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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정우진의 안색이 일그러지자 기현주가 조금 안심한 듯 어조를 누그러뜨렸다.“임 비서, 당장 인사팀 불러와서 신 비서 직무 정지시켜. 내가 철저히 조사할 거야. 절대 좌시하지 않겠어!”정우진은 신시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또다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돌아와 기현주를 쳐다보았다.“신 비서 제 사람입니다. 처분해도 제가 해요.”8년 전, 정우진이 회사를 인수했을 때부터 백영 그룹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그는 기업을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로 이끌었다.정씨 가문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을 빼더라도 이사회가 그를 두려워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결정적인 증거’가 눈앞에 있음에도 그는 조사를 멈추지 않았다. 누구 하나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정우진의 이번 결정은 기현주의 체면을 산산조각 내버린 격이었다.기현주가 신시아를 때리려 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굴욕적인 한 방이었다.그는 망설임 없이 회의실을 나왔다. 임정현이 그의 뒤를 바짝 따랐고 조 팀장 또한 팀원들을 이끌고 뒤따랐다.“우스운 꼴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우진이가 원래 증거를 중시하는 애라서요.”기현주는 이를 악물고 몇몇 이사 앞에서 체면을 세우려 애썼다.“스스로 조사하게 놔두죠. 분명 여러분과 은호 그룹에 납득할 만한 답을 드릴 겁니다.”이사들은 현명하게 이 모자간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뒤 자리를 떴다.그들이 떠나자 기현주의 들끓는 분노가 신시아를 향했다.“너도 내 탓할 건 없어. 그러게 누가 유라랑 우진이 사이를 망치래? 말했지! 우리 집안에 발 들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신시아의 눈빛은 차갑고 담담했다.“걱정 마세요. 그 댁은 들어갈 생각도 없으니까!”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얼굴에는 결연함이 묻어났다.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기현주는 말문이 턱 막혔다.“오늘 바로 4억 원 가져와서 저를 백영에서 계약 해지만 시켜주신다면 뺨이라도 기꺼이 맞아드리겠습니다. 근데 어쩌죠? 여사님은 방법을 잘못 쓰셨네요. 전 절대 이렇게 물러나지 않습니다!”신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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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제가 왜 유라를 방관하겠어요? 절대 유라 홀로 남겨지는 일은 없습니다.”정우진은 기현주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엄마는 일단 이사회에 어떻게 설명하실지 고민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진상을 밝히면 그때 가서 어떻게 대처하실지 말이에요.”“뭐?”기현주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집으로 돌아온 신시아는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휴대폰을 꺼내 어젯밤 하선재의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하선재는 곧바로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왔다.이에 신시아가 음성 통화를 걸었다.“대표님, 기사 보셨죠? 지금 백영 그룹에서 제가 대표님께 데이터를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어요. 혹시 좀 해명해주실 수 있을까요?”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한편 하선재는 기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서둘러 경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열었다.“헐! 이거 어느 새끼야? 구창 그룹에 이런 악랄한 짓을 벌이는 인간이 있어?”신시아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아마... 대표님 아버님으로 추정됩니다.”하선재가 직위에서 물러난 후, 그의 아버지가 구창 그룹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사건이라면 조금만 조사해봐도 구창 그룹의 소행임을 알 수 있을 테고 따라서 이는 반드시 하선재 아버지의 동의 하에 이루어졌을 터였다.“아니 그건...”하선재는 몹시 난처해졌다.“우리 아빠 성격 너도 알잖아. 약속 안 지키고 인정사정없는 거. 아빠가 손댄 거라면 넌 그냥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다시 말해 하선재가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신시아는 이 남자가 아버지 앞에서 이토록 무게감이 없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냥 이참에 사표 내고 내가 구창 그룹에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 왔고 음성 통화는 그대로 끊겼다.하선재는 화면을 밀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휴대폰 너머로 정우진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구창 그룹 실권을 되찾고 싶지 않아?”“...”당연히 되찾고 싶지!하지만 정우진의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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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하 대표님, 그럼 일단 어떻게 하실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신시아는 우선 하선재의 계획을 듣고 싶었다.“네가 승낙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 다른 건 신경 쓸 거 없어.”말을 마친 남자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대표님, 여보세요?”신시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끊어진 전화 화면을 들여다봤다. 화면 속에 그녀의 짙은 눈동자가 비쳤다.‘어쩔 수 없지 뭐.’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당장의 내부 첩자 위기만 넘기면 되니까.하루가 저물도록 회사 단톡방은 잠잠했다. 평소의 업무 관련 소통조차 끊긴 채였다.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부 첩자’로 지목된 신시아가 그곳에 버젓이 있었으니.그때 이은수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며 정우진의 동향을 보고했다.[비서실장님이 업무 보고하러 갔다가 언니 대신 사정해보려 했는데 대표님께 꾸중을 들으셨어요.][대표님과 6년을 함께 했는데, 저도 언니가 배신했다고 믿지 않는데 대표님이 어떻게 철석같이 믿을 수 있죠!][좀 전에 은유라 씨가 와서 대표님 앞에서 울고 갔어요. 대표님이 은호 그룹에 반드시 납득 가능한 대답을 내놓을 거라고 하셨답니다. 방금 인사팀장도 불려 갔는데 설마 언니 해고하려는 건 아니겠죠?]문자 하나하나가 신시아의 심장을 찔렀다.설령 회사를 떠날지언정 정우진의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장하긴 어려웠다.감정을 떠나 그의 비서로서 이 정도의 믿음마저 없다니, 신시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새벽녘, 임정현이 그녀에게 내일 오전 10시까지 회사로 나올 것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냈다.신시아는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려 했지만, 줄곧 정신이 몽롱했다.다음 날 오전 10시, 백영 그룹 최상층 회의실.이번 사태는 회사의 명성과 이익에 영향을 미쳤기에 이사회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신시아가 도착했을 때, 거대한 회의실 안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그녀가 들어서자 모두가 심판하는 눈길로 그녀를 훑어보았다.정우진이 상석에 앉았고 오른쪽에는 은호 그룹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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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하지만 신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곧 묵인이니까.그녀는 정우진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은 씁쓸함 때문에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저는 백영 그룹을, 그리고 대표님을 배신할 이유가 없습니다.”은유라가 비웃음을 날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설명할 기회를 주는 거지 억지 부리라는 게 아니잖아요!:다만 신시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선은 오직 정우진에게만 머물러 있었다.마음은 이미 절망으로 가득했지만 정작, 이 순간이 닥치자 그녀도 모르게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정우진이 자신을 믿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정우진만 믿어준다면 이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시아는 ‘내부 첩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우진 오빠!”신시아가 계속 정우진만 바라보자 은유라는 참지 못하고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잖아! 증거가 이렇게 뻔한데 무슨 설명이 필요해?”정우진의 날카로운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는 짙은 눈길로 신시아를 바라보았다.“하선재한테 잘 들러붙었나 봐? 말하는 솜씨가 아주 대단한데, 신 비서.”신시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말은 그녀에게 죄를 확정 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테이블 위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사진들, 프레임마다 하선재와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은 모든 것을 결정 지은 듯 보였다.“이 이사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요. 절대 이대로 넘어가면 안 돼요. 해고뿐만 아니라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해요.”은유라는 신시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서둘렀다.“오빠, 지금 당장 법무팀 불러와요.”신시아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정우진을 쳐다보았다.한편 남자는 시계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미간을 구겼다.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회의실의 팽팽해진 분위기를 갈랐다.곧이어 임정현이 밖에서 들어왔다.“대표님, 하 대표님 오셨습니다.”순간 이수현 이사의 얼굴이 굳어졌다.“하 대표가 왜 와요?”“그러게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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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연애편지예요. 저랑 신 비서가 이렇게 자주 엮이는 이유는 말이죠... 실은 제가 예전부터 신 비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고 지금은 대시하는 중이에요. 자고로 사랑은 겉멋을 들이지 않은 풋풋함이 좋다고 하니 저도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신 비서랑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고 싶거든요. 우린 지금 편지로 소통하고 있어요. 오늘도 가져왔는데 원한다면 한번 읽어드릴까요?”하선재는 주머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펼쳤다.정우진의 매서운 눈매가 편지를 훑었다. 내용은 보이지 않지만, 종이 전체가 빽빽하게 글자로 채워져 있었다.그는 이를 악물고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그때 하선재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선재 씨, 하루를 못 봤는데 왜 이토록 길게 느껴지는 걸까요?”“하 대표님!”신시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말을 끊고 고개를 내저었다.이런 일로 장난을 칠 수는 없을 터!다만 하선재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입가의 미소가 점점 더 크게 번졌다. 남자는 편지를 다시 접어두었다.“우리 시아가 부끄러워하네요. 그럼 읽지 말아야지.”그는 뭇사람들 앞에서 신시아를 향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덕분에 신시아는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동시에 또 다른 곤경에 빠진 듯했다.하지만 하선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듯 그녀 곁으로 다가와 사악한 눈웃음을 지었다.“시아야, 내가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퇴근하고 저녁 사야지.”심문에 가까운 수많은 시선을 마주하며 신시아는 머뭇거렸다. 승낙도 거절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하선재가 그녀를 위해 홀로 백영 그룹에 와서 문전박대를 당할 위험까지 감수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할 터.하지만 그는 결국 백영 그룹의 숙적이었다.“하 대표, 데이터를 유출한 사람은 바로 구창 그룹 소속이야.”정우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엄숙한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이에 대한 해명은 솔직히 말해서 충분치 못해.”그는 하선재가 연애편지를 언급했던 것을 암시하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변명이라고 일축했다.“구창 그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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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정우진 씨.”신시아의 입술에서 나온 이 호칭은 마치 작은 돌멩이가 정우진의 마음에 굴러 들어간 듯했다.그는 담배를 피우던 동작을 멈췄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파르르 떨리고 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우리는 단순히 상하 관계를 넘어 전 부부잖아요. 아니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엄연한 이성 관계에요.”신시아는 어젯밤 내내 고민했다. 문제의 근원은 은유라와 기현주가 아니라 정우진 본인에게 있었다.“은유라 씨가 당신 약혼녀로서 곁에 딴 여자가 있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에요. 또한, 여사님이 전 며느리인 제가 종일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아주 정상이죠.”“그분들이 저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다만 대표님은 그분들 생각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저를 남겨두시네요? 은유라 씨를 약 올리기 위해서든, 여사님의 조종을 피하고 싶어서든 이건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대표님 행동은 저에게 엄청 큰 곤경을 안겨주었어요.”고요한 사무실 안, 신시아가 조리 정연하게 말을 이어갔다.겉보기엔 차분한 소통 같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날 그녀가 감내한 압박과 억울함이 숨겨져 있었다.“제 감정은 무시해도 좋아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건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 이상 대표님이 저라는 장기 말을 잘못 두었다는 게 증명이 되죠.”신시아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마쳤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정우진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그의 얼굴은 마치 짙은 안개에 싸인 듯 윤곽은 뚜렷했으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정우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걷잡을 수 없는 존재감을 내뿜었다.신시아는 그와 눈을 맞추며 시선 속에서 희미한 의심의 조각을 발견했다.대체 무엇을 의심하는 걸까? 그녀가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거짓으로 받아들인 걸까? 혹은 떠나지 않으려 일부러 밀당하는 거라고 오해한 걸까?신시아는 이런 것들 말고는 도저히 의심을 받을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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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백영 그룹 대표 비서는 네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야. 헛된 망상은 모든 걸 잃게 할 뿐이지!”정우진은 그녀를 놓아주고 몸을 일으켰다. 확연한 키 차이로 신시아를 내려다보는 이 남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나가.”신시아는 그의 손길이 닿았던 뺨에서 불타는 듯한 작열감을 느꼈다.마치 다시 한번 매서운 매질을 당한 듯한 고통이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마지막으로 미련을 떨치지 못한 채 말했다.“퇴사에 관해서는 다시 한번 신중히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표님.”정우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신시아는 몸을 돌리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그녀는 곧장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정우진에게 ‘천한 출신’이라고 낙인찍힌 자신의 비참함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이런 출신의 그녀가 정씨 가문의 핏줄까지 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정우진은 무조건 혐오할 터였다. 정씨 가문의 품격을 떨어트린다고 여기겠지.신시아는 조심스럽게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괜찮아. 이 아이는 이제 나 혼자만의 애야. 정씨 가문과는 아무 상관 없어!’오후 2시, 업무 시간이 되자 신시아는 복도에서 나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눈가는 약간 붉었지만, 겉보기엔 평소와 다름없었다.혐의를 벗은 그녀는 하선재와 엮이면서 회사 내 입지가 좁아졌다.임원들은 정우진에게 서류를 전달할 때 감히 그녀에게 주지 않고 임정현을 찾았다.원래 정우진의 모든 업무를 담당했던 신시아였지만 이제는 커피를 타거나 회의 시간을 알려주는 사소한 일들만 남았다.이날 오후, 하선재는 ‘의로운 결단’을 내렸다. 바로 아버지 하정국을 내부 고발한 것이다. 데이터를 유출하기 위해 하정국이 사람을 매수한 증거 영상이 백영 그룹에 흘러나갔다.하정국의 비열한 행동으로 인해 구창 그룹의 주가가 폭락했다.저녁 무렵, 구창 그룹은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하정국을 대표직에서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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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신시아는 호흡이 흐트러졌다. 손이 떨려 면봉이 하선재의 입안을 찌르고 말았다.“읍, 퉤퉤!”하선재는 약상자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그대로 몸을 숙여 쓰레기통에 몇 번이고 뱉어냈다.신시아는 재빨리 감기약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따뜻한 물을 한 잔 떠왔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입 좀 헹구세요.”하선재는 미지근한 물을 받아 입을 헹궜다. 다시 감기약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친구가 며칠 전에 두고 간 거예요.”신시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자리에 앉았다. 행여나 그가 믿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덧붙였다.“저는 남자친구도 없는데 어떻게 임신을 해요?”다만 이 남자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남자친구 없다고 남자가 없는 건 아니지.”“일이 얼마나 바쁜데 남자 만날 시간이 나겠어요?”신시아는 화제를 돌렸다.“또 다친 데는 없어요?”“설마 정우진이야? 그 자식이 널 강제로...”“하 대표님.”신시아가 정색했다.“자꾸 막말하실 거면 나가주세요.”그녀가 화를 내자 하선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알았어, 미안해. 나 여기 아파. 한번 봐봐.”그는 자리에 앉아 셔츠를 벗고 어깨를 드러냈다.왼쪽 어깨에는 끔찍할 정도로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신시아는 집에 있는 타박상 치료 연고를 꺼내 그의 어깨에 바르고 조심스럽게 문질렀다.이 남자는 나름 잘생긴 비주얼이지만 문제는 신시아가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단지 온몸의 상처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에 오로지 치료에만 집중했다.하선재는 그녀가 방심한 틈을 타 몰래 휴대폰을 꺼내 옆얼굴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정우진, 너 정말 치졸하다! 다행히 나에겐 상처를 돌봐줄 예쁜 여자가 있네. 조금만 기다려! 몸 회복되면 그때 너랑 제대로 끝장 볼 테니까!]깊은 밤, 정우진이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허리춤에 수건 한 장만 두른 상태였다.투명한 물방울이 탄탄한 근육이 잡힌 가슴팍을 타고 흘러내렸고 반쯤 젖은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강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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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다음 날 새벽까지 정우진의 서재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서재 문을 두드리자 그가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정다슬이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짙은 담배 연기에 기침을 해댔다.“아침부터 웬 담배야?”정우진이 담배를 비벼 끄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정다슬은 서재 창문을 열고 연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를 보더니 숨을 들이켰다.“밤새 한숨도 안 잤어?”“용건만 말해.”정우진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눈가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정다슬은 그가 이렇게 초조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혀를 차며 말했다.“시아 씨 사직 문제로 오빠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할머니가 대신 물어보래.”현재 백영 그룹에서 신시아의 직위가 위태롭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사람들은 모두 정우진이 신시아를 해고하고 싶어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아 그녀가 버티고 있다고 추측했다.하지만 정다슬은 엄마 기현주에게 듣기로 사실은 정우진이 놓아주지 않는다고 했다.“회사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해.”정다슬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시아 씨가 가고 싶어 하면 보내주면 되잖아. 억지로 붙잡고 있어 봤자 의미 없어, 오빠.”어제 하선재가 백영 그룹에 와서 신시아를 도와준 일은 정다슬도 전해 들었다.오후에는 구창 그룹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으니 하선재의 말로는 끔찍했을 터였다.정다슬과 그녀의 할머니 권미희는 하선재가 신시아를 향한 마음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정다슬은 할머니 권미희와 상의 끝에 하선재가 신시아에게 보이는 태도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어쩌면 진심일지도 모른다.백영 그룹 비서라는 직책은 하선재가 신시아에게 대시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권미희는 이렇게 훌륭한 손주 며느리를 ‘적’에게 보내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라면 신시아가 행복하게끔 돕기로 했다.그래서 정다슬에게 정우진의 의중을 떠보라고 보낸 것이었다.“네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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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시아는 그저 비서일 뿐이에요. 일개 비서 때문에 다들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워야겠어요? 대체 누가 수작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네요.”정우진의 눈동자가 한없이 짙어졌지만 그 속에는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회사도 엉망이고 집안 전체도 바람 잘 날 없네요.”순간 정다슬은 입을 다물고 권미희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역공을 당한 기현주는 말문이 막혀 멍하니 서 있었다.“당분간 집에 돌아오지 않을게요. 주말에 있을 가족 모임도 취소해요.”정우진은 아침 식사를 할 기분을 완전히 망쳤다. 그는 현관으로 걸어가 코트를 걸치고는 문밖을 나섰다.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2시간 후, 백영 그룹.신시아는 정리된 자료를 챙겨 들고 출근했다.대표이사실로 들어선 그녀는 자료 맨 위에 사인을 마친 사직서를 올려놓았다.몸을 돌리는 순간, 휴게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정우진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흰 셔츠로 갈아입었다. 그는 셔츠 깃 단추를 채우고 소매를 걷어 올리며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왔다.“커피 한 잔 타 와.”묵직한 목소리가 멈칫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 사직서를 발견한 모양이다.정우진은 사직서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반으로 찢어서 휴지통에 던졌다.신시아는 이 모든 걸 지켜본 후에야 커피를 타러 갔다.그녀는 절대 포기한 게 아니었다. 사직서를 수십 장 더 출력해서 틈만 나면 정우진에게 건넸다.그리고 그 사직서들은 결국 휴지통으로 직행할 뿐이었다.두 사람은 암묵적인 합의를 이룬 듯 한쪽은 집요하게 건네고 다른 한쪽은 집요하게 찢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호흡이었다.누가 더 오래 버틸지 겨뤄볼 셈인가?조 팀장은 팀을 이끌고 밤새 천성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복구했다. 이틀 만에 새로운 계획이 나왔지만 은호 그룹이 직면한 위기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은호 그룹이 자칫 큰 피해를 볼 뻔했는데 신 비서가 아직도 우진이 곁에 있다고요? 우진이는 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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