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의 비장했던 기세는 초코의 거대한 꼬리질 한 번에 처참히 무너졌다. 테이블 위에 올라앉은 초코는 재원에게 친근함을 표시하듯 묵직한 앞발을 툭 내밀었고, 재원은 마치 폭탄이라도 피하듯 슬리커 빗을 쥔 손을 바르르 떨며 뒤로 물러났다.“희수야, 얘는 내가 알던 강아지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아. 무게감이 거의 송아지 수준인데?”“자기야, 엄살 좀 부리지 마. 덩치만 컸지 얼마나 순한데. 자, 결 따라 부드럽게 빗겨줘 봐.”희수는 배를 잡고 웃으며 재원의 손을 초코의 엉킨 털 위로 이끌었다. 재원은 꿀꺽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가느다란 슬리커를 갖다 댔다. 사각, 사각. 엉킨 털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뽀얀 털 가루가 공중으로 흩날렸다.그때였다. 재원의 콧망울이 실룩거리기 시작한 것은.“에에엣취! 에취! 에취!”연달아 터지는 재채기 소리가 고요한 미용실 안을 울렸다. 재원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팔꿈치에 코를 묻었지만, 한 번 터진 재채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희수는 가위질을 멈추고 재원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재원의 눈가가 발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평소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앞머리는 재채기의 반동으로 헝클어져 이마를 덮었고, 콧등에는 발그레한 기운이 돌았다.“자기야, 너 설마 털 알레르기 있어? 아까 아침엔 괜찮았잖아!”“...에취! 아냐, 아침에는 털이 이렇게... 에취! 날리지 않았을 뿐이야. 괜찮아.”재원은 빨개진 눈을 비비며 다시 슬리커를 고쳐 잡았다. 희수는 기가 찼다. 저 고집불통. 지금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 상태면서, 연차까지 내고 조수를 자처한 체면이 있는지 절대 빗을 놓지 않았다. 희수는 서랍을 뒤져 비상용으로 두었던 알레르기 약을 꺼내 물과 함께 재원에게 내밀었다.“이거 먹어. 그러다 쓰러지겠다. 눈 좀 봐, 완전 토끼 됐어.”“...안 먹어. 약 먹으면 졸음이 와서 작업에 지장이 생겨. 다음 주에 또 연차 내서 너 도와주려면,오늘 완벽하게 익혀둬야 해.”"또 연차 낸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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