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Chapter 651 - Chapter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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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1화

배 도령의 손은 여리고 작았지만, 소설아를 끌어안은 힘만큼은 제법 단단했다.새까만 커다란 눈동자에는 마치 별빛이 가득 담긴 듯 반짝였다.그 순간, 화청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설아에게 쏠렸다.소명주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꽉 움켜쥔 채, 눈빛에 짙은 독기를 드러냈다.안호연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소명주의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린 순간, 그동안 애써 감춰 두었던 억울함이 눈빛에 은근히 배어 나왔다.화청 안에는 낯선 중년 사내가 더 자리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은 검을 벼린 듯 또렷했고, 별빛처럼 맑게 빛나는 눈매와 준수한 용모를 지닌 사내였다. 그는 선의가 어린 눈빛으로 소설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어느 댁 도련님이시죠? 사람을 잘못 알아보셨나 보네요?”배 도령이 품에 매달려 있어 꼼짝할 수 없었던 소설아는 몸을 숙여 아이를 안아 올렸다.“몇 번이나 잘못 알아보시네요.”배 도령은 소설아의 품에 안기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을 두 팔로 감싸고는 머리를 기대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를 그리워했던 아이처럼 애틋한 모습이었다.그때 연화 군주가 뒤따라 화청 안으로 들어왔다.“부군, 대체 어찌 된 일이에요? 왜 설아를 부르셨어요?”연화 군주는 소설아가 배 도령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대략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배 도령이 분명 설아를 보고 말을 했는데, 안호연이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하려다가 배 장군에게 들통난 게 틀림없었다.안호연이 해명했다. “화연 당일, 배 도련님이 본 사람은 설아였소. 내가 착각했구려.”연화 군주는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그랬군요.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어요. 잘못 알았다가 자칫 장군님의 큰일을 망칠 뻔했잖아요.”연화 군주는 소명주가 잘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소명주가 배 장군에게 다가갈 기회를 얻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속이 영 편치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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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2화

유모의 입에서 나올 말이 결코 곱지는 않을 터였다.소명주는 말을 마친 뒤, 소설아가 망신을 당할 순간만을 기다렸다.소설아는 아이를 안고 있다 보니 콧잔등에 살짝 땀이 맺혔다. 그녀는 배 도령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으며 물었다.“혼자 잠시 서 있어 보시겠어요?”배 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설아가 웃으며 말했다.“들을 수 있다는 건, 말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 그냥 말하기 싫은 것이지요?”배 도련님은 통통한 뺨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더니, 이내 눈빛을 서늘하게 굳히며 입을 열었다.“저 사람들처럼 어리석은 자들에게 제가 어찌 긴 말을 하겠습니까? 이토록 우둔하여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시니, 더 말해 봐야 제 입만 아플 뿐입니다.”목소리는 여리고 부드러웠지만, 발음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또렷했다.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이제 겨우 네 살 반에 불과한 아이가 처음 입을 열면서부터 이토록 복잡하고 어른스러운 말을 하다니. 어딘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배 도령이 이토록 속을 감추고 있던 아이였다니!배율승은 얼굴을 가린 채, 조금 민망한 기색을 보였다.그 말은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예전에 부하를 꾸짖을 때도 아들을 곁에 두곤 했는데, 아이가 그 말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고스란히 외워 버린 모양이었다.평소 말수가 적은 데다 어리석은 자와는 아예 말을 섞지 않던 그였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들의 이 ‘벙어리 증세’가 어쩌면 자신을 보고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배율승은 그저 속이 다 후련했다. 오늘 이곳에 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소설아가 배 도령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그런 말은 앞으로 하면 안 돼요. 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를 지켜야지요.”배 도령은 포동포동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소설아에게 공손히 예를 올리며 말했다.“어머니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소자, 명심하겠습니다.”연화 군주가 흐뭇하게 웃었다.“정말 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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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3화

배율승은 소설아의 얼굴에 스친 의아한 기색을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지붕 위에 수상한 자가 하나 있습니다.”소설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혔다.분명 화친왕 전하셨거늘, 어찌 배 장군의 입을 거치고 나니 졸지에 ‘수상한 자’가 되어 버린단 말인가.그녀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름 없는 협객이라도 되는 모양이네요.”“아닙니다, 아닙니다.”배율승은 곤히 잠든 아이를 유모에게 건네며 암기가 날아온 방향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쫓았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걸 보니 필시 속셈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소 아가씨께서는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방금 그자는 무공이 상당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소 아가씨를 노린 듯합니다.”소설아는 속으로 생각했다.‘정확히 맞는 말이네. 정말로 나 때문에 오신 거니까.'그녀와 화친왕 사이에는 남모르는 인연이 있었다.남들이라면 누군가 몰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겠지만, 소설아는 오히려 그렇게 관심받는 느낌을 즐겼다.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전하의 눈에는 오직 그녀 하나뿐이었으니까.“장군께서 괜한 걱정을 하시는군요. 저는 그저 규방에 머무는 여인일 뿐인데, 무공이 그리 뛰어난 자가 대체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겠습니까?”배율승이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 아가씨를 찾아오기까지 저는 적잖이 먼 길을 돌았습니다. 지위와 권세를 가진 몇몇 분들이, 제가 소 아가씨와 접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시더라고요.”평국공도, 안 대인도, 처음에는 하나같이 진실을 숨기고 감추며 알려주지 않았다.“제가 소 아가씨께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장군의 염려에 감사드립니다.”소설아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소매 속에 감춘 손은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장군, 방금 던지신 암기는 그자를 맞혔나요?”배율승이 고개를 끄덕였다.“맞혔습니다. 급소는 피했지만, 그자 역시 적잖은 상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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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4화

“유방에 멍울이 생겼다고요?!”소명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중년 부인들이나 걸린다는 그 화병이 아니던가.이렇게 젊은 자신이 어째서 그런 병에 걸렸단 말인가?!의원이 온 김에 민씨도 진맥을 받았다.진맥 결과 민씨 역시 유방에 멍울이 있었지만, 소명주만큼 심하지는 않았다.의원이 물러가자 민씨는 딸을 품에 끌어안고 달랬다.“걱정 말거라. 약 잘 챙겨 먹고 마음만 다스리면 곧 나을 게다.”“어머니, 제 병은 전부 그 천한 년, 소설아 때문에 생긴 거예요. 그 년이 불운을 겪는 걸 제 눈으로 봐야만 이 병도 나을 것 같아요.”소명주는 소설아가 배 장군과 얽힌 일을 떠올릴 때마다 목구멍에 끈적한 가래가 걸린 듯했다. 뱉어 내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속만 답답하고 불쾌했다.민씨가 이를 악물었다.“명주야, 걱정 마라. 어미가 도와주마. 다음에 도관에 재를 올리러 갈 때, 이미 그 애를 손봐줄 방법을 생각해두었단다."소명주가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들었다.“어머니, 둘째 오라버니가 그러셨잖아요. 소설아가 기꺼이 돈을 내놓게 하려면 잘해줘야 한다고요.”민씨가 소명주의 귀에 바짝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어미도 안다. 잘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겉치레일 뿐이지. 때가 되면 도사에게 은자를 넉넉히 쥐여주고, 아무도 모르게 법술을 부리게 하면 된단다…….”민씨의 말을 듣는 동안 소명주의 입가에는 점점 짙은 미소가 번졌다.*어둠이 내려앉자 소설아는 방 안에서 조용히 화친왕 전하를 기다렸다.전하는 늘 어둠을 틈타 그녀를 살피고는, 밤이 깊어지면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오곤 했다.소설아는 상염을 품에 안고 턱 밑을 살살 긁어 주었다.고양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목구멍에서 그르렁 소리를 냈다.그런데 갑자기 상염이 그르렁거림을 뚝 멈추더니 눈을 번쩍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꼬리까지 바짝 치켜올랐다.소설아는 이것이 전하가 왔다는 신호임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두어 번 숨을 쉬기도 전에 상염의 경계심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내 아무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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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5화

이날 밤, 상염은 유난히 이상했다. 한동안 경계하는가 싶으면 이내 긴장을 풀었고, 잠시 후에는 또다시 귀를 쫑긋 세우며 주위를 살폈다.그럴 때마다 소설아는 전하께서 오신 줄 알았지만, 상염은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편안하게 몸을 늘어뜨렸다.그렇게 밤이 깊어지도록 전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소설아가 일어나 단장을 하고 있을 때 단이가 찾아와 소식을 전했다.“큰 아가씨, 듣자 하니 어젯밤 후부에 도둑이 들었다고 합니다.”“도둑이 들었다고? 후부에서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있느냐?”소설아가 물었다.단이가 고개를 저었다.“잃어버린 것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사랑채 지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합니다.”소설아가 가서 보니, 관사가 하인들에게 지붕을 손보라고 지시하고 있었다.“대체 무슨 일이냐?”관사가 대답했다.“큰 아가씨, 아무래도 지붕 위에서 누군가 싸움을 벌인 듯합니다. 보아하니 목숨을 걸고 싸운 모양인지, 다툼이 아주 치열했던 듯합니다.”사랑채 지붕은 거의 뜯겨 나가다시피 했고, 벽에도 구멍이 여러 군데 뚫려 있었다.부서진 기와 조각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탁자와 걸상도 다리가 부러지는 등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사랑채는 소설아의 처소에서 꽤 떨어져 있었고, 어젯밤에는 바람 소리마저 유난히 거셌던 탓에 그녀는 아무런 소란도 듣지 못했다.소설아는 바닥에 흩어진 기와 조각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사이에서 낯익은 쪽빛 천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설마… 전하께 드린 향낭인가?’“큰 아가씨, 기와가 떨어져 다치실 수 있으니 조금 물러나 계시옵소서.”관사가 조심스레 말했다.소설아는 사람을 시켜 쪽빛 천 조각을 주워 오게 했다.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자신이 전하께 드렸던 향낭이었다.향낭에 달린 술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고, 실이 끊어진 자리를 보니 억지로 잡아뜯긴 흔적이 역력했다.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향낭에는 희미하게 피 얼룩까지 남아 있었다.‘전하께서 어젯밤 다녀가신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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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6화

연희장에는 대갓집 여인들을 위한 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일층의 남자 손님들이 앉는 관람석과는 떨어져 있어 비교적 조용하고 은밀한 공간이었다.소설아는 별실을 두 개 잡았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단이와 수희를 옆 별실로 들여보내고, 홀로 조용히 전하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등 뒤에서 익숙하면서도 끈적한 기척이 느껴졌다.전하가 오신 것이다.그때였다.갑자기 별실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소설아는 의아했다. 전하께서 언제부터 이리 예의를 차리셨기에 먼저 문까지 두드리신단 말인가?문을 열어 보니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아가씨, 이것은 공연장에서 별실 손님들께 내어 드리는 천리안입니다.”사내는 두 손으로 천리안을 받쳐 들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별실이 무대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낭자께서 공연을 잘 보지 못하실까 염려되어 가져왔습니다.”소설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전에는 없던 물건인데, 어찌 된 일이지요?”천리안은 값이 만만치 않은 물건이었다. 사용하다가 조금이라도 망가진다면 공연장으로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타국에서 들여온 진귀한 물건이라 경성을 통틀어도 몇 점 찾아보기 어려울 터였다.그런 망원경을 별실마다 하나씩 마련해 두었다니, 이쯤 되면 공연장 주인이 무슨 황자라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상대가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자 사내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손님들의 요청이 있어 최근에야 시험 삼아 마련한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소인은 이 공연장의 젊은 주인입니다. 편히 사용하시고, 다 보신 뒤 탁자 위에 놓아두시면 점원이 알아서 거두어 가겠습니다.”소설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리안을 받아 들었다.“감사드립니다.”천리안에서는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젊은 주인의 체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다.소설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천리안을 건네받는 순간, 두 사람의 손가락이 스쳤다.사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희미하게 그의 숨결까지 느껴졌다. 소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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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7화

“전하, 어제 후부에 오셨으면서 어째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어요?”소설아가 고개를 돌려 둘러보았지만, 별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녀 혼자뿐이었다.‘전하는 대체 어디에 계신 걸까.’수줍음이 많은 전하는 언제나 몸을 숨길 곳 하나쯤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곤 했다.“일이 있었다.”추영우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뚝뚝했고, 말수는 여느 때처럼 지독히 적었다.소설아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자세를 바로잡아 앉았다.그때 전하께서 말을 이을 때마다 뒷목으로 은은한 온기가 스쳐 갔다. 마치 누군가 목덜미에 가만히 숨결을 불어넣는 듯했다.별실이 좁은 탓인지, 공기가 답답해서인지, 옅은 숨결 사이로 화친왕 특유의 단향 냄새가 은은히 풍겨 왔다.소설아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전하, 어젯밤 후부 사랑채 지붕에서 누군가와 싸우셨다면서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추영우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다칠 리가 있겠느냐. 네가 걱정해야 할 것은 내가 그자를 때려죽였느냐 아니냐겠지.”그 말투만 들어도 승부는 전하의 완승이었던 모양이다.소설아는 고개를 숙인 채 살짝 웃었다.오만하고 새침한 전하는 좀처럼 제 패배를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하지만 상염의 반응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전하, 그리 크게 이기셨는데, 어째서 저를 보러 오지 않으셨어요?”소설아가 코끝을 훌쩍이며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저는 밤새 전하를 기다렸는걸요.”추영우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팔뚝은 아직도 퉁퉁 부어 있었고, 시퍼렇게 멍까지 들어 있었다.얼굴에도 핏자국이 두 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어젯밤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주는 흔적이었다.배율승은 결코 헛된 명성을 얻은 자가 아니었다.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추영우 역시 쉽게 그를 쓰러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오히려 배율승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어젯밤 싸움에서도 추영우는 딱히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다만 자신이 상처를 입은 만큼, 배율승의 얼굴에도 그에 못지않은 흔적을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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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8화

관람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소설아가 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전하, 나오셔서 저와 함께 앉아 주시면 안 될까요?”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추영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미리 말해두는데 얌전히 굴거라. 내게 함부로 손대지 말고.”소설아는 살짝 웃었다.전보다 많이 나아지셨다. 예전 같으면 대뜸 거절부터 하셨을 텐데, 이제는 이렇게 한마디 타박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는가.“싫어요. 저는 꼭 전하께 손을 댈 거예요.”추영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번에는 한술 더 뜨는군. 아직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다니.정말이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내가 나가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소설아는 고개를 숙인 채 몰래 웃었다.“제가 먼저 전하를 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이렇게 일부러 여기까지 저를 만나러 오셨으면서, 어찌 안 나오시겠어요?”추영우는 다시 말이 없었다.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소설아가 다시 물었다.“전하, 아직 계세요?”“있다.”소설아가 또 물었다.“전하, 부끄러우신 거예요?”“흥.”추영우가 짧게 코웃음을 쳤다. 이내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내가 부끄러울 리가 있겠느냐?”소설아가 재촉하듯 말했다.“부끄럽지 않으시다면, 어서 나오세요.”추영우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어쩐지 무언가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말에 휘말려 버린 기분이었다.한 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추영우가 별실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소설아가 일부러 고른 별실은 공연장에서도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대를 제대로 보기에는 좋지 않았지만, 그만큼 무대 위에서는 별실 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추영우는 보랏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남빛 단령포를 차려입고 있었다. 옷깃 앞에는 옥 장식이 달려 있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이 가볍게 나부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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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9화

추영우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 너에게 경고하거늘,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뜨거운 콧김이 거칠게 새어 나왔고, 새까만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는 다른 손으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그대로 탁자 위에 내리꽂았다.쾅!탁자 위에 놓여 있던 천리안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깨지는 소리와 함께 천리안이 산산이 깨졌다.순식간에 주변의 기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조금이라도 더 무례하게 굴었다가는 당장이라도 검을 휘둘러 그녀를 베어 버릴 듯한 살벌한 기세였다.하지만 소설아의 마음속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전하는 마치 종이호랑이처럼 애써 사나운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정작 자신의 손은 빼지도 않은 채, 그녀가 마음껏 쥐고 만지도록 내버려 두고 있지 않은가.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짓궂게 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소설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을 꽉 마주 잡았다.열 손가락을 깍지 껴 잡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꼼꼼히 어루만졌다. 손가락 마디 하나, 손등의 피부 한 치도 놓치지 않았다.그렇게 짓궂게 굴면서도 입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전하, 정말 사나우시네요.”추영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소설아는 웃음을 머금은 채 다시 말했다.“전하께서는 제가 총애를 믿고 응석을 부린다고 생각하시는 거죠?”추영우는 고개를 살짝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무대 위의 소란에 정신이 팔린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녀와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멍청하지는 않구나. 그래도 제 분수는 아는 모양이니.”소설아는 그의 손을 끌어다가 살며시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이게 다 전하께서 저를 이렇게 버릇없게 만드신 거예요.”추영우는 말이 없었다.“전하, 손이 어째서 이렇게 뜨겁죠? 땀까지 나셨네요.”소설아가 한술 더 떴다.“끈적끈적한데, 다른 손으로 바꿔 잡을까요?”별실 안은 바깥보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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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0화

“전하, 잠시 몸을 피하시는 게 좋겠어요. 밖으로 나가시면 안 돼요. 제가 설 아가씨를 돌려보낼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다시 와주세요.”소설아가 손을 놓자, 추영우는 순식간에 별실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치 도망치듯 사라지는 모습이었다.소설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별실 문을 열었다.설현정은 다소 조급한 기색을 보이며, 문이 열리자마자 몸을 옆으로 틀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소 아가씨, 뭘 하느라 이렇게 오래 문을 열어 주지 않은 거예요? 설마 안에 웬 사내라도 숨겨 둔 건 아니겠죠?”소설아가 담담하게 웃었다.“모든 사람이 설 아가씨처럼 입만 열었다 하면 ‘사내’ 타령을 하지는 않는답니다.”“입은 참 잘도 살아 있네요.”설현정은 비꼬듯 한마디 내뱉고는 별실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별실 안에는 소설아 혼자뿐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후텁지근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소설아의 몸에서 나는 향기만이 아니었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사내의 체취 같은 것이 섞여 있는 듯했다.설현정은 콧구멍을 연신 벌름거리며, 소설아가 사내를 숨겨 두었다는 증거를 어떻게든 찾아내려 애썼다.소설아는 그 모습이 우스워 피식 웃으며 말했다.“설 아가씨, 평국공부 아가씨들은 다들 개라도 되나 봅니다? 어찌 그리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다니세요.”설현정의 얼굴빛이 순간 확 변했다. 그러나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단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별실 안에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그런데 두 의자가 유난히 가까이 붙어 있었다.손을 뻗어 만져보니, 두 의자 모두 온기가 남아 있었다.설현정이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여기서 남몰래 사내를 만나고 있었군요! 말해 보세요. 전하께서 아가씨가 이토록 염치없는 짓을 하는 걸 아시면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소설아가 살짝 웃었다.“전하께서는 오히려 저를 더 아끼실걸요.”설현정이 차갑게 웃더니 문밖에 있던 하녀에게 고개를 돌렸다.“가서 문 앞의 호위를 불러오너라!”그녀는 별실의 구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이곳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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