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을 깬 건 시릴이었다."영애, 오늘 폐하가 아니셨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시지요."시릴의 재촉에 세레인은 바닥을 짚은 손에 힘을 주며 고개를 조아렸다. 떠나려는 말머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카르안은 고삐를 쥔 채 무심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당연한 일을 한거니 그만 일어나. 그리고 영애는 즉시 1구역으로 돌아가."평소라면 할 말 다 했을 벨라는 완전히 풀이 죽어있었다."...네, 폐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전 구역에 다다르자 멀리서 말을 급히 몰아오는 기사의 인영이 보였다. 다비안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카르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시릴이 짧게 상황을 설명하자 다비안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곧장 뒤편에 있는 벨라와 세레인에게 향했다."벨라! 너 지금 제정신이야? 거기가 어딘줄 알고 리나만 데리고 구역을 넘어가!""아, 알았어! 잘못했어!"벨라가 고집스럽게 소리치자 다비안은 기가 찬 듯 한숨을 내쉬며 벨라를 자신의 뒤로 밀어냈다. 그러고는 곁에 서 있던 세레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리나, 너 어디 다친 데는 없어?"다비안의 물음은 나직했으나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걱정이 묻어났다. 그는 세레인의 소매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저는 괜찮아요, 공자님. 아가씨가 안 다치셔서 다행이에요." 다비안의 손이 세레인의 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어 올렸다. 긁힌 자국이라도 찾으려는 듯 그는 세레인의 팔목을 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안 다쳤다니 다행이다.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어."다비안의 다정한 목소리가 길어질수록 말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카르안의 얼굴에는 달갑지 않은 것에 반응하는 기색이 드러났다.지극히 당연한 광경이었다. 가문의 기사가 제 식구의 안위를 살피는 것뿐이다. 굳이 황제인 자신이 끼어들어 떼놓을 만한 명분도 없었다. 그런데 하녀
Last Updated : 2026-04-0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