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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핏빛 유산: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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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 알고도 인정하지 않은 사람

봉투 안의 마지막 장을 내려다보던 내 손끝이 아주 천천히 굳었다.S-01 / maternal link unstable / transfer urgency increased문장은 짧았는데,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사람을 산 채로 찢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종이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회장은 여전히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표정은 무너지지 않았고, 시선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더 역겨웠다.“좋네요.”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녹음도 들었고, 연구동 기록도 있었고, 분류표도 있었고.”짧은 침묵.“그런데도 끝까지 모르는 척했네.”회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한 번 눌렀다.“모르는 척한 것과—”짧은 숨.“확정하지 않은 건 다르다.”나는 피식 웃었다.“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요?”회장은 낮게 말했다.“변명이 아니라 기준이지.”정적.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그럼 그 기준이 뭐였는데요.”회장의 시선이 아주 천천히 내게 올라왔다.“의심과 인정은 다르다.”“아니.”나는 고개를 저었다.“회장님은 의심한 게 아니에요.”짧은 침묵.“붙잡고 있었지.”책상 위 봉투를 손끝으로 툭 쳤다.“이런 걸 모을 정도면.”짧게.“이미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도윤이 조용히 숨을 삼켰고, 태준은 아무 말 없이 회장을 보고 있었다. 회장실 안은 너무 조용해서, 누구 숨이 먼저 흔들리는지까지 들릴 것 같았다.회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가능성은 봤다.”나는 웃지 않았다.“그게 알고 있었다는 뜻이죠.”회장은 곧바로 부정하지 않았다.대신 아주 천천히 말했다.“네가 내 딸일 수 있다는 가능성.”짧은 침묵.“병원 조작 구조와 네 출생이 연결돼 있다는 가능성.”또 한 단어씩 눌러 말했다.“그리고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태성 전체가 흔들릴 거라는 가능성.”정적.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게 너무 회장다운 대답이라서. 너무 차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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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 먼저 움직인 쪽이 판을 꼬인다

회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서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복도를 가로지르는 발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대신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도윤이 곧바로 따라붙었고, 태준은 한 발 늦게 뒤를 따라왔다. 셋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기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판이 다시 바뀌었다.회장이 숨겨둔 봉투, 그 안에서 나온 분류 기록, 하령으로 이어지는 메모, 그리고 지연이 먼저 움직였다는 보고.전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먼저 입을 연 건 도윤이었다.“지금 바로 하령 씨 쪽으로 다시 가야 합니다.”서아가 짧게 답했다.“응.”“지연이 먼저 접촉했으면, 하령 씨가 다시 잠길 가능성이 큽니다.”“알아.”짧은 침묵.“그래서 더 빨리 가야지.”태준이 낮게 말했다.“지금 가면 문 안 열릴 수도 있어.”서아가 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뒤돌아 태준을 봤다.“안 열리면?”짧은 정적.“이번엔 부순다.”도윤이 조용히 끼어들었다.“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하령 씨가 공포 상태로 들어가면 정보가 더 닫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연이 이미 거길 스쳤다면—”서아가 바로 받았다.“하령은 지금 우리가 아니라 지연 때문에 더 무서울 거고.”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태준이 낮게 말했다.“지연은 직접 캐내기보다, 상대가 숨기고 싶은 걸 찌르는 식으로 움직여.”서아가 피식 웃었다.“그건 너도 똑같잖아.”짧은 정적.태준은 그 말에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서아가 다시 정면을 보며 말했다.“차 준비해.”도윤이 바로 답했다.“이미 지시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바로 출발 가능합니다.”셋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서아가 아주 낮게 말했다.“이번엔 정리하고 가자.”도윤과 태준의 시선이 동시에 서아에게 향했다.“뭘요.”도윤이 물었다.서아는 엘리베이터 닫힌 문을 보며 말했다.“난 아이만 찾으러 가는 거 아니야.”짧은 침묵.“그 애를 어디로 옮겼는지, 누가 그 결정을 내렸는지, 왜 엄마가 그걸 알고도 끝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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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 마지막 키를 쥔 사람

차가 고속도로로 올라서자 도시 불빛이 뒤로 길게 밀려났다.도윤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서아는 조수석에서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쪽에 앉은 태준은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가 진짜로 바깥 풍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셋 다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부산. 옛 태성 해양물류 창고. 그리고 그 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마지막 키를 쥔 사람.먼저 입을 연 건 서아였다.“다시 정리해.”도윤이 바로 답했다.“김하령 씨 진술 기준으로, 부산 쪽 옛 태성 해양물류 창고 라인이 마지막 위원회 키와 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연 씨가 먼저 하령 씨를 건드렸고, 그 직후 위원회 패턴 통신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아직 살아 있다면—”서아가 바로 이어받았다.“지금 도망치고 있거나.”짧은 정적.“흔적 지우고 있거나.”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뒤에서 태준이 낮게 말했다.“둘 다일 수도 있어.”서아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좋아.”짧은 숨.“그럼 우린 지금 아이를 찾으러 가는 것도 맞고, 엄마를 붙잡고 있는 구조를 찾으러 가는 것도 맞고, 위원회 키를 쥔 사람을 먼저 끊으러 가는 것도 맞네.”도윤이 짧게 웃지도 못한 채 말했다.“네. 세 개가 지금 같은 선 위에 있습니다.”서아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네. 이제야 하나 같아서.”태준이 물었다.“뭐가.”“목표.”짧은 정적.“아까까진 아이 쫓다가 위원회 파고, 위원회 파다가 엄마 얘기로 새고, 계속 흩어지는 느낌이었거든.”도윤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서아가 계속 말했다.“근데 이제는 아니야. 아이를 데려간 선, 엄마를 못 벗어나게 만든 선, 위원회 키. 다 같은 선이잖아.”태준이 아주 낮게 말했다.“그래.”서아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덧붙였다.“그러니까 이번엔 하나라도 빼고 말하면 안 돼.”짧은 침묵.“너도.”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정적이 길어지자, 도윤이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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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 네 이름은 처음부터 따로 묶여 있었어

창고 안쪽 사무실은 바깥보다 더 차가웠다.낡은 형광등 하나가 천장에서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고, 문혜린은 창문도 아닌 벽 쪽을 등진 채 서 있었다. 도윤은 문 가까운 쪽에서 태블릿을 켜고 있었고, 태준은 서아보다 반 걸음 뒤에 멈춰 있었다.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지만, 공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S-01이 왜 폐기 직전까지 갔는지부터 물으라고 했지.”문혜린은 서아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그래.”“그럼 말해.”짧은 정적.“왜 내가 같은 표에 올라갔는데.”문혜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아주 잠깐 태준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서아에게 가져왔다.“네가 몰랐다는 게 더 놀랍네.”서아가 차갑게 말했다.“알았으면 여기까지 안 왔겠지.”문혜린이 아주 미세하게 웃었다.“아니.”짧은 숨.“알았어도 왔을 거야.”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말 돌리지 마.”문혜린은 그 말을 흘리지 않고 그대로 받았다.“좋아. 그럼 바로 말할게.”짧은 정적.“너는 아이 때문에 같이 묶인 게 아니야.”공기가 순간 멎었다.도윤의 시선이 바로 올라왔고, 태준의 턱선도 굳었다.서아가 아주 천천히 되물었다.“그럼.”문혜린이 말했다.“반대지.”짧은 침묵.“그 애가 너 때문에 묶인 거야.”정적.서아의 손이 천천히 굳었다.“무슨 뜻이야.”문혜린은 벽에 기대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도망치지 않는 대신, 쉽게 다가오지도 않는 사람의 자세였다.“너는 처음부터 따로 관리되던 쪽이었어.”도윤이 낮게 물었다.“관리 대상이었다는 뜻입니까.”문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단순 출생 조작 케이스가 아니라, 별도 분류표 안에 올라간 대상.”서아가 바로 잘랐다.“왜.”문혜린은 이번에도 답을 아끼지 않았다.“모계 라인.”짧은 정적.“네 어머니 때문이야.”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서아는 그 말을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더 낮게 물었다.“엄마가 뭘 했는데.”문혜린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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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 태어난 순간부터 변수였어

창고 바깥 금속문 닫히는 소리가 울린 뒤, 안쪽 공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누구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선명했다. 밖에 누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여기서 나가는 길이 우리가 들어왔던 길과 같지 않을 거라는 것.도윤이 가장 먼저 태블릿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외부 열 감지 둘… 아니, 셋입니다. 정문 하나, 측면 하나, 뒤편 하나.”서아가 바로 물었다.“우리 포위당한 거야?”도윤이 짧게 답했다.“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다만 그냥 지나가는 동선은 아닙니다.”문혜린이 아주 낮게 웃었다.“그러니까 늦었다고 했잖아.”태준이 차갑게 말했다.“누구 쪽이야.”문혜린은 그 질문을 바로 받지 않았다. 대신 책상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짚은 채 서아를 봤다.“지금 그게 먼저 중요해?”서아가 한 걸음 더 다가갔다.“중요하지.”짧은 정적.“근데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어.”문혜린의 눈이 가늘어졌다.“뭔데.”서아가 아주 낮게 말했다.“왜.”짧은 숨.“왜 이렇게까지 했는지.”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태준도, 도윤도, 문혜린도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서아는 멈추지 않았다.“날 분류하고, 내 아이를 분류하고, 엄마까지 추적선 안에 묶고, 병원 기록 지우고, 이동시키고, 폐기니 관찰이니 같은 말을 붙여가면서.”짧은 정적.“왜 그렇게까지 했냐고.”문혜린은 한동안 서아를 가만히 봤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는 아직도 그걸 혈통 문제라고 생각해?”서아가 눈을 좁혔다.“아니면.”문혜린이 피식 웃었다.“혈통은 시작이지.”짧은 침묵.“목적은 아니야.”도윤이 낮게 중얼거렸다.“…역시.”서아가 바로 물었다.“그럼 목적이 뭐야.”문혜린은 대답 대신 창고 안쪽을 한 번 둘러봤다. 낡은 금속 선반, 폐기된 것처럼 위장된 장비, 숨겨진 호출 토큰, 이송 코드. 그 모든 걸 한 번에 보게 하듯, 아주 천천히 말했다.“권력.”정적.“권력을 흔들 미래의 변수들을 먼저 골라내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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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 이름이 나오면 끝이야

창고 안 공기가 완전히 바뀌었다.윤지연은 문 앞에 기대 서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안으로 한 발 들어와 있었다. 숨도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 늘 그렇듯 다 아는 사람처럼 웃는 표정. 하지만 서아는 안다. 지연은 전부를 아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상대가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한 조각을 물어뜯는 데엔 천재에 가깝다.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여기까지 따라왔네.”지연이 웃었다.“따라온 거 아니야.”짧게.“먼저 왔지.”도윤이 바로 끼어들었다.“호출 파일 일부를 복사한 뒤 곧장 내려오신 거군요.”지연이 고개를 기울였다.“와, 진짜 딱딱하다.”짧은 정적.“근데 맞아.”서아의 시선은 지연에게 고정돼 있었다.“뭘 가져갔어.”지연은 이번엔 웃음을 조금 줄였다.“말했잖아.”짧게.“이름 하나.”문혜린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아까까지 버티고 서 있던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가장 피하고 싶던 걸 마주한 사람의 얼굴이었다.서아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좋네.”짧게.“네가 저 표정을 만들 정도면, 진짜 위험한 이름이네.”지연이 웃었다.“그러니까 더 재밌지.”태준이 낮게 말했다.“지연아.”지연이 바로 받아쳤다.“왜, 오빠.”“선 넘지 마.”지연은 피식 웃었다.“지금 와서?”짧은 침묵.“여기 있는 사람 중에 선 안 넘은 사람 있어?”공기가 싸늘하게 갈라졌다.서아는 지연의 그 말조차 흘리지 않고 다시 물었다.“이름.”짧게.“말해.”지연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다. 이름 하나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문혜린을 봤다.“언니.”짧은 정적.“얘가 왜 이렇게 하얗게 질렸는지 알아?”서아가 차갑게 말했다.“네가 말 돌리는 건 알겠어.”“아니.”지연이 고개를 저었다.“이건 말 돌리는 게 아니라 확인이지.”짧은 침묵.“내가 잡은 조각이 맞는지.”서아는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았다.“문혜린.”문혜린의 눈이 서아에게 향했다.“지연이 뭘 물고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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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 같은 방향, 다른 속도

붉은 불빛이 깜빡이자 창고 안 공기가 순간 팽팽하게 당겨졌다.도윤은 바로 통신 장비 앞으로 이동했고, 서아는 문혜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낮게 말했다.“반응 왔지.”도윤이 화면을 빠르게 읽으며 답했다.“네. 호출 키 일부에 응답 패턴이 붙었습니다. 완전한 연결은 아니고, 확인 핑에 가까운 짧은 응답입니다.”지연이 곧장 물었다.“위치 잡혀?”도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장비와 태블릿을 케이블로 연결하며 말했다.“지금부터 잡습니다. 두 번 튀면 놓칩니다.”서아가 물었다.“민서윤 쪽이 맞아?”문혜린이 아주 낮게 말했다.“그 이름을 건드리고, 호출 키까지 열었으면.”짧은 침묵.“반응은 거기서 올 수밖에 없어.”태준이 차갑게 말했다.“확신해?”문혜린은 그를 봤다.“지금 이 순간까지도 반만 믿고 있는 거야?”태준의 턱선이 굳었다.서아가 둘 사이를 잘랐다.“지금 싸울 때 아냐.”짧은 정적.“도윤.”“네.”“얼마나 걸려.”도윤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답했다.“첫 경유지만 잡는 데 20초, 그다음 실위치 좁히는 데 1분.”지연이 피식 웃었다.“1분이면 길지.”서아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넌 조용히 해.”지연이 눈썹을 올렸다.“왜. 나도 같은 이름 잡으러 왔는데.”“같은 이름을 잡으러 왔지, 같은 편 하러 온 건 아니잖아.”짧은 침묵.지연이 웃음을 지웠다.“그래도 이번엔 방향은 같네.”서아가 아주 짧게 답했다.“방향만.”도윤이 그 대화를 끊지 않으면서도 바로 말했다.“잡혔습니다. 첫 경유지 부산 동항 통신 노드.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서아가 곧바로 물었다.“더 가.”“네. 두 번째 반사망 타고 있습니다. 이건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 이동 중 노드가 쓰는 패턴입니다.”태준이 낮게 말했다.“움직이고 있네.”문혜린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늦었어.”서아가 바로 물었다.“왜.”문혜린이 낮게 답했다.“민서윤은 한 자리에 오래 안 있어. 응답이 왔다는 건, 지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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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 가장 위험한 변수

부두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바닷바람이 컨테이너 사이를 지나며 낮게 울었고, 멀리 정박된 낡은 병동선 하나가 검은 물 위에 떠 있었다. 공식 기록상 폐쇄된 선박. 하지만 배 안쪽 어딘가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도윤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낮게 들렸다.“정면 진입로 쪽 움직임 없습니다. 후면 계류 라인 쪽으로 열 감지 하나. 지연 씨가 그쪽으로 붙고 있습니다.”서아는 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연 위치 놓치지 마.”도윤이 바로 답했다.“네. 다만 지연 씨가 의도적으로 신호를 끊었다 붙이고 있습니다.”태준이 낮게 말했다.“자기 동선 숨기는 거야.”서아가 피식 웃었다.“끝까지 지연답네.”태준은 배 입구를 보며 말했다.“들어가면 바로 말 줄여. 민서윤은 상대가 뭘 먼저 묻는지로 약점부터 잡아.”서아가 그를 돌아봤다.“그럼 더 좋네.”“뭐가.”“내가 뭘 먼저 묻는지, 나도 이제 정했거든.”태준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아이부터 묻지 말라는 말 들었잖아.”“알아.”서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그래서 나부터 물을 거야.”정적.태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둘은 좁은 계단을 올라 병동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병원과 선박이 억지로 섞인 공간 같았다. 벽은 흰색이었고, 바닥은 금속이었다. 복도 양쪽에는 오래된 격리실 문들이 줄지어 있었고, 일부 문에는 아직도 희미하게 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서아가 손전등으로 문 하나를 비췄다.O-04 / Hold그다음 문.M-19 / Observation태준이 낮게 말했다.“여긴 진짜 쓰였어.”서아가 더 안쪽으로 걸어가며 답했다.“지금도 쓰였고.”“왜 그렇게 확신해.”서아가 바닥을 내려다봤다.먼지 위로 아주 얇은 발자국이 나 있었다.“죽은 공간은 이렇게 깨끗하게 숨 쉬지 않아.”그때 도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서아 씨, 중앙 격리실 방향으로 신호가 강해집니다. 호출 응답이 거기서 다시 잡힙니다.”서아는 바로 걸음을 빨리했다.“좌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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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 하부 격리층

배 전체 조명이 한 번 더 깜빡였다.민서윤의 시선이 흔들린 건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서아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감정 하나 없이 사람을 분류하던 얼굴이, 처음으로 계산 밖의 상황을 마주한 사람처럼 굳었다.서아가 낮게 말했다.“하부 격리층.”태준이 바로 움직였다.“내가 앞에 선다.”서아가 그를 막았다.“아니. 넌 민서윤 봐.”태준의 눈이 서아에게 향했다.“서아.”“도망 못 가게 하라고.”짧은 정적.민서윤이 아주 낮게 웃었다.“날 붙잡아두면 아래는 못 열어.”서아가 그녀를 똑바로 봤다.“그럼 네가 열어.”“내가 왜.”“안 열면.”서아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네가 아까 말한 연결점, 내가 지금 여기서 끊어버릴 거니까.”민서윤의 눈빛이 식었다.“협박을 배우긴 했네.”서아는 웃지 않았다.“아니. 네 방식대로 말하는 거야.”그때 지연이 옆에서 낮게 끼어들었다.“언니, 말 길어지면 또 도망쳐.”서아가 지연을 봤다.“넌 뒤쪽 막아.”지연이 어깨를 으쓱했다.“아까도 그랬잖아.”“이번엔 진짜 막아.”지연은 잠깐 서아를 보다가 웃었다.“좋아. 오늘은 언니 말 들어줄게.”태준이 민서윤의 옆으로 천천히 이동했다.“열어.”민서윤은 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는 여전히 착각하네. 문 하나 연다고 사람이 나오는 줄 알아?”태준이 낮게 답했다.“안 열면 적어도 네가 뭘 숨기는지는 나오겠지.”도윤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급하게 들어왔다.“서아 씨, 하부 격리층 신호가 두 개로 나뉩니다. 하나는 생체 반응처럼 보이고, 하나는 저장 장치 쪽입니다.”서아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둘 다?”“네. 하나는 살아 있는 반응일 가능성, 다른 하나는 기록입니다. 둘 중 하나가 미끼일 수도 있습니다.”민서윤이 조용히 말했다.“정확하네.”서아가 물었다.“뭐가 미끼야.”민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지연이 문 쪽에서 피식 웃었다.“또 입 닫네. 저 사람도 참 답답하다.”서아는 민서윤에게서 눈을 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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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 이번엔 둘 다 데리고 나간다

경보음이 배 안을 찢듯 울렸다.붉은 비상등이 하부 격리층 복도를 번갈아 비췄고, 금속 벽은 물결에 맞춰 낮게 흔들렸다. 도윤의 목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다급하게 들렸다.“선박 폐쇄 프로토콜 시작됐습니다. 6분 안에 빠져나오셔야 합니다. 하부 격리층부터 잠깁니다.”서아는 엄마의 손을 잡은 채 낮게 말했다.“도윤, 출구 열어놔.”“열고 있습니다. 다만 중앙 복도는 이미 잠겼습니다. 후면 계류 라인으로 빠져야 합니다.”태준의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서아, 기록 복사 중이야. N-12 최종 이동지 뜬다.”서아의 손이 엄마의 손 위에서 더 꽉 굳었다.“어디.”“완전 주소는 아니야. 코드로 막혀 있어. 그런데 지역명 하나는 떠.”짧은 정적.“말해.”태준이 숨을 낮게 고르며 말했다.“제주.”공기가 순간 멎었다.지연도 민서윤을 막아선 채 아주 짧게 서아를 돌아봤다.“제주?”태준이 빠르게 말했다.“정확한 시설명은 아직 안 떠. 코드가 붙어 있어. G-17, Garden Line, Protected Observation.”도윤이 이어받았다.“Garden Line이면 위원회 보호 관찰 라인입니다. 일반 보육시설이나 병원이 아니라, 외부엔 복지재단으로 위장된 관리시설일 가능성이 큽니다.”서아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그럼 살아 있다는 쪽으로 봐도 돼?”태준의 대답이 아주 짧게 늦었다.“기록상으론.”“기록 말고.”“……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서아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민서윤은 처음으로 뚜렷하게 표정을 잃었다.“그 파일은 여기서 나가면 의미 없어.”서아가 엄마를 조심스럽게 일으키며 말했다.“의미는 내가 정해.”민서윤이 한 걸음 움직이려 하자, 지연이 바로 앞을 막았다.“어딜 가.”민서윤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비켜.”지연이 웃었다.“아까 나 유지라며. 통제 가능하다며.”짧은 침묵.“그럼 어디 한번 통제해봐.”민서윤이 낮게 말했다.“윤지연, 넌 네가 반항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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