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결혼 끝, 후회는 사절입니다: Capítulo 161 - Capítulo 170

195 Capítulos

제161화

“주예가 고씨 집안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낯선 게 당연하지. 네가 옆에서 잘 챙겨 줘.”“네, 할아버지.” 하늘이 얌전하게 대답했다.그 뒤로도 30분이 더 흘렀다. 기다리다 지친 고홍근이 결국 입을 열었다. “더는 기다리지 말자. 밥 먹자.”하늘은 한 번 더 말려 보려 했다. “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면 안 돼요?”그때 식탁 위에 놓인 고홍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내려다본 고홍근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주예였다. “주예야? 뭐? 병원?”목소리에 다급함과 걱정이 그대로 묻어났다.통화 상대의 말까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고홍근이 내뱉은 몇 마디만으로도 하늘은 일이 뜻대로 됐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하늘은 절로 치솟는 입꼬리를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다. 식탁 아래로 숨긴 손가락이 흥분 때문에 가볍게 떨렸다.곧 걱정스러운 표정을 꾸며 내고 부드럽게 물었다. “할아버지, 주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고홍근이 대답하려는데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이번에는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정재야, 내일 보자고? 이 녀석이 드디어 그 얘기를 할 마음이 든 거냐? 그래, 그래. 좋은 차로 준비해 두마.”하늘은 ‘정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귀가 번쩍 뜨였다.‘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심정재가 내일 먼저 찾아오겠다고 한단 말인가?’하늘은 단단히 준비해 둘 생각이었다.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정재와 마주칠 기회를 잡아야 했다.지난번 정재의 집에서 정재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시선이 떠올랐다. 하늘의 눈동자에 기대와 수줍은 기색이 어렸다.‘혹시 아주 조금이라도, 나 때문에 오는 걸까?’하늘은 고홍근에게 정재의 방문 목적을 티 나지 않게 캐물을 방법을 궁리했다. 오늘 밤은 마치 운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 같았다. 바라던 일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본가에 들어와 지내겠다고 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야. 가까이 있어야 기회도 잡는 법이지.’고홍근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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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하늘이 고용한 두 사람은 아직 임무 결과조차 보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이 먼저 성공 여부를 알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의문은 남았지만 하늘이 약속한 돈은 확실했기에, 상대는 더 묻지 않았다....한편 주예는 병원 VIP 병실에 있었다.실제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시작한 연기는 끝까지 해야 했다. 주예가 범죄심리 전문가는 아니어도,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일이 끝난 뒤 현장을 다시 찾아가 결과를 확인하려는 경우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그런 심리는 어디서든 통하는 법이었다.주예는 링거 바늘을 이불 아래로 숨기고 파운데이션으로 입술 색조를 창백하게 만들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침대에 천천히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도 바닥을 두드리는 하이힐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워졌다.주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왔네.”곁을 지키던 전협은 주예가 꾸민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앞서 들었던 ‘범인은 반드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전개라며 반신반의했다. 현실에서 이렇게 맞아떨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정재의 인맥을 동원해도 배후에서 지시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다.그런데 고급 맞춤 정장에 빈틈없는 메이크업을 한 하늘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전협의 표정이 기묘하게 굳어졌다. 하늘에게 주예의 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이 대목에서 전협과 정재의 판단은 똑같았다. 증거는 없는데 이상하게 하늘이라는 답만 선명했다. 수능 수학 마지막 고난도 문제를 보고, 풀이 과정은 모르는데 답은 먼저 확신하는 기분과 비슷했다.병실에 들어온 하늘은 전협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걸 보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나를 그런 눈으로 봐?’하늘은 침대 쪽을 훑었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지만, 주예는 이불을 목 가까이까지 덮고 있었고 안색도 창백했다.하늘이 먼저 말했다. “할아버지는 벌써 쉬고 계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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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직접 결과까지 확인한 하늘은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성의 없는 위로만 몇 마디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떠나는 길에도 전협의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지자 속으로 비웃었다. ‘분수도 모르고.’하늘이 나가자 주예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녹음 중 표시가 떠 있었다. 전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주예를 바라봤다.“이렇게 스스로 불어버린 겁니까?”주예는 가볍게 웃었다. 조금 전 하늘이 ‘같이 있던 사람’부터 물은 것 자체가 범행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주예는 누구에게도 차 안에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주예는 망설이지 않고 녹음 파일을 고홍근에게 바로 보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변수가 생길 테니까. 갚을 수 있는 건 미루지 않고 바로 갚는 게 주예의 방식이었다.병원 복도로 나온 하늘은 마지막으로 확인해 둘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직 의사를 찾아가 슬픈 표정을 꾸민 뒤 물었다. “제 동생이 저 병실에 있는데요. 많이 심한가요? 너무 걱정돼서요.”하늘이 가리킨 방향을 본 의사는 주예가 병원에 들어온 뒤 벌인 일들을 떠올렸다. 복잡한 마음으로 의사가 말했다. “아, 그 젊은 환자분이요. 제 생각에는 꽤 심각해 보입니다. 앞으로 검사도 여러 가지 해 봐야 확실하겠지만, 젊은 나이에...”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덕분에 이어진 뒷말은 듣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아픈 데도 없으면서 굳이 병원에 누워서 수액을 맞겠다니. 뇌 쪽 검사를 몇 가지 더 해 봐야 하나 싶네요.”하늘이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복도에 다시 발소리가 울렸다. 정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코트에는 바깥의 차가운 눈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전화로 전협에게 주예가 병원에 갔다는 말만 듣고도 정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뒤에 이어지는 설명은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왔다.주예는 하늘이 다시 돌아온 줄 알고 서둘러 침대에 누워서 눈을 꼭 감았다.병실에 들어온 정재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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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이번 입맞춤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세게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눈앞의 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했다. 대신 입맞춤은 오래 이어졌다. 정재의 숨결과 체온이 주예를 빈틈없이 감싸면서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주예는 고개를 젖힌 채 길게 이어지는 입맞춤을 받아냈다. 숨이 가빠지면서 눈가에 절로 눈물이 맺혔다. 자신도 모르게 정재의 정장 앞섶을 움켜쥐었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는 잘게 끊어지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품 안에서 주예가 가볍게 떠는 걸 느끼자, 정재는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마치 자신의 몸 안으로 완전히 끌어들이려는 듯한 힘이었다.병실의 공기가 빠르게 뜨거워졌다.감정이 깊어지자 정재는 주예를 안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얇은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과 강한 존재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주예는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처음 겪는 압박감에 견디기 어려워 허리를 조금 비틀며 몸을 기댈 곳을 찾았다.“움직이지 마.” 정재의 목소리는 거칠게 잠겨 있었다. 입맞춤을 이어 가면서, 숨을 고르고 가까스로 짧은 말을 흘렸다.“회진입니다.” 그때 의사가 예고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주예는 불에 덴 사람처럼 부리타케 정재에게서 떨어졌다. 목과 귀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정재는 못마땅한 눈으로 의사를 보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다음부터는 노크부터 하세요.”의사가 끼어든 탓에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분위기는 깨끗이 흩어졌다.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태를 확인한 뒤 묘한 웃음을 얹으면서 말했다. “두 분 계속하세요. 내일 아침 여섯 시 전까지는 회진이 없습니다.” 친절하게 문까지 닫아 줬다.“아, 소리는 조금만 줄여주세요. 여기는 병원입니다. VIP 병실도 예외는 아닙니다.” 닫힌 줄 알았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의사가 머리만 내밀었다.문이 다시 닫히자 병실은 조용해졌다. 정재와 주예는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자자.” 정재는 주예를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은 그대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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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가까이에서 보니 빽빽한 흉터 사이로 유난히 깊은 자국 하나가 더 있었다. 위치가 심장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어릴 때는 분명 없던 상처들이었다.그제야 주예는 정재가 지난 7년 동안 어떤 일을 견뎌 왔는지 생각했다.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진작 짐작했어야 했는데.심씨 집안의 총수 자리가 절대 편안할 리 없었다.주예의 손끝이 흉터 위를 조심스럽게 스쳤다. 눈에 차오른 눈물이 한 방울씩 정재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정재가 어떻게 버텨 왔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정재는 원래 오래된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주예의 부드러운 손끝이 닿자, 그 자리가 아리면서 묻어 두었던 미세한 통증까지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 아픔조차 그동안 비어 있었던 7년의 시간을 조금씩 메우는 느낌이었다.“됐어. 울지 마. 그만 봐.” 정재는 주예가 너무 힘들어하자 조용한 목소리로 달랬다. “다 지난 일이야.”주예의 눈에는 아직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정재는 그 눈을 보자 마음이 약해지면서 화제를 돌렸다. “전협 말고도 경호원을 몇 명 더 붙여 줄게.”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둔 휴대전화가 거칠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진석의 이름이 떠 있었다.새벽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이 시간에 진석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부터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정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불 끝을 정리해 준 뒤 조용히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병실 안에서 보이던 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보스, 문제 생겼습니다.]진석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평소에는 정재를 ‘회장님’이라고 부르지만, 심씨 집안 내부에 비상이 걸린 때는 ‘보스’라는 호칭을 썼다.[P국 광산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들고일어났습니다. 열 곳이 넘는 광산이 동시에 점거됐습니다.”]진석은 말을 고르듯 보고했다.“무슨 일이야?” 정재가 목소리를 낮췄다. 표정도 차갑게 굳어졌다.[심건훈 쪽입니다.]심건훈은 정재의 큰아버지였고, 정재가 어린 시절 독을 먹은 사건의 유력한 배후이기도 했다. 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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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심명산의 설명이 이어졌다.P국의 상황은 급박했다. 심씨 집안의 주요 거점마저 심건훈에게 눌린 상태라 오래 끌 수 없는 일이었다.“고씨 집안이 C국에서 서씨 집안을 압박해서 지원을 끊게 만들자는 말씀이십니까?” 정재는 심명산의 의도를 바로 알아들었다.[그래.]심명산은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손자답게 말이 빨리 통했다.정재는 깊이 생각했다. 조손이 떠올린 방법은 같았다. 고씨 집안이 C국 안에서 서씨 집안을 압박하면, 서씨 집안은 자기 기반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P국의 심건훈에게 보내던 지원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그 틈에 정재가 P국으로 돌아가서 광산을 되찾는 방식이었다.시간을 끌수록 심명산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정재는 7년 전을 떠올렸다. 당시 급히 P국으로 돌아가게 된 계기도 심건훈의 계략 때문이었다. 심명산은 위독해져서 정말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이번에 광산 문제가 터지자, 심명산은 몇몇 측근과 함께 다른 장소로 몸을 옮긴 상태였다. 하지만 심건훈이 그곳을 찾아내는 건 결국 시간 문제였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없었지만, 정재는 심명산이 손자를 흔들리게 하지 않으려고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할아버지, 고씨 집안이 왜 또 저희를 도와주겠습니까? 고홍근 회장님과의 인연만 믿어도 되는 겁니까?”[허허, 너도 알잖아.] 심명산의 말에는 깊은 뜻이 실려 있었다. [네가 혼인 얘기만 나오면 계속 피했으니 그동안은 나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하지만 예전에 고씨 집안이 너를 P국까지 무사히 돌려보내 준 은혜를 갚는 문제든, 지금 닥친 위기를 해결하는 문제든 이제는 그 일을 똑바로 봐야 해.][두 집안이 혼인으로 묶이지도 않는데 고씨 집안이 왜 다시 힘을 보태겠어?]심명산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직도 예전에 옆집에 살던 그 동생을 생각하니?]휴대전화를 쥔 정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할아버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너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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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혼인을 하지 않으면 나한테는 심씨 집안의 위기를 해결해 줄 힘도 없어.’ 주예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잘 있어. 나 간다.” 정재는 주예의 어깨를 끌어안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고씨 저택.하늘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마스크팩부터 헤어 스타일링, 메이크업, 맞춤 의상까지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신경 써서 손질했다. 오늘 정재가 온다는 생각에 들뜰 수밖에 없었다.정재의 벤틀리가 저택 안으로 들어왔지만 하늘은 곧장 달려나가지 않았다. 지나치게 먼저 달라붙는 여자는 정재가 거들떠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늘은 정문 앞에 단정한 자세로 서서 정재를 기다렸다.“정재 오빠, 오셨어요.” 정재가 차에서 내려 가까이 오고 나서야 하늘은 얌전하게 고개를 숙였다.눈앞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정재는 하늘이 그동안 벌였던 불쾌한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제야 처음으로 하늘의 생김새를 똑바로 보면서 기억해 뒀다.정재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래 머무르자, 하늘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재벌가 아가씨다운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응접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세요.” 하늘은 안쪽을 가리키며 먼저 걸었다.하늘이 앞에, 정재가 뒤에 선 채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정재의 시선이 계속 따라오는 듯하자 하늘은 긴장을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아무 화제나 꺼냈다. “오빠, 요즘 미술계 소식 보셨어요? 화가 로즈가 국제 미술상을 받았고, 온라인에 작업 이야기도 올렸더라고요.”“그래?” 정재가 관심을 보였다. “자세히 말해 봐.”정재가 드물게 자신의 화제에 관심을 보이자, 하늘은 정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더 확신했다. 주제를 잘 고른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로즈 작품을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이번 수상자 중 C국 출신은 로즈 한 명뿐이라서 C국에도 의미가 크거든요.”“그래? 넌 로즈 그림의 어떤 점이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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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하늘의 심장이 거세게 뛰면서 숨까지 가빠졌다. ‘설마 정재 오빠가 혼담 예물로 가져온 거야?’정재는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점심까지 남지 않았다. 고홍근도 정재의 계획을 알고 있는 듯 굳이 붙잡지 않았다. 다만 무거운 표정으로 서재 밖까지 배웅했다.정재가 떠난 뒤 고홍근은 박 집사에게 말했다. “팔찌는 일단 보관실에 넣어 둬.”하늘은 고홍근의 표정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떠봤다. “할아버지, 정재 오빠는 왜 그렇게 급하게 가셨어요? 식사도 못 하고 가셨잖아요.”고홍근은 눈꺼풀을 들고 하늘을 한번 바라봤다. 반평생 넘게 사람들을 대했던 고홍근에게 하늘의 속내는 훤히 보였다.예전에는 고씨 집안이 정재에게 베푼 은혜를 내세워서 정재와 하늘을 억지로라도 엮어 볼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재는 하늘에게 남녀로서의 관심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억지로 맺어 봐야 끝에는 서로 원망하는 부부가 될 가능성이 컸다.게다가 고홍근의 마음은 이미 다른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며칠 전 주예가 고서화를 복원해 줬을 때, 고홍근은 주예와 정재를 저녁 식사에 남겨 두었다. 겉으로는 대화도 거의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 힘든 묘한 기류가 있었다. 연륜이 있는 고홍근은 한눈에 알아봤다.조금 전 서재에서도 정재는 ‘심씨 집안과 고씨 집안의 혼인’이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누구와 누구를 맺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고홍근은 그걸 실수로 보지 않았다. 정재가 일부러 선택의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고홍근이 하늘과 정재의 혼인을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어젯밤 주예가 보낸 녹음 파일이었다.하늘이 성급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같은 집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식까지 쓸 만큼 독할 줄은 몰랐다.“정재는 정재 일 때문에 간 거다. 너는 네 일부터 제대로 신경 써.” 고홍근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쓸 만한 정보를 듣지 못한 하늘은 마음속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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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하늘의 적의를 느끼자, 주예는 가슴 한쪽이 살짝 조여들었다. ‘오빠가 고하늘과 함께하면, 심씨 집안은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걸까?’주예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뒤엉킨 생각을 눌렀다. 적어도 이 대회에서만큼은 하늘한테 이겨야 했다.주예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웃어 보였다. 서로 격려하고 행운을 빌어 주는 분위기가 한동안 따뜻하게 이어졌다.심사위원석에는 장준이 가운데 자리에 앉았고, 소연과 중성도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참가자가 크게 줄어서 3라운드는 절차도 빠르게 진행됐다.대형 화면에는 후보 주제 100개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리모컨은 장준에게 전달됐다. 장준이 정지 버튼을 누르면, 그때 화면에 뜬 문구가 이번 라운드의 주제가 되는 방식이었다.장준이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멈추며 주제가 나타났다. [파괴와 재생].주제를 확인한 20여 명의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아쉬워하는 사람,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도 있었다.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각자 배정된 독립 작업실로 들어가서 구상을 시작했다. 3일 안에 완성해야 하니 지나치게 복잡한 작품은 위험했다. 반대로 너무 단순하면 눈에 띄지 못한다. 판단력과 실행력이 동시에 필요한 과제였다.필요한 재료도 지나치게 희귀하면 안 됐다. 제작진이 준비할 수 없는 재료를 요구했다가는 결국 참가자 본인만 손해였다.주예도 자신의 개인 작업실로 들어갔다.구상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전체 작품이 빠르게 완성됐다. 주예는 제작진에게 채색 안료와 붓, 한지 등 필요한 도구를 요청했다. 전통 수묵화의 진채화 기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모두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라 요청한 물품은 금방 준비됐다.주예는 한 번 깊게 숨을 쉬고 머릿속의 잡념을 밀어냈다. 시선과 정신을 눈앞의 작업에만 모았다.그런데 안료 상자를 열던 주예의 손이 멈칫했다.‘이상해. 점도가 너무 높은데.’주예는 잘 보이지 않는 척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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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그 장면은 온라인 생중계 화면에도 그대로 잡혔다.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작업 화면을 빠르게 훑으면서, 각자가 어떤 작품을 만들려는지 대략적인 방향을 파악했다.지난 라운드에서 주예가 보여 준 결과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장준은 이번에도 주예의 화면을 유심히 봤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주예가 선택한 건 전통 진채화였다. 기본기와 붓 실력은 탄탄했지만, 지난번의 충격적인 인상과 비교하면 이번 작품은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보였다.장준은 주예가 3일 안에 완성하는 걸 우선해서 안전한 방향을 고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살짝 한숨이 나왔다. ‘이 정도로 끝난다면 우승은 어렵겠는데...’게다가 배색도 묘했다. 장준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밝게 살아야 할 부분에는 회색이 들어갔고, 강한 붉은 계열이 필요한 배경에는 갈색이 놓였다.주예는 밖에서 어떤 평가가 오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설사 알았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붓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주예는 한지 위에 색을 차곡차곡 올렸다.지금은 배색이 이상하게 보여도, 사흘째 심사 때가 되면 섞여 있던 휘발 성분이 빠져나가며 자신이 의도한 색상으로 맞춰질 걸 알고 있었다.주예는 손이 빠른 데다 실력도 탄탄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불꽃 속 백호’를 그린 진채화 한 점을 완성했다. 백호가 불길을 박차고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기세였고, 털 한 올 한 올의 결까지 섬세하게 살아 있었다. 색감이 다소 어색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구도와 묘사는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아깝네.’ 모니터 뒤에서 주예를 지켜보던 전문가들 중 여럿이 속으로 탄식했다. 3일이 주어진 복잡한 작품을 하루도 안 되어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예의 기량은 충분히 드러났다.사람들은 주예가 이제 작업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예가 새 한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뭘 하려는 거지? 연작으로 가나?”연작은 보통 세 장이나 네 장의 작품을 함께 구성하는 방식이다. 각각 따로 봐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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