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번 생은 가족부터 다시 선택할 거야: Chapter 671 - Chapter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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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1화

서경수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곁전 안이 제법 시끌벅적한 것이 온천에서 몸을 담그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막 자리에 앉아 이 구경거리를 제대로 즐겨볼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팔을 홱 잡아당겼고, 다음 순간 최희정이 그대로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서경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굳어버렸다.배율승이 태연하게 변명했다.“죄송합니다. 군왕 전하께서 워낙 용모가 빼어나시다 보니, 순간 하녀인 줄 알고 그만 착각했습니다.”최희정이 달려들어 올 것을 배율승은 진작부터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하녀가 둘이나 있었고, 그들이 훨씬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굳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서경수를 끌어당겨 제 앞의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다.서경수는 어처구니가 없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최희정은 부딪힌 충격에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자신이 안겨 있는 품이 배율승이 아니라 웬 낯선 사내의 것임을 깨달았다.하지만 이 낯선 사내는 화려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데다 머리에는 금관까지 쓰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신분이 보통은 아닌 듯했다.게다가 젊은 데다 용모까지 빼어나, 사촌 오라버니인 설연준보다도 몇 수는 더 잘생긴 사내였다.최희정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고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제가 도련님을 다치게 한 건 아니죠?”서경수는 그녀를 싸늘하게 흘겨보더니, 대꾸해 줄 가치도 없다는 듯 짧게 내뱉었다.“아닙니다.”“도련님, 안심하세요. 저는 사내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죽네 사네 호들갑을 떠는 가식적인 여인네가 아니랍니다.”최희정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그렇게 나약하지 않으니, 도련님께서도 저를 사내대장부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사내들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 큼지막한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계집으로 사는 건 참 귀찮습니다. 역시 남장을 하는 게 제일 편하다니까요.”평국공 부인이 멋쩍게 웃었다.“서 군왕 전하, 배 장군. 결례를 범했습니다. 희정이가 어릴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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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2화

아까 자신을 끌어당겨 방패막이로 삼은 것은 누가 봐도 고의가 분명했다. 이 배씨 성을 가진 작자는 대체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가? 설연준을 노리기는커녕, 왜 뜬금없이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소설아는 담담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코를 찌를 듯 짙은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듯했다.“장군, 말씀을 조심하십시오. 규수에게 그런 농담을 하시면 안 됩니다.”배율승이 태연하게 대꾸했다.“최 아가씨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니, 이런 말쯤은 괘념치 않으실 겁니다.”마침 그때 최희정이 치마로 갈아입고 나왔다.연분홍빛 치마에 같은 빛깔의 저고리를 받쳐 입었고, 머리도 단정하게 다시 빗어 올려 장식이 달린 비녀 두 개를 꽂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에 찬 옥패가 짤랑짤랑 맑은 소리를 냈다.최희정은 온몸이 영 어색해 견딜 수가 없었다.“배 장군님 말씀이 맞아요. 전 여느 여인네들처럼 속이 좁지 않으니, 제 앞에서는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셔도 됩니다. 소 아가씨, 아까는 실례했어요. 제가 아가씨를 호탕하고 솔직한 사내대장부인 줄로만 알았네요.”그 말이 떨어지자 소명주와 소명지의 안색도 썩 좋지 못했다.소명주가 입을 열었다.“최 아가씨 말씀은, 여인은 호탕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다는 뜻인가요?”최희정이 소명주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거 보세요. 사내들이라면 이런 쪼잔한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고모님, 전 역시 사내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요. 사내들은 단순하고 순수하잖아요. 여인들 틈에 있으면 다들 속내가 시커멓고, 말 한마디를 해도 속으로 몇 번씩 꼬아서 생각하니, 아휴, 정말 피곤해 죽겠습니다!”소명주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속으로는 ‘바보 같은 년’이라며 매섭게 혀를 찼다.소설아는 고개를 숙인 채 그저 나지막이 웃을 뿐,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았다.서경수가 눈을 깜빡이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최 아가씨께선 참으로 시원시원하시군요. 배 장군, 아까 최 아가씨께서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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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3화

소설아의 말이 끝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오직 최희정의 눈에만 서운함과 원망이 뒤섞인 기색이 어렸다.소설아는 몇 마디 말만으로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어냈을 뿐 아니라, 배율승에게 최희정을 거절할 명분까지 만들어 주었다.배율승은 눈빛에 어린 감탄을 애써 감추며 눈매를 살짝 치켜올렸다.성격은 전처와 조금 달랐지만, 영리하고 재치 있는 면만큼은 전처를 꼭 닮아 있었다.배율승이 입을 열었다.“최 아가씨, 미안하지만 소 아가씨께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기로 한 이상, 최 아가씨를 제자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부디 저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시지요. 전 소 아가씨에게 부탁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답니다.”최희정은 승복하지 못하고 계속 따지고 들었다. “배 장군님, 저는 소 아가씨와는 달라요. 저는 이것저것 규칙만 따지는 나약한 규수가 아니랍니다. 고루하기 짝이 없고 융통성이라곤 없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요! 저는 거친 일도 잘 견딜 수 있답니다!”말을 하며 그녀는 치맛자락을 들춰 보였다. “이 지긋지긋한 치마, 안 입는다고 했잖아요. 보세요, 이런 치마를 입어서 스승님을 모시지도 못하게 됐잖아요.”그 자리에 있던 여인들은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했다.배율승은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최희정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평국공부인이 나서서 말했다. “희정아, 그만하렴.”이미 거절당한 마당에 더 매달리면 체면만 잃을 뿐이었다.서경수는 옆에서 구경하는 재미에 일이 커지는 걸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라, 최희정을 순순히 입 다물게 둘 리 없었다. 소설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흘겨보며 적당히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서경수는 옥패 술을 매만지며 손가락 두 개를 펴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은자 이천 냥이면 입을 다물겠다는 뜻이었다.소설아는 하마터면 어이가 없어 웃을 뻔했다.서 사장님은 정말 대단했다. 이 상황에서도 돈 벌 궁리를 하다니.서경수가 굳이 일을 벌이겠다면, 그녀도 봐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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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4화

최희정은 표정이 굳어졌다. 분을 참지 못한 듯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최 아가씨께서는 에둘러 말하는 걸 싫어하고,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저도 최 아가씨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있는데, 어째서 제 말은 듣기 싫으신가요?”소설아가 최희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한마디, 한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최희정의 얼굴빛은 더욱 어두워졌다.문제는 이 말들이 전부 자신이 했던 말이라,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이쯤 되었는데도 소설아는 최희정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소명지를 바라보며 물었다.“명지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소명지는 진작부터 최희정이 눈에 거슬렸지만, 마땅히 반박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터에 소설아가 최희정을 조목조목 몰아붙이는 말을 듣고 있자니 속이 다 후련했다.게다가 이제 소설아가 직접 말을 건넨 마당이었다. 굳이 입을 다물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그건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게 아니라 염치를 모른다고 하는 거예요!”소명지가 거침없이 쏘아붙였다.“댁에서는 규범도 가르치지 않으셨나요? 거친 것도 잘 견딘다니, 그게 대체 규수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요?”소명지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기생들이 손님을 받는 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아가씨께서는 자원해서 그러시는 것도 모자라 공짜로 갖다 바치겠다는 셈이니, 정말 우리 여인들의 체면을 다 깎아 먹는 일이지요! 정말 사내가 되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시는 게 낫겠네요.”최희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속에서 열기가 확 치솟아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남자들과 어울려 지내며 의형제까지 맺은 세월이 여러 해였지만, 그동안 감히 자신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그런데 막상 이렇게 정면으로 반박을 당하고 보니, 무슨 말로 받아쳐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그러니 더욱 억울하고 답답했다.최희정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더니, 쾅 소리와 함께 탁자를 엎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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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5화

최희정은 약가루를 받아 들고 코밑에 대고 냄새를 맡으려 했다.설현정이 얼른 그녀를 막았다. “맡지 말거라.”최희정이 물었다. “이게 뭐죠?”설현정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씨를 끊는 약이란다. 조금만 마셔도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돼.”최희정은 깜짝 놀라 손이 떨려 하마터면 그 약가루를 내던질 뻔했다. “언니, 이,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최희정은 생각하는 회로가 조금 남다르긴 했어도, 남을 해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설현정이 그녀의 손을 꼭 쥐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너도 방금 봤지 않느냐. 그 여자는 사촌 오라버니한테 꼬리치는 것도 모자라 서 군왕 전하와도 뭔가 애매한 사이고, 그뿐만 아니라 배 장군한테도 몇 번이나 추근대지 않았더냐. 더 괘씸한 건, 화친왕 전하께까지 온갖 수를 써서 접근하려 한다는 거란다.”여기까지 말하며 설현정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입술까지 떨렸다.최희정이 베개를 힘껏 내리쳤다. “네? 그 여자가 그렇게나 천박했다니요!”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 약을 먹으면 오라버니도 대가 끊기는 거 아닐까요?”설현정이 부드럽게 달랬다. “오라버니가 첩을 들이면 되지 않느냐. 그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여인들까지 아이를 못 낳게 할 셈이냐? 그 여자는 지금 연화 군주를 양어머니로 모신 데다 배 장군에게도 은혜를 베풀었다고 벌써 기세가 하늘을 찌르지 않더냐. 그런데 거기에 아들까지 낳게 내버려 두면,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힐 게다.”최희정은 눈을 내리깔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마침내 떠오른 생각을 겨우 입 밖으로 꺼냈다.“그냥 오라버니가 그 여자를 냉대해서 아예 합방하지 않으면 되잖아요.”설현정이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이 고개를 들며 다급한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오라버니가 그 여자를 연모하고 계신가요?”설현정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확답을 듣자 최희정의 얼굴에는 실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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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6화

“이 일은 우리 두 사람만 알아야 한다. 알겠니?”“네, 언니. 명심하겠습니다.”*한편, 평국공 부인은 설연준을 따로 불러냈다.“연준아, 오늘은 어쩐 일로 벌써 왔느냐?”원래 계획은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찾아와 평국공 부인을 데리고 돌아간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었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서둘러 찾아오니 지나치게 조급해 보일 수 있었다. 자칫하면 평국공부에서 소설아를 하루빨리 맞아들이려 안달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었다.설연준은 평국공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어머니께서 방법을 찾아 배씨 가문 다섯째 아가씨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봐 달라 하셨습니다.”평국공 부인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설연준이 다시 말했다.“어머니, 제가 보기에는 소씨 가문 큰 아가씨를 정실로 맞는 편이 이로운 점이 더 많습니다. 소 아가씨 쪽은 군주 마마와도 친분이 있지 않습니까. 배씨 가문 아가씨에 대해서는 저희가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변경에서 자랐다고 하니, 그곳은 풍속이 거칠어 여인들도 말을 타고 술을 마시며, 심지어 자기 지아비와 함께 전쟁에 나간다고 들었습니다.”평국공 부인이 어찌 아들의 속내를 모르겠는가.“방금 너도 보지 않았느냐, 소 아가씨도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더구나.”사실 그녀는 소설아를 제법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평국공 세자빈 자리는 아무나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설아는 총명하고 능력도 있었으나, 다만 성격이 지나치게 날카로워 평국공부의 가풍에는 다소 맞지 않았다.“어머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 혼인한 후에는 제가 아가씨에게 마땅한 법도를 가르치겠습니다. 지금은 아직 어리니 다소 제멋대로인 것도 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공부에 시집온 뒤에는 어머니께서 어떻게 훈육하시든 저는 결코 막지 않을 것입니다!”설연준은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비록 엄격하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그녀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만약 그녀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자신이 조금 마음을 써서 달래 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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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7화

민씨는 사람들을 데리고 소설아가 머무는 별채로 향했다.도관 뒤편에는 고관대작들이 묵을 수 있도록 여러 채의 별채가 지어져 있었다. 소설아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단이를 시켜 미리 손을 써서 조금 더 큰 별채를 얻어 두었다.민씨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별채 문 앞에서 소명천과 마주쳤다.소명지가 물었다.“둘째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어찌 또 오셨어요?”소명천이 답했다.“설아가 도움이 필요한지 보러 왔단다.”소명지의 얼굴에 금세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둘째 오라버니는 굳이 저렇게까지 잘난 체할 필요도 없는데, 대체 왜 또 온 것인가.화가 치밀었지만 마땅히 풀 곳을 찾지 못하던 소명지는 소설아를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이렇게 넓은 별채를 어찌 어머니께 내어드리지 않은 것인가요? 언니, 어머니께 효도하는 법도 모르세요?”소설아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민씨가 먼저 말했다.“명지야, 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어서 언니한테 사과하거라.”소설아는 민씨를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씨의 말투에는 다소 엄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소명지의 체면은 전혀 세워 주지 않았다.소명지가 항변했다.“어머니, 제가 뭘 잘못 말했다는 거예요? 이 제일 큰 별채는 원래 어머니께 드려야 마땅하잖아요!”소명천이 입을 열었다.“소명지, 그 입 다물어라! 이 별채는 어머니께서 설아에게 양보하신 것이다. 설아는 데려온 사람이 많으니 큰 별채가 더 넓고 편하지 않겠느냐.”소명지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둘째 오라버니, 방…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소명천은 그녀를 부를 때는 ‘설아’라며 살갑게 불렀지만, 소명지를 부를 때는 성까지 붙여 ‘소명지’라고 불렀다.두 사람을 대하는 친밀도의 차이가 호칭만 들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소명지는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떴다.소명천이 말했다.“명지야, 법도를 알거든 설아에게 어서 사과하거라.”소명지가 소리쳤다.“둘째 오라버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저더러 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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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8화

진작 소설아에게 숙이고 들어왔어야 했다. 진작 숙이고 들어왔더라면 이런 귀한 물건들을 일찌감치 누렸을 텐데 말이다. 전생에도 그들은 분명 이런 것들을 누리고 살았었다.서쪽 사랑채는 임시로 찻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자리에 앉자 하녀가 일사불란하게 다기를 올려왔다.백자 관요 다기로, 찻주전자는 전신이 양지옥처럼 따스하고 윤기 나는 도자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전자 몸통에 그려진 난초 그림은 생생하기 그지없어, 평국공 부인이 하사받았다는 다기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아 보였다.소명주는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민씨 역시 속이 쓰리기는 마찬가지였으나, 한때 부귀영화를 누려본 가닥이 있기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설아야, 명천이가 너에게 한 약속은 우리도 들었단다.”민씨가 찻잔을 들어 올렸다. 손에 착 감기는 잔은 둘레가 동글동글하여 손바닥에 딱 들어맞았다. 펄펄 끓는 찻물을 담아도 잡은 손이 뜨겁지 않은 잔이었다.민씨는 눈길을 내리깔고 손목에 찬 염주를 가만히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설아야, 예전에는 내가 너를 좀 오해했었구나. 그때는 명주가 막 돌아왔을 때라 그 애에게 보상해 줄 생각만 하느라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네가 원망하고 화가 난 걸 제때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네가 자라면서 반항적으로 변한 줄로만 알았지.”민씨는 이어서 말했다.“후부에서 너를 키워주었으니 네가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너도 사람이고 희로애락이 있는 인격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그날 명천이가 찾아와 참 많은 이야기를 하더구나. 나도 아주 인정머리 없는 사람은 아닌지라,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도 잘못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너와 제때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그저 어른이라는 명목으로 너를 눌러대기만 해서 그 오랜 세월 쌓아온 정을 갉아먹었더구나. 나 역시 이번 기회에 앙금을 털어내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구나.”민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너는 후부의 딸이고, 비록 진짜 피는 안 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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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9화

전각에 들어서니, 찻상은 이미 깨끗하게 다시 차려져 있었다.평국공 부인은 설현정과 최희정을 데리고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최희정은 얌전하게 옷을 갖춰 입고 비녀도 올곧게 지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줄곧 제 손가락만 내려다보는 모습이 제법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모양새였다.소설아가 막 문턱을 넘어서려 할 때, 뒤편에서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동글동글하고 자그마한 아이 하나가 다다다, 소설아를 향해 달려왔다.“도련님, 천천히 가십시오!”유모가 기진맥진해서 뒤를 바짝 쫓아왔다.배 도령은 와락 소설아의 품으로 안기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누님, 안녕하세요.”배도혁 역시 도관에 함께 왔는데, 수레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소설아를 찾는 것이었다.아이는 소설아에게 인사를 올리자마자 덥석 두 팔을 벌려 안아 달라고 떼를 썼다.막 자다 깨어 볼이 갓 쪄낸 찹쌀경단처럼 분홍빛으로 통통했다. 나비 날개처럼 길고 촘촘한 속눈썹에, 웃을 때면 눈매가 동그랗게 호선을 그리며 왼쪽 뺨에 얕은 보조개가 패였다.도무지 밀어낼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소설아가 아이를 번쩍 안아 들자, 몸에서 달콤한 우유 향이 물씬 풍겨왔다배도혁은 막 자다 깨어나 염소 젖을 마신 지 얼마 안 되어 입가에 젖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소설아는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입가를 다정하게 닦아 주었다.“다 큰 녀석이 왜 걸핏하면 안아 달라는 게냐! 내려와서 제발 좀 걷거라.”뒤편에서 배율승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배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통통한 얼굴이 제법 진지해졌다. 아이는 제 뺨을 문지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딱 붙어 버렸는데.”소설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훗 웃음을 터뜨렸다.“배 장군님, 잠시만 안아 줄게요. 손이 아프면 내려놓겠습니다.”아이를 품에 안고 자리에 앉자, 곧이어 서경수도 도착했다.사람들은 오전에 앉았던 순서대로 자리를 잡았다.평국공 부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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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0화

최희정은 다소곳이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 동작 하나하나가 워낙 단정해,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진심으로 사죄하는 듯했다.“배 장군님, 서 군왕 전하, 민 부인, 소 아가씨. 제가 아까는 잠시 귀신에 씌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니, 부디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말을 마친 최희정은 탁자 위에 놓인 찻주전자를 들어 손수 차 여섯 잔을 따랐다. 배율승, 서경수, 민씨 부인, 소설아, 소명주, 소명지에게 각각 올릴 차였다.최희정은 첫 번째 찻잔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받쳐 들고, 가장 먼저 배율승에게 다가갔다.“배 장군님, 사죄드립니다.”배율승은 찻잔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기특하구나.”최희정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이어 두 번째 찻잔을 들어 서경수 앞으로 다가갔다.“서 군왕 전하, 사죄드립니다.”서경수 역시 찻잔을 받아 단숨에 비워 냈다.그러나 세 번째 찻잔을 집어 드는 순간, 최희정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녀는 소설아 앞으로 다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소 아가씨, 죄송합니다.”조금 전 차를 따를 때, 최희정은 찻주전자에 숨겨진 장치를 슬쩍 건들였다. 세 번째 찻잔에는 여인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는 불임약이 섞여 있었다.최희정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감히 소설아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시선을 내리깔았다. 찻잔을 든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배율승과 서경수에게 차를 올리며 사죄할 때만 해도 똑바로 눈을 맞추던 최희정이, 소설아 앞에 서자 돌연 수줍음이라도 타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평소 사내아이처럼 털털하던 그녀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소설아는 그 순간 이 찻잔에 분명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직감했다.소설아는 찻물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옅은 갈색을 띤 찻물 위로 찻잎 몇 개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은 여느 차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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