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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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경원의 구정은 그야말로 떠들썩했다. 창밖으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백화점들은 저마다 설날 분위기로 예쁘게 장식했다.신시아의 방은 커튼이 굳게 닫혀 있어 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 실내를 채운 정적은 그녀에게 왠지 모를 황량함마저 느끼게 했다.전화 한 통에 잠은 다 달아났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가끔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그녀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몽롱한 상태로 겨우 다시 잠들었지만 반쯤 깨어 있는 채로 반나절을 허비했다.결국,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신시아가 막 몸을 일으켰을 때, 김지원한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왜 보육원에 안 있고 집에 갔어?”그녀가 집이라니, 김지원은 나름 의외였다.“설마 한 원장님이 또 이상한 소리 했니?”“아니야, 그런 거. 어제 갑자기 일이 생겨서 돌아왔어.”말은 이렇게 해도 신시아는 이제 더는 보육원에 발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다음부터는 절대 혼자 가지 마. 널 만만하게 보고 종일 부려 먹잖아.”한채은은 성격이 난폭한 김지원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어도 신시아만 보면 들들 볶기가 일쑤였다.신시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앞으로는 혼자 갈 일도 없겠지. 퇴사하면 우리 계속 같이 있을 거잖아.”“그러네. 나 또 좋은 곳 하나 알아봐 뒀어. 얼른 옷 입고 나와. 산후조리사도 가셨으니까 우리끼리 설 명절 보내자.”김지원은 원래 신시아를 자기 집으로 불러 같이 설 명절을 보낼 생각이었다.한편 신시아는 한채은을 도우려 보육원으로 돌아가려 했다.설령 한채은이 아니라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는데...집에 먹을거리라곤 하나도 없는데 마트까지 문을 닫아버리니 신시아는 어쩔 수 없이 김지원의 집으로 향했다.그녀는 대충 빵 몇 조각으로 허기를 때우고 현관문을 나섰다.김지원의 집에서 둘은 함께 떡국도 만들고 김지원의 아들 김서빈 생애 첫 설날을 보내기도 했다.남들은 대가족이 모여 시끌벅적한 설 명절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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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정우진의 말에 신시아는 뭐라고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굳이 떠나겠다고 고집을 피우자니 마치 다른 직장을 찾아서 백영 그룹을 배신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그렇다고 이곳에 계속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정우진은 그 자리에 서서 어두운 눈빛으로 신시아를 쳐다봤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이다.“대표님, 진짜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사직하는 겁니다.”신시아는 아예 사생활을 핑계 삼아 얼버무리려 했다.이에 정우진이 눈썹을 살짝 치키고 생각에 잠겼다.“그럼 나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신 비서의 사직 신청 반려할게.”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사무실에 들어갔다.신시아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지난번처럼 흐지부지 발령을 냈던 것과는 달랐다. 이번에 정우진은 명확하게 퇴사를 반려한다는 뜻을 밝혔다.하지만 정작 반려 사유는 그녀를 얼버무리려는 핑계에 불과했다.정우진이 사직을 반려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가 말했듯 백영 그룹은 누가 떠나든 알아서 잘 돌아갈 회사이니까.신시아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우진을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대표님, 계약서에 분명히 적혀 있을 텐데요.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상대측에서 제기한 해지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고요.”정우진은 외투를 벗고 의자에 앉아서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그는 미간을 구긴 채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자고로 우리 회사에는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고 퇴사하는 직원이 없어.”그의 태도는 분명했다. 신시아가 떠나고 싶다면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옷자락을 움켜쥔 손등에 실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이토록 고집스러운 여자의 모습은 정우진의 깊은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잠깐의 팽팽한 침묵 끝에 신시아가 결국 물러섰다.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자리로 돌아온 신시아는 곧장 백영 그룹과의 전자 계약서를 찾아 화면을 띄웠다.계약 만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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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이은수는 씩씩거리면서 비서실로 돌아갔다.정우진과 은유라의 약혼 소식이 파다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다만 방금 은유라의 들뜬 표정을 보니 아마도 곧 치르게 될 것 같았다.은유라가 말로는 신시아가 남아있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결코 그녀를 용납하지 못할 터였다.신시아는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을 힐끗 보았다.‘나보다 더 조급해진 사람이 생긴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겠는데?’생각을 마친 그녀는 다시 업무에 몰입했다.30분 뒤, 이사회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정우진이 사무실을 나와 회의실로 향했다.신시아가 노트북을 들고 따라오는 모습을 곁눈질하더니 남자는 구겨졌던 미간이 저도 모르게 펴졌다.신시아는 맡은 자리에서 한순간도 허투루 일하지 않았다.연달아 3일 동안 퇴사가 무산된 사람 특유의 무기력한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정우진 역시 그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업무적인 대화 외에는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어떤 이상한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다.신시아가 조금 의외라고 생각한 부분은 정우진이 임정현에게 맡겨져 있던 업무의 상당 부분을 자신에게 넘겼다는 점이었다.임정현의 업무는 점차 각 부서를 총괄하는 방향으로 옮겨갔고 신시아는 주로 정우진과의 업무 인수인계에 집중했다.그 후로 이틀 밤 연속 그녀는 정우진과 함께 외부 행사에 참석했다.술잔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자리에서 임정현이 없으니 더 이상 대신 술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운전 담당 신시아도 술을 댈 수 없어 결국 정우진이 모든 걸 받아마셨다.하지만 아무리 많이 마셔도 연초에 벌어졌던 것처럼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덮쳐들 정도로 만취한 것은 아니었다.밤 11시, 마이바흐가 라움 별장 앞에 멈춰 섰다.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별장 문이 열리며 누군가 뛰쳐나왔다.신시아가 차에서 내리려던 찰나, 은유라가 한발 앞서 뒷좌석의 차 문을 열었다.“오빠 왜 이제야 돌아와?”그녀는 정우진의 팔짱을 끼고 경계 가득한 눈길로 신시아를 쳐다봤다.정우진은 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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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하긴, 방금 그 말은 신시아의 일방적인 주장일뿐 은유라에겐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그녀는 곧장 정신을 차렸다.“그러게요! 오빠가 왜 시아 씨를 붙잡겠어요. 저 여자 정말 속이 다 보이네요. 하마터면 오빠한테 괜히 따질 뻔했네요. 그럼 또 싸움 날 게 뻔한데 말이죠.”기현주는 그녀를 다독였다.“유라야, 아무 생각 말고 우진이랑만 잘 지내면 돼. 시아 걔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우진이랑 싸우지 마. 그 녀석 성격 너도 알잖아...”정우진이 일을 제쳐두고 사람들 앞에서 은유라를 쫓아가서 달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다.은유라는 그 사실을 알기에 지난번 문자 한 통으로 다퉜을 때도 먼저 머리를 숙였었다.그 시각, 신시아는 차를 천천히 몰다가 은유라가 휴대폰을 꺼내 통화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다시 액셀을 꾹 밟았다.새벽 한 시.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휴대폰을 챙겨서 침대에 누웠다.김지원이 영상 통화를 걸어와 신시아의 지친 얼굴을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정우진 씨와의 결혼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 관둬야 해. 이렇게 강도 높은 일을 보통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데 하물며 임신부인 네가 어떻게 버티냐고!”신시아는 입덧이 심하지만, 줄곧 약으로 억누르고 있었다.구토는 멈춰도 식욕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현재 임신 9주 차, 신시아는 임신 전보다 무려 4킬로나 빠졌다.“알았어. 신경 쓸게.”김지원은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군성에 성주에 남영까지, 대체 언제쯤 가보냐고!”신시아의 사직서가 반려되었다는 소식에 그녀는 좌절 각이었다.“곧... 갈 수 있을 거야.”신시아가 대답했다.은유라와 정우진의 관계가 좋아 보이지만 아직 은유라는 이 남자를 휘어잡지 못했다.그렇다면 결국 기현주에게 도움을 구할 터, 기현주만 나선다면 신시아의 퇴사는 시간문제일 것이다.기현주는 신시아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였다.아침 댓바람부터 연락이 와서 오전 8시에 백영 그룹 빌딩 아래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신시아는 약속 시각보다 10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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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정다슬은 워낙 선머슴 같은 성격이라 살갑거나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그래서인지 기현주는 은유라를 곁에 두고 키웠고 틈만 나면 정씨 가문으로 불러들였다.“넌 우진의 약혼녀이자 우리 집안의 예비 며느리인데 뭐가 걱정이야?”기현주는 은유라의 손등을 토닥였다.“앞으로는 하고 싶은 거 다 해.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뒤 봐줄 테니까.”이 말을 들은 은유라는 금세 기세등등해졌다.“자, 이제 서류나 빨리 처리해. 난 너희 둘 약혼 문제나 챙길게. 저녁에 너희 부모님이랑 약속 잡았으니 이참에 날짜 정하자. 우진이랑 늦지 않게 와.”기현주는 한가득 당부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문제는 은유라였다. 회사 업무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그녀가 어떻게 정우진을 감쪽같이 속여 서류에 서명하게 할지가 관건이었다.하루가 거의 다 지나갔고 정우진은 신시아와 함께 분주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은유라는 몇 번인가 업무와 관련해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도무지 기회를 잡지 못했다.저녁 퇴근 무렵, 갑작스러운 프로젝트 이슈가 생기면서 정우진은 회의실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신시아는 은유라가 몹시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몇 번 도움을 주려고도 했지만 은유라가 업무의 ‘업’자도 모르는 터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저녁 7시, 드디어 회의가 끝났다.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을 챙기고 정우진을 따라나섰다.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은유라가 달려들어 신시아를 이 남자의 옆에서 밀쳐냈다.“오빠, 우리 엄마, 아빠는 벌써 레스토랑에 가 계신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우리도 얼른 가자.”정우진은 시계를 슬쩍 보더니 들고 있던 서류를 신시아에게 건넸다.“사무실에 갖다 놔.”신시아는 고개를 숙여 서류를 받아 들었다. 은유라가 정우진의 팔을 잡아끌며 사라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별안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이 오늘 꼭 약혼 날짜를 정하자고 하셨어. 오빠는 생각해 둔 날짜 있어?”“정 대표님, 드디어 은유라 씨랑 약혼하시나 봐!”“며칠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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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신시아의 회사 내 입지는 정말 독보적이었다.주하영은 자신이 그녀 뒤를 이으리라고는 평생 꿈도 꾸지 못했다.하지만 뒤를 봐주는 사람이 미래의 안주인이 될 은유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걱정 마세요, 유라 씨. 저는 앞으로 유라 씨 사람이에요. 정 대표님 곁을 철저히 지키면서 다른 여자들이 얼씬도 못 하게 막을게요. 아, 아니죠. 애초에 대표님 마음속엔 유라 씨밖에 없으니 다른 여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도 귀찮은 문제는 없는 게 나으니까 제가 그 수고를 덜어드릴게요. 대표님이 유라 씨한테 더 집중할 수 있도록요.”은유라의 입가에 드디어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해지 계약서를 주하영의 손에 쥐여주었다.“이제 하영 씨는 내 편이에요. 내일 신시아 출근하면 이 서류 건네고 어떻게든 사인받아서 내보내요.”“네, 알겠습니다!”주하영은 서류를 받아 들고 내일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경원 호텔, 최상층의 럭셔리한 프라이빗 공간.정우진과 은유라가 약속 시각보다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자마자 기현주가 매섭게 쏘아붙였다.“유라네 가족이랑 저녁 식사 약속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이렇게 늦게 와?”은유라의 어머니 손연경이 급히 중재에 나섰다.“젊은 사람이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가족끼리 뭘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게다가 유라도 늦게 왔는데요 뭘.”“유라는 우진이랑 같이 왔잖아요. 분명 이 녀석 때문에 늦은 걸 거예요.”기현주가 덧붙이며 정우진을 향해 눈을 흘겼다.“유라 부모님들 너 올 때까지 기다리시느라 식사도 못 하셨어.”“먼저 드시지 그러셨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정우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곁에 있는 은유라의 의자까지 세심하게 끌어주면서 말이다.은유라는 그의 옆에 앉아 기현주와 정재형에게 깍듯이 인사했다.“아버님, 어머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정우진의 아버지 정재형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기현주는 그녀가 볼수록 흡족한지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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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기현주는 무슨 말을 덧붙여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우진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으니까.정씨 저택까지 가는 길은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정우진은 차에서 내려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칫, 네가 과연 유라를 완전히 외면할 수 있을까?”기현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내 휴대폰을 꺼내 손연경에게 전화를 걸었다.“약혼식은 열흘 뒤로 할게요. 우진이가 워낙 바쁘니 준비는 우리끼리 해요 그냥.”...퇴사 문제는 신시아의 마음을 온통 뒤숭숭하게 만들었다.밤새껏 백영 그룹을 떠나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꿈, 혹은 김지원과 함께 군성으로 떠나는 꿈 사이를 헤매다 잠에서 깨어났다.알람 소리가 두 번이나 울리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신시아는 세수를 하고 서둘러 회사로 향했다. 8시 59분, 아슬아슬하게 출근 시간을 맞추고는 삶은 달걀 두 알을 들고 자리로 향했다.하지만 텅 비어야 할 그녀의 자리에 주하영이 앉아 있었다. 삐걱거리는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 채 마치 제자리인 양 편안한 모습이었다.신시아는 달걀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거만한 표정으로 주하영을 내려다보았다.“오셨어요, 신 비서님?”주하영의 얼굴에 잠시 어색함이 스쳤지만 즐기는 표정을 거두었을 뿐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는 없었다.“벌써 아홉 시네요. 회사 규정상 최소한 5분 전에는 출근해서 카드를 찍어야 하는데 이건 지각 아닌가요?”주하영의 어처구니없는 말투와 표정에 신시아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래서요?”주하영은 인턴 기간도 아직 끝나지 않아 부서 내에서 늘 뒷전이었다.그런 주제에 신시아 앞에서 훈계를 늘어놓고 있다니, 꼭 마치 어설픈 꼭두각시 같았다.신시아의 비웃음에 주하영은 자존심이 제대로 긁혔다.“게다가 아침 식사까지 챙겨오셨네요? 신 비서님은 대표님을 모시는 사람인데 이렇게 규율을 어겨도 되는 거예요?”“말 잘했네요. 저는 대표님을 모시는 사람이에요.”신시아가 덥석 말을 끊었다.순간 주하영은 말문이 막혔다.신시아는 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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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신시아는 정우진의 목소리를 듣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서류를 챙겨 넣으려 했다.하지만 그때, 정우진은 주하영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신시아의 자리에 서 있는 주하영을 바라보았다.신시아는 고개를 돌려 정우진의 탐색하는 듯한 시선과 마주했다. 이제 막 입을 열려던 참인데...“대표님, 신 비서님은 곧 퇴사 절차를 밟으실 겁니다. 앞으론 제가 신시아 씨 업무를 맡게 되었으니 잠시 후 회의 준비도 제가 하겠습니다!”주하영은 신시아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한편 그녀의 말을 들은 신시아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망했다!’머릿속엔 오직 이 단어뿐이었다.“누가 퇴사를 해?”정우진이 대뜸 눈을 가늘게 떴다.“신 비서님이요.”주하영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사인만 하면 바로 회사에서 나가실 겁니다.”정우진의 시선은 신시아의 펜이 막 지나간 해지 계약서에 꽂혔다.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고 마치 경원의 한겨울 밤처럼 공기마저 얼어붙었다.특히 자신의 글씨가 보이자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길로 신시아의 얼굴을 쏘아보았다.한편 신시아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사인하려다 들킨 복잡한 심경 외에는 어떤 당황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오히려 주하영이 더 당황했다.그녀는 어제 정우진이 자신의 휴가 신청서에 서명했던 것이 신시아의 퇴사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그렇다면 정우진은 신시아가 퇴사하려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주하영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급하게 해명했다.“대표님, 이건 은유라 씨가 시킨 일입니다!”“따라와.”정우진이 이 한 마디만 내뱉고 사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신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재빨리 해지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끝까지 채워 넣은 뒤, 그를 따라 들어갔다.주하영도 그 뒤를 따랐다.사무실 안, 정우진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음울한 표정이 실내 공기를 팽팽하게 만들었다.그는 신시아를 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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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기현주는 분노로 얼굴을 붉힌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은유라를 데리고 나왔다.신시아의 책상 앞에 멈춰 서더니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또 네 짓이지!”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신시아 역시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해지 계약서를 기현주에게 내밀었다.“약간의 이슈가 있었지만 어쨌든 사인은...”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현주가 계약서를 낚아채 반으로 찢어버렸다.“위선 작작 떨고 앞으로 우진이 곁에서 얌전하게 굴어!”그 말을 끝으로 기현주는 은유라를 잡아끌며 사라졌다.은유라는 애처로운 몰골과는 달리 눈 속에 이미 신시아를 향한 묵은 원망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한편 신시아는 찢어진 계약서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정우진이 대체 기현주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저토록 마지못해 하면서도 그녀를 정우진 곁에 두는 것을 허락한 걸까.“들어와.”내선 전화가 울리고 정우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신시아는 잠시 망설이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회의 30분 뒤로 변경해.”정우진은 코에 걸려 있던 금테 안경을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곧이어 몸을 뒤로 젖히고 두 손으로 책상 끝을 짚고서 신시아를 바라보았다.“대표님.”신시아는 책상 앞에 반듯하게 서서 말했다.“퇴사 문제는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 때문에 여사님이나 은유라 씨와의 관계를 망치진 말아 주세요.”정우진의 무표정한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마치 조금 전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했다.하지만 말투에서 은근한 위협이 감돌았다.“설마 네가 사인만 하면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정우진이 작정하고 문제로 삼는다면 해지 계약서의 효력은 없을 터였다.하지만 정말 그 지경에 이르더라도 정우진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리가 없다.어차피 은유라가 더 중요할 테니까.지금은 단지 사람들 앞에서 상황이 발각되어 분노하는 것뿐이다. 적어도 신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나가고 싶으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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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신시아 역시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침묵했다.“하선재 씨가 널 스카우트할 때 그냥 따라갔으면 됐잖아.”김지원이 분석에 나섰다.“구창 그룹도 경원에 있긴 하지만 적어도 정우진 곁에 있는 것보다는 나아. 다섯 달 뒤면 배도 제법 나올 텐데 만에 하나 정우진이 알게 되면 그때 넌 도망도 못 쳐.”신시아는 정우진 몰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오직 말로만 아이 출생의 비밀을 덮으려 한다? 그건 결국 들통나기에 십상일 테고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도박이 될 것이다.“다른 방법 없을까?”“그러면...”김지원이 문득 좋은 생각이 난 듯 말했다.“하선재 씨한테 한번 연락해 봐. 너한테 위약금을 내줄 의향이 있는지. 만약 그 사람이 동의하면 구창 그룹으로 확 갈아타.”다만 신시아는 말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하 대표님은 우진 씨 골탕 먹이기 위해서라도 분명 4억 원의 위약금을 내주실 거야. 하지만 지금 내 신분으로 구창 그룹에 간다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는커녕 백영 그룹을 배신했다는 낙인만 찍혀서 업계에서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할 거야.”“게다가 지금 내 처지가 어떤지 너도 잘 알잖아. 이런 상황을 숨기고 입사하는 건 명백한 사기야. 구창 그룹에서 알게 되면 위약금 몇 푼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임신 사실을 숨기고 입사하는 것은 근로 계약 위반이다. 신시아는 지금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김지원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어렵다. 애초에 백영 그룹에 발을 들인 게 실수였어. 정우진을 만나서 네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잖아. 너처럼 괜찮은 조건이면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됐네요. 나 이제 일해야 해. 저녁에 다시 얘기하자.”회사에서 임신 얘기를 직접 할 수 없었기에 신시아는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그녀는 곧장 제자리로 돌아갔다.어둑한 복도 끝, 문이 스르륵 닫혔다. 마지막 빛줄기가 사라지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다가왔다.은유라는 복도 문을 살짝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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