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Chapter 481 - Chapter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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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1화

의원의 진맥 결과,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근심이 지나친 탓에 일시적으로 기혈이 불안정해져 기절한 듯싶습니다.”연화 군주는 침상 곁에 앉아 월하의 손을 꼭 쥔 채, 고개를 돌려 하녀에게 물었다.“월하가 어찌 그리 근심이 많다는 게냐? 요새 학업이 버거운 것이냐?”하녀가 조심스레 대답했다.“군주 마마, 스승님께서 과제를 지나치게 내주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가씨께서 워낙 기준이 높으셔서, 매사를 완벽하게 해내려 하시다 보니 조금 무리를 하신 듯합니다.”안 대인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월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월하는 참으로 착한 아이로구나.”그러고는 곧장 하인에게 일렀다.“주방에 일러 매일 월하에게 보양식을 만들어 올리게 하여라.”“예.”하녀는 반쯤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한 뒤 조용히 물러났다.안 대인은 연화 군주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주물러 주었다.“월하가 너무 말랐소. 방금 월하를 안아 들었는데, 어찌나 가벼운지 새털처럼 느껴지더군.”연화 군주가 수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평소 입맛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데… 대체 무슨 일로 이토록 속앓이를 한 건지 모르겠군요.”잠시 후, 월하가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어머니, 아버지. 제가 불효하여 두 분께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월하가 몸을 일으켜 예를 갖추려 하자, 연화 군주가 서둘러 만류하며 다시 눕혔다.“누워서 쉬거라. 한 식구끼리 그런 허례허식은 차릴 것 없다.”“감사합니다, 어머니.”“말해 보렴. 요새 무슨 일로 그리 수심에 잠겨 있었던 게냐?”연화 군주가 부드럽게 물었다.월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설아 아가씨 일로 생각이 많았습니다.”연화 군주가 되물었다. “설아가 어쨌다는 게냐?”월하는 앞서 설현정이 했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했다.“어머니께서 설아 아가씨를 수양딸로 들이려 하신다는 걸 알고 속이 퍽 상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머니의 총애를 남과 나누고 싶지 않았거든요.”월하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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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화

설연준은 소설아의 등 뒤에 서서, 무심한 듯하면서도 그 안에 경멸을 감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설씨 가문은 태후와 태자비의 친정이었다. 평국공 세자라는 존귀한 신분의 설연준은 태생부터가 말할 수 없이 고귀했다. 금관으로 틀어 올린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한 가닥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했고, 온몸에서 귀티가 흘렀다.그런 그에게 소설아의 거절은 그저 ‘주제도 모르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소설아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나 그와의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저는 도련님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혹여 사람을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설연준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리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나를 모른다고?”그 말에는 ‘이토록 고귀한 나를 네가 모를 리 있느냐?’라는 오만한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런 수작으로 내 주의를 끌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마라.”소설아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도련님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기에, 제가 반드시 알아야 한단 말입니까?”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비꼬듯 말을 이었다.“아니면 도련님께서 재주가 출중하여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대단한 작품이라도 쓰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만인의 존경을 받을 만한 큰 공이라도 세우셨는지요?”말씨에는 은근한 경멸이 짙게 배어 있었다.“방자하구나! 어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이분은 평국공 세자 저하이시다!”설연준의 곁에 있던 시종이 버럭 호통을 쳤다.소설아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하, 평국공 세자 저하셨군요. 그저 남들보다 부모를 잘 만나 태어난 것뿐이지, 딱히 대단한 인물도 아닌데 제가 모르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시종이 삿대질하며 성을 냈다.“함부로 주둥이를 놀리지 마라! 네가 여인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흠씬 두들겨 팼을 것이다!”소설아가 곧장 응수했다.“평국공부의 법도는 참으로 대단하기도 하군요. 초면인 여인의 머리에 다짜고짜 꽃을 꽂으려 들더니, 말 한마디 거슬린다고 사람을 치려 들다니요.”소설아는 차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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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설연준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번뜩이는 음침한 기운이 눈동자를 스치고 지나갔다.“네가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 저 계집이 화친왕을 꼬드겨 현정이의 일을 망쳐놓았거늘.”그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내가 저 계집을 들이려는 건 저택에 앉혀놓고 호강이나 시켜주려는 게 아니다. 내게 참견할 자격이 없다고 했지? 우리 국공부에 발을 들이기만 해보라지. 법도란 게 무엇인지 뼈저리게 가르쳐줄 터이니!”*화연이 끝날 때까지도 연화 군주는 끝내 수양딸을 들이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안 대인의 저택을 나설 즈음, 설현정의 눈에 깃든 득의양양한 기색은 도무지 감춰지지 않을 정도였다.“아가씨, 실망하셨나요? 아, 아니지. 조만간 위원후부로 훨씬 더 실망스러운 소식이 전해질 텐데요.”설현정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우리 설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 아가씨가 감히 건드려도 될 상대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될 테니까요.”소설아는 설현정을 힐끗 바라본 뒤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아가씨는 말싸움에서 밀리니 세자 저하를 내세워 저를 모욕하시는군요. 설씨 가문의 가풍이 참으로 훌륭합니다.”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오라비와 누이가 짝짜꿍이 되어 연약한 여인 하나를 괴롭히는 게 그리도 득의양양할 일입니까?”설현정의 안색이 단숨에 굳어졌다. 평소의 차분하던 기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우리 국공부에 들어오고 나서도 그 주둥이를 나불대나 한번 보지요. 제가 기필코 큰 오라버니께 아뢰어 아가씨의 이를 몽땅 뽑아버리라 할 테니!”소설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국공부에 들어간다고요? 제가 대체 왜 거길 들어갑니까?”잠시 생각에 잠겼던 소설아는 이내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설마 세자 저하께서 저를 첩으로 들이시기라도 한단 말입니까?”설현정은 소설아가 몇 마디 말만으로 자신의 속내를 단박에 꿰뚫어 볼 만큼 눈치가 빠를 줄은 미처 몰랐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고, 이내 황급히 부인했다.“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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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4화

평국공부 본채.평국공 부인이 상석에 앉아 아래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현정아, 궁에서 온 상궁에게 대체 무얼 배운 게냐? 어찌하여 보는 눈이 그리도 많은 곳에서 근본도 모르는 여인과 실랑이를 벌여 내 귀에까지 그 이야기가 들어오게 해? 그 아이는 몰락해 가는 후작부의 수양딸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너는 우리 설씨 가문의 적녀가 아니냐. 얼마나 많은 눈이 널 주시하며 네가 흉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정녕 모른단 말이냐! 네가 그동안 쌓아 온 교양과 품위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설현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어머니, 그 소설아란 계집애가 워낙 교활하고 파렴치한 데다 입만 살아서요. 전 여태껏 그렇게 뻔뻔한 천것… 아니, 여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소설아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다시금 울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소설아가 당장이라도 죽어버렸으면 싶었다.평국공 부인이 차갑게 말했다.“우선 흥분부터 가라앉히고 대답하거라.”말을 마친 부인은 찻잔을 들어 올려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차 한 잔을 마실 만큼의 식경이 지나자, 평국공 부인이 다시 설현정을 바라보았다.“이제 좀 진정이 되었느냐?”설현정은 한결 누그러진 안색으로 대답했다.“네, 어머니. 진정되었습니다.”평국공 부인이 물었다.“이제 말해 보아라. 대체 그 소씨 아가씨가 무어라 했기에 네가 이리도 화를 낸 것이냐?”설현정은 그제야 차분하게 일의 전말을 털어놓았다.평국공 부인은 찻잔을 든 채 냉정하게 상황을 짚어 나갔다.“현정아, 다음에 또 마주치게 되거든 십분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절대 먼저 시비를 걸지 말거라. 넌 그 아이의 적수가 되지 못해.”“우리 설씨 가문의 규수는 밖에서 남과 얼굴을 붉혀서는 안 된다.”설현정이 고개를 숙였다.“예, 어머니. 명심하겠습니다.”입으로는 순순히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국공 부인은 그 기색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수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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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5화

설씨 남매는 겉보기에는 군자처럼 점잖아 보였지만, 실은 속이 몹시 좁은 사람들이라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이튿날 아침 일찍, 화초 가게에서 전갈이 왔다.“큰 아가씨, 왕 선생님께서 뵙기를 청하셨습니다.”소설아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리 빨리 소식이 올 줄이야.”그녀는 서둘러 채비를 마친 뒤 곧장 화초 가게로 향했다.화초 가게 이층의 아담한 방에는 왕 선생이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안색이 영 좋지 않았다.소설아는 왕 선생이 무슨 큰일이라도 알아낸 줄 알고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 그러나 왕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큰 아가씨, 제 생각에 아무래도 속은 것 같습니다.”소설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왕 선생님같이 지략이 뛰어나신 분을 대체 누가 속였단 말입니까?”왕 선생은 손에 든 산가지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당연히 큰 아가씨지요. 큰 아가씨께서 처음 저를 부르실 때만 해도 분명 큰일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하셨지요. 허나 그동안 제가 한 일이라곤 화초 가게를 관리하거나 뒷방 여인들의 암투에 얽힌 게 전부 아닙니까. 전 완전히 속았습니다.”허구한 날 뒷방 여인들과 기싸움이나 벌이고, 그것도 민씨처럼 머리가 텅 빈 상대를 상대하고 있으려니 왕 선생은 제 몸에 곰팡이가 필 지경이라고 느꼈다.소설아가 가볍게 웃었다.“그런 이유셨군요. 왕 선생님, 지금 당장 선생님께서 나서 주셔야 할 아주 중대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다만 아직 사전 준비가 미흡하여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을 뿐입니다.”왕 선생이 손에 든 산가지를 툭 던지며 말했다.“말씀해 보시지요. 그 중대한 일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만약 또 뒷방의 자잘한 다툼 따위라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소설아가 단이를 흘끗 바라보자, 단이는 곧장 방 밖으로 물러나 문을 굳게 닫았다.왕 선생이 피식 웃었다.“큰 아가씨, 괜한 수작 부리지 마십시오.”처음 만났을 때도 큰 아가씨는 저런 식으로 허세를 부려 자신을 속아 넘어가게 했었다.소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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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수희가 계속해서 말했다.“제가 방금 그 유모와 몇 마디 나누어 보았는데, 부원 대장군께서 상경하여 직무를 보시는 김에 하나뿐인 적자를 데리고 와 진찰을 받게 하시는 거라 합니다. 듣자 하니 벌써 네 살인데도 말 한마디를 못 한다더군요. 저리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꼬마의 목소리는 보드랍고 앳되었으며, ‘어머니’라는 단어를 아주 또렷하게 발음했다. 벙어리일 리가 없었다.소설아는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본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부원 대장군의 집안일이니, 그녀가 섣불리 나서서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엿 사세요! 달고 맛있는 엿이요!”때마침 한 엿장수가 엿이 가득 담긴 광주리를 메고 지나갔다.소설아는 생각에서 깨어나 품에서 자잘한 은자 한 닢을 꺼내 행상인을 불러 세웠다.“여기 있는 거 다 다오.”수희가 놀라 물었다.“큰 아가씨, 이렇게 많이 사서 다 드실 수 있겠습니까?”소설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저택에 가져가서 다 같이 나눠 먹으려고.”엿은 소명지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예전의 그녀는 소명지에게 사다 주기만 바빴지, 정작 자신은 제대로 먹어 보지 못했다. 나중에는 소명지를 위해 직접 만드는 법까지 배웠지만, 그때도 남은 자투리나 주워 먹었을 뿐 온전하게 한 덩이를 다 먹어 본 적은 없었다.소설아는 엿이 가득 담긴 볏짚 단에서 하나를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정말 맛있었다.그녀도 단것을 좋아했다. 달콤한 음식은 늘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다.전생에는 위원후부의 그 배은망덕한 인간들만 생각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그러니 이번 생에는 먼저 자신에게 잘해 주는 법부터 배울 것이다.“눈도 오니 양고기를 좀 사서 집으로 돌아가 전골이나 끓여 먹자꾸나.”소설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양고기를 사서 큰어머니 댁에 좀 보내 드려야겠다. 아니, 아예 고기를 넉넉히 사 들고 곧장 큰어머니 댁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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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7화

가만히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수양딸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소설아를 돕고 싶었을 뿐이다.아마 안호연과 담소를 나누던 중, 그가 한마디 거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그가 했던 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정말 마음이 맞는다면 수양딸로 삼는 것도 좋소. 연화, 당신도 딸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니까.”그녀는 진심으로 소설아가 마음에 들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묘하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수양딸로 들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소설아가 가볍게 웃었다.“군주 마마께서는 저를 가엾게 여기셨군요. 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감사드리옵니다.”소설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로 말했다.“군주 마마와 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이리 도와주시려 하니, 참으로 제 평생의 큰 행운입니다. 하오나 군주 마마, 저는 동정이나 적선 같은 보호는 필요 없습니다. 비록 신분은 미천하나, 제 나름의 줏대가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모정을 느껴 본 적이 없어 늘 그것을 갈망해 왔습니다. 허나 마마께서 단지 동정심 때문에 그러신 것이라면, 그 호의는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모녀간의 정은 동정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차분히 말을 이었다.“그러니 마마께서도 제게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 없습니다. 마마의 마음이 이토록 순수하고 선하시니, 마마를 알게 되고 이리 연을 이어 가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그녀의 말투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조곤조곤했다. 마치 맑은 샘물이 돌에 부딪혀 흐르는 소리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비록 거절의 뜻을 전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오히려 한결 화기애애해졌다.연화 군주의 눈에 소설아는 마치 바위틈에서 피어난 푸른 풀잎처럼 보였다. 아름답고 질긴 생명력을 지녔으며, 온몸에서 고집스러우면서도 생생한 활기가 뿜어져 나왔다.“내 생각이 짧았구나. 그날 화연에서 꺼내지 않길 다행이지. 하마터면 서로 무안해질 뻔했어.”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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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8화

이튿날 아침 일찍, 명심이 첩실 차림으로 찻잔을 들고 와 소명주에게 올리고 나서야, 소명주는 어젯밤 두 사람이 동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소명주는 화가 치밀어 머리끝까지 열이 뻗쳤다.“명심이 너! 부군께서 피골이 상접할 만큼 야위셨는데, 갓 돌아오신 분을 며칠쯤 쉬게 해드릴 수는 없었느냐?!”명심은 찻잔을 든 채 몹시 억울하면서도 요염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제가 먼저 다가간 게 아니에요. 사촌 오라버니께서… 언니, 오라버니를 탓하지 마세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너무 다정하게 구는 바람에 오라버니께서 그만 참지 못하신 거예요. 화나신 게 있다면 전부 제게 푸세요.”명심은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했지만, 눈빛에는 도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얄미운 여우 같은 말투에 소명주는 기가 막혀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소명주는 찻잔을 받아 들자마자 그대로 명심의 얼굴을 향해 확 끼얹어 버렸다.“아앗, 뜨거워!”명심은 얼굴 한쪽을 감싸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사실 찻물은 전혀 뜨겁지 않았다. 소명주가 발끈할 것을 미리 예상한 명심이 찻잔에 일부러 미지근한 물을 담아 두었던 것이다.조카딸이 괴롭힘당하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명씨가 나서서 거들었다.“명주야, 너는 몸에 상처도 있지 않니. 심이가 태준이를 보살피는 건 너를 위해 짐을 덜어 주는 것이야!”소명주가 따져 물었다.“부군은 그걸 좀 못 참으신답니까?! 이제 갓 출옥하셨는데, 며칠 몸을 추스를 생각은 안 하시고요?!”명씨는 제 아들이 억울한 소리를 듣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혈기 왕성한 사내가 옥에 그리 오래 갇혀 있었는데, 어찌 참을 수 있었겠니? 네가 당분간 태준이 수발을 들지 못하니 심이가 대신 도와준 건데, 그게 뭐가 어때서? 게다가 태준이는 앞으로도 첩을 들여야 할 텐데!”명씨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덧붙였다.“설마 우리 원씨 가문이 몰락했다고, 평생 너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소명주는 골치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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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9화

소명주는 원태준을 부축하던 손을 멈칫하고 물었다.“부군, 오늘은 제 친정에 가는 날인데, 어찌하여 심이까지 따라온 것입니까?”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억울한 눈빛을 지었다.원태준도 과연 조금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명심아, 매사에는 분수가 있는 법이다. 넌 어서 돌아가거라.”그러자 명심이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사뿐히 예를 올렸다.“언니, 오라버니. 오해하지 마세요. 언니 눈에 거슬리려고 온 게 아니라,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께서 저를 손님으로 초대하셔서 온 거랍니다.”소명주가 미간을 찌푸렸다.“설아 언니가? 널 왜 불렀는데?”명심은 우물쭈물 입술을 깨물다가 대답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원씨 가문의 형편을 물어보고 싶으셨나 보죠? 큰 아가씨께서도 다 좋은 뜻으로 그러셨을 거예요.”소설아가 명심을 부른 것은 당연히 소명주의 속을 뒤집어 놓기 위해서였다.전생에 명심은 소설아의 속을 적잖이 썩였었다. 이번 생에는 소명주가 그토록 애를 써 원태준을 빼앗아 갔으니, 소설아는 당연히 명심까지 함께 얹어 줄 작정이었다.명심의 말을 들은 원태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소설아가 원씨 가문을 걱정한다고?아직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원씨 가문이 적몰당한 뒤, 원태준의 지위는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로 인해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 정도 자격지심도 생겨난 상태였다.하지만 소명주와 명심이 자신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꺾였던 자신감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그런데 소설아마저 남몰래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원태준은 잃었던 자신감을 어느 정도 되찾은 기분이었다.원태준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명주야, 심이는 신경 쓰지 말고 그만 들어가자. 장모님께서 애타게 기다리시겠다.”소명주는 뒤따라오는 명심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안으로 들어서자 원태준은 소명준의 권유를 받아 뜰로 나가 차를 마셨고, 소명천도 곁에 자리를 함께했다.한편 소명주와 민씨는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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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0화

방 어멈은 또다시 벌을 받게 되었다.민씨는 연화 군주의 화연에서 돌아오자마자 방 어멈을 곳간에 가두어 버렸다.오늘 소명주가 친정에 오자, 민씨는 방 어멈을 불러들이자마자 무릎부터 꿇게 했다.“지난번 살을 벨 때 여의원을 부른 것도 너였고, 이번에 연지와 연락을 취한 것도 너였지.”민씨는 독기가 서린 눈으로 방 어멈을 노려보았다.“방 어멈, 내 너를 결코 박대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번번이 나를 배신하는 것이냐?!”방 어멈은 백 마디를 해도 변명할 길이 없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쉴 새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부인, 둘째 아가씨. 이 늙은 종은 결코 부인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부인께서 시집오실 때부터 모셔 온 사람으로서 한결같이 충심을 다해왔거늘, 어찌 감히 부인을 배신하겠습니까?! 부인, 부디 통촉해 주시옵소서!”민씨가 따져 물었다.“그럼 말해 보아라. 연지 낭자의 일은 대체 어찌 된 것이냐?!”방 어멈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대답했다.“부인께서 주신 은자는 제가 연지 낭자에게 남김없이 다 건넸습니다. 연지 낭자도 흔쾌히 승낙했건만, 어찌하여 갑자기 말을 바꾸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필시 큰 아가씨와 연지 낭자가 서로 짜고 둘째 아가씨를 모함한 것이 틀림없습니다!”지난번에는 소명주가 방 어멈을 거들어 주었지만, 이번에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 역시 방 어멈의 충심만큼은 믿었다. 하지만 너무나 무능했다. 무능한 자에게 충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이제는 어머니 곁을 지키는 사람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민씨는 한참 동안 방 어멈을 추궁했지만 끝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방 어멈은 계속해서 곳간에 갇혀 있어야 했다.곳간 안은 음습하고 차가웠다. 방 어멈은 구석에 웅크린 채 두 팔로 몸을 감싸 안았지만, 서늘한 바람은 쉴 새 없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곳간에 갇힌 뒤로는 하루에 밥 한 끼만 나왔다. 그래도 민씨 곁에서 가장 신임받던 어멈이었던 터라, 비록 죄를 지었다 해도 며칠 지나면 다시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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