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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51 - チャプター 60

87 チャプター

51화. 소유욕

대구의 밤은 유난히 길었다. 재원은 습관처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제는 일종의 의식이 되어버린 희수의 SNS 염탐. 그는 '새 게시물'을 알리는 빨간 점을 발견하자마자 심장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화면에 뜬 사진은 푸른 어스름이 깔린 인천 바다였다. 백사장에 놓인 커피 두 잔, 그리고 수평선을 배경으로 찍힌 풍경 사진 몇 장. 희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 속 분위기는 지독하게도 평화롭고 다정했다. “인천...?”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진을 확대했다. 뇌 회로가 순식간에 복잡한 연산을 시작했다. 희수는 차가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차를 타고 갔다는 뜻이다. 민지인가? 하지만 민지는 오늘 서울에서 근무하는 날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누구지? 친구? 아니면... ‘남자?’순간, 재원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알 수 없는 소유욕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매몰차게 내팽개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희수가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와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졌다. “누구랑 갔든 알게 뭐야. 상관없잖아.”재원은 나직이 읊조리며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이별은 자유를 의미했고, 그 자유에는 상대의 사생활에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논리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이기지 못했다. ‘혼자 갔을 리가 없어. 희수는 혼자 바다에 갈 위인이 아니야.’재원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사진 속 유리잔에 비친 그림자를 분석하고, 해시태그를 샅샅이 뒤졌다. 평소라면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혐오했을 구차한 행동을 그는 반복하고 있었다. 불안은 독처럼 퍼져나갔다. 내가 없는 그녀의 세상이 이토록 빠르게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에게 매달리고, 울고, 답장을 기다리며 말라가야 할 희수가 왜 낯선 남자의 차를 타고 인천 바다를 보러 간단 말인가. ‘연락... 할까.’엄지손가락이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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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일상이라는 이름의 흉터

진우의 고백은 희수에게 구원이 아니라 숙제 같았다. 관계로 엮이고 싶지 않다는 희수의 말에 진우는 "그럼 편하게만 보자"며 물러섰지만, 약속을 잡는 과정부터 희수는 피로감을 느꼈다. [희수야, 우리 어디 갈까? 가고 싶은 곳 있어? 뭐 먹고 싶어?]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들. 희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재원과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이었다. 재원과의 첫 데이트는 철저히 ESTJ인 희수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오후 3시 만남, 3시 30분 카페 티타임, 5시 공원 산책, 6시 30분 저녁 식사, 그리고 9시 귀가. 하지만 그 첫 데이트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은 '계획'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굳이 멋진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재원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나란히 앉아 예능이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TV에 예쁜 아이돌이 나오면 재원이 무심하게 "오, 예쁘다"라고 한마디 하고, 희수가 "와, 진짜 예쁘네"라며 맞장구치면 재원이 실실 미소를 짓던 그 평온한 시간들. 희수는 그런 재원을 슬쩍 흘겨보다가도 그의 팔짱을 더 꼭 끼고, 그의 단단한 품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곤 했다.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희수에게는 가장 완벽한 데이트였다는 것을, 이제야 사무치게 회상하고 있었다.'평범한 연애는 개뿔.. 그게 젤 평범한 거지.'진우를 만나기로 한 날, 희수는 거울 앞에서 한껏 꾸몄다. 재원을 잊기 위한 오기라기보다,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문 밖을 나서는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진우는 여전히 대안이 없었다. "희수야, 오늘 뭐 먹고 싶어? 네가 정해줘."희수는 문득 재원과 첫 데이트를 했던 그 샤브샤브 집이 떠올랐다. "샤브샤브요."희수는 망설임 없이 앞장섰다. 진우보다 한 걸음 앞서 걸으며 그녀는 익숙한 길을 따라갔다. 그런데 진우는 옆에서 계속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어? 희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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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재회 프로젝트 로그온

진우와의 식사는 체기만을 남긴 채 끝났다. 가게로 돌아와 찬물을 들이켠 희수는 여전히 명치 끝이 답답했다. 누구를 만나도, 무엇을 먹어도 결국 끝은 재원이라는 결론. 희수는 이 지독한 굴레를 끊어내기보다, 차라리 그 굴레 안으로 다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먼저 인스타그램을 켰다. 진우와 잠시 다녀왔던 인천 바다의 풍경 사진을 올렸다. 캡션도 없이, 그저 푸른 바다와 모래사장뿐인 사진. ‘나 여기 갔다 왔어, 바보야. 나 너 없이도 이렇게 잘 돌아다니고 잘 지내.’속으로는 수천 번 외치는 말을 삼키며, 희수는 그 사진이 재원의 눈에 닿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주일 전, "저녁 맛있게 먹어"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멈췄던 시계태엽을 다시 감을 시간이었다. 희수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 창을 열었다. 그리고 재원에게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나... 자기 옆에서 중심 안 흔들리는 사람이 되면 안 돼?]눈을 꼭 감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읽지 않아도 좋았다. 읽고 무시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의 진심이 그에게 닿았다는 흔적만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충분했다. 하지만 희수의 휴대폰은 비명처럼 고요했다. 1분, 5분, 10분... 시간이 흐를수록 희수의 어깨는 점점 처졌다. 침묵보다 무거운 무반응. 역시 안재원답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역시... 안 되는 건가.’우울함의 늪으로 빠져들려던 찰나, 휴대폰 상단에 낯선 알림 하나가 떴다. [Jw0416 님이 Instagram 활동 중입니다.]희수의 눈이 커졌다. 재원의 아이디였다. 평소 SNS라면 질색하며 계정만 만들어두고 앱조차 깔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있다니. 심지어 희수가 바다 사진을 올린 지 불과 몇 분 만에. “어? 그가 인스타를? 왜?”의문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그는 보고 있었던 거다. 확신한다고 믿고 싶었다.그가 자신의 소식을, 자신의 사진을, 그리고 방금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망설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줄 알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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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전략가의 점술

다음날 희수는 일을 마치자 마자, 외투를 걸쳤다. 재원의 인스타그램 접속 알림은 희수에게 단순한 설렘을 넘어선 '확정적 신호'였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뿐이지만, 그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자신의 치밀한 계획이 재원이라는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보이지 않는 운명의 패를 미리 엿보고 싶었다. 희수가 찾은 곳은 연애 상담으로 정평이 난 홍대의 한 타로 카페였다. 붉은 벨벳 천이 깔린 테이블 앞에 앉은 희수의 눈빛은 기도를 올리는 신도라기보다, 전장으로 나가기 전 지형도를 분석하는 장군에 가까웠다. 희수는 타로 술사가 내미는 찻잔을 보지도 않은 채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상대방의 현재 상태와, 제가 세운 계획의 성패를 보고 싶어요. 추상적인 위로 말고, 현재 그 남자의 심리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 정확하게 짚어주세요." 희수의 단호한 요구에 타로 술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펼쳤다. 희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자신의 운명을 건드리듯 신중하게 세 장의 카드를 뽑았다. 첫 번째 카드는 [은둔자(The Hermit)]. 타로 술사가 카드를 뒤집자마자 나직한 탄성을 내뱉었다. "이 남자, 지금 지독하게 고립되어 있네요. 스스로 만든 동굴 안에서 빛 하나 없이 갇혀 있어요. 이성적으로는 완벽하게 잘 지내는 척하지만, 속은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상태예요. 사회적 기능만 간신히 하고 있는 좀비 같은 형국이라고 할까요?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죽겠는데, 자기 발로 들어간 동굴이라 나가는 법을 잊어버렸어요." 희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대구의 차가운 원룸에서 도면이나 뒤적거리며 완벽한 척 버티고 있을 재원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는 지금 자유를 얻은 게 아니라 고독이라는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어 두 번째 카드, [타워(The Tower)]가 뒤집혔다. 술사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이건 남자분의 자존심이에요. 보시다시피 벼락을 맞아 무너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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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회상] 연애의 시작 어떻게 생각해?

가게 구석에 앉아 타로 카드의 잔상을 떠올리던 희수는, 습관처럼 예전 메시지 창의 가장 윗부분으로 스크롤을 올렸다. 지금의 서늘한 침묵과는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는, 설탕 가루가 뿌려진 듯한 대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작은 사소한 질문이었다. [주말인데 뭐 해요?][볼일 있어서 나와 있어요]지금의 재원 같으면 '확인' 한 마디로 끝났을 그가[개인적인 볼일이라 나중에 말해줄게요]라며 여지를 남겼을 때, 희수는 예감했다. 이 무뚝뚝한 곰의 성벽에 아주 작은 틈이 생겼음을."나한테 나중에 말해준다고?"희수는 혼자 침대 위를 뒹굴며 좋아했다. 기세를 몰아 "내가 나이가 좀 더 많으니까 말 놓을까요?"라고 던진 제안에, 재원은 한참을 뜸 들이다 [그러자]라고 답했다. 그 짧은 세 글자가 희수에게는 세상 그 어떤 장문보다 짜릿했다.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묶어준 건 게임이었다. 같이 게임 해볼까로 시작한 작은 제안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다.같은 게임 연맹에서 활동하며 디스코드로 소통하던 밤, 사람들 틈에 섞여 작전 회의를 하던 중 재원에게서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다.[아 이제 힘들다. 너 목소리 더 들려줘. 듣고 자게.]순간 희수의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수십 명이 모인 디스코드 채널 안에서, 재원은 오직 희수의 목소리만을 이정표 삼아 밤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희수는 일부러 연맹 사람들과 더 재잘거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재원의 귓가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기를 바라며. [너도 조금 더 말해봐.]희수의 요구에 재원도 짧지만 나직한 목소리를 얹었다. 사람들 속에 섞여 우리만 아는 신호를 주고받는 그 은밀한 소통 방식. 그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오직 두 사람만의 마음이 통하는 알고리즘이었다. 어느 날, 희수는 장난기가 발동해 게임 닉네임을 '나너좋아'로 바꾸고는 재원에게 자랑했다. "나 닉넴 바꿨다? 봐봐."재원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누가 그렇게 좋아?"썸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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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관측 불가능의 지옥

재회 프로젝트의 첫 번째 수칙은 '완벽한 증발'이었다. 희수는 그날 이후로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비웠고, 인스타그램의 업로드도 완전히 중단했다. 인천 바다의 잔상만을 남겨둔 채, 희수는 자신의 디지털 세계를 스스로 닫아버렸다. 희수는 보란 듯이 자신의 일과에 몰입했다. 오전에는 밀려드는 미용 예약을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소화했다. 가위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가게 안에서 희수는 오로지 털 끝의 각도와 샴푸의 향기에만 집중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도 닦지 않았다. 몸이 고될수록 잡념이 파고들 틈이 좁아졌기 때문이다.가게를 정리하고 나면 희수는 일부러 밖으로 나돌았다. 예전에는 재원의 눈치를 보느라 미뤄두었던 친목 모임에 나갔고, 대학 동창들을 만나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희수는 퇴근 후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갔다. 시끌벅적한 고기집,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와 실없는 농담들이 테이블 위를 떠다녔다. 희수도 그 흐름에 맞춰 적당히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불쑥 물었다.“근데 희수야, 너 남자친구랑은 요즘 어때? 잘 지내?”순간 테이블의 소음이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희수는 타버린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무덤덤하게 답했다.“아, 우리 헤어졌어.”“뭐? 진짜? 너네 되게 오래 만나지 않았나? 왜?”“그냥. 갈 길이 달라서.”친구들은 안타까워하며 재원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아쉽지 않냐며 한마디씩 보탰다. 재원은 그녀의 친구들에게 언제나 나무같은 남자라고 말했으니저런 반응이 나올 만도 했다.희수는 그 말들을 묵묵히 들으며 소주를 삼켰다. 재원의 빈자리는 이런 식이었다. 타인의 입을 통해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들. 희수는 더 이상의 질문을 차단하듯 화제를 돌려 다른 친구의 연애 상담을 시작했다.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희수는 이어폰을 꽂고 평소 재원과 즐겨 듣던 노래들을 틀었다. 가사가 귀에 박힐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했지만, 희수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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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이별의 의식 : 재회 프로젝트

희수에게 ‘재회 프로젝트’는 이중적인 의미였다. 그를 다시 내 곁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정교한 덫임과 동시에, 만약 이 시도가 실패한다면 그를 내 인생에서 완벽하게 삭제하기 위한 가장 잔인하고도 정중한 장례 절차였다. 그녀는 더 이상 재원의 침묵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활동 중단, 카카오톡 프로필 초기화. 이것은 재원을 흔들려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희수 스스로가 재원이라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이기도 했다. 희수는 자신의 일과에 더 지독하게 몰입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미용 예약. 사나운 강아지들을 달래고, 가위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 털을 다듬다 보면 재원의 목소리는 잠시 멀어졌다. 샴푸실의 습한 열기가 얼굴을 덮칠 때마다 희수는 속으로 되뇌었다. ‘너 없이도 이 가게는 돌아가고, 내 하루는 어떻게든 채워져.’ 하지만 퇴근 후 찾아오는 공허함은 불가항력이었다. 희수는 집으로 가는 길, 일부러 한 정거장 일찍 내려 산책로를 걸었다. 이어폰에선 재원이 즐겨듣던 그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목소리 더 들려줘. 듣고 자게.]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맴돌았다. 헤어질 때의 그 모진 말들 보다, 연애 시작 전의 달콤했던 그 추억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사람들 속에 섞여 디스코드 안에서 우리만 아는 신호를 주고받던 그 밤들. 희수는 눈을 감고 찬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참 달콤했네, 우리.” 희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확인’의 과정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침묵하고 사라졌는데도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희수는 재원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미련이 바닥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주말에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갔다.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재원의 안부를 물었다. “근데 희수야, 너 남자친구랑은 요즘 어때? 너네 되게 오래 만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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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막다른 길

대구의 밤은 이제 재원에게 거대한 수조와 같았다. 숨을 들이켜려 해도 차가운 정적만이 폐부를 찔렀다. 희수가 소식을 끊은 지 일주일째. 처음엔 오기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 들 줄 알았지만, 희수는 정말로 단 한 톨의 신호도 남기지 않은 채 증발했다. 재원은 불도 켜지 않은 숙소 소파에 앉아 차 키를 만지작거렸다. 카카오톡 창을 열어 희수의 이름을 검색했다가, 프로필 사진도 없는 텅 빈 하얀 원을 응시했다.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이 재원의 초췌한 얼굴을 비췄다. 불과 한 달 전, 재원은 희수의 연락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중심을 못 잡는 그녀가 짐스럽다고 했다. 그때의 자신은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었지만, 그 빈자리는 이제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재원을 짓눌렀다. 낮에는 유능한 이로 살았고, 동료들과 술잔을 섞었다. 하지만 혼자 남는 순간, 재원은 자신이 속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건, 개소리였어.” 재원은 나직이 읊조렸다. 이별 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옅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희수의 부재를 더 선명하게 증명할 뿐이었다. 퇴근길에 습관적으로 그녀의 가게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다 멈출 때마다 그녀와 자신의 거리감을 더욱 체감 할 뿐이었다. 재원은 몇 번이나 희수의 번호를 눌렀다 지웠다. [미안해] [보고 싶어]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어떤 문장을 써도 손가락이 멈췄다. ‘지금 가서 무슨 말을 해?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잖아. 이제 와서 매달리면 희수가 널 얼마나 우습게 보겠어?’ 재원의 안에서 자존심이 속삭였다. 자신은 늘 정중했고, 예의 발랐으며, 선을 지키는 남자였다. 그런 네가 이제 와서 무너진 몰골로 그녀를 찾는다면, 네가 쌓아온 모든 모습은 부정당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자존심보다 더 무서운 감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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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등대와 표류선

희수는 텅 빈 거실에 앉아 자신의 SNS 프로필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텅 빈 사진, 비워진 상태 메시지. 그것은 재원을 향한 시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희수 자신을 깎아 먹는 자학이었다. 재원을 잊기 위해, 혹은 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두는 '이별 장례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수의 숨통을 조였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희수는 깨달았다. 자신은 표현하고, 확인받고, 뜨겁게 사랑을 쏟아내야만 비로소 숨을 쉬는 사람이었다. 재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혹은 그를 자극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이었다. ‘내가 왜 그의 침묵에 맞춰 내 빛을 꺼야 하지?’희수는 결심했다. 프로젝트의 방향을 수정했다.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답게 더 밝게 빛나기로. 그가 길을 잃고 헤매는 배라면, 나는 그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제자리를 지키는 등대가 되기로 했다. 설령 그 빛이 그에게 닿지 않아 자신 혼자 밤을 밝히게 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을 잃지는 않겠다는 마지막 자존감이었다. 희수는 일주일 만에 메시지 창을 열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이것은 구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나 자기 옆에 있을래. 말 안 듣는 게 원래 나잖아.][자기 말 들으려고 사라지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네.]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제 공은 던져졌다. 그가 다시 침묵한다면 그때는 정말 이 빛을 끄지 않은 채 당당하게 내 길을 걸어가면 그만이었다. 희수는 어둠 속에서 다시 빛나기 시작한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시각, 재원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희수가 없는 세상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의 흔적이 사라진 일주일은 재원에게 자신의 존재 근거가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상관없었다. 그저 희수의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그 앞에 무릎을 꿇어도 좋다는 절박함으로 엑셀을 밟았다. 띠링. 적막한 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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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확신의 덫

고속도로 갓길에서 희수의 메시지를 확인한 재원의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일주일간 자신을 괴롭히던 소멸의 공포는 희수의 메시지 한 줄에 씻은 듯 사라졌다. [나 자기 옆에 있을래.] 그 문장은 재원에게 구원인 동시에, 비겁한 안도감을 주는 마취제였다. ‘역시 넌 날 기다리는 구나.’재원은 핸들을 돌려 유턴했다. 서울로 향하던 엑셀은 이제 다시 대구를 향했다. 지금 당장 달려가는 것은 항복하는 자의 선택이었다. 희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확신이 들자, 재원의 머릿속에선 다시 정교한 계산기가 돌아갔다. 지금 가서 무너진 몰골로 재회하는 것보다, 희수가 조금 더 안달 나게, 자신이 다시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는 길이라 믿었다. 재원은 숙소로 돌아와 다시 일상에 복귀했다.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유쾌했다. 재원은 중심에서 대화를 주도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유능하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대접했다. 하지만 재원의 신경은 테이블 밑, 무릎 위에 놓인 휴대폰 액정에 쏠려 있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시작된 희수의 인스타그램. 가게에서 강아지를 미용하며 활짝 웃고 있는 희수의 사진,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찍은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재원씨,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시네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옆자리 동료의 물음에 재원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날이 좋아서요.”희수의 메세지로 재원은 숨통이 쉬어지는 듯했다.술자리의 퀴퀴한 냄새조차 재원에게는 맑은 공기인듯 상쾌하게 느껴졌다.지옥은 끝났다. 재원의 자존심은 지켜졌고, 희수가 자신의 침묵에도 그 자리를 지킬지 시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재원은 술잔을 비우며 다시 화면을 훔쳐봤다. 사진 속 희수는 눈부시게 밝았다. 재원은 그것을 자신을 향한 강렬한 시위라고 해석했다. ‘나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빨리 와서 나 잡아.’라고 외치는 무언의 몸부림. 하지만 스크롤을 내릴수록 재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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