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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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저녁에 정우진은 약속이 잡혔다. 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까, 은유라와 함께 나란히 사무실을 나선 남자의 손에는 마이바흐 차 키가 들려 있었다.“저녁 회의 30분 늦춰. 내가 돌아와서 다시 열 거야.”정우진이 분부를 내리자 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오빠 먼저 내려가 있어. 난 신 비서님이랑 잠깐 얘기 나눌게.”은유라는 정우진에게 가방을 건네며 애교 조로 말했다.“이따 회사 앞에서 만나자.”정우진이 시계를 내려다보았다.“할 얘기 있으면 지금 해.”“오빠 앞에서 말하기 쑥스럽잖아. 먼저 가. 내가 뭐 신 비서님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은유라는 정우진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떠밀었다.정우진의 미간은 찌푸려졌지만, 표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했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그는 신시아를 한번 돌아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마치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았다.다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은유라의 표정이 돌변했다.그녀는 곧장 신시아의 자리로 돌아와 턱을 치켰다.“오빠가 그쪽 못 가게 막는 건 단지 나랑 싸워서 홧김에 남겼을 뿐이에요.”신시아의 심장이 묵직하게 아파왔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정우진의 본모습이라는 것을.그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은유라가 신시아를 내쫓으려고 뒤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정우진은 오히려 기회를 주지 않을 터였다.“시아 씨, 머리 좋잖아! 기회 놓치지 말고 얼른 꺼져요. 진짜 얼굴을 붉히게 되면... 오빠는 내가 상처받고 슬퍼하는 걸 절대 못 봐요.”은유라는 오후 내내 사무실에 있었다. 신시아가 구창 그룹으로 가면 미래의 커리어에 영향이 있을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으나 그건 은유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그녀는 신시아를 하선재에게 떠넘기듯 험악한 말을 내뱉고는 자리를 떠났다.한편 신시아는 제자리에 앉아서 저녁 회의 준비에 몰입했다.한 시간쯤 지났을 때 정우진이 부랴부랴 돌아왔다. 밤바람의 차가운 기운을 몸에 휘감고 돌아왔다.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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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은유라는 거짓말을 지어냈다.“신 비서는 정말 가고 싶은데 우진 오빠가 선재 씨 접근하는 걸 알게 돼서 안 놓아줘요. 선재 씨가 신시아 위약금을 대신 내주면 그땐 오빠도 더는 못 잡을 거예요.”하선재의 미소가 싹 가셨다.그날 밤 신시아는 정우진의 침대에 기어올라 어떠한 이득을 취하긴커녕 되레 그를 밀쳐냈다.이 점만으로도 신시아가 정우진에게 호감이 없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그렇다면 그녀는 정말 이직을 원하는 걸까?신시아와 백영 그룹 사이에 맺어진 위약금 액수는 아무도 모른다.하지만 정우진의 비서로 6년간 백영 그룹에 몸담았으니 위약금 또한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웃돌 터였다.하선재는 금전적 여유가 있고 허세 부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돈을 좀 써서 정우진을 곤란하게 만드는 걸 전혀 꺼릴 이유가 없었다.다만 그도 호구가 아니니 은유라에게 이용당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정우진 그 개자식이 내 사업까지 뺏어갔으니 나도 걔 밑에서 신시아 한 명쯤 데려오는 건 무리가 아니지. 그런데...”하선재가 머뭇거리자 은유라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그런데 뭐요?”“우진이가 만약 네가 몰래 나한테 정보 흘리고 뒤통수 때린 걸 알면 얼마나 더 화낼지 감도 안 온다야. 이참에 너랑 확 끝내버리는 건 아니야?”일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고 은유라는 정우진이 신시아를 곁에 두는 것이 엄청 신경 쓰였다.기현주는 그가 단지 누군가가 자신의 뒤에서 일을 꾸미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은유라 역시 그 말을 믿는다. 설마 정우진이 신시아에게 호감이라도 있을까 봐!지금 하선재와 접촉한 사실을 정우진에게 들켜버리면 은유라는 모든 것이 끝장날 터였다.“그 말 무슨 뜻이죠?”“시아 위약금, 우리 둘이 반반씩 부담해.”하선재는 더없이 단호하게 쏘아붙였다.이에 은유라가 이를 꽉 악물었다.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어차피 하선재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이 손해는 감수해야만 한다.“일 끝나면 바로 송금해 드릴게요!”은유라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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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화장실에서 신시아는 방금 먹었던 저녁을 모조리 게워냈다.위가 텅 비자 헛구역질하며 신물까지 토해냈다.얼마나 지났을까. 허리를 굽히고 있던 그녀의 등 뒤로 커다란 손바닥이 툭 얹혔다. 정우진이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따뜻한 온기를 전했다.“괜찮아?”남자의 물음에 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아... 네. 대표님은 나가 계세요. 괜히 더러운 꼴 보지 말고요.”정우진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다 정리하고 병원 가자. 데려다줄게.”“괜찮습니다.”신시아는 입을 한 번 헹구고 변기 물을 내렸다. 이어서 티슈를 두 장 뽑아 초라한 몰골을 정리했다.몸을 돌리자 하얗던 뺨이 붉게 달아올랐고 눈가에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가련한 모습이 절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정우진은 화장실 문 앞에 서서 훤칠한 체구로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앞으로 며칠간 은호 그룹과의 협력 프로젝트가 시작될 거야. 그땐 엄청 바쁠 텐데.”이 말은 그녀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업무에 지장을 주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뜻이었다.신시아는 눈시울이 젖어 시야가 흐릿했지만, 정우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의 걱정도 없이 서 있다는 것만큼은 똑똑히 보였다.그저 의례적인 질문일 뿐이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걱정 마세요, 대표님. 업무에 지장 없을 겁니다.”백영 그룹과 은호 그룹의 협력 프로젝트는 정우진이 직접 진두지휘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상대가 은씨 가문이라는 점 때문에 정우진은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챙기며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신시아는 고개를 떨구었다. 붉게 상기된 뺨 위로 섬세한 이목구비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였으나 고집스럽게 버티는 그 모습은 정우진의 얼굴에 불쾌감을 드리웠다.“네가 그랬잖아.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는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다고!”이 남자가 이런 말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그녀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정우진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을 내던졌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밤샘 작업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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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통화를 이어가면서 신시아는 가방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정우진 곁을 스쳐 지나갈 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다행히 정우진은 그녀를 뒤쫓지 않았다.신시아는 드디어 낮은 목소리로 하선재의 말에 응수했다.“하지만 제 문제는 제 방식대로 해결할 겁니다. 하 대표님은...”뚜... 뚜...전화기 너머로 바쁜 신호음이 울렸다.하선재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신시아는 황급히 안에 올랐다. 갑작스러운 이 통화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커다란 대표이사실 안, 정우진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경원 상업 지구의 화려한 야경을 내려다보았다.백영 그룹 빌딩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이 밤하늘을 반쯤 물들였다.그는 창틀에 몸을 기댄 채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를 태웠다.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남자의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감도 흐릿하게 만들었다.한 대, 두 대, 연달아 담배를 피워댔지만, 니코틴의 쓴맛조차 가슴속의 알 수 없는 짜증을 억누르지 못했다....집으로 돌아온 신시아는 김지원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입덧 약을 더 사달라고 부탁했다.“의사 선생님이 약 계속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했잖아. 다른 방법 찾아보자.”김지원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녀를 설득했다.“하선재 씨한테 가는 건 진짜 고려 안 할 거야?”끄떡없을 것만 같던 마음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지원아...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서빈의 아빠가 나타나서 아이 양육권을 달라고 하면 넌 어떻게 할 것 같아?”김지원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서빈이는 내 목숨보다 귀한 존재야. 죽기 살기로 싸워서라도 양육권은 지켜야지.”상황이 예상 밖으로 흐르자 신시아의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만약 정말 떠나지 못하고, 임신 사실이 탄로 나고, 아이 아빠의 정체까지 드러난다면 그녀가 어떻게 정우진을 이길 수 있겠는가.만약 진다면 그다음엔 또 어떻게 해야 할까?“서빈의 아빠는 정자를 기증했으니 아이가 어디 있을지도 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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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임 비서님, 제가 대표님과 단순한 상하 관계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새 잊으셨나 봅니다.”임정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미 이혼하셨잖아요. 게다가 신 비서님은 대표님께 별 뜻 없고, 아니 설령 미련이 남았다 해도 대표님의 마음은 은유라 씨를 향했어요. 신 비서님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을 수가 없는데 은유라 씨가 왜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어요?”신시아는 말문이 턱 막혔다.“임 비서님, 이제 그만 일에 집중하시는 게 좋겠네요.”임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 참, 오늘 대표님은 일이 있으셔서 회사에 못 오십니다. 저녁에는 도강 그룹 백도훈 대표님과 약속 잡으셨는데 저희 둘이 나가야 할 것 같아요.”“네, 알겠습니다.”신시아는 굳게 닫힌 대표이사실 문을 흘끗 보았다.은유라가 돌아온 이후로 정우진은 더 이상 규정된 업무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그의 임의적인 업무 처리는 이제 흔한 일이 돼버렸다.백영 그룹과 도강 그룹은 수년간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고 정우진은 그 모든 과정을 홀로 책임져 왔다.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이 두 사람이 나타나자 백도훈은 못마땅함을 감추지 못했다.“정 대표님 바쁘시면 다음에 약속을 잡아도 되는데 그러셨어요.”이에 임정현은 술잔을 가득 채우며 말했다.“정 대표님께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셔서 혹시 식사 약속이 취소되면 협력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되어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백 대표님, 저희에게 식사를 마칠 기회를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정 대표님께서 다음번에 꼭 다시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백도훈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그래요. 그런데 이 계약서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논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네요.”신시아가 즉시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백 대표님, 계약서 조항에 대해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일일이 기록했다가 정 대표님께 보고드리고 내일 아침까지 정확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업무 능력에 있어서는 신시아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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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시아 데려가고 싶어? 원한다면 실력으로 쟁취해 보던가.”정우진은 몸을 돌려 룸으로 향했다.하선재는 그의 뒤를 쫓으며 호탕하게 웃었다.“신 비서도 불러와서 직접 물어볼 배짱은 없나 봐, 정 대표?”말을 이어가는 동안 정우진은 이미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다른 의자 위로 발을 올렸다.그의 무심한 움직임은 하선재가 바로 옆자리에 앉는 것을 단호하게 막아섰다.“걔는 아직 누군가를 선택할 자격 같은 거 없어.”일개 고아 출신의 비서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 한들 그들을 선택할 만큼의 그릇은 못 된다.하선재는 그와 한 칸 떨어진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정 대표 정말 너무하시네. 신 비서가 그렇게 오랫동안 옆을 지켰는데 고작 장기 말에 불과했던 거야? 설마 은유라가 정 대표를 버리고 해외로 떠난 것에 대한 복수랍시고 신 비서를 붙잡아 두는 건 아니지?”두 남자는 오늘 처음 사석에서 만났다.하선재가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리며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멘트를 쏟아냈다.하지만 놀랍게도 정우진은 지켜보기만 할 뿐 하선재가 술잔을 비우는 대로 채워주었다.“내가 정 대표보다 주량이 약할까?”하선재는 재킷을 벗어 던지고 의자에 발을 올린 뒤, 소매를 걷어붙이고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그는 술과 함께 자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정우진은 비록 술자리가 잦았어도 그에게 감히 술을 권하는 자는 없었다. 술고래를 자처하는 하선재와 어떻게 주량을 겨룰 수 있을까?“자, 마셔! 오늘은 내가 실력으로 신 비서 데려올 거야. 정 대표가 먼저 쓰러지면 내일 아침에 얌전히 신 비서를 구창 그룹으로 보내. 위약금은 없던 거로 하고. 오케이?”하선재가 술잔을 가득 채우고 정우진의 잔에도 술을 부었다.“신 비서도 백영에 더는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데 억지로 잡는 건 대책이 아니잖아. 정 대표가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가 없어진 거지?”그는 술잔을 비울 때마다 한마디씩 저격했다.정우진은 그의 말을 들으며 미간이 더욱 좁아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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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신시아는 원래 하선재에게 도움을 청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길이 완전히 끊겨버렸으니까.아침부터 신시아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안색 또한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언니.”이은수가 서류를 전달하러 왔다가 슬쩍 말을 붙였다.“주하영이 왜 해고됐는지 들었어요?”신시아는 사색에서 빠져나와 이은수를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모르겠는데요.”“글쎄 우리 비서실 단톡방에 대고 언니가 정 대표님을 부추겨서 자기를 잘리게 했다고 멋대로 지어낸 거 있죠. 게다가 언니가 대표님이랑 은유라 씨 사이를 갈라놓고 감정싸움을 부추겼다는 소문까지 퍼뜨렸어요!”이은수는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단톡방에서 주하영과 설전을 벌이다가 마침 방장인 그녀에게 강퇴까지 당했다.“문제는 단톡방 사람들이 죄다 주하영이랑 친해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사방에 퍼뜨리고 다녀요.”정우진과 은유라의 파혼 기사가 나간 뒤로 신시아를 쳐다보는 회사 사람들의 시선은 이전과 사뭇 달라졌다.며칠 사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져서 신시아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주하영이 뒤에서 또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언니 사직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런 스캔들 때문이에요?”이은수가 신시아의 손을 잡아당겼다.“그럴 필요 없어요.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면 이런 유언비어는 저절로 사라질 거예요. 이 좋은 직장을 왜 포기하려고 해요...”연애와 결혼이라.신시아는 이 문제에 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하지만 유언비어가 저절로 사라질 거라던 방금 그 말이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퇴사 문제는 말하자면 좀 길어요. 아직 정해진 거 없으니 나중에 정말 떠나게 된다면 은수 씨한테는 미리 알려줄게요.”이은수는 더더욱 다급해졌다.“언니가 가면 저는 어떡해요! 그냥 여기 남으면 안 돼요?”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에 신시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알았어요. 일단은 안 가요.”일단은 안 간다고...아직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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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하선재가 몰락하며 위약금을 더 이상 물어줄 수 없게 됐고 이로써 신시아도 백영을 못 떠나게 됐다.그녀의 앳된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숨길 수 없었다.정우진은 날카로운 턱선을 드러내고 혀로 뺨 안쪽을 굴리면서 무척 태연한 척했지만, 눈빛만큼은 폭풍전야처럼 험악했다.“신 비서도 하 대표가 몹시 걱정되는 모양인데 그럼 백영 그룹을 대표해서 병문안 다녀와. 11시 회의 전까지는 돌아와야 해.”신시아는 순간 깨달았다. 하선재와 정우진이 만났고 방금 들었던 녹음 파일도 그들의 대화였다.그렇다면 어젯밤에 일어난 일일까?“왜?”정우진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허리를 곧게 편 채 거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가기 싫어?”별안간 이 남자가 병문안을 가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짐작이 안 갔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침묵한 뒤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갈게요.”신시아는 돌아서서 외투와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정우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신시아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영양제도 샀고 도착하니 어느새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하선재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링거를 맞고 있었다.병실 문이 살짝 열려 있어 신시아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환자복을 입은 하선재는 팔을 괴고 편안하게 누워 눈을 감은 채 햇볕을 쬐고 있었다.“나가! 아무도 오지 말라고! 난 멀쩡해. 정우진 그 개자식이 일부러 난리를 쳐서 날 여기 처박아 넣은 거야!”신시아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침대 옆 환자 기록지에는 [급성 알코올 중독]이라고 적혀 있었다.병원 신세까지 져야 할 정도이니 다들 그가 최소한 위장 출혈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현실은 헛된 소란일 뿐, 하선재만 창피를 당했다.“하 대표님.”신시아가 방금 사 온 영양제를 침대 옆 탁자에 놓았다.이에 하선재는 움찔하며 눈을 떴다.“뭐야! 정우진이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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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11시에 맞춰 신시아가 회사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정우진은 신시아를 데리고 은호 그룹과의 협력 관련 인터뷰에 임했다.백영 그룹과 은호 그룹의 협력 건은 신시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챙겨왔던 일이었다.그녀는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들을 빠짐없이 챙겨 정우진이 필요로 할 때마다 정확하게 자료를 건넸다.혹여 빠뜨리는 내용이 있을 때면 즉시 낮은 목소리로 정우진에게 알려주었다.“정 대표님, 은씨 가문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걸 보니 은유라 씨와의 관계가 아주 안정적이신가 봅니다. 얼마 전 두 분의 약혼 소식이 갑자기 취소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혹시 구체적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공식적인 업무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정우진의 사생활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잠깐 다퉜어요.”정우진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묻어났지만, 눈빛만큼은 묘한 애정이 서려 있었다.기자들은 일제히 경악하며 질문을 쏟아냈다.“대표님과 은유라 씨도 다투세요?”“누가 먼저 화해를 청하나요?”“연초에도 두 분이 다투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때 먼저 사과하신 건 대표님이신가요?”정우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여유롭게 대답했다.“제가 남자니까 더 감싸줘야죠. 당연히 먼저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그렇다면 은유라 씨와의 약혼 날짜는 언제쯤으로 예정되어 있습니까?”정우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머지않았습니다. 확정되는 대로 미리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자 그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정 대표님과 은유라 씨가 파혼할 정도로 다퉜다니. 이러다 나중에 헤어지는 거 아니에요?”“두 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잖아요. 다툼은 오히려 애정 표현의 윤활유 같은 거죠.”“맞아요. 다툴수록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지는 법이죠. 약혼에 결혼까지는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방금 정 대표님 표정 못 봤어요? 은유라 씨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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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그냥... 궁금해서요.”신시아가 본사에 자리를 비운 지난 반년 동안 뭘 했는지 몰래 조사하는 것은 정다슬에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게다가 오늘 그녀가 하선재의 병문안까지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고 뭐라도 캐낼 수 있겠나 싶어 황급히 찾아왔다.“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신시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알다시피 하 대표님은 다슬 씨 오빠의 최대 라이벌이잖아요.”‘이 상황에 내가 하 대표님이랑 가깝게 지내는 건 곤란하죠...’정다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뭐 그렇긴 하네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신시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무언가 더 물어볼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정다슬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일으켰다.“점심이나 사다 줄게요. 기다려요, 시아 씨!”“아니, 잠깐...”이건 뭐 거절할 틈도 없었다.정다슬은 쏜살같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그녀는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사 들고 오는 길에 할머니 권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아 씨가 하선재랑 안 친하대요. 할머니는 믿으시겠어요?”권미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시아 곁에 있는 남자들은 전부 의심스러워!”정다슬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신시아와 접촉한 지사 남자들만 해도 수백 명은 족히 넘을 터였다.그들을 일일이 조사하다가는 신시아의 아이가 다 자라버릴 판이었다.정다슬은 일단 제일 캐기 쉬운 하선재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공인인 만큼 지난 6개월간의 행적을 좇는 게 그나마 수월할 테니까....출근 시간을 10분 남겨두고 정다슬이 점심을 가져다주었다.신시아는 빠르게 먹어 치운 후 온수 한 잔을 마시고는 다시 서류 가방을 챙겨 정우진과 함께 거래처 미팅을 나갈 채비를 했다.“오빠, 나도 데려가면 안 돼?”사무실 문이 열리고 은유라가 껌딱지처럼 정우진의 뒤에 바싹 달라붙었다.“도움을 줄 순 없지만, 그냥 옆에 가만히 앉아 있을게.”정우진은 신시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목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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