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정은 눈앞이 아득해지며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배 도련님, 지금 이게 대체 뭐 하는 건가요?”배도혁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동그란 얼굴을 한껏 엄숙하게 굳힌 채,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설현정을 노려보았다.설현정이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이제 말할 수 있지 않나요? 왜요, 수줍어서 말이 안 나오는 건가?”유모가 곁에서 대신 나서며 아뢰었다.“설 아가씨, 저희 도련님께서는 모략에 능하고 간사한 사람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설현정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누가 간사하다는 거야? 저 통통한 꼬맹이 녀석이야말로 꿍꿍이가 가득하면서!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저 꼬마 녀석, 참으로 얄미운 구석이 있구나!’배도혁은 입술을 삐죽이더니, 두 손을 뒷짐 진 채 기고만장하게 기우뚱거리며 소설아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바짝 들어 칭찬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소설아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우리 도련님, 정말 대견하네요.”최희정은 탁자 위에 순서가 엉망으로 섞여 버린 다섯 잔의 차를 내려다보며 또다시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침묵이 길어져 괜한 의심을 살까 봐 조바심이 난 설현정이 얼른 새 차를 한 잔 따라 자연스럽게 최희정의 손에 쥐여 주었다.“먼저 큰어머니께 차를 올려라.”최희정은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현정 언니는 역시 똑똑해.’그녀는 찻잔을 모아 들고 평국공 부인 앞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였다.“고모님, 제가 고모님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실망을 안겨 드렸습니다.”평국공 부인이 차를 받아 한 모금 축이고는 부드럽게 말했다.“희정아, 난 네가 본래 착한 아이라는 걸 안다. 허물을 깨닫고 고치는 것보다 더 큰 선함은 없으니, 이제라도 뉘우쳤으면 되었느니라.”사실 평국공 부인 역시 최희정의 수상쩍은 행동을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두 아이가 자신에게 알려 주지 않았기에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알지 못할 뿐이었다. 분명, 방금 최희정이 소설아에게 올리려 했던 그 차에 분명 문제가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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