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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핏빛 유산: Chapter 41 - Chapter 50

74 Chapters

41화 — 코드: TS-OB / 03

태성병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한 층, 또 한 층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달라졌다. 위층의 소독약 냄새와는 다른, 오래된 서류와 금속이 뒤섞인 차가운 냄새였다. 벽에 붙은 형광등은 절반쯤 나가 있었고, 살아남은 불빛마저도 미세하게 깜빡거렸다. 그 빛 아래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발밑에서 흔들렸다.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긴 일반 보관 구역이 아닙니다. 폐쇄된 것처럼 위장해 놨지만, 완전히 버려진 공간은 아닙니다. 바닥 상태가 너무 깨끗합니다.”나는 앞만 보며 대답했다.“버려진 게 아니라 숨긴 거겠지.”태준이 내 옆으로 걸어오며 낮게 말했다.“OB는 산부인과 약자 맞아. 병원 안에선 출산 기록 보관 구역을 그렇게 불렀어.”도윤이 바로 말을 받았다.“그렇다면 TS는 태성, OB는 산부인과, 03은 보관 번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누군가 의도적으로 위치를 남긴 겁니다.”나는 손안에 쥔 종이를 한 번 더 펼쳐 봤다.TS-OB / 03.짧은 코드인데 이상하게 무게가 있었다. 이건 누군가가 급하게 흘린 실수가 아니었다. 찾으라고 남긴 표식이었다.“그래.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도윤이 미간을 좁혔다.“그게 더 문제입니다. 기록을 숨긴 사람이 왜 굳이 단서를 남겼을까요.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나는 피식 웃었다.“그럼 봐주면 되지.”복도 끝에 낡은 철문 하나가 나타났다. 표지판은 오래돼 글자가 거의 지워졌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희미하게 판독이 됐다.[OB-03]도윤이 문 앞에 서서 내 쪽을 돌아봤다.“열겠습니다. 안쪽에 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열어.”짧은 대답이었지만,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이 문 뒤에 뭐가 있든, 이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철문이 열리는 소리는 묵직했다. 안쪽에서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마치 누군가 오랫동안 입을 다문 채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문을 열자마자 천천히 숨을 내쉬는 느낌이었다.방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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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 그날 밤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다시 울렸을 때,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보이지 않는 시선이 등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 누군가 이 공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도윤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위치 노출됐습니다. 지금 여기 오래 있으면 위험합니다. 이동하셔야 합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짧게 잘라 말했다.“지금 가면 또 끊겨.”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다시 펼쳤다.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여기까지 오면 이걸 보게 된다’는 걸 계산하고 남겨 둔 조각이었다.“여기서 끝내야 돼.”그때, 옆에서 태준이 조용히 말했다.“…그날 얘기, 여기서 하는 게 맞겠네.”나는 고개를 돌렸다.“…무슨 얘기.”태준의 시선이 파일 위에 떨어졌다.그리고 아주 천천히, 과거를 끌어올리듯 입을 열었다.“네가 쓰러졌던 날.”정적.도윤이 숨을 죽였다.“…그 총격 사건 말씀이십니까.”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짧은 침묵이 흘렀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나는 웃지도 않고 물었다.“…나 쏜 거, 너잖아.”태준은 부정하지 않았다.“맞아.”도윤의 표정이 굳었다.“…이해가 안 됩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셨습니까.”태준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때— 이미 늦었거든.”나는 미간을 좁혔다.“뭐가.”태준이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지연이 먼저 움직였어.”순간,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뭐?”도윤이 빠르게 물었다.“윤지연 씨가 선제적으로 개입했다는 말씀이십니까.”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병원에서 널 빼내려고 한 것도 지연이었어.”나는 바로 반응했다.“구하러?”태준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짧은 침묵.“정리하려고.”공기가 얼어붙었다.도윤이 낮게 말했다.“…제거 대상으로 판단했다는 겁니까.”태준이 짧게 답했다.“그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차가운 병실, 끊어지는 의식, 그리고—총소리.“…그래서 날 쐈다?”내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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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 후계자 전쟁

지하 복도를 빠져나오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숨을 조이던 밀폐된 공기가 아니라, 이상하게 더 무거운 긴장이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나는 계단 앞에서 멈췄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이상하다.”내가 낮게 중얼거리자, 도윤이 바로 반응했다.“무슨 의미십니까.”나는 위를 가리켰다.“너무 조용해.”짧은 침묵.“우릴 막으러 오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느낌이야.”도윤의 눈이 좁아졌다.“…유도 후 회수.”짧게 정리했다.“가능성 높습니다.”태준이 낮게 말했다.“…위에 누가 있다.”그 말이 떨어지자마자—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천천히. 일부러 들리게.누군가 우리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가자.”계단을 올라갔다.한 걸음, 또 한 걸음.그리고—마지막 계단을 넘는 순간.멈췄다.복도 중앙에 서 있는 사람.윤지연이었다.빛 아래 서 있었고, 이번에는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그리고—확실하게 웃고 있었다.“…늦었네.”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는 아무 말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넌 항상 먼저네.”지연이 어깨를 으쓱했다.“당연하지.”짧은 숨.“기다리는 쪽은 아니니까.”도윤이 한 발 뒤에서 상황을 살폈다.“…여기 위치, 외부에 공유된 적 없습니다. 어떻게 먼저 오셨습니까.”지연이 대답했다.“찾았지.”짧은 침묵.“너희처럼.”나는 고개를 기울였다.“아니.”짧게 말했다.“우린 찾은 게 아니라— 끌려온 거야.”지연의 눈이 가늘어졌다.“…그게 무슨 차이인데.”나는 웃었다.“넌 아직도 혼자 찾았다고 생각하지?”짧은 침묵.“그거 착각이야.”지연의 표정이 굳었다.“착각 아니야.”짧은 숨.“난 다 알고 움직였어.”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거의 다겠지.”공기가 살짝 흔들렸다.“…뭐?”지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나는 말했다.“넌 정보는 맞게 모았어.”짧은 침묵.“근데 해석을 틀렸어.”지연의 눈이 번뜩였다.“말 똑바로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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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 회장이 규칙을 부수는 순간

회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사람을 더 압박했다. 숨소리 하나, 시선 하나까지 전부 읽히는 공간. 누가 먼저 말을 꺼내는 순간, 그 사람이 밀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회장은 아무 말 없이 우리 셋을 차례로 바라봤다. 서아에게서 시작된 시선이 태준을 지나 윤지연에게 닿았고, 다시 서아에게 돌아왔다. 그 짧은 순환이 끝나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셋이 같이 움직이더군.”윤지연이 먼저 미소를 지었다.“우연일 수도 있습니다.”회장은 고개를 기울였다.“넌 우연을 믿나.”“아닙니다.”짧은 대답이었다.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다.”그리고 시선을 서아에게 옮겼다.“그럼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지.”서아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럴 수도 있겠죠.”회장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천천히 두드렸다.“그래서 부른 거다.”짧은 침묵이 흘렀다.“확인하려고.”윤지연이 물었다.“무엇을 확인하시겠다는 겁니까.”회장이 답했다.“너희 셋.”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그리고— 병원.”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태준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윤지연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서아는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병원에서 뭘 했다고 생각하십니까.”회장이 서아를 똑바로 바라봤다.“그걸 묻는 거다.”짧은 침묵.“사실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도윤이 뒤에서 숨을 죽였다.회장이 이어서 말했다.“내가 알고 싶은 건 하나다.”천천히, 확실하게.“누가— 나를 믿게 만들 수 있느냐.”정적.윤지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럼 간단하네요.”회장이 물었다.“뭐가.”윤지연이 말했다.“설득하면 되는 거니까요.”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해봐라.”짧은 숨.“나를 속일 수 있다면.”태준이 조용히 물었다.“거짓이어도 상관없습니까.”회장이 그를 바라봤다.“내가 믿으면— 그게 진실이다.”도윤이 낮게 말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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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 진실을 쥔 자

회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공기가 확 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숨이 더 막혔다.복도에 서 있는 네 사람 사이에, 아무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먼저 입을 열면, 그 순간부터 밀린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그 침묵을 깨고 먼저 웃은 건 윤지연이었다.“와… 재밌네.”가볍게 던진 말인데, 분위기를 찢어버렸다.“진짜 찾을 필요도 없고, 그냥 믿게만 만들면 된다는 거잖아.”서아가 바로 받아쳤다.“그건 네가 틀렸을 때 얘기지.”지연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왔다.“…또 그 말이야?”입꼬리는 웃고 있는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서아가 피식 웃었다.“계속 틀리니까.”짧은 침묵.공기가 바로 싸늘해졌다.지연이 한 걸음 다가왔다.“야.”낮게,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너—지금 상황 파악 안 돼?”서아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답했다.“완벽하게 되는데?”“그래?”지연이 웃었다.“그럼 더 웃기네.”짧은 숨.“지금 누가 더 유리한지도 모르고 입 털고 있는 거니까.”서아가 고개를 기울였다.“유리해?”짧게.“뭐가.”지연이 서아를 위아래로 훑었다.“너 지금 아무것도 없잖아.”짧은 침묵.“정보도 없고, 사람도 없고, 백도 없고.”그리고—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근데 왜 이렇게 자신 있어?”서아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넌 많아서 이기게?”지연의 눈이 번뜩였다.“…뭐?”서아가 웃었다.“많은 애들이 더 잘 속아.”짧은 정적.도윤이 조용히 끼어들었다.“지금은 감정 싸움이 아니라—전략을 정리해야 할 시점입니다.”지연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조용히 해.”차갑게 잘랐다.“지금 말 끊기면 재미없어.”도윤이 입을 다물었다.태준이 낮게 말했다.“…그만해.”지연이 그를 쳐다봤다.“…왜.”태준이 짧게 답했다.“지금 싸울 때 아니다.”지연이 웃음을 터뜨렸다.“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짧은 숨.“이미 시작됐어.”그리고 서아를 보며 말했다.“얘 때문에.”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내 탓이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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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 먼저 나온 증거

회장실 안 공기는 묘하게 차가웠다. 누가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없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조여들었다. 책상 위에 놓인 흰 봉투 하나가 그 이유였다.윤지연은 그 봉투를 회장 쪽으로 밀어놓은 채, 등을 곧게 세우고 서 있었다. 얼굴에는 익숙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반대로 서아는 회장실 문 앞에서 한 걸음 늦게 멈춰 섰다. 방금 막 불려 올라왔다는 티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회장은 먼저 서아를 보더니, 다시 봉투를 손끝으로 두드렸다.“늦었군.”서아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며 대답했다.“갑자기 부르셨잖아.”회장은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 봉투를 밀어 서아 앞에 놓았다.“이걸 봐라.”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이미 결론이 어느 정도 기울어 있다는 느낌이 섞여 있었다.서아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도윤은 문 옆에 멈춰 섰고, 태준은 회장실 한쪽에 조용히 서 있었다. 지연은 서아가 봉투를 열어보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서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서아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태성병원 로고. 검사기관 승인 마크. 그리고 그 아래 굵게 박힌 문장.[친자 관계 불일치]도윤이 아주 낮게 숨을 들이마셨다.서아는 아무 말 없이 한 장 더 넘겼다. 샘플 채취 일자, 접수 코드, 분석 결과, 전자서명.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이상할 정도였다.그런데도 서아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서류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마침내 시선을 들었다.“…이걸 지금 가져온 거야?”지연이 웃었다.“응. 생각보다 별거 없지? 언니가 그렇게 버티던 이유가 뭔가 했는데, 결과는 되게 단순하네.”서아는 다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회장은 팔짱을 끼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설명해봐라.”서아는 고개를 들었다.“뭘.”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네가 친딸이라고 주장해 온 근거와, 지금 이 서류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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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 균열

태성 본관 복도를 빠져나오자마자, 도윤이 먼저 걸음을 맞췄다.“시간이 많지 않습니다.”서아는 대답 없이 앞으로 걸었다.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지만, 발걸음은 생각보다 빨랐다.도윤이 다시 말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겁니다. 저 문서가 먹힌 상태에서 바로 반박 못 하면—”서아가 걸음을 멈췄다.도윤도 함께 멈췄다.“…먹혔다고 생각해?”서아가 물었다.도윤은 잠시 숨을 골랐다.“회장님은 아직 확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우선순위가 그쪽으로 넘어간 건 맞습니다.”서아가 피식 웃었다.“응. 나도 알아.”짧은 숨.“근데 그 서류— 어딘가 하나는 틀렸어.”도윤이 눈을 좁혔다.“느끼셨습니까.”“응.”서아는 천천히 말했다.“지연은 성격상 크게 치고 들어오긴 하는데, 디테일이 약해. 자기가 판을 흔드는 순간에는 신나서 꼭 하나 놓쳐.”도윤은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사본 확보하겠습니다.”“이미 했지?”도윤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회장실 들어가기 전에 비서실 쪽 복사 로그를 땄습니다.”서아가 웃었다.“역시.”둘은 별관 회의실로 바로 들어갔다.불이 켜지고, 탁자 위에 복사본이 펼쳐졌다.도윤이 문서를 한 장씩 넘기며 말했다.“샘플 코드, 채취 일자, 접수 시간, 확인자 전자서명… 일단 형식은 완벽합니다.”서아는 의자에 기대 앉지 않았다.탁자에 손을 짚은 채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두 번째 장에서 손을 멈췄다.“…여기.”도윤이 바로 시선을 맞췄다.“어느 부분입니까.”“채취 위치.”도윤이 읽었다.“태성 본관 개인실.”서아가 고개를 들었다.“그날 난 본관에 없었어.”도윤의 손이 멈췄다.“확실하십니까.”“확실해.”짧은 침묵.“그날 난 병원 쪽으로 불려갔어. 회장 본관에 있던 날이 아니야.”도윤은 바로 태블릿을 켰다.“일정 로그 대조하겠습니다.”몇 초 후, 그의 표정이 굳었다.“…맞습니다.”서아가 서류를 다시 내려다봤다.“하나.”도윤이 낮게 말했다.“오류 하나 잡았습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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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 과정 추적

새벽 3시가 넘자, 태성병원 서버실 근처는 더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일부러 숨을 죽이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도윤이 노트북을 열며 말했다.“메인 서버는 이미 건드린 흔적이 많습니다. 직접 들어가면 바로 추적당합니다.”서아는 벽에 기대 선 채 물었다.“그럼.”“미러 서버를 찾아야 합니다.”짧은 침묵.“원본이 아니라 복제본.”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가짜가 먼저 나온 건— 진짜가 어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도윤은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병원은 기록을 완전히 삭제하지 않습니다. 법적 리스크 때문에, 적어도 임시 백업은 반드시 남깁니다.”“그럼 거기.”“문제는 접근 권한입니다. 관리팀도 아니고, 그 위입니다.”서아가 피식 웃었다.“오늘 밤 다 뚫을 수 있어?.”도윤이 대답했다.“해야 합니다.”짧은 숨.“지금 놓치면 지연 쪽이 먼저 원본에 닿을 수 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인—윤지연.서아는 잠깐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받았다.“왜.”지연의 웃음이 바로 들렸다.“언니, 아직도 찾는 중이야?”서아는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넌 벌써 다 찾았어?”“응.”짧게.“적어도 언니 끝낼 건 찾았지.”서아가 웃었다.“그 문서?”“왜, 아프지?”서아는 시선을 도윤에게 고정한 채 말했다.“아니. 허술해서 웃겨.”잠깐의 정적.지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뭘 찾았는데.”서아가 바로 답했다.“너가 뭘 숨겼는지.”지연이 한 박자 멈췄다.그 찰나를 서아는 놓치지 않았다.“역시.”지연이 다시 웃었다.“언니 진짜 귀엽다.”짧게.“아무것도 없으면서 꼭 있는 척하더라.”서아가 낮게 말했다.“넌 반대로지.”짧은 숨.“하나 쥐면 다 가진 줄 알아.”지연이 차갑게 웃었다.“이번엔 달라.”“아니.”서아가 말했다.“이번에도 똑같아.”도윤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접속 열렸습니다.”서아의 눈빛이 바뀌었다.“끊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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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 무너지는 결과

서버 복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새벽이 거의 끝나갈 즈음, 도윤이 마침내 손을 멈췄다.“찾았습니다.”서아는 의자에서 바로 일어섰다.“뭐.”도윤이 화면을 돌렸다.“출입 로그, 샘플 재전송 기록, 그리고— 삭제된 영상 조각입니다.”서아의 시선이 고정됐다.“틀어.”영상이 재생됐다.짧고 흐릿했지만, 충분했다.출산기록실 앞 복도. 누군가가 들어간다. 기록 매체를 교체한다. 그리고 몇 분 뒤, 친자검사 샘플 보관함 코드가 바뀐다.도윤이 조용히 설명했다.“지연 씨가 가져온 문서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건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서아가 말했다.“그럼 끝났네.”도윤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입니다.”“왜.”“누가 했는지는 안 보입니다.”짧은 침묵.“하지만— 누군가 손댔다는 건 확실합니다.”서아는 아주 천천히 웃었다.“그걸로 충분해.”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윤지연이었다.숨도 고르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지만, 눈빛만큼은 미친 듯 차분했다.“언니.”그녀가 말했다.“진짜로 찾았네?”서아는 모니터 앞에서 비켜서지 않았다.“응.”짧게.“너가 감추려던 거.”지연은 화면을 한 번 보고, 바로 표정을 정리했다.“그래서?”서아가 고개를 기울였다.“그래서?”지연이 웃었다.“그거 하나로 끝날 거 같아?”서아가 말했다.“이건 시작이지.”도윤이 조용히 덧붙였다.“윤지연 씨가 제출한 문서는 조작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지연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가능성.”짧게.“확정 아니네.”서아가 바로 받아쳤다.“그럼 넌 확정이었어?”정적.지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언니.”낮게.“이번엔 네가 먼저 건드렸어.”서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아니.”짧게.“이번엔 네가 먼저 틀렸어.”둘 사이 거리가 가까워졌다.지연이 속삭이듯 말했다.“끝까지 갈 거야?”서아가 답했다.“이미 갔어.”지연은 천천히 웃었다.“좋아.”짧게.“그럼 다음엔— 내가 네 과정까지 부숴줄게.”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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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 태준의 설계

서버실 안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모니터에 떠 있는 로그와 복구 영상이 벽에 반사되며 어둡게 흔들렸고, 그 빛 사이에서 서아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도윤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멈춰 있었고,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걸 지금 던질지, 아니면 더 모을지.“지금 상태로 회장님께 제출하면, 흔들리긴 합니다.”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하지만 확정은 아닙니다. 반격 들어오면— 자료 정리당할 가능성 높습니다.”서아가 화면을 보다가 짧게 말했다.“그래서 더 빨리 던져야 돼. 먼저 흔들어야 우리가 움직일 수 있어.”“그 순간 상대도 같이 움직입니다.”도윤이 말을 이었다.“윤지연 씨는 이미 한 번 선수를 쳤습니다. 두 번째 카드는 더 강하게 나올 겁니다.”서아가 고개를 돌렸다.“알아. 걔는 멈추는 애 아니야.”그때 문이 열렸다.둘 다 동시에 돌아봤다.강태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숨이 가쁘지도, 표정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대신, 뭔가 결론을 들고 온 사람처럼 조용했다.서아가 먼저 말했다.“왜 왔어.”태준이 안으로 들어왔다.“타이밍 보러.”도윤이 눈을 좁혔다.“어떤 의미입니까.”“지금 던지면 끝까지 못 가.”서아가 피식 웃었다.“또 그 말이야.”“이번엔 이유까지 있다.”태준이 바로 받았다.“회장님한테 이거 던지면, 회장님은 흔들린다. 근데 확신 못 한다. 확신 못 하면 제일 먼저 뭘 할 꺼같아?.”도윤이 낮게 말했다.“…병원 라인 재정리입니다.”“맞아.”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원본부터 싹 지운다. 그럼 우린 여기서 끝이다.”서아가 그를 가만히 봤다.“그래서.”태준이 한 발 더 들어왔다.“내가 들어간다.”정적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지연 쪽으로.”도윤이 바로 반응했다.“위험합니다. 내부 진입은 가능해도, 회수 가능성은...”“필요 없어.”태준이 잘랐다.“회수 안 해도 돼. 안에서 터뜨릴 거니까.”서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너 지금 무슨 생각이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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