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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복종은 끝나지 않는다: Chapter 11 - Chapter 16

16 Chapters

11화

“아, 그건…! 그냥, 메모장이에요. 진짜 별거 아닌데…”세레인이 당황해 다가가려 하자, 벨라는 재빨리 수첩을 열어봤다.안 쪽엔 날짜와 약초 이름들, 간단한 일상 단상과 알 수 없는 낙서가 빼곡했다.“으응… 흠… ‘나는 괜찮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산초가 깨끗했다.’ 꺄하학 이게 뭐야! 시야? 일기야?”벨라는 귀족 영애 답지 않은 모습으로 넘어가듯이 웃으며, 수첩을 넘겨봤다."약초 판매… 비누 만들… 뭐야!"도저히 들을 수가 없던 세레인이 얼굴이 잔뜩 빨개진 채로 수첩을 낚아채 듯 뺏어 들었다.“죄송해요! 아가씨…! 그냥... 그날 있었던 생각 같은 거예요.”벨라는 팔짱을 끼고 세레인을 빤히 쳐다봤다.이것 봐라? 이게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벌써 독립 준비를 하네?벨라는 입을 삐죽였다."비누는 왜 만드는데 네가?"그것도 되지도 않는 그 손재주로? 덧붙이려다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벨라는 뒷말을 생략했다."아 그게, 어…"“너 돈 매 달 받잖아. 부족해?”“아니요, 전혀 부족하지 않아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 베르나에서 하던 일은 약초를 캐는거라 버는 돈이 정말 적었어요."그건 사실이었다.남작가에서 받는 급여는 당연하게도 세레인이 베르나에서 벌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급여가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는 안정성도 확실했고, 또 마사가 있어 잘 적응할 수 있었다.이 곳의 사람들도 대부분 친절했다.레오폴트 남작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무역업을 하다보니, 사용인들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타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적었을 것이다.“흐응… 너 짐 싸서 나가기만 해봐!”벨라는 괜히 부풀린 뺨을 찌푸리듯이 말하며 다시 시선을 세레인의 손에 들린 수첩으로 옮겼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너, 몇 살이라고 했지?”“스물 둘이요. 이제 곧 있으면 스물 셋이에요.”“…두세 살 더 있으면 결혼할 나이잖아.”세레인은 얼떨떨한 얼굴로 벨라를 바라보았다.“저, 아직 그런 생각은.”누가 나랑 결혼을 한단 말인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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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저택의 대문이 활짝 열리고 키가 크고 단정하게 제복을 갖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비안 리벤헤르츠였다. 한눈에 봐도 훈련된 몸이라고 느껴지는 체격과 절제된 걸음걸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햇빛을 받자 살짝 밝아 보이는 머리색이 제복 위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빛났다.살짝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는 푸른빛 눈동자가 엿보였다. 예리하게 보일 것도 같았지만 지금은 가볍게 미소 짓고 있어서 그런지 부드러워 보였다.확실히 괜히 남매가 아니구나. 벨라 아가씨하고도 많이 닮았다. 특히 눈매와 전체적인 윤곽이 비슷했다.“벨라! 너 또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고 있냐?”“내가 입고 싶어서 입었거든? 어디서 오자마자 시비야!”“그래, 반 년 만에 네가 변하면 이상한 거지.”“내가 왜 변해?! 죽어볼래?”두 남매는 오랜만에 보는 만남이었음에도 서로를 보자마자 거세게 부딪히기 시작했다.세레인은 조용히 한 발 뒤로 물러나 인사를 올렸다.“리나에요. 아가씨를 모시고 있는 하녀입니다.”청년의 눈길이 세레인에게 향했다. 깔끔하게 묶어 올린 금빛 머리와 자신의 어깨 높이를 조금 넘는 아담한 키.“아, 새로 온 하녀?”“네, 영애께서 잘 챙겨주셔서 편하게 일하고 있습니다.”“걔가 그럴리가 없는데. 난 다비안.”“잘 부탁드립니다, 공자님.”그는 반쯤 농담하듯 말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시선은 한참이나 그녀에게 머물렀다.외지에서 온 하녀라더니, 발테리움의 여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다비안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동선을 눈으로 좇다가, 이내 얼굴을 돌렸다.다비안이 돌아온 지 며칠 뒤, 저택에는 황금빛 밀랍으로 봉인된 두꺼운 봉투 한 장이 도착했다. 제국 황실에서 열리는 상무회 회의. 금빛 인장이 빛나는 문서 끝에는 황실의 표장이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리벤헤르츠 남작은 천천히 편지를 접으며 얼굴에 드러나는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 카르안의 인장이 찍힌 소환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수도 브리스.수도 브리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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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가 봐. 하지만 다음번에도 내 눈 앞에 ‘길을 잃었다’는 핑계로 나타난다면… 그때는 네 주인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거다.”명백한 경고이자 동시에 자비로운 처분이었다.“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폐하."세레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들릴 듯 말 듯하게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훈련장을 빠져나갔다.“…숨 막혀.”세레인의 발걸음은 한동안 멈추지 못했다. 한참을 걸어 정원이 보이기 시작해서야 겨우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방금 전의 일이 머릿속에서 반복되듯 맴돌았다.…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아. 아니, 애초에 또 마주칠 일이 있으면 안 되는 거지.세레인이 심장 두근거림을 애써 진정시키며, 정원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벨라 아가씨는 이미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리나 늦었네. 어디까지 구경하고 온거야? 얼른 앉아!”“아 네!”“레이나 영애는 일이 있다고 방금 전에 갔어.”세레인은 양심에 찔려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황궁은 정말 넓네요… 사실 저 아까 길 잃어서 늦은거였어요… 아가씨.”“뭐야 어쩐지 늦다했네. 흐음 너 여기 위치 제대로 못 외웠지?”“네, 아직 잘 몰라요…”황궁은 넓어도 너무 넓고… 그리고 그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굳이 황제와 마주쳤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세레인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바라보다, 괜히 시선을 돌렸다.“그럼 황궁 구경가자!”“...네?”예상 외의 말에 세레인의 시선이 다시 벨라에게 향했다.“아침부터 뭔가 답답하기도 했고. 시원한 황궁 갔다가 시원한 디저트 먹으면 되겠다.”“어, 아가씨 저는-”달갑게 응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세레인은 다른 제안거리를 찾으려 했지만 말이 잘려버렸다.'그때는 네 주인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거다.'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지 않다.“됐고! 아무튼 가.”벨라는 이미 기분이 잔뜩 들뜬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하지만 주인이 가는 곳에는 사용인들이 따라야 하는 법. 결국 세레인은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그녀를 따라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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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집안의 영애들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 그녀들은 일찌감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을 마쳤다. 속눈썹에는 반짝이는 가루가 내려앉았고, 손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부채가 들려 있었다. 평소엔 사이좋게 웃던 친구 사이조차 오늘만큼은 서로의 가면을 은근히 견제했다. 누구의 것이 더 우아한지 누구의 것이 더 화려한지.크림색의 긴 테이블 위에는 화려하고 우아한 각양각색의 가면들이 놓여 있었다. 세레인은 손에 들고 있던 가면을 내려다보고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가장 눈에 띄지 않을 곳을 찾아 구석 자리에 내려놓았다.옆에 예쁜 가면들이 있어서 더 비교되는데… 하, 난 몰라… 아가씨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세레인은 가면을 두고 뒤로 몇 발짝 물러나 구석으로 이동했다. 아까 훈련장에서 황제가 했던 서늘한 경고가 자꾸만 떠올랐다.어차피 형식 상 보는거겠지...그때 후원 입구 쪽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붉은색 예복 차림의 황제 카르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는 내무대신 시릴 베르탄 공작과 몇 명의 시종이 따르고 있었다. 황제는 무심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하나씩 훑기 시작했다.“이건 라포르 백작가 영애의 작품입니다. 실크와 은실을 조합했군요.”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알리앙 가문의 엘리노어 영애가 만든 가면입니다. 진주를 붙여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게 처리했습니다.”황제의 시선이 머물 때마다 영애들의 얼굴은 기대와 실망으로 나뉘었다. 그러다 유난히 한산한 테이블 앞에서 황제와 시릴이 멈춰 섰다.“이건 뭐지?”황제의 짧은 질문에 시릴이 가까이 다가와 가면을 살폈다.“어… 음…”시릴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끼와 풀잎이 듬성듬성 덮인 괴상한 가면 옆에는 '리벤헤르츠' 라고 적힌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시릴은 결국 고개를 돌리며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죄송… 폐하, 이건… 푸흡, 이끼 맞죠?”세레인은 시릴의 웃음소리에 ‘뭐지? 많이 이상한가?’ 싶어 참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하지만 황제의 시선이 자신의 가면에 닿여있는걸 발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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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카르안 황제는 집무실에 앉아 조용히 가면을 바라봤다.그 조악한 물건은 마치 누가 일부러 웃기려 만든 장난감처럼 우스꽝스러웠다.그게 이상하게도 꽤 즐거웠다. 그는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순간 인상이 찌푸려졌다.처음 봤을 때 그녀는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심스러웠다.위축에 가까운 몸짓. 교활한 귀족들에게 책 잡히지 않으려고, 애써서 존재감을 숨기는 모습이었다.그래서 카르안은 그 여인을 의심했다. 자신을 속이고 황궁에 들어온 자. 반란을 일으켰다는 귀족 가문에서 신분이 바뀐 채, 제국으로 숨어든 계집. 그녀가 연회장에서 깬 유리잔 사건도 의심의 한 자락이었다.하찮아 보이는 실수.얼마 전에는 훈련장에 몰래 들어와 겁도 없이 거짓 이름을 내뱉었다.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주제에.하지만 오늘 가면으로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가면과 어울리지 않는 소재에 조악한 마무리. 누가 저런 걸 일부러 만들 수 있을까? 모두 허술한 손놀림의 산물이었다.교활한 술책을 감추기엔 너무나도 서툴렀다.그리고 당황한 표정과 쉽게 빨개지는 얼굴이 떠올랐다. 여인은 뭔가를 숨기고 있었지만 자기 감정을 감출 줄은 몰랐다.하지만 이 이상 흥미를 느낄 필요는 없지.이내 그는 가면에 매달린 구슬을 손가락 끝으로 톡 들어올렸다.***홀의 타원형 테이블에 자리한 네 명의 귀족들은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황제 카르안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리하우의 제안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듣겠다.”루도빅 알리앙 공작이 먼저 나섰다.“리하우의 제안은 겉으로는 협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분명 그 이면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겁니다. 저는 변방의 나라가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 의심스럽습니다.”디켄 오브리엔 공작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얻는 것도 분명합니다. 조건만 잘 묶는다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제안입니다.”루도빅은 고개를 저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폐하.”카르안이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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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다비안의 기사단 입단식이 가까워지자, 리벤헤르츠 저택은 한층 더 분주해졌다.세레인은 짐을 싸면서 생각했다.입단식 날이면… 다른 귀족가들도 다 브리스로 올라오려나?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벨라가 세레인의 짐 가방을 확 열어젖혔다.“리나! 짐 다 챙겼지?”“아, 네!”제국의 방패를 임명하는 벨스트람 기사단 입단식의 열기는 뜨거웠다.입단식이 끝남과 동시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신입 기사들을 위한 공식 연회는 황궁 별관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되었다.연회장은 소란스러웠다. 곧 임무를 부여받을 신입 기사들의 들뜬 목소리와 그들의 앞날에 줄을 대려는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연회장 안을 가득 채웠다.상석에 앉은 카르안은 그 풍경을 무심하게 관조했다. 눈 앞의 익숙한 아첨들. 특별할 것 없는 광경에 그는 그저 와인잔을 흔들 뿐이었다.기사단장 알릭스 듀란트는 옆에서 이번 기수 중 쓸만한 재목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었다.“특히 저기 제로드 브린트는 실전 감각이 좋고 기세가 남다릅니다.”카르안은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기울였다. 그의 시선이 기사단장이 가리킨 중앙의 신입 기사들에게 잠시 머물렀을 때, 옆에 서 있던 시릴이 한 발짝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저쪽이 다비안 경인가요?”그 말에 알릭스가 대답했다.“그렇습니다. 다비안은 리벤헤르츠의 장남으로 기초가 탄탄하고, 성실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아마 몇 년 안에 기사단 내에서도 꽤 자리를 잡을 겁니다.”중앙의 화려한 조명에서 한참 떨어진 기둥 옆, 어스름한 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카르안의 시야에 박혔다.리벤헤르츠. 기사 배출이 드문 가문에서 드물게 황실 기사단 기사가 나왔다는 보고를 상기하던 카르안의 머릿속에, 집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그 조악한 가면이 겹쳐졌다. 그 기묘한 산물을 만들어낸 여자가 지금 저 공자의 곁에 있었다.다비안이 하녀에게 다가가 고개를 낮추자, 그녀는 그의 비뚤어진 옷깃을 정돈해 주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익숙한 손길.카르안의 눈매가 미세하게 좁아졌다. 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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