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아내 대행 / Chapter 61 - Chapter 70

All Chapters of 아내 대행: Chapter 61 - Chapter 70

89 Chapters

61. 무너지지 않는 빛

“넌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시아한테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 거야?”윤강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불은 붙이지 않았다.그저 습관처럼 입술에 문 채, 창밖을 바라봤다.“넌 몰라. 그 여자가 누굴 죽였는지, 그게 누구였는지도 모른 채…”“…설마, 네 가족이야?”“내 여동생이야.”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윤강의 음성이 낮고 날카로웠다.“중학교 시절부터, 거의 가족처럼 지내던 아이가 있었어.우리 부모가 맞벌이라 늘 혼자였는데… 그 아이는 항상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밤에도 자고 가고 그랬지.”그는 담배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근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실종됐어.아무도 찾지 않았고, 결국 소년원 근처 뒷골목에서… 자살했단 말만 남았지.”“…그게, 시아라고 확신해?”윤강은 웃었다.“그래. 그 아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 그게 백시아였어.”“너, 정확한 증거는 있어?”“…없어.”그 대답에 도윤은 차분히 눈을 내리깔았다.“그럼 너 지금까지 그 불확실한 하나 때문에, 그녀 인생을 망가뜨리려는 거야?”“불확실해도, 난 기억해. 그 애가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윤강은 스스로도 증명할 수 없는 기억 속에서 억울함과 애증을 죄어왔다.“그 애, 조아진이야.”도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 이름. 백시아가 조용히 입에 올렸던 이름.늘 마음 한 켠에 죄처럼 품고 살았던 그 존재.“…그래서 지금, 복수하려고?”“아니. 난 그녀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을 뿐이야.이 세상에서 가장 믿고 있는 것들이 산산조각 나는 그 순간.”도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넌 진심으로 그녀가 괴롭길 바라는구나.”“그래.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이유거든.”그 시각. 시아는 진혁과 함께 윤강의 은신처를 찾아 나섰다.그리고 마침내, 사진 속 배경이 된 오래된 성북동 창고에 도착했다.쇠문은 오래된 녹으로 덮여 있었고,문틈으로 바람소리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그 사람 하나 때문에, 그녀는 멈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1
Read more

62. 우리가 끝을 향해 간다는 건

윤강의 눈빛이 달라졌다.그는 조진혁의 총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마치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그저 담담히 입을 열었다.“내가 이대로 끝낼 거라고 생각했어?”진혁은 방아쇠에 손을 댔다.하지만 그보다 한 발 먼저,윤강은 허리춤 안쪽에서 작은 리모컨을 꺼내 손에 쥔 채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올렸다."이 안에, 폭약은 없지만 내가 설계한 그 방으로 연결되는 문이 하나 있어.한 사람만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지."시아는 눈을 좁혔다.말없이 그의 동선을 살폈고, 진혁은 직감적으로 느꼈다.윤강은 지금, 도윤을 인질로 삼고 있었다.“너 설마… 도윤 씨가 그 안에 있다는 거야?”윤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희가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어차피 이 판은 나 혼자 접을 생각은 없었거든.”진혁이 재빠르게 옆통로 쪽으로 움직이자 윤강은 손에 쥔 리모컨을 들며 소리쳤다.“움직이지 마. 문이 닫히면, 그 안은 다시 열리지 않아.”시아는 조용히 말했다.“…왜 이렇게까지 해?”“왜? 너라면 알지 않아? 사람 하나 잃는 게, 인생 다 무너지는 일이란 거.”그 말이 떨어졌을 때, 시아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윤강.”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한 겨울 눈물처럼, 차갑고도 또렷하게.“네가 그렇게 말하는 조아진. 그 아이는… 마지막까지 ‘널’ 찾았어.”윤강의 눈이 흔들렸다.“나도… 그 아이가 나를 원망할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어.”시아의 눈에는 말하지 못한 지난 시간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그날,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들었어. 오빠가, 나한테 말 좀 걸어줬으면 좋겠다.그냥 한 번이라도, 나랑 같이 울어줬으면 좋겠다. 그 말이었어.”윤강은 눈을 질끈 감았다.주먹이 떨렸다.“넌 그 아이를 너무 늦게 봤고, 너무 빨리 혼자 책임지려 했어.그 죄책감이, 지금 너를 괴물로 만들고 있어.”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섰다.총구와 리모컨 사이의 거리. 그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멈추고, 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2
Read more

63. 다시 시작되는 첫 페이지

도윤은 백시아의 손등을 조심스레 감쌌다.그녀가 붙잡은 손은 생명처럼 따뜻했다.“…그렇게 울면, 나 아파요.”시아는 고개를 들고, 도윤을 마주 봤다.“그럼, 아프지 않게 살아줘.”도윤의 눈이 서서히 흔들렸다.“…내가, 당신 옆에 있어도 되는 거예요?”그 질문은 사실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종류였다.누구의 과거든, 마냥 말끔하지 않다는 걸 이 둘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하지만 시아는 머뭇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이 날 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거야.”그 말이 도윤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세상 그 누구도 그에게 그런 확신을 준 적이 없었다.그가 지닌 조용한 삶, 작은 습관들,사람들에게 조용히 스며들다 스치고 마는 관계들 속에서 그런 단단한 말은 없었다.“…근데요, 시아 씨.”“응.”“…나, 당신 없으면 못 살겠더라고요.”시아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숨죽인 웃음. 안도와 사랑이 섞인 웃음이었다.“그걸 이제야 깨달았어?”“그땐, 몰랐어요. 당신이 사라진 그날까지는…”도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백시아가 그를 안아주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기약 없는 어둠 속에서 둘은 아주 조용한 감정을 품었다.며칠 후. 시아는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도윤은 진료를 받고 있었고, 그녀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그 순간, 낯익은 그림자가 조용히 다가왔다.“여기, 앉아도 될까요?”조진혁이었다.수트 차림, 어딘지 지쳐 보이는 얼굴로.“……왜 이렇게 말이 예의바르세요?”시아가 그를 보며 물었다.“지난번엔, 경찰로 왔었잖아요.”“오늘은 그냥… 사람으로 왔습니다.”그 말에 시아는 짧게 웃었다.“무슨 얘길 하러요?”진혁은 주머니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윤강의 진술입니다.”“…다 말했어요?”“네. 자신이 했던 모든 일, 조아진과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메시지까지.”시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 녹음기를 바라보았다.“근데… 전 듣고 싶지 않아요.”“알고 있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2
Read more

64. 조용한 균열

“도윤 씨, 커피… 진하게요?”시아는 주방에서 머그컵을 흔들며 물었다.햇살이 부엌 가득 번지고, 창틀 위에 둔 작은 허브 화분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응, 요즘은 진한 게 좋더라. 버텨야 하니까.”도윤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게임회사 개발자 특유의 늘어진 티셔츠,한쪽에는 플라스틱 피규어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어제는 왜 ‘달달한 게 땡긴다’며?”시아가 묻자, 도윤은 멋쩍게 웃었다.“당신 기분 따라서 바뀌는 것 같아. 시아 씨가 웃으면 달달한 게 땡기고, 울면 진한 게 필요하고.”그 말에, 시아는 잠시 멈췄다.웃으며 말하는 도윤의 눈빛에 자신을 바라보는 애틋함이 배어 있었다.그건 그녀가 늘 두려워하던 감정이기도 했다.“……그렇게 나한테 맞춰 살면, 지치지 않겠어?”“지칠 때도 있지. 그치만 시아 씨니까 괜찮아.”시아는 커피 잔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그 말, 나중에 후회하지 마요.”“후회할 일 안 만들면 되잖아. 우린 이제, 같이 있는 걸로도 충분해.”그렇게, 소박한 대화가 오가는 평화로운 아침.하지만 그 고요함은 한 통의 우편으로 깨졌다.띵~도윤의 휴대폰으로 회사 메일이 도착했다.‘[기밀] 시스템 침입 경고: 내부자 접근 가능성 있음’“…이게 뭐지?”도윤은 노트북 화면을 확인하자 눈썹을 찌푸렸다.회사 서버에 의심스러운 접근이 감지됐고, 그 로그인 시점은 바로 어제 밤이었다.“무슨 일 있어요?”시아가 다가오자 도윤은 황급히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아냐. 회사 쪽 일인데, 그냥… 시스템 쪽 문제가 좀 있어서.”“근데… 왜 그렇게 얼굴이 굳었어요?”도윤은 대답을 회피하듯,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시아 씨. 혹시 우리 집, 최근에 누가 들렀던 적 있어요?”시아는 고개를 젓고는 불안한 듯 주방 쪽을 둘러보았다.“…도윤 씨. 무슨 일이에요?”“모르겠어. 근데 뭔가, 기분이 안 좋아.”그 직감은 시아도 느낄 수 있었다.며칠 전부터 느껴지는 미세한 어긋남.창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2
Read more

65. 첫 번째 밤, 그날의 기억

USB 안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자진혁은 등을 기대고 앉은 채 화면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낮은 화질. 흔들리는 화면. 그리고 빛이 거의 들지 않는 방.그 안에서, 갇힌 듯한 얼굴로 앉아 있는 소녀 하나.이름도, 나이도 없이 그녀는 ‘대상’으로만 불리고 있었다.영상 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실험 1단계, 자극 반응 체크 들어간다.”이어지는 의료진 복장을 입은 남자들의 무표정한 얼굴,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소녀에게 손을 뻗는 누군가.화면이 흐릿하게 흔들리더니, 갑자기 꺼졌다.그 짧은 영상이 끝났을 때 사무실은 정적에 잠겼다.진혁은 노트북을 덮지도 못한 채 오랜 시간 말이 없었다.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도윤은 그녀 옆에서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저게…”조진혁이 겨우 입을 열었다.“그게… 너의 시작이야?”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어릴 적, 입양이란 이름으로 그곳에 보내졌어요.거긴… 그냥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어요.”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시아 씨…”“내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건… 그때였어요.”시아는 눈을 감았다. 숨이 깊어졌다.“그 방 안에서, 밤마다 누군가가 들어왔고…어느 날, 나는 그 사람을 찔렀어요.두 번. 세 번.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녀가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이유가 모든 설명 없이 이해됐다.“그 사람은… 죽었고. 나는… 그곳에서 내보내졌어요. 실패한 실험체라는 딱지를 달고.”시아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흔들림 없는 톤이었다.“그 이후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선택했어요.”진혁은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그녀를 다시 바라봤다.“…그러니까, 너는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거야.”“그래요. 그 집단은 아직도 남아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나 보니, 그곳에 있었던 것뿐인데.”그 말에 도윤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감쌌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3
Read more

66. 베일 너머의 안개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서두르자. 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을 잘 아니까.”그리고, 같은 시각. 도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 어귀.검은 SUV 차량 안.남자는 편지를 넣은 우편함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다 천천히 웃었다.“드디어 움직이는군.”그의 무릎 위엔 또 다른 장미 한 송이와 사진 몇 장이 놓여 있었다.백시아. 도윤. 조진혁.“이번엔, 도망칠 구멍은 없어.”시아는 그날 밤,혼자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다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봉투를 꺼내 들고 그 필체를 한 줄 한 줄 쓸어내렸다.“……그래. 네가 날 부르면 내가 돌아갈 거라 생각했겠지.”그녀의 눈동자가 서늘해졌다.“하지만 이번엔… 너희가 끝날 차례야.”그날 밤, 시아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옷장을 열었다.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둔 상자 하나. 아무도 열지 않았고, 그녀도 손대지 않았던 그 상자.그 안에는 그녀가 백시아가 아닌 이름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흔적들이 있었다.묵직한 금속성의 손잡이를 열자 오래된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기록지, 명함, 오래된 플립폰,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살인을 저지른 날 입었던 블랙 재킷.도윤은 거실에서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문득 무언가 느껴졌는지 조심스레 방 문을 두드렸다.“시아 씨… 괜찮아요?”시아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상자를 닫았다.과거를 마주하는 것이 곧 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도윤은 그녀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앉았다.“무서운 건 당연한 거예요. 하지만 이제 혼자 아니에요.”그의 말에 백시아는 고개를 들었다.“그거 알아요? 난 살아온 내내 누구한테 이런 말 들어본 적 없어.”“…어떤 말이요.”“‘이젠 혼자 아니야.’ 그 말.”도윤은 그녀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얹었다.“…이제 자주 들을 거예요. 내가 계속 말해줄 테니까.”시아는 그 손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정말.”진혁은 이른 새벽,지령을 받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3
Read more

67. 그림자가 드리우는 속도

도윤의 회사로 가는 지하철은 여느 때와 같이 붐볐다.하지만 오늘따라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흐릿하게 겹쳐져 보였다.어젯밤 백시아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거울 앞에서 담담하게 붉은 립스틱을 바르던 그녀,진혁 앞에서 떨림 하나 없이 조직의 이름을 입에 담던 그 눈빛.도윤은 알았다.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건 극히 일부라는 걸.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그녀는 여전히 혼자 삼키고 있다는 걸.그런데.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 근처 골목길을 걷던 도윤은 등 뒤로 느껴지는 묘한 기척에 발걸음을 멈췄다.귀에 꽂은 이어폰 너머,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천천히, 조용히. 마치 뒤쫓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도윤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시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시아 씨. 누가 날 따라오는 것 같아요. 회사 근처예요.’그 시각, 시아는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핸드폰 화면에 도윤의 메시지가 떠오르자 잔잔하던 숨이 스르륵 끊겼다.“……벌써 시작한 거야.”손에 들고 있던 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천천히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신발장을 열어 오래된 운동화를 꺼냈다.그리고 허리춤에 고정된 비밀 포켓에서 작은 접이식 칼 하나를 꺼내고요하게 호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그녀의 눈빛은 다시 예전 그 차가운 안개처럼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었다.도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었다.하지만 뒷걸음의 소리는 여전히 그를 따라왔다.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일부러 고개를 휙 돌려 뒤를 봤다.비어 있는 골목. 사람 하나 없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엔 남았다.회색 모자,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그리고 그 순간 스친 향수 냄새.어디선가 맡아본 향. 하지만 너무 희미해서 기억을 붙잡기엔 어정쩡했다.시아는 사무실 근처까지 택시로 이동했다.탑승 중간, 조진혁에게도 연락을 넣었다.“누군가 도윤 씨를 미행했어요. 위치 추적 부탁드릴게요.”“근처 CCTV 싹 돌려보자. 위치 좌표 보내줘.”시아는 택시에서 내려 회사 뒤편에 숨겨진 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3
Read more

68. 약점이라는 이름의 구원

아침 7시.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간, 시아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검은 터틀넥, 낡은 재킷. 화장은 하지 않았고, 머리는 단정하게 묶은 상태였다.거울 앞에서 잠시 멈춰 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그 눈 안엔 어제와 다른 결의가 있었다.마치 오래전, 그 칼을 처음 들었던 날처럼.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이들만이 가지는 눈빛이었다.뒤에서 다가온 도윤은 조용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조형사님이 아침에 보자고 했어요. 나도 같이 가요.”시아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알아요. 그래서 준비 중이었어요.”그녀는 짧게, 아주 짧게 웃어보였다.하지만 그 웃음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서울 서부지청 앞 카페.유리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들어와 테이블 위 커피잔을 환하게 비췄다.진혁은 한 손으로 노트를 넘기며, 다른 손으론 커피잔을 조용히 돌리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잔잔했지만, 속은 이미 결론에 도달한 듯했다.문이 열리고, 백시아와 도윤이 들어섰다."오랜만이에요, 조 형사님."시아가 먼저 말을 건넸다."백시아 씨."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가리켰다."둘 다 앉아요. 오늘은 그냥... 얘기 좀 하자고 부른 거니까."도윤은 눈치를 보며 앉았다.진혁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도윤 씨. 백시아 씨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요?”그 질문은 마치 형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묻는 것처럼 들렸다.도윤은 망설이다 말했다.“…다는 몰라요. 그녀가 말해준 만큼만 알아요.”"그 말이 맞아요."시아가 덧붙였다.“제가 다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오늘도, 다 말하진 않을 거예요.”진혁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그는 노트 한 장을 넘겼다.그 위엔 오래된 보고서 복사본이 붙어 있었다.그녀의 시선이 문서에 머물렀다.그러자 조진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 문서, 당신이 빠져나간 다음 우리가 회수한 정보예요. 그때는 진짜 이름도, 얼굴도 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3
Read more

69. 칼날의 그림자

도윤이 퇴근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문 앞엔 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붉은 장미. 그리고진짜 꽃이 아닌, 조화였다.도윤은 손끝으로 장미를 집어 들었다.손에 닿는 감촉은 차갑고 건조했다.그 순간, 백시아가 말했다."그거… 내가 준 거 아니야."그녀는 언제부터였는지 거실에서 그를 보고 있었다.눈빛은 차분했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그럼, 누가?”도윤이 묻자, 그녀는 천천히 다가왔다.장미를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살피던 그녀는아주 작은 눈금의 흔적 하나를 보고 숨을 멈췄다."윤강이야."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나한테 경고하는 거지.넌 아직 내 손 안에 있다는 거.”“……그 사람이, 왜 나한테 이런 걸…”도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지만,시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엔 이미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나야 할지에 대한 계산이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흐르고 있었다.밤 11시.도윤은 소파에 앉아 조명이 꺼진 거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시아는 침실로 들어간 지 오래였고, 그녀의 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그녀가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리 곁에 있어도, 그녀의 마음은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때였다.현관문 비밀번호가 조용히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찰칵.문이 열리는 소리.도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시아…?"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백시아가 아니었다.어두운 실내에 서 있는 남자.짙은 블랙 수트, 무표정한 얼굴.그리고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도윤 씨죠?"도윤은 순간적으로 경계했다."……누구세요?""아, 나는 그냥.시아… 아니, ‘안개’의 오래된 지인입니다."도윤은 ‘안개’라는 단어에순간적으로 온몸이 굳는 걸 느꼈다.남자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그녀, 아직도 당신 곁에 있네요? 그거 참… 의외인데요.”“……당신이, 윤강입니까.”도윤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제야 인사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4
Read more

70. 안개가 걷힌 자리에 남은 것

다음 날. 시아는 도윤 몰래 집을 나섰다.새벽 공기는 차고 습했다.긴 코트를 걸친 그녀는 골목 안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였다.목적지는 하나. 조진혁.그는 시아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약속 장소로 나왔다."조형사."시아가 먼저 말했다.“윤강이 움직였어요. 그리고 도윤을 노리기 시작했어요.”진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예상보다 일찍 시작해야겠네요.”“……작전 준비된 거예요?”“거의요. 당신만 결심하면 돼요.”그 말에 시아는 한참을 침묵했다.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빛바랜 새벽빛이 건물들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이번엔, 내 쪽에서 덫을 놓을게요."“위험해질 수 있어요.”“알아요. 하지만... 더는 도윤이 다치게 할 수 없어요. 이번엔 진짜로 끝내야 해요.”며칠 후. 도윤은 회사를 조퇴했다.백시아가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가 평소처럼 조용히 나갔다면 보통이면 점심쯤 연락을 했을 텐데,이번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현관엔 그녀의 구두가 없었다.거실도, 방도 비어 있었다.도윤은 초조하게 휴대폰을 쥐었다.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지만"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기계음만 반복될 뿐이었다.그는 허겁지겁 나섰다.밤 8시. 서울 변두리의 버려진 공장 부지.시아는 그곳에서 윤강을 기다리고 있었다.머리는 묶지 않았고, 코트 안에는 칼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진혁은 멀찍이 숨어 모든 장면을 감시하고 있었다.이건 덫이었다.윤강을 끌어내어, 그를 끝장내기 위한 덫.그리고 그때.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실루엣. 윤강이었다.그의 눈빛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마치 이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느긋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래, 역시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당신은… 항상 정면으로 오는 사람이었지.”“넌 왜 도윤을 건드린 거야.”시아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왜 나로는 부족했어?”“그건 말이야…”윤강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24
Read more
PREV
1
...
45678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