 이것저것 캐묻는 걸 보니 설마 후회되시는 건 아니죠? 이미 사주단자까지 오갔으니 이제 와 후회해도 늦었어요.”소설아는 피식 웃었다.“후회는 무슨. 그저 명주에게 큰 선물을 해줄까 해서 물어본 거란다.”소명주는 '큰 선물'이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소설아가 주는 선물 따위는 조금도 탐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소설아가 벌어들인 은자는 모두 자신들의 차지가 될 터였다. 그때가 되면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혼례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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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소명남은 일 처리가 무척 빨랐다. 왕혁 선생의 행방을 찾아내자마자 곧장 소설아에게 소식을 전했다.소설아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벌써 찾으셨어요? 역시 둘째 오라버니께 맡기길 잘했네요. 오라버니, 왕 선생은 어떤 분이신가요?”소명남이 고개를 끄덕였다.“왕혁은 하문 삼년 급제한 진사란다. 본래 남방의 작은 현에서 현령으로 있었는데, 상관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치적이 부실하다는 명목으로 파직당했지. 그 뒤로는 여러 곳에서 책사 노릇을 했지만 성미가 워낙 모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번번이 오래 머물지 못했다고 하더구나. 얼마 전 경성으로 올라와서도 여전히 책사 자리를 구하고 있다는데… 세상에 동명이인이 워낙 많으니, 이 왕 선생이 정말 네가 찾는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구나.”소설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제가 찾던 분이 맞습니다.”왕 선생은 본래 성미가 괴팍했다. 자신의 재능만 믿고 동료들을 업신여겼으며, 심지어 상관조차 안중에 두지 않았다.지략은 뛰어나고 식견도 남달랐지만, 불같은 성격 탓에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충돌을 빚었다.전생에도 그는 우연한 인연으로 당씨 가문에 몸을 의탁했지만 끝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씨 가문은 그의 재능을 높이 사, 훗날 그를 소명준에게 보내 주었던 것이다.소명남의 눈빛이 환하게 밝아졌다.“잘됐구나! 사람을 잘못 찾은 줄 알고 내심 걱정했는데.”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설아야, 조금만 기다리렴. 내가 직접 가서 모셔 오마.”소설아가 웃으며 답했다.“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요.”그렇게 떠난 소명남은 사흘 동안 소식이 없었다.나흘째 되어서야 그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돌아왔다.“설아야, 그 왕 선생이라는 사람이 어찌나 고집이 센지 모르겠다. 설아 너를 위해 일해 달라고 하자마자 단칼에 거절하더니, 입에 담기도 험한 말만 쏟아내더구나.”'여자는 집에서 자수나 놓으면 될 일이지 무슨 책사냐.''은자를 산더미처럼 쌓아 줘도 안 간다.'심지어는 대장부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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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그가 귀담아들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라는 듯, 왕혁의 눈빛에는 깊은 경멸이 어려 있었다.소설아 역시 에둘러 말하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왕 선생님께서 저를 도와, 제가 구황자 전하의 정비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차를 들려던 왕혁의 손이 멈칫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소설아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찻잔 가장자리에 맺힌 김을 후 불어냈다.“방금 뭐라고 했느냐? 몰락해 가는 후작부의 양녀에 불과한 네가?”“예, 그렇습니다.”소설아는 엷게 웃었다.“왕 선생님은 천하를 도모하실 분이신데, 이 정도 일조차 이루지 못하신다면 어찌 더 큰 뜻을 펼치시겠습니까?”왕혁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느새 찻물은 절반쯤 비어 있었다.“이 왕혁은 그런 말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황성에는 아름다운 규수들이 차고 넘친다. 네가 구황자의 정비가 되겠다는 것도 말 몇 마디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 신분으로는 구황자 전하의 시첩 자리조차 과분한 형편이다.”잠시 말을 멈춘 왕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설아를 바라보았다.“내가 듣기로 구황자 전하는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는 데다 성정 또한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더군. 전하에게 접근한 여인들은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도 들었다.”왕혁의 눈빛에 서린 경멸은 한층 짙어졌다.“네 또래의 어린 규수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너무 쉽게 보는 법이지. 자신만은 특별한 존재라 믿고, 방탕한 사내의 마음을 돌릴 수 있고, 악인도 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으며, 냉혈한의 마음마저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헛된 망상일 뿐이다.”소설아는 그저 잔잔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그녀는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왕혁 앞으로 밀어 보냈다.“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빈말만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이 패는 구황자 전하께서 외지로 공무를 떠나시기 전, 제게 직접 맡기신 것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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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왕혁이 뜻을 분명히 밝히자, 두 사람은 그제야 마음을 터놓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소설아는 원씨 가문의 내부 사정을 간략히 설명했다.“보름 뒤, 원씨 가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큰일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찰원에서도 그 혼란을 틈타 가산을 몰수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요. 제 생각에는 어떻게든 원태준과 소명주의 혼례를 앞당겨, 가산 몰수가 두 사람의 대혼 당일 밤에 이뤄지도록 만드는 게 좋겠습니다.”원래 두 사람의 혼례는 반년 뒤로 예정되어 있었다.전생에서는 두 달 뒤 원씨 가문이 가산을 몰수당했고, 반년이 지나서야 가문이 회복되었다.그 시기에 맞춰 혼례를 치렀기에, 소명주는 가문이 몰락한 와중에도 원태준의 곁을 끝까지 지킨 여인이라는 미담을 얻었고, 덕분에 명성 또한 크게 높아졌다.그만큼 명예를 중시하는 소명주가 스스로 혼례를 앞당기려 할 리는 만무했다.바로 그 점이 가장 까다로운 문제였다.천하를 논하는 책사인 왕혁에게 안채 여인들의 암투를 고민하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었다.그런데도 왕혁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나에게 좋은 계책이 하나 있다만, 네가 받아들일지는 모르겠구나.”*춘경원.소명주는 민씨와 마주 앉아 혼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어머니, 집안 형편이 워낙 어려워 제 혼수를 아무리 끌어모아도 만 냥이 채 안 될 것 같아요. 이러다 원씨 가문에서 저를 얕잡아보면 어쩌지요?”혼수라는 말에 옆에서 다과를 먹던 소명지도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민씨는 소명주의 손을 다정하게 토닥였다.“걱정 말거라. 이 어미가 어찌 네 혼수를 소홀히 하겠느냐. 남은 반년 동안 어떻게든 소설아 그년에게서 적어도 십만 냥은 받아내 네 혼수에 보태주마.”소명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흡 또한 가빠지기 시작했다.“시, 십만 냥이요? 그렇게나 많이요? 하지만 소설아에게 정말 그만한 은자가 있을까요?”민씨는 습관처럼 손목을 더듬다가 문득 허전함을 느끼고 손을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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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하녀는 뚜껑을 열어 단팥죽 세 그릇을 꺼냈다. 민씨의 몫인 새알 단팥죽은 단 한 그릇뿐이었고, 나머지 두 그릇은 일반 단팥죽이었다.방금 푹 고아낸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향긋한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맛이 아주 좋은 단팥죽이네요. 어머니,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소명주는 단팥죽을 민씨 앞으로 밀어놓으며 살갑게 말했다.“역시 어머니께서 나서시니, 마침내 그년을 휘어잡으셨네요.”민씨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했다.난화문 측에 소설아를 예전처럼 군말 없이 살림을 도맡게 만들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설마 난화문에서 내게 뜻밖의 선물을 보낸 건가…'민씨는 단팥죽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식감이 부드러워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단팥죽을 모두 비우고도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그녀는 방 어멈을 불렀다.“소설아에게 가서 그년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오너라.”“예, 부인.”방 어멈이 의란거에 이르자, 소설아가 장인들을 지휘하며 집을 손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의란거가 너무 비좁았기에, 서재 겸 향로를 만드는 작업실로 쓸 작은 별채를 하나 증축하려는 참이었다.“큰 아가씨, 부인께서 보내신 것입니다.”방 어멈은 과일 한 접시를 내밀었다.“부처님께 이레 동안 공양 올렸던 과일입니다. 부인께서 큰 아가씨께도 불가의 복을 함께 나누라며 보내셨습니다.”소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하녀에게 과일을 받아 들게 한 뒤, 방 어멈의 손에 은자 두 덩이를 쥐여 주었다.“고맙네, 방 어멈. 돌아가면 부인께 잠시 후 내가 직접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겠다고 전해 주게.”예전 같았으면 방 어멈과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았을 소설아였다.그런데 이번에는 웃으며 감사 인사까지 전한 데다, 후한 하사금까지 내린 것이다.방 어멈도 흐뭇하게 웃었다.“부인께서는 늘 큰 아가씨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큰 아가씨께서 다시 제자리를 찾으신 것 같아 이 늙은이도 참 기쁩니다.”방 어멈에게서 소설아의 반응을 전해 들은 민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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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소명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잘못 짚으신 건 아니에요?”떠돌이 의원이 코웃음을 쳤다.“제가 어찌 맥을 잘못 짚겠습니까? 이 근방 십 리 안에서는 머리만 아파도 다들 저를 찾아온답니다. 두 달만 더 지나면 맥만 짚어도 뱃속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까지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소명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회임한 지는 얼마나 된 건가요?”“한 달 반쯤 되었습니다.”한 달 반.시기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소명주는 은자 한 덩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도망치듯 의원의 집을 빠져나왔다.돌아오는 마차 안에서도 그녀는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분명 피임약도 챙겨 먹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거지?'혼례까지는 아직 반년이나 남아 있었다.그때쯤이면 배가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그런 몸으로 대체 무슨 낯으로 혼례를 치른단 말인가.소명주는 곧장 원태준을 찾아갔다.그녀는 일부러 옅은 화장만 하고 새하얀 치마를 갈아입었다. 머리에도 은비녀 하나만 꽂아 한층 더 청초하고 가련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원태준을 보자마자 소명주는 눈물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형부…”며칠째 소설아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원태준은 소명주가 품에 안겨오자 굳어 있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명주야, 무슨 일이냐?”소명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수건만 만지작거렸다.“어젯밤 꿈을 꿨어요. 원씨 가문이 진왕의 횡령 사건에 휘말려 가산을 몰수당하는 꿈이었어요.”원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그녀를 살짝 떼어내며 말했다.“허튼소리 하지 마라.”소명주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형부, 사실 제가 꾸는 꿈은 거의 다 맞아요. 지난번에도 태자비 마마께서 예정보다 일찍 아이를 낳으실 거라는 걸 꿈에서 보고 채 귀인께 알려 드렸잖아요. 그 덕분에 채 귀인께서 성은을 입으셨고요. 믿기 어려우시면 사람을 시켜 알아보셔도 돼요. 그 일 덕분에 채 귀인께서 힘을 써 주셔서 어머니도 사당에서 돌아오실 수 있었답니다.”태자비의 출산 당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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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민씨가 턱을 꼿꼿이 치켜들었다.“네 향로 가게 말이다. 그중 한 곳을 명주에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사실 민씨도 속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막상 말을 꺼내고도 소설아의 얼굴은 차마 쳐다보지 못한 채, 괜히 고개만 치켜든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설아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셔도 괜찮습니다.”그 말을 들은 순간 민씨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역시 소설아는 이제 완전히 제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민씨는 심호흡을 하며 들뜬 마음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뒤 다시 입을 열었다.“장신구는 내가 미리 준비해 두었다만, 장원이 두 곳 정도 부족하구나. 네가 사람을 시켜 두 곳만 더 마련해 줄 수 있겠느냐?”소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부인 뜻대로 하겠습니다.”민씨는 속으로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 소설아가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한층 더 붙었다.“혼수에 넣어 줄 은자도 필요하다. 적어도 만 냥은 있어야 하고... 아니, 이삼만 냥쯤은 되어야겠지.”“모두 부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민씨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설아야, 내가 널 잘못 봤구나. 역시 넌 착한 아이였어. 이리 와 내 곁에 앉으렴.”소설아는 눈을 살며시 내리깔았다.“부인, 주방에서 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늦어지면 부인 식사 준비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되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마침 민씨도 허기가 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요 며칠 기름진 음식을 실컷 먹은 탓인지 예전보다 배가 빨리 고파졌다.그녀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금 말한 것들은 사흘 안에 준비해서 내게 넘기거라.”소설아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사흘은 너무 촉박합니다. 명주의 혼례는 반년 뒤로 정해진 게 아니었습니까?”민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정이 좀 생겨 혼례를 보름 뒤로 앞당기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갖출 것은 빠짐없이 갖춰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소설아는 옅게 미소 지었다.“부인, 향로 가게는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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