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정은 다소곳이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 동작 하나하나가 워낙 단정해,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진심으로 사죄하는 듯했다.“배 장군님, 서 군왕 전하, 민 부인, 소 아가씨. 제가 아까는 잠시 귀신에 씌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니, 부디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말을 마친 최희정은 탁자 위에 놓인 찻주전자를 들어 손수 차 여섯 잔을 따랐다. 배율승, 서경수, 민씨 부인, 소설아, 소명주, 소명지에게 각각 올릴 차였다.최희정은 첫 번째 찻잔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받쳐 들고, 가장 먼저 배율승에게 다가갔다.“배 장군님, 사죄드립니다.”배율승은 찻잔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기특하구나.”최희정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이어 두 번째 찻잔을 들어 서경수 앞으로 다가갔다.“서 군왕 전하, 사죄드립니다.”서경수 역시 찻잔을 받아 단숨에 비워 냈다.그러나 세 번째 찻잔을 집어 드는 순간, 최희정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녀는 소설아 앞으로 다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소 아가씨, 죄송합니다.”조금 전 차를 따를 때, 최희정은 찻주전자에 숨겨진 장치를 슬쩍 건들였다. 세 번째 찻잔에는 여인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는 불임약이 섞여 있었다.최희정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감히 소설아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시선을 내리깔았다. 찻잔을 든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배율승과 서경수에게 차를 올리며 사죄할 때만 해도 똑바로 눈을 맞추던 최희정이, 소설아 앞에 서자 돌연 수줍음이라도 타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평소 사내아이처럼 털털하던 그녀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소설아는 그 순간 이 찻잔에 분명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직감했다.소설아는 찻물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옅은 갈색을 띤 찻물 위로 찻잎 몇 개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은 여느 차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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