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 17화. 곰 사용 설명서

Share

17화. 곰 사용 설명서

Author: 라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29 22:41:16

​희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휴대폰 메모장을 켰다.

화면에는 지난밤 그녀가 밤새 정리한 ‘재원 대응 매뉴얼 v.3.0’이 띄워져 있었다.

​[폴더명: ❤️ J (웬수)]

[주제: 곰(ISTJ)과 절대 싸우지 않는 공식]

​반박 금지 (시비 걸면 웃어 넘기기)

​질문 금지 (상태만 보고하기)

​통제 금지 (풀어주면 알아서 기어온다)

​“좋아. 입력 완료.”

​희수는 거울을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이제 감정 소모는 끝났다. 오늘부터 나는 그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운영’하겠다.

이건 연애가 아니라, 고성능 AI를 다루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오후 1:00. 데이트 시작]

​재원의 차에 타자마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재원이 희수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특유의 그 무심하고 툭 던지는 말투로 공격해왔다.

​“어제 뭐 했길래 얼굴이 이래? 라면 먹고 잤냐?”

“...”

“12시간을 잤다며. 얼굴이 아주 퉁퉁 부었네. 눈 못 뜨는 거 아냐? ㅋ”

​[위기 감지: Rule ④ 시비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4화.생존자 없음 (No Survivors)

    도가니탕은 훌륭했다.국물까지 싹 비운 그릇을 재원이 가져가 설거지를 시작했다.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소리.희수는 식탁에 턱을 괴고 그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무뚝뚝하고, 말 없고, 표현도 없다.그런데 밥은 먹이고, 약 챙겨주고, 설거지까지 한다.‘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성격은 시멘트인데, 또 하는 짓은 진국이고.’문득 궁금해졌다.이 기이한 ‘곰’을 거쳐 간 다른 여자들은 어땠을까.다들 이 남자의 ‘시멘트 화법’에 질려 도망갔을까, 아니면 나처럼 ‘도가니탕’에 코가 꿰였을까.희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툭 던졌다.“자기야.”“어.”“전 여친들이랑은 얼마나 만났어? 제일 오래 만난 게 얼마야?”설거지하던 손이 멈칫했다.재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딱 잘라 말했다.“비밀이다.”“에? 비밀이 어딨어. 그냥 말해줘 봐.”“지나간 일이다. 알 필요 없다.”철벽이었다.하지만 희수는 목표가 생기면 물러서지 않는다.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아, 말해줘! 알아야 내가 이기지!”재원이 고무장갑을 낀 채 뒤를 돌아봤다. 미간이 좁혀져 있었다.“...뭘 이겨.”“기록 갱신!”희수는 눈을 반짝이며 선전포고했다.“난 무조건 자기 전 여친들보다 오래 살아남을 거야.그러니까 데이터가 필요해. 최대 생존 기간이 얼만지 알아야 내가 목표를 잡지!”“......”재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희수를 내려다보았다.보통은 “사랑해”나 “질투 나”라고 할 타이밍에, “살아남겠다”고 선언하는 여자친구라니.그는 피식, 헛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싱크대로 몸을 돌렸다.그리고 헹굼을 마무리하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3개월.”“......어?”희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길어야 100일. 대부분 그전에 끝났다.”“뭐...? 3개월이 최대라고? 왜? 다 차였어?”재원은 물기를 닦고 식탁으로 와 희수의 맞은편에 앉았다.그의 표정은 건조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실패 기록’을 팩트로 나열했다.“지친대. 내가 감정이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3화. 나쁜놈 인 줄 알았는데 그냥 곰이었다

    그날의 ‘외면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났다.표면적으로는 다시 평화로운 루틴이 돌아왔다.[기상] 06:11[출근 준비] 06:12하지만 희수의 마음속에는 아직 잔여물이 남아 있었다.친구들에게 하소연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대로였다.“야, 그거 완전 나쁜 놈 아니야?”“지인한테 숨기는 거? 빼박이지. 어장관리 아니야?”“희수야, 너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 같아.”친구들의 말은 논리적이었다.사생활 숨김, 차가운 말투, 감정 회피.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체크리스트와 일치했다.희수도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진짜 그런가? 내가 콩깍지가 씌어서 합리화하는 건가?’그때, 현관 벨 소리가 울렸다.저녁 7시. 재원이었다.“문 열어.”예고도 없이 찾아온 그는,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족발, 보쌈 같은 데이트용 배달 음식이 아니었다.대형 마트 장바구니.그 안에는 우유, 칼슘 두유, 멸치볶음, 그리고 도가니탕 팩이 가득했다.“...이게 다 뭐야?”재원은 대답 대신 희수의 다리부터 스캔했다.“보조기 찼나.”“찼지.”“부기는 좀 빠졌네.”그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고 사 온 것들을 채워 넣었다.정리는 칼각이었다. 유통기한 순서대로, 희수가 꺼내기 쉬운 칸에.“뼈 붙는 데 좋은 거다. 챙겨 먹어라.”“아니, 나 혼자 이걸 어떻게 다 먹어...”“먹어야 낫는다. 안 먹으면 안 낫는다.”그는 냉장고 정리를 끝내고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희수에게 물 한 잔과 약 봉투를 내밀었다.“약 먹어.”희수는 약을 받아먹으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친구들이 말한 ‘나쁜 남자’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행동을 대조해 보았다.‘나쁜 남자들은... 책임 회피하고, 맘대로 구속하고, 감정적으로 휘두른다는데.’지금 이 남자는?1. 책임감: “안 먹으면 안 낫는다”며 바리바리 장을 봐왔다.2. 구속: “보조기 차라”, “돌아다니지 마라”고 잔소리하지만, 그건 내 안전 때문이다.3. 감정: 휘두르기는커녕,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2화. 사랑해서 숨겼다?

    그날 밤, 희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루틴도 건너뛰었다.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던 ‘보고 규칙’을 희수가 먼저 깨버렸다.이것은 시위가 아니었다.그냥, 할 말이 없었다.‘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는데, 굳이 ‘있는 척’ 보고를 하는 게 우스웠다.점심시간이 지났다.재원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희수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래. 내가 보고 안 하니까 편하지? 네 시스템에서 오류가 사라져서 좋겠네.’그런데 오후 3시.재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다리는.] 15:00[많이 부었나.] 15:01평소라면 절대 연락하지 않을 애매한 시간.심지어 내용은 ‘루틴’이 아니라 ‘상태 체크’였다.희수는 답하지 않았다.그러자 30분 뒤, 또 메시지가 왔다.[약은.] 15:30[어제 무리해서 걸었잖아.] 15:30희수는 그 문장에서 멈칫했다.‘...어제 무리해서 걸었다고?’그는 알고 있었다.어제 편의점에 다녀온 것. 자기가 절뚝거리고 있었던 것.그 모든 걸 봤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희수는 떨리는 손으로 타자를 쳤다.[봤으면서 왜 모른 척했어?] 15:32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이건 ‘감정’이 아니라 ‘진실 규명’ 요구였다.답장은 한참 뒤에야 왔다.그가 수백 번 고민하고 지웠을 시간.[...설명하기 복잡했다.] 15:45[옆에 사람 있었고.] 15:45[준비 안 된 상황이었다.] 15:46‘준비 안 된 상황.’희수의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불이 들어왔다.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그는 희수가 창피했던 게 아니었다.‘예기치 못한 상황(변수)’에 ‘사적인 영역(희수)’이 ‘통제 없이 노출’되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위험 상황’이었던 것이다.재원에게 연애는 둘만의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완벽한 시스템이다.하지만 그 시스템이 외부(지인)에게, 그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되는 건 그에게 ‘시스템 붕괴’나 다름없었다.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방어’했다.가장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1화. 투명인간이 된 기분

    무릎 수술 후 회복기.희수는 여전히 두꺼운 보조기를 차고 있었다.집 안에만 갇혀 있는 게 답답해, 재활 겸 아주 천천히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절뚝, 절뚝.걸음은 느렸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골목은 조용했다.봉지를 든 손이 조금 시리다고 느꼈을 때였다.저만치 앞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어?’재원이었다.칼퇴근을 하고 집 근처로 온 모양이었다.반가움에 희수가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려던 순간,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그는 혼자가 아니었다.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직장 동료 같기도 하고, 지인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희수는 멈칫했다.이 몰골(보조기+추리닝)로 마주치는 게 좀 그런가 싶었지만, 그래도 연인 사이인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제자리에 서서 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거리가 좁혀졌다.10미터, 5미터.그리고 마침내, 재원의 시선이 희수에게 닿았다.분명했다.그의 눈동자가 희수를 담았다. 희수의 보조기를,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어, 자기야.’희수의 입술이 달싹이던 찰나.재원의 고개가,아주 매끄럽게 반대편으로 돌아갔다.“......”마치 가로수나 전봇대를 본 것처럼.아니,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그는 옆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희수의 어깨를 스치듯 그대로 지나쳐갔다.속도가 줄어들지도, 멈칫하지도 않았다.완벽한 무시.완벽한 타인.희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등 뒤로 멀어지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뭐지?”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ESTJ의 빠른 판단력도 이 순간만큼은 작동하지 않았다.‘못 봤나? 아니,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옆에 사람이 있어서? 그래도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내가 창피한가? 다리 다쳐서 이러고 있는 게?’수만 가지 가설이 폭죽처럼 터졌지만, 결론은 하나였다.그는 나를 모른 척했다.다리가 떨려왔다. 무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0화. 공유되지 않은 영역

    무릎 수술 후 회복기.희수의 일상은 보조기와 함께 느리게 굴러갔고, 재원의 루틴은 여전히 시계태엽처럼 정확하게 돌아갔다.[퇴근] 18:00[집 도착] 18:40그런데 오늘, 그 규칙적인 패턴에 낯선 변수가 끼어들었다.[오늘 사적인 볼일 있어서 좀 늦는다] 19:00희수는 메시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사적인 볼일?’평소라면 ‘회식’이라거나 ‘친구 만남’이라고 명확히 주어를 밝혔을 텐데. ‘사적인’이라는 모호한 단어가 희수의 호기심과 불안 회로를 동시에 건드렸다.희수는 최대한 가볍게, 농담을 섞어 떠보았다.[사적인 볼일? 오호~ 데이트라도 가나~? ㅎㅎ] 19:02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리고 날카로웠다.[어처구니.] 19:03[그건 니가 알아서 판단하시구요.] 19:03희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와… 벽 치는 거 봐라.’그냥 아니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니가 판단해라’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방어막을 세운다.이건 재원 특유의 ‘영역 표시’였다.여기서부터는 내 구역이니, 너라도 함부로 넘어오지 말라는 경고.평소의 희수라면 “말을 왜 그렇게 해?”라고 따졌겠지만, 그녀는 이제 ‘재원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를 파고들면, 그는 더 깊은 동굴로 숨어버릴 것이다.희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감정을 배제한 채 ‘최적의 답안’을 입력했다.[언젠간 사적인 볼일도 말해주는 날이 오겠지 뭐..ㅎㅎ] 19:05[오늘 퇴근 잘하시구 볼일도 잘보셔요~ 집 도착하면 연락주시구요😊] 19:06통제 0%.압박 0%.대신 ‘집 도착하면 연락해’라는 루틴 복귀 신호만 남겼다.재원은 말이 없었다. 읽음 표시만 사라졌다.밤 11시.재원에게서 전화가 왔다.“여보세요.”다소 가라앉은 목소리.“어, 자기야. 볼일 잘 봤어?”희수는 아무렇지 않게, 밝게 받았다.“...어.”잠시 침묵이 흘렀다. 재원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뜸을 들이다가, 툭 하고 무겁게 내뱉었다.“난.”“응?”“죽을 때까지 사적인 건 공유 안 한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9화. 걱정은 명령어로 온다

    ​수술 후 2주.희수의 무릎에는 철심이 박혔고, 다리에는 투박한 보조기가 채워졌다.​퇴원 후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에도, 재원의 루틴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더 정교해졌다.​[기상] 06:12[밥 먹어라] 07:00 (추가됨)[약 먹었나] 07:30 (추가됨)[출근해서 일하는중] 07:30​재원은 출근 보고 사이에 희수의 ‘생존 루틴’을 끼워 넣었다. 감정적인 위로"많이 아프지?ㅠㅠ"는 없었다. 오직 입력된 값(식사, 약)이 제대로 실행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관리자만 있을 뿐이었다.​희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꼬박꼬박 챙겨주는 그 건조함이 든든했다.​문제는, 오늘 발생했다.​오늘은 실밥을 뽑고 중간 엑스레이를 찍어 '통깁스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날이었다.수술했던 대학병원은 차로 40분 거리였다. 예약도 힘들고 대기 시간만 1시간이 넘는다.​희수의 머릿속에서 특유의 효율 계산기가 돌아갔다.​‘왕복 1시간 반 + 대기 1시간 = 총 2시간 반 소요.’‘집 앞 정형외과 = 도보 5분 + 실밥 뽑는 건 1분 컷 = 총 30분 소요.’​답은 명확했다. 그냥 실밥만 뽑고 사진만 찍는 건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희수는 재원에게 ‘효율적인 변경 사항’을 보고했다.​[나 오늘 병원 가야 되는데] 10:30[그냥 집 앞 정형외과 가서 실밥 뽑고 사진 찍으려고] 10:30[대학병원은 너무 멀고 사람 많아서 비효율적이야] 10:31​당연히 [ㅇㅇ 잘 다녀와] 정도의 답을 예상했다.하지만 1분 뒤, 휴대폰 진동이 길게 울렸다.​[집 앞? 뭔 집 앞?] 10:32[왜 다른 병원 가는데?] 10:32​재원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평소의 무심함은 온데간데없었다.​희수는 당황해서 타자를 쳤다.​[아니 그냥 실밥만 뽑는 건데 뭐 어때서][가깝잖아 편하고. 엑스레이도 거기가 더 빨리 찍어줘.]​그러자 재원의 메시지가 폭격처럼 쏟아졌다.​[이상한 행동 하지 마라.][수술한 데로 가야지 왜 맘대로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