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라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설마 나... 박도영한테 속은 거야?’“자, 누우세요. 긴장할 것 없어요. 그냥 간단한 검사예요.”외국인 의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은유라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무심코 주머니를 더듬었지만, 안에 텅 비어 있었다.가방은 정우진에게 두고 왔고 휴대폰도 그 안에 있었다.박도영에게 전화라도 걸어 상황을 묻고 싶었지만...“은유라 씨, 긴장 푸셔도 됩니다.”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외국인 의사가 침대를 툭툭 치며 말했다.“일단 누우시죠. 밖에 다른 환자들도 기다리고 있어요.”은유라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검사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배 살짝 들어 올리세요.”외국인 의사가 검사 기구를 세팅하며 그녀가 굳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금 재촉했다.은유라는 옷자락을 꽉 움켜쥔 채 입을 뗐다.“저기... 죄송한데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요. 도영이한테 할 말이 있는데 대신 전화 좀 걸어주실 수 있나요?”“검사 끝나고 위층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의사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는 은유라를 빤히 쳐다보며 눈썹을 까닥였고 서두르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이에 은유라는 떨리는 손길로 옷을 천천히 걷어 올렸다.“그냥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세요. 딱 한 마디면 돼요.”마스크를 쓴 외국인 의사의 푸르스름한 눈동자에 찰나의 짜증이 스쳤다.“은유라 씨, 지금 진료 중입니다.”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 없다는 명백한 거절이었다.은유라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옷을 걷어 올렸다.배 위로 서늘한 공기가 닿았고 뒤이어 차가운 기계의 감촉이 온몸으로 퍼지며 한기를 더했다.“지금...”외국인 의사가 입을 열기 바쁘게 안쪽 문 너머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박도영이 검사실에 나타났다. 그는 휴대폰을 들고 외국인 의사에게 말했다.“교수님, 연구실 쪽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계속 전화를 드려도 안 받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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