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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점심시간, 신시아는 자리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비서실장 오혜린이 갑자기 와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요즘 신시아는 임신 3개월 가까이 되었지만 팔다리는 여전히 가늘었다.하지만 원래 볼륨감 있던 몸매는 점점 더 풍만해졌다.최근 이틀 동안은 정장도 다소 꽉 끼는 느낌이었다.오혜린이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자, 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정리했다.“몇 킬로 좀 쪘어요. 나이 들면 대사가 안 좋아지잖아요.”의심이 해소된 후, 회사 대부분의 동료는 그녀를 믿게 되었고, 예전과 다름없이 대했다.오혜린은 그녀보다 2년 먼저 입사했는데, 신시아가 입사 초기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성격도 온화했다.그녀는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신시아의 맞은편에 앉았다.“이 얘기 나온 김에 개인적인 거 하나 물어볼게. 하 대표랑은 도대체 무슨 관계야?”신시아는 난처하게 웃었다.“하 대표님이 농담으로 그러는 거예요. 저는 그냥 비서인데요. 저를 이용해서 정 대표님을 자극하는 거죠.”오혜린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돈 많은 사람 눈에는 우리가 그냥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바둑알 같은 존재잖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안심돼. 진짜인 줄 알았거든.”“그럴 리가요.”신시아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처음 정우진이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했을 때, 그녀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그와 결혼하면 인생이 완벽해질 거로 생각했다. 그때의 그녀는 순진했다.하지만 지금은 아주 냉정했다.“나한테 조카가 한 명 있는데 시아 씨보다 두 살 많고 유학도 다녀왔어. 소개해줄까?”오혜린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찾아 신시아에게 보여주었다.“시아 씨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결혼 같은 건 생각해봐야지.”“지금은 연애할 생각 없어요.”신시아는 사진을 보지도 않고 오혜린의 휴대폰을 밀어냈다.그녀는 배 속에 아이가 있었기에 소개팅을 하는 건 상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자 속이는 일이었다.“지금 연애 안 하더라도 언젠가는 해야 해.”오혜린은 사진을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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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그래도 제가 남는 게...”신시아는 한 번 더 시도했다.“제가 아직 병이 완전히 낫지 않아서 혹시라도...”정우진은 눈빛으로 그녀를 압도했다.“그런 가능성은 없어.”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미간에는 짜증이 서렸다.신시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그녀는 차를 몰고 집에 가서 짐을 쌌다.이 시기의 서원시는 경원시의 건조한 초봄과 달리 이미 초여름 날씨였다.신시아는 18인치 캐리어를 들고 한 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해 기다렸다.오후 4시 비행기였는데, 탑승 게이트가 거의 닫힐 즈음이 되어서야 정우진이 은유라와 함께 늦게 나타났다.“시아 씨, 잠깐 자리 바꿔요. 시아 씨는 이코노미석 가서 앉아요.”정우진은 앞서 걸었고, 은유라는 일부러 두 걸음 뒤에 서서 신시아에게 명령하듯 말했다.아마 은유라가 갑자기 합류를 결정한 탓에 처음부터 함께 표를 예매하지 못했던 듯했다.출발 직전에 표를 사려니 비즈니스석은 이미 매진이었다.신시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은유라는 정우진 옆으로 가 그의 팔을 끼었다.“오빠, 서원시에 맛있는 요리가 있다던데 시간 나면 같이 먹으러 가자.”정우진은 검은 캐리어를 끌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은유라의 분홍색 가방이 얹혀 있었다.그는 그녀의 가방이 떨어지지 않게 손가락으로 끈을 잡고 있었다.“일 끝나고.”은유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오빠 일이 끝난 다음이지. 내가 무리하게 굴어서 일 방해할 것처럼 말하네.”정우진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팔에서 손을 빼고, 등을 밀어 먼저 탑승하도록 했다.“넌 항상 철들었지.”신시아는 정우진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의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를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그들은 곧장 비즈니스석으로 향했다. 신시아는 가방을 들고 이코노미석으로 가더니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꺼내 착용했다.출장에서 이코노미석을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동안 정우진과 출장 갈 때마다 그는 항상 그녀에게도 비즈니스석을 예약해줬다.장거리 비행 동안 그는 업무를 처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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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휴대폰을 꺼내 정우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 울리다 끊겼다.다시 걸었더니 전원이 꺼져 있었다.“탈 거예요, 말 거예요?”뒤에 있던 사람이 재촉했다.신시아는 자리를 양보했다.“죄송합니다. 먼저 타세요.”그녀는 구석으로 가서 다시 임정현에게 전화하려 했다.그때, 밴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췄다.차창이 내려가더니 하선재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신 비서? 서원시에 어떻게 왔어?”“하 대표님.”신시아는 그를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정우진과 하선재가 같은 프로젝트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하선재도 곧 이해했다.“정우진도 왔어?”신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정말 끈질기네.”하선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이번엔 절대 정우진한테 안 질 거야.”신시아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에서 정우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그런데 왜 택시 타는 데에 있어? 정우진은?”하선재는 차에서 내려, 그녀 앞에 캐리어 두 개가 있는 걸 보고 확신에 찬 듯 말했다.“은유라도 같이 왔지?”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갔어?”신시아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타. 내가 데려다줄게.”하선재는 손짓하며 기사에게 내려서 신시아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게 했다.“괜찮아요.”신시아는 캐리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이미 줄 수 있었고, 택시 타고 가면 금방이에요.”하선재는 그녀 말을 듣지 않고 강제로 캐리어를 빼앗아 기사에게 넘겼다.“나랑 가. 그 사람이 널 여기다 버리고 가도 아무렇지 않은데 넌 뭘 그렇게 신경 써?”기사는 두 개의 캐리어를 싣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신시아는 안 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그녀는 뒷좌석, 하선재와 같은 줄에 앉았다.“정우진이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뭐라고 했어?”차가 천천히 공항을 벗어나며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씩 비춰 들어왔다.어두운 차 안은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다. 특히 신시아는 그의 차에 앉아 있는 게 불편했다.하선재가 먼저 입을 열어 그 어색함을 깼다.“정 대표님께서 저한테 말씀 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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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정우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깊어졌다.그는 성큼성큼 로비 중앙까지 걸어오다가 천천히 멈췄다.신시아는 줄곧 하선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하지만 정우진을 본 순간, 하선재가 그녀 쪽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정 대표, 이렇게 먼 데서도 만나네. 인연이긴 한가 봐.”하선재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장난기 섞인 미소에 은근한 도발을 담았다.정우진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차분하고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하 대표가 온다길래 일부러 왔어.”하선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일부러 나랑 프로젝트 뺏으러 온 거야?”“실력으로 하는 거지, 뺏는 건 아니야.”정우진은 꼿꼿하게 선 채 시선은 간간이 신시아에게 향했다.하선재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봤다.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 사이에 서 있던 신시아는 거대한 로비가 지옥처럼 뜨겁게 느껴졌다.직원은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다가와 친절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 고객님. 두 분 예약하셨나요?”하선재는 순식간에 웃음을 터뜨리며 일부러 앞의 두 글자를 강조했다.“‘두 분’이라... 그럼 우리 킹사이즈 침대 있는 방으로 할까요?”오해는 신시아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그녀는 하선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호텔까지 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 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쉬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녀는 주민등록증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예약해둔 방 있어요.”“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했네요.”직원은 곧바로 알아듣고 그녀를 프런트로 안내해 절차를 밟게 했다.하선재도 따라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이따가 방 번호 알려줘. 내가 거기로 갈게.”그의 시선이 은근히 정우진 쪽으로 흘렀다.신시아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나 그와 안전거리를 유지했다.그녀는 정우진이 오해하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하선재는 정우진의 앙숙이니 업무적인 관점에서도 그와 너무 가까이 지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하선재는 갈수록 더 신이 나서 떠들었고, 그녀는 아예 입을 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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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감정을 정리한 뒤, 신시아는 프런트에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고 카드키를 받아 짐을 끌고 정우진 쪽으로 걸어갔다.“신 비서, 시간 되면 같이 밥 먹자.”하선재가 카운터에 기대며 그녀 등을 향해 외쳤다.신시아는 눈앞의 남자 얼굴이 순간 굳어지는 걸 보았다. 앞에는 늑대, 뒤에는 호랑이 같은 상황에 놓인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하선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정우진의 앞에 서서 말했다.“정 대표님, 준비됐어요.”하선재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앞으로 저 냉혈한 상사랑은 좀 거리를 둬. 점점 인정머리 없어지잖아.”신시아는 그 말이 정우진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행동은 그녀를 불 위에 올려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다.신시아는 구석에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남자의 반짝이는 구두를 바라봤다.“짐 놓고 내 방으로 와서 일 처리해.”정우진의 목소리는 무심했다. 그는 신시아를 힐끗 보았다. 그러다가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보고 시선을 떼지 않았다.얌전히 서 있는 모습인데도 어딘가 반항적인 기운이 느껴졌다.신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간을 확인했다.이미 11시였다.임신 때문인지 최근 들어 유난히 졸음이 심했다.“왜, 약속 있어?”정우진은 몸을 돌려 그녀를 향했다.신시아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 봤다.그녀의 눈 깊숙한 곳에는 분명한 거부감이 있었다.“아니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정우진의 눈에는 온기가 전혀 없었다.그는 그녀가 피곤한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가 일하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녀는 따라야 했다.그녀는 어디까지나 그의 돈을 받고 일하는 부하 직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신시아의 방은 정우진 방 바로 옆이었다.짐을 내려놓자마자 정리할 틈도 없이 곧바로 그의 방으로 갔다.스위트룸 문은 열려 있었다.은유라는 갈색 가죽 스커트에 검은 끈 나시 차림으로 정우진의 옆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나 여기 잘 몰라서 혼자 방 쓰면 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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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침실에서는 은유라가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네?”신시아는 그의 말을 제대로 다 듣지 못했다.노란빛 조명이 책상 위를 은은하게 감싸고 있었다.두 사람은 마주 앉아 있었다. 신시아의 또렷한 눈동자와 검은 긴 머리가 흰 셔츠 위로 흘러내렸다.깊은 밤의 정적 속에서 그녀는 한층 더 부드럽고 여린 분위기를 풍겼다.정우진은 다리를 꼬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는 거친 남성적인 분위기를 드러냈다.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매력적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커피 한 잔 타 와.”정우진은 입맛이 까다로워 특정 해외 원두의 핸드드립 커피만 마셨다.출장 때마다 신시아는 원두를 챙겨 호텔에서 직접 내려야 했다.신시아는 아일랜드 식탁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곧 커피 향이 방 안 가득 퍼지더니 십여 분 후, 정우진 왼쪽에 김이 나는 커피 한 잔이 놓였다.그는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입안에 퍼졌다.“이 자료 정리해.”그는 서류 한 부를 신시아에게 던졌다.신시아는 몇 장 넘겨보더니 말했다.“대표님, 이 자료는 천성 프로젝트 쪽인데 이미 정리된 거예요.”이미 정리됐다는 표현도 완곡한 것이었다.이 자료는 데이터 유출 이전의 기획안이라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정우진은 커피를 마시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그래? 그럼 내가 잘못 가져온 거겠지.”그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다시 자기 일을 했다.신시아는 어리둥절해졌다.‘그래서 나더러 뭘 하라는 거지?’“다시 정리해. 어차피 너 한가하잖아.”고요한 밤, 정우진의 이 말은 신시아에게 꿈같이 비현실적으로 들렸다.‘한가하면 방에 가서 자면 되는 거지...’이렇게 말하는 건 정우진답지 않았다.신시아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정우진은 시선을 내린 채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뚜렷한 골격과 함께 진지한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신시아는 몇 번이고 생각한 끝에 결국 서류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갑작스럽게 서원시에 오게 된 만큼, 정우진이 아직 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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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이 늦은 밤, 남녀가 한 공간에 있는 상황을 그녀는 용납할 수 없었다.“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신시아는 서류를 정리하는 척하며 셔츠를 다시 한번 정돈했다.은유라는 입술을 깨물며 정우진의 옆으로 갔다.“오빠, 이거 내일 하면 안 돼?”정우진은 핏줄이 두드러진 손으로 미간을 눌렀다.“내일 써야 해.”그 말을 듣고 은유라는 소파 의자를 끌어왔다.“그럼 나도 여기서 같이 있을래.”그녀는 신시아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하지만 신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서류만 보고 있었다.머리카락이 종이에 흘러내린 그녀는 조명 아래에서 하얀 피부가 은은하게 빛났다.정교한 이목구비는 마치 요염한 요정 같았다.은유라는 속으로 신시아가 일부러 남아서 정우진을 유혹하려는 거로 생각했다.“됐어. 둘 다 돌아가.”정우진의 목소리는 억눌린 듯 낮고 거칠었다.신시아는 은유라의 경계와 불만 어린 시선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정우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서류를 정리해 내려놓고 곧바로 나갔다.“그럼 나라도 남아서 같이 있을게.”은유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여자는 늦게 자면 안 돼.”정우진은 달래듯 말했다.“먼저 들어가 있어. 나 일 끝나고 잘게.”스위트룸 문이 닫혔다.복도에는 하나씩 켜진 조명이 화려한 무늬의 카펫 위를 비추고 있었다.신시아의 하이힐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하이힐을 벗고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피로가 온몸을 덮쳤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또렷해져 잠이 오지 않았다.주변은 조용했지만 마치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그건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정우진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그 소리는 귀에 맴돌며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침대에 올라가 이불 속에 얼굴을 묻었지만 여전히 들리는 것만 같았다.그때 김지원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신시아를 보자마자 그녀는 경계하며 말했다.“왜 이불 속에서 영상 받아? 설마 정우진이랑 같은 방 쓰는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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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괜찮아. 몸이 더 중요하지.”하선재는 한 손으로 문틀을 짚고 서서 환하게 웃었다.‘대표님 입장에선 괜찮겠지.’신시아가 늦게 일어날수록 업무는 지연되고 있으니 그에게는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하 대표님.”신시아는 그를 확인하고도 여전히 조금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무슨 일이세요?”하선재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말했다.“가자. 점심 같이 먹자.”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시간 없어요.”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맞은편을 바라봤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설마 정우진은 이미 나가서 일을 보고 있는 건가?’“시간 있어.”하선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맞은편 문을 가리켰다.“정 대표 아직 달콤한 시간에 빠져 있더라. 점심으로 스테이크 두 개 시켜서 방에서 먹고 있어.”신시아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럼 다시 좀 자야겠네요.”문을 닫으려 했지만 하선재가 막았다.“자지 마. 은유라를 침대에서 못 나오게 만들었으니까 방에서 먹는 거겠지만, 그렇다고 오늘 일 안 하는 건 아니야.”비수 꽂는 말이라면 하선재가 최고였다.“지금 씻고 나랑 내려가서 밥 먹어. 나중에 일이 생겨도 안 늦어.”신시아는 거절하려던 말을 삼키고, 갑자기 하선재 뒤를 보며 말했다.“하 대표님.”하선재는 바로 뒤돌아봤다.뒤에는 아무도 없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신시아가 문을 닫았다.“정우진이랑 오래 있더니 똑같이 나빠졌네...”하선재의 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시아는 다시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었지만 정우진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하선재의 말이 떠오르자 가슴이 답답해진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잠들었다.하선재는 더는 집요하게 굴지 않고 몇 번 부르다가 떠났다.하지만 곧 복도에서 또 노크 소리가 들렸다.이번에는 그녀의 방이 아니라 맞은편 방이었다.점심을 배달하러 온 모양이었다.신시아는 뒤척이다가 잠이 완전히 깨버렸다. 배도 고파지기 시작한 그녀는 결국 일어나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아직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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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그래? 그럼 솔직하게 말해도 되잖아. 정 대표가 네 사생활까지 간섭할 건 아니잖아?”신시아는 은유라가 자신을 이용해 하선재까지 떼어내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하지만 하선재는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은유라가 계산을 잘못한 셈이었다.오해를 풀기 위해, 신시아는 의자를 끌어 바로 앉았다.“대표님께서 제가 방해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실 거로 생각해요.”은유라의 표정이 굳었다.“식사 끝나면 방에 올라가서 대기해.”정우진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냉정했다.그의 짧은 말 한마디로, 신시아는 식사 후 방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셀프 주문 방식이라 그녀는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찍어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그때 테이블 아래에서 누군가 그녀의 다리를 건드렸다.손이 움찔하며 그녀는 하선재를 바라봤다.“신 비서, 나랑 정 대표 일에서는 라이벌이지만 사적으로는 괜찮은 사이야. 그러니까 나랑 만나도 신경 안 쓸 거야.”하선재는 테이블에 한 손을 짚고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그래서 내가 신 비서를 좋아한다고 했던 거 생각해봤어?”신시아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표님, 과대평가하셨어요. 저는 그냥 비서예요. 더 좋은 분 만나셔야죠.”“흠.”하선재는 웃으며 정우진을 바라봤다.“들었지? 나 좋아하는데 신분 차이 때문에 못 받아준대.”신시아는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하지만 하선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정우진의 반응만 보고 있었다.‘정우진이 무슨 반응을 보이겠어...’신시아는 눈을 떨며 정우진을 바라봤다.“서원시 안과 괜찮다고 들었는데.”정우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눈이 안 좋다는 식의 비꼼이었다.하선재는 전혀 화내지 않고 더 크게 웃었다.“그럼 눈도 멀고 마음도 멀고 입도 센 건 어디서 고치냐?”한 테이블에 남자 둘, 여자 둘이 앉았지만, 두 남자는 말 속에 신시아를 끼워 넣고 있었다.그녀 같은 비서가 이런 자리의 중심이 될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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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신시아는 하선재와 진지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점심을 들고 방으로 돌아가면서 메시지를 보냈다.[하 대표님,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지 말아 주세요.]몇 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신 비서, 나야!”하선재의 목소리였다.신시아는 일어나려다 다시 앉아 메시지를 보냈다.[식사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메시지로 이야기하시죠.]문밖은 조용해졌고, 곧 답장이 왔다.[내가 안 밀어 넣어도 은유라는 신 비서를 가만 안 둘 거야. 걱정하지마 마. 내가 신 비서를 지켜줄게.][다음에 또 이러시면, 체면 안 봐 드립니다.]그건 협상이 아니라 통보였다.하지만 그녀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하선재는 물러서지 않았다.[다음부터는 조심할게. 최대한 신 비서를 곤란하게 안 만들게.]그는 여전히 같은 행동을 할 생각이지만 수위만 조절하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신시아가 원하는 건 단순한 ‘수위 조절’이 아니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서 한쪽에 던져두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에는 짜증이 번졌다.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그녀는 다시 하선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럼 알아서 하세요.]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거로 보아 하선재가 떠난 듯싶었다.오후 3시쯤, 신시아는 다시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그럼 우리 협곡에서 놀다가 근처에서 밥 먹자.”은유라는 종알거리며 정우진의 주위를 맴돌았다.“저녁에는 놀이공원에서 불꽃놀이도 한다는데 나 그것도 보고 싶어!”편한 차림을 한 정우진은 시선이 줄곧 은유라에게 향해 있었다.“앞 좀 봐. 부딪히겠다.”은유라는 뒤로 걸으며 고개를 기울여 정우진 얼굴을 바라봤다.“내 계획 괜찮은지 먼저 말해!”“좋아.”정우진은 은유라가 부딪힐까 봐 팔을 뻗어 모서리 벽을 막아주며 신경 썼다.신시아는 문 구멍으로 두 사람이 떠나는 걸 확인했다.말하는 걸 보니 저녁에야 돌아올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후에는 업무가 없다는 말이었다.호텔을 나와 근처 쇼핑몰로 가 옷을 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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