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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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신시아는 방금 먹었던 점심을 전부 토해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시큼한 통증이 온몸을 뒤덮었다.더 이상 토할 것이 남지 않자 그녀는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병원 안 가봤어?”정우진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신시아는 그제야 이 남자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얼굴을 닦았다.“죄송합니다. 제가 실례했네요. 차에 가서 기다리세요, 대표님.”정우진은 벽에 기댄 채 생수병을 들고 있었다.“언제부터 위가 이렇게 안 좋아진 거야?”예전 같았으면 신시아는 대부분 시간을 위통에 시달리며 안색이 창백했지만 토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불과 이틀 사이에 정우진은 벌써 두 번이나 그녀가 구토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관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그녀는 담담하게, 하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잠시 망설이더니 또다시 말을 이었다.“최근 들어 위장병이 잦아져서 사표 내고 제대로 치료받고 싶었어요.”정우진은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훤칠한 키가 그녀를 온전히 집어삼킬 듯했다.“정 그렇게 몸이 안 좋으면 병가 내면 되잖아.”몸을 돌보겠다고 회사까지 관두는 건 전혀 신시아 답지 않은 결정이다.정우진은 은연중에 그녀의 사직을 하선재와 연관 짓고 있었다.반면 신시아는 정우진이 자신을 곁에 두는 이유가 은유라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 목적이 달성되면 다시 그녀에게 다정함을 베풀 테고 둘은 금실 좋은 연인이 되겠지.결국, 신시아만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셈이었다.“다음 주에 이틀 정도 병가 내도 될까요, 대표님?”신시아는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꺼냈다.지난번 병원에 갔을 때 그녀는 산전 검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났으니 검사를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알았어.”정우진은 흔쾌히 승낙했다.토하고 나자 신시아는 머리가 띵했지만 속은 훨씬 편안해졌다.결국, 정우진이 운전대를 잡고 그녀와 함께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한편 은유라는 이번에 정우진에게 달래져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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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업무는 끝도 없었다. 신시아는 주말까지 반납하며 야근을 이어갔다.드디어 휴가를 이틀 얻어낸 그녀는 병원으로 향했다.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맸다.산전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옆에는 모두 누군가 함께 있었다. 둘씩 짝지어 있는 사람들 틈에서 신시아 홀로 있는 모습은 유독 눈에 띄었다.그녀는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아 챙 넓은 모자 아래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근처에 앉은 신혼부부가 나눈 대화가 들려왔다.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찾아온 아이를 기다리는 그들의 얼굴에는 이제 곧 부모가 되는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 찼다.신시아는 조심스레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곧이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녀 또한 이 아이와의 만남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신시아?”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손에 검사 결과지를 든 하선재가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신시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진짜 신 비서네!”하선재는 놀란 눈으로 다가오다가 배가 불룩한 임산부를 칠 뻔했다.“여기서 뭐해?”모른 척하기엔 너무 늦었다.신시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건강검진 받으러 왔어요.”하선재의 시선이 주변을 둘러싼 임산부들에게 향했다.“산전 검사?”“여성 종합 검진에 초음파 항목이 포함되어 있어서요.”주변에는 산부인과 검진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여럿 있었다.하지만 하선재는 쉽사리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멀쩡한 사람이 무슨 종합 검진이야?”“위가 안 좋아서 휴가 낸 김에 전면 검진 한번 받아보려고요.”신시아는 태연하게 화제를 돌렸다.“하 대표님은 아직 퇴원 안 하셨나 봐요?”하선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는 신시아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정우진 덕분에 한동안 병원 신세 좀 지게 됐어.”지금이야 자신이 해임된 이유를 몸이 안 좋아서라고 둘러댈 수 있어도 퇴원해서 회사로 돌아갔는데 사실 정우진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 남자의 체면이 바닥까지 짓밟힐 터였다.“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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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의사는 화면을 신시아 쪽으로 조금 더 기울였다.“이건 태아 심장 소리예요. 한번 들어보세요.”평평한 배는 아이의 존재를 실감하게 해주지 못했다.하지만 화면 속 데이터와 의사가 가리키는 아이의 손과 발을 보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서서히 따뜻한 온기로 채워졌다.이 아이만이 유일하게 자신과 혈육으로 이어진 존재였다.초음파 사진이 인쇄되어 나왔다. 신시아는 사진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초음파실을 나섰다.그 시각, 하선재는 목에 그녀의 가방을 걸치고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조금 전 두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이미 다른 임산부 두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하 대표님, 이제 병실로 돌아가세요. 저는 다음 검사가 남았어요.”다만 하선재는 가방을 가져가려는 그녀의 손을 가로챘다.“심심해 죽겠는데 그냥 검사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 이야기도 좀 하고.”그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말했다.“은유라가 또 귀찮게 굴었어?”신시아는 산부인과 진료실로 가야 했다. 그녀는 하선재의 목에 걸린 가방을 억지로 빼앗아 들었다.“대표님은 농담도 참... 저랑 은유라 씨는 서로 악감정도 없는데 뭣 하러 저를 귀찮게 굴겠어요?”이에 하선재가 추궁했다.“그럴 리가! 걔 나한테까지 전화 와서...”“저 이제 검사 다 받았으니 대표님도 얼른 병실로 돌아가세요. 가방 들어줘서 고마웠어요.”신시아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몸을 홱 돌렸다.하선재가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끽해야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찾기 위함이다.몇 번의 만남을 거치면서 신시아는 구창 그룹 대표로서 하선재에게 가졌던 존경심이 거의 고갈되었다.그녀가 앞장서서 걸었고 하선재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이라도 좋으니 나랑 이야기 좀 하자...”병원 문을 나서자 찬 바람이 불어왔다.신시아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어 괜찮았지만, 환자복 차림의 하선재는 3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악’ 소리를 내며 다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신 비서 이러기야? 나 혼자 두고 가버리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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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남편분은 같이 안 왔나요?”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살피며 말했다.“아기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산모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그래도 남편이랑 함께 임신 기간을 보내고 애가 태어난 후에도 육아에 꼭 참여하도록 하세요. 그게 아이한테도 훨씬 좋은 거거든요.”신시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남편이 일이 있어서 못 왔어요.”“이따가 4D 입체 초음파 할 땐 꼭 남편분 모시고 오세요. 아이가 누굴 더 닮았는지 볼 수 있거든요. 아빠랑 아이가 유대감을 형성하는 좋은 기회예요.”산부인과 의사는 40대로 돼 보이는 자애롭고 상냥한 인상의 여자였다.“요즘 젊은 부부들은 출산과 양육에 대해 너무 소홀하다니까요. 지난번 산전 검사 때도 혼자 오셨죠? 아빠가 참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산모분 혼자 엄청 힘들 거예요. 게다가 세상에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신시아는 조용히 듣기만 할 뿐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했다.의사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다.세상에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던 말.그녀는 김지원을 찾아간 후에도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김지원이 그녀 앞에 손을 흔들었다.“지금 너한테 묻잖아.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은 어느덧 김지원이 신시아를 만날 때마다 묻는 공식 질문이 돼버렸다.신시아는 생각을 떨쳐내고 한숨을 쉬었다.“기회 봐야지. 만약 안 주어진다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나려고.”직감이 말해주길 은유라가 그녀를 정우진 곁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을 듯싶었다.김지원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들키는 거 안 무서워?”“무섭지 당연히.”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이미 큰 도박이었어. 지금은 내게 불리한 상황이지만 완전히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거고 만약 못 빠져나온다면 이 일 관둬. 최악의 경우,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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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신시아가 ‘하 대표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자 하선재는 두 눈을 반짝이며 왠지 모를 흥분을 느꼈다.“너를 이용해서 정 대표 괴롭힐 생각 없어. 그냥 너랑 친구가 돼서 은유라가 힘들게 할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고 뭐 또 그런 김에 구경도 좀 하고, 재밌잖아.”이에 신시아가 고개를 저었다.“친구는 서로가 원해서 하는 거죠. 미안하지만 저는 친구 될 생각 없습니다!”하선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그럼 대시해야겠다. 대시하는 건 네 동의가 필요 없으니.”“차라리 병원 돌아가서 치료나 받으세요.”신시아의 얼굴이 굳어졌다.“길 좀 비켜주실래요? 집에 가야 해서요.”‘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계속 치료받아야지, 왜 기어 나왔어?’하선재가 가볍게 웃었다.“오케이. 가봐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그가 길을 비켜주자 신시아는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하선재의 번호를 차단해버렸다....오전 10시, 백영 그룹 빌딩 최상층 회의실.금테 안경 너머 정우진의 가늘고 긴 눈은 짙은 검은 빛을 띠며 은호 그룹과의 협력에 관한 서류를 훑고 있었다.양옆으로는 이번 협력에 참여한 여러 이사가 빼곡히 앉아 그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정우진은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야 잔이 비어있음을 깨달았다.“신 비서, 가서 커피 타 와.”커다한 회의실에 순간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뭇사람들의 시선이 저도 몰래 정우진의 옆에 앉아 있는 은유라에게 쏠렸다.은유라는 사색이 되어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한편 정우진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오롯이 눈앞의 서류에만 몰두했다.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대표님, 신 비서님 병가 내셨어요. 제가 가서 커피 타오겠습니다.”눈치 빠른 임정현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커피잔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정우진은 안경을 벗고 미간을 문지르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은유라를 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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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사람 잘못 보셨어요.”신시아는 카드를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말씀하신 사람이 아니에요.”직원은 싱긋 웃더니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신시아 씨 사진은 저희 백화점 직원들이 각자 한 장씩 챙기고 있는걸요.”그녀의 이목구비가 워낙 뚜렷해 사진과 실물이 거의 똑같았다.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알아보고 직원 단톡방에 사진을 올린 모양이었다.“죄송해요. 이 신발 안 살게요.”신시아는 신발을 내려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이때 직원이 다급히 신발 쇼핑백을 들고 그녀를 따라 나와 손에 쥐여주었다.“고객님 이러시면 저희만 곤란합니다. 하 대표님이 분명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맞아요! 저희 입장만 너무 난처해져요.”또 다른 직원이 길을 막아섰다.하선재의 성격이라면 정말로 직원들에게 화풀이할 게 뻔했다.직원들의 난감한 표정에 신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돈은 나중에 하 대표님께 직접 드릴게요.”신시아는 신발을 받아 들고서야 백화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곧장 차를 몰아 백영 그룹으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서류 가방을 들고 회의실로 직행했다.프로젝트팀장이 은호 그룹과의 협력 사업 핵심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다.회의는 어느덧 한 시간 반째 이어졌고 정우진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꼬고 앉아 느긋하고도 나른한 태도로 임했다.신시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가볍게 목례하고 정우진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대표님.”그녀가 나직이 인사했다.정우진은 시선을 올리고 그녀를 쓱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비슷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백영 그룹에서 수없이 해왔습니다만 정 대표님께서 워낙 신경 쓰시는 만큼 절대 방심하지 않고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프로젝트팀장은 정우진이 프로젝트에 쏟는 열정을 보며 큰 압박감을 느끼는 듯했다.사실 이번 협력은 은호 그룹에나 사활이 걸린 문제이지 산전수전 다 겪은 백영 그룹 입장에선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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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조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하 직원 몇 명을 데리고 나갔다.신시아는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조 팀장이 또다시 돌아왔다.“신 비서님, 수고 많으셨어요. 점심 식사 챙겨뒀습니다.”“감사합니다.”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음식을 건네받았다.“오늘 점심은 거르는 줄 알았어요.”정우진이 갑자기 돌아와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전에 최대한 빨리 세부 사항을 확인하고 싶었다.조 팀장은 주머니에서 두유 한 병을 더 꺼냈다.“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방금 언론에서 정 대표님이 은유라 씨와 함께 어느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사진을 찍어 기사 냈거든요. 그렇게 빨리 돌아오진 못하실 겁니다.”“감사합니다.”신시아는 두유를 받아 들었지만, 목소리에는 무심결에 쓸쓸함이 묻어났다.조 팀장은 점심을 내려놓고 떠났고 커다란 사무실에는 신시아 혼자 남았다.회의실에는 문 등만 켜져 있었고 한 줄기 빛이 그녀와 그 옆에 비어있는 첫 번째 자리를 비췄다.신시아의 시선이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다시 바쁜 업무에 몰두했다.정우진과 은유라의 열애설은 지난 반년간 끊이지 않았다.하지만 매번 열애설이 보도될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고, 사람들의 관심은 터무니없이 뜨거웠다.그날 오후, 정우진은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3시가 넘어 단순한 서류 검토 문제로 신시아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통화 연결음이 일여덟 번 울리다 자동 종료되기 직전에야 연결되었다.“무슨 일이야?”중저음의 감미로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시아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메일로 서류 하나 보냈습니다. 검토하시고 이상 없으면 제가 직인 찍고 진행하겠습니다.”정우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은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빠, 오늘 오후에 나랑 같이 있기로 했잖아. 왜 또 전화 받고 있어?”이에 정우진이 답했다.“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그래.”은유라는 코웃음을 치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신시아 있잖아. 걔한테 맡기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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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신시아는 휴대폰을 꺼내 하선재가 보는 앞에서 차단 목록을 해제했다.“자, 카톡 추가해.”하선재가 휴대폰을 내밀었다.짧은 몇 초 사이 휴대폰을 든 신시아의 손은 추위로 빨갛게 얼어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카톡 QR 코드를 띄워 하선재에게 보여줬다.하선재가 코드를 스캔하고 친구 추가 신청을 보냈지만 신시아는 미처 수락하지 않은 채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너무 늦었네요. 대표님도 이만 돌아가 쉬세요.”곧이어 신시아는 몸을 돌려 차로 향했다.하선재가 긴 다리를 내뻗으며 성큼성큼 따라왔다.“데려다줄게. 내 차가 더 빨라.”“저는 너무 빠른 건 적응이 안 돼서요.”추위 때문에 얼굴이 굳어버린 신시아는 억지로 웃어 보이기도 힘들었다.“하 대표님, 그만 돌아가세요.”신시아는 차 키를 꺼내 들고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사실 하선재는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지만, 찰나의 순간 유난히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실눈을 뜨고 자세히 보자 길 건너편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하선재가 다가오자 그 사람은 잽싸게 도망쳤다.“X발! 이번엔 또 어느 언론사야!”하선재는 낮게 욕을 내뱉으며 신시아를 쫓는 것도 잊은 채 길 건너편으로 질주했다.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길 건너 도착했을 때 상대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반대편에 있던 신시아도 어느새 차를 몰고 사라졌다.“젠장!”하선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가로등을 세게 걷어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발을 부여잡고 펄쩍펄쩍 뛰어야 했다.백미러를 통해 그가 한 발로 깡충거리는 모습을 보자 신시아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예전엔 하선재와 그저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 그가 억지로 술을 권하며 괴롭히던 기억 외엔 딱히 깊게 엮인 일도 없었다.그런데 요 며칠 자주 부대끼다 보니 이 사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얄밉다가도 밉지 않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랄까.임신 탓에 평소보다 배로 지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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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갑작스러운 시선에 신시아는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대표님, 한밤중에 모두를 불러 모아 추궁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물증도 없이 막연한 의심만 한다면 다들 사기만 떨어질 뿐입니다. 제 생각엔 은호 그룹 내부에서 먼저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 게 순서인 것 같습니다.”신시아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은호 그룹은 백영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기에 시기하는 무리가 한둘이 아니었다.게다가 백영 그룹과 협력하는 은호 그룹의 실무진들은 대부분 경력이 짧았다. 회사를 오래 지켜온 원로급이 아니라면 내부 배신자가 나왔을 확률이 훨씬 높지 않겠는가.“대표님, 저희가 밤을 새워가며 몇 날 며칠을 매달려 만든 프로젝트 데이터입니다. 이 데이터는 저희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넘길 리 없습니다!”조 팀장은 벌떡 일어나 열정적으로 충성심을 표했다.“만약 은호 그룹 측에 보여주기식으로라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저희 모두 이해하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대표님께서 정말 저희를 의심하시는 거라면 신 비서님 말씀대로 정말 낙담할 것 같네요.”“현재까지 은호 그룹에서 이 프로젝트에 접촉한 사람은 은성빈 한 명뿐이야.”프로젝트는 이미 확정되었지만, 기밀 데이터는 내부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은성빈이 아직 누구에게 이 프로젝트를 맡길지 결정하지 못했으니까.순간 뭇사람들은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신시아도 숨이 멎을 것만 같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마음을 짓눌렀다.“임 비서, 유출된 데이터의 출처를 정확히 밝혀내. 꼬리가 잡히면 범인도 분명 수면 위로 드러날 거야.”정우진은 양손을 깍지 낀 채 테이블을 짚고 몸을 숙였다. 낮게 깔린 그의 음성이 회의실을 짓눌렀다.“조사 끝나기 전까진 아무도 여기서 나갈 생각 마.”임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며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번졌다. 거리엔 조금씩 소음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회의실 안은 여전히 쥐 죽은 듯 고요했다.눈 깜짝할 새 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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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기현주가 몇몇 이사를 대동하고 기세등등하게 회의실로 들어왔다.신시아 앞에 멈춰서더니 마치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노려보았다.“네가 지금 백영 그룹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줬는지 알아?”쏟아지는 비난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기현주는 신시아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몰아세웠다.기현주는 언제나 강압적인 사람이었고 신시아도 그 점을 잘 안다. 이제 유일한 동아줄은 정우진뿐이었다.그가 자신을 믿어준다면 기현주는 함부로 나오지 못할 테니까.신시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맑고 깊은 눈동자로 정우진을 응시했다.하지만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기현주의 분노는 더욱 격렬해졌다.“이 일로 은호 그룹까지 막대한 손실을 봤어. 이 파렴치한 계집애야!”분노가 극에 달한 기현주는 손을 들어 신시아의 뺨을 후려치려 했다.손찌검까지 할 거라곤 예상치도 못한 터라 재빨리 피하려 했지만, 위치가 여의치 않았다. 몇몇 이사들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그녀는 최대한 얼굴을 돌려 세차게 내려치는 손바닥을 피하려 애쓰며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하지만 예상했던 손바닥의 매서운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대신 기현주의 포효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감히 나를 막아?”신시아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의 등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정우진은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기현주의 뺨을 향하던 손목을 단호하게 낚아챘다.“여기 회사예요.”기현주는 순간적으로 손을 움츠리며 놀란 눈으로 정우진을 바라보았다.“이 년이 이렇게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너 지금 감싸고 도는 거니?”“아직 사건 조사 안 끝났어요. 설령 신 비서의 짓이라 해도 제가 처리합니다.”정우진은 몇몇 이사들이 곁에 있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위엄 있는 태도로 답했다.이에 기현주의 안색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너 이게 무슨 짓이야? 이사들까지 전부 모인 자리에서 일을 덮으려는 거니? 나 여기 확실한 증거도 있어!”그녀가 가방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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