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의 고백은 희수에게 구원이 아니라 숙제 같았다. 관계로 엮이고 싶지 않다는 희수의 말에 진우는 "그럼 편하게만 보자"며 물러섰지만, 약속을 잡는 과정부터 희수는 피로감을 느꼈다. [희수야, 우리 어디 갈까? 가고 싶은 곳 있어? 뭐 먹고 싶어?]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들. 희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재원과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이었다. 재원과의 첫 데이트는 철저히 ESTJ인 희수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오후 3시 만남, 3시 30분 카페 티타임, 5시 공원 산책, 6시 30분 저녁 식사, 그리고 9시 귀가. 하지만 그 첫 데이트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은 '계획'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굳이 멋진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재원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나란히 앉아 예능이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TV에 예쁜 아이돌이 나오면 재원이 무심하게 "오, 예쁘다"라고 한마디 하고, 희수가 "와, 진짜 예쁘네"라며 맞장구치면 재원이 실실 미소를 짓던 그 평온한 시간들. 희수는 그런 재원을 슬쩍 흘겨보다가도 그의 팔짱을 더 꼭 끼고, 그의 단단한 품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곤 했다.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희수에게는 가장 완벽한 데이트였다는 것을, 이제야 사무치게 회상하고 있었다.'평범한 연애는 개뿔.. 그게 젤 평범한 거지.'진우를 만나기로 한 날, 희수는 거울 앞에서 한껏 꾸몄다. 재원을 잊기 위한 오기라기보다,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문 밖을 나서는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진우는 여전히 대안이 없었다. "희수야, 오늘 뭐 먹고 싶어? 네가 정해줘."희수는 문득 재원과 첫 데이트를 했던 그 샤브샤브 집이 떠올랐다. "샤브샤브요."희수는 망설임 없이 앞장섰다. 진우보다 한 걸음 앞서 걸으며 그녀는 익숙한 길을 따라갔다. 그런데 진우는 옆에서 계속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어? 희수야,
続きを読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