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 연애는… 너무 조용해서 불안합니다.]평화로웠다. 지나치게 평화로웠다.희수는 조수석 창가에 머리를 기대며 멍하니 생각했다.휴대폰에는 재원의 루틴 보고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쌓여 있었다.아침 기상, 출근, 점심, 퇴근, 그리고 지금 데이트까지.모든 것이 약속된 대로, 입력된 값대로 돌아갔다.그런데 희수는 문득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희수에게 연애란 ‘연결’이었다.서로 감정을 확인하고, 표현하고, 반응하는 티키타카. 그 뜨끈한 온도가 있어야 “아, 우리가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안심하는 타입이다.반면,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재원은 달랐다.그에게 연애란 ‘안정’이었다.감정 기복 없이, 루틴을 깨지 않고, 서로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그 조용한 상태가 곧 사랑이었다.그래서 지금 이 상황.재원은 “완벽하게 안정적이다”라고 느끼고 있었고,희수는 “이게 연애 맞나? 우리 그냥… 파트너인가?”라고 느끼고 있었다.이것은 ‘동상이몽’이었다.“콜록.”희수가 작게 기침을 했다.건조한 차 안 공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재원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히터 온도를 1도 올리고, 뒷좌석에 있던 담요를 툭 꺼내 희수 무릎에 던져주었다.“얇게 입지 말라고 했잖아.”걱정(“괜찮아?”)이 아니었다. 통제(“왜 얇게 입어”)였다.“아니, 그냥 사레들린 거야.”“물 마셔. 찬 거 말고 미지근한 거.”재원은 컵홀더에 있던 미지근한 물병 뚜껑까지 따서 건넸다.그의 눈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희수는 물을 받아 마시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말투는 시멘트인데, 행동은 수석 간호사급이다.‘이 사람…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내 건강을 ‘관리’하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구나.’재원에게 사랑은 ‘감정 교류’가 아니라 ‘생존 관리’였다.아프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내 영역 안의 사람을 지키는 것.그게 곰 같은 이 남자의 방식이었다.차가 신호 대기에 걸렸다.정적이 흘렀다. 희수는 이 고요
어제에 이어 이어진 주도권 싸움은 여전히 계속 되었다.점심에도,[밥먹고 쉰다] 12:31저녁에도,[집도착] 19:05퇴근 후에도.그들은 오직 '보고'만 주고받았다. 마치 무미건조한 통신처럼.그런데…참으면 참을수록 이상했다.희수가 말을 안 붙였는데도, 오늘 하루 종일 휴대폰만 보면 심장이 자꾸 빨리 뛰었다. 그녀의 감정 시스템은 이미 격동하고 있었다.왜냐면—'이게… 내가 흔들리는 걸 재원이 눈치 챌까 봐?'그게 제일 무서웠다.그런데 하필, 밤이 되자 재원은 평소보다 더 짧은 두 줄만 보냈다.[집도착] 21:00[씻고 쉰다] 21:01평소보다 더 건조했다. 더 감정이 없는 듯했다.'아… 이 사람도 테스트 하는 게 맞다.이건 100%다… 내가 먼저 무너지나 보려고 그러는 거 맞다…'희수는 피곤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다짐했다."...참아. 오늘까지만 참자."그리고 눈을 감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잠이 오기를 빌었다.그날 저녁. 늦은 밤이었다.희수는 이제 막 잠에 들려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그때, 현관에서 갑자기 띠—링. 23:00초인종이 울렸다."어...? 누구...?"희수는 잠이 확 달아났다. 머리도 못 말린 채 헐레벌떡 문 앞으로 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문을 열자—재원이 서 있었다.그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차갑고, 감정 없는, 익숙한 얼굴.근데. 그의 눈빛만은 평소와 달랐다.답답함 + 짜증 + 당황 + 걱정... 이상한 조합이었다.그리고 그는 들어오자마자 말했다."너 왜 이래.""...뭐가?""왜 조용하냐고.""...그냥... 나도 루틴 보고만 하려고..." 희수는 말끝을 흐렸다. 그의 표정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었다.재원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꿰뚫는 듯했다."희수.""...왜.""내가 말을 해야 알아요?""...뭘.""평소랑 다르면 말해야지."희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아파서 못 만난 그날 밤, 희수는 침대에 누워 차가운 방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열감에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옅은 서운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나 좀 허전해… 자기는?] 22:15그냥, 듣고 싶었다. '나도.' 이 한마디면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돌아온 건 그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의 대답.[평상시죠] 22:20"...와, 진짜 시멘트다."희수는 그 단단한 말투에 얇게 쌓아두었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운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결국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잠들었다.[나 그냥 잘게.] 22:22침대에 몸을 묻고 이불을 뒤집어쓰자, 생각보다 잠이 잘 왔다. 열감 때문인지, 아니면 밀려오는 서러움 때문인지. 어쨌든 그날 밤, 희수는 열두 시간 넘게 폭잠을 자버렸다.다음날 아침.희수는 퉁퉁 부은 얼굴로 휴대폰을 눌렀다. 여전히 남아 있는 몸살 기운이 그녀를 나른하게 만들었다.[나 일어났어] 10:00몇 분 뒤.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12시간이나 잤네요? ㅋ] 10:05"...이게 웃겨?"희수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평소라면 바로 "아니, 안 웃겨! 흥!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 줄 알아?!" 하고 말했을 텐데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서운함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그리고—그 뒤로 연락이 아예. 안 왔다.점심 루틴도, 오후 루틴도 없었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재원의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희수는 잠깐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싸늘한 공허감이 그녀의 마음을 스쳤다. 머릿속 계산기가 자동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뇌는 비상 상황에 놓였다.'아… 혹시…나 말실수했다고 테스트 하는 건가?내 반응을 보는 건가?'재원은 그런 가능성이 1도 없는, 늘 예측 가능한 남자였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평소와 다른 패턴. 희수는 입술을 꽉 물었다."...좋아. 그럼 나도 테스트한다."희수는 감정을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 재원의 루틴이 오늘은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12:30 / 15:40 / 18:00] 같이 칼같이 들어오던 보고였다.희수는 처음엔 “바빴겠지” 하고 넘겼다.하지만 점심시간도, 퇴근 시간도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자, 슬슬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왜 보고 안 해…?’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희수에게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선물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희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진심을 담아 길게 메시지를 보냈다.[자기 늦어도 괜찮은데, 상황 정도는 말해줬으면 좋겠어.] 19:15[오늘은 왜 이렇게 연락이 끊겼는지… 나 혼자 계속 자기 루틴 시간 맞춰서 기다렸어.] 19:16[사람이니까 물론 변수 생길 수 있지. 그런데 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면 마음이 흔들려. 불안하고.] 19:17[갑자기 연락이 안 오니까 내가 어제 보낸 메시지 때문인가? 하는 생각까지 드네.] 19:18답이 올 때까지 휴대폰만 멍하니 바라봤다. 초조함은 희수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잠시 후, 재원의 답은 희수의 마음을 정확하게 관통했다.[일하다 바빴는데 왜 그렇게 예민해?] 19:25[일이 먼저지 너한테 메시지 보내는게 먼저겠니?] 19:26“...예민?”희수는 이마를 짚었다. ‘예민한 게 아니라, 명확한 정보가 없어서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확인하려는 건데? 이걸 왜 감정적이라고 치부하는 거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예민하다고 잘라버리는 재원에게 또 한 번 기분이 상했다.그녀는 참지 않고 다시 메시지를 눌렀다. 억눌렀던 감정적인 논리가 폭발했다.[나는 감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자기랑 나 사이의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기다렸던 거야.] 19:30[자기는 항상 정확하게 말하잖아. 근데 오늘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상황 파악을 해야지.] 19:31[내가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 자기는 단 한 번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속
아침 햇살이 희수의 침대 위를 미끄러지듯 비췄다.희수는 눈을 뜨자마자,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었다.재원의 루틴.[기상] 06:12[출근 준비할게] 06:13똑같고 정확한 시간.이 남자는 늘 그대로여서, 그래서 더 읽기 어려웠다.조금만 더 표현해주면 좋겠는데, 아직 이 남자에겐 기대하기 어렵다.희수는 가볍게 보고를 올렸다.[나 일어났어] 07:00읽음 1.그냥 평소의 아침이었다.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좀 이상했다.펜션에서 옆에 누워 자던 그 밤부터,그 남자의 눈빛이 자꾸 머리에 남았다.‘…아무것도 안 하던데요.’그 말이, 뭔가…심장을 괜히두근거리게 만들었다.“하… 뭐야 진짜… 왜 자꾸 생각나게 해…”그러다 결국—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희수는 숨을 들이쉬고자기조차 당황할 만큼 솔직한 메시지를 한 번에 쏟아냈다.[자기, 나 사실 어제부터 이상해.펜션에서 같이 잤던 거… 생각보다 계속 생각나.자기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난 괜히 심장 뛰고, 그 말도 계속 재생되고…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던 그 표정도 자꾸 떠오르고.이상해.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보내는 순간—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아씨 진짜 미쳤나 봐…”희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바로 삭제 버튼을 눌렀다.삭제.삭제.삭제.“삭제된 메시지입니다.”흔적만 남았다.내용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건 희수의 울렁거리는 가슴뿐.그리고 중요한 건—읽음 표시.그녀는 바로 자신이 조금 전 보냈던 루틴 메시지의 읽음 상태를 확인했다.읽음 1.그래.정상이다.재원은 이런 시간에 절대 보고하지 않는다.루틴 외 시간에는 휴대폰을 거의 안 본다.적어도 희수는 재원이 그런다고 생각했었다.그건, 두 사람이 연애한 내내 변하지 않은 패턴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루틴에 희수도 적응 한지 오래였다.루틴으로 연애하는 사이.남들은 이해 하지 못하는 둘의 안정된 신호.다른 이들은 말한다."군대야?""보고는 무슨 보고.""나는 그런 남자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재원이 아침부터 보내는 ‘초건조 모드’를 보며슬슬 불쾌함이 쌓여갔다.[회의들어간다] 09:30[끝났다] 10:10[밥먹고 쉰다] 12:31[일하는 중] 13:05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오늘은 유난히 ‘정보만 던지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심지어 온도도 없음.희수는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나름의 감정을 조금씩 섞었다.[나 지금 밥먹었어!] 13:30[오늘 손님 많아 ㅠㅠ 지쳐어~] 14:25그런데 돌아오는 답은—[네에] 15:40[집이다 쉰다] 15:42“…와 진짜 오늘 왜 이래.”희수는 마음속에서 아주 조용히‘흥’ 하고 삐지는 소리가 났다.대구에서 보여줬던 그 남자의 미세한 다정함이오늘은 싸그리 사라진 느낌이었다.‘뭐야… 어제까진 귀여웠으면서.’어쩌면 그래서 더 서운했다.조금만 달달한 걸 맛보면그게 기준이 되어버린다.가게 마감하고 집에 가는 길.희수는 기분을 바꾸려 일부러 귀엽게 썼다.[자기 나 퇴근 하는 중이야~] 19:40[잘 쉬구 있지?] 19:40[보구싶다아~] 19:41그러니 돌아오는 답은—희수 기준에서 오늘 최악의 단어가 와야 했다.그리고 진짜로 왔다.[예~] 19:55“……와.”감정이 ‘닫힙니다’ 소리처럼착— 하고 내려앉았다.‘아니 왜. 왜 오늘만 이래.기껏 보고 싶다고까지 했는데.’희수는 10초 만에 감정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결국 참지 못했다.폭주 기차처럼 메시지를 쏟아냈다.[자기는 나를 걱정해준 적이라도 있어?] 19:56[난 자기 말 한마디에 하루가 뒤집히는데 자기한테 나는 뭐야?] 19:56[여자친구로 생각은 해? 아니면 그냥 일상보고 받아주는 사람이야?] 19:56적고 나서심장이 쿵, 쿵—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희수는 방금 보낸 메시지들을 눌러 다시 읽었다.“아오… 미쳤네 나… 이걸 보냈다고…?”순간적으로 너무 솔직했고, 너무 감정적이었다.재원이 가장 싫어하는 ‘끝난 감정 되짚기 + 감정 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