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어느 외딴 마을.해 질 녘 들판을 건너는 바람은 고요했고,백시아는 그 바람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손엔 담배 한 개비. 불은 붙이지 않은 채, 습관처럼 손끝에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도윤은 멀리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녀의 어깨는, 늘 무언가를 짊어진 사람처럼 낮게 내려가 있었고허공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딘가 멈춰 있었다.“시아야.”그가 부르면, 그녀는 조용히 돌아본다. 늘 그랬다.“추운데, 안으로 들어가.”“……응.”그녀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도윤이 건넨 담요를 두르고 그의 옆에 섰다.집으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은 나란히 걷지만, 말이 없었다.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무게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섣불리 입을 여는 게 조심스러웠다.시아는 요리를 했다.이전의 그녀라면 상상할 수 없을 평범한 일상.된장찌개 냄새가 방 안을 메웠고, 도윤은 조용히 밥상을 준비했다.숟가락을 맞잡고 앉은 두 사람.도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우리, 여기 계속 살아도 돼?”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계속?”“이곳에선… 아무도 우리를 모르잖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내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인지도.”그녀는 미소를 지었다.“당신은 한심하지 않아. 내가 그걸 알아.”도윤은 웃었다.“그럼, 조금 더 살아볼래.”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조금만 더.”그들의 하루는 그렇게 흘렀다.빨래를 널고, 시장을 보고, 간혹 마을 어귀에서 지나가는 트럭 소리에 놀라 문을 잠그기도 했지만, 그건 두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하지만 고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어느 날, 도윤이 외출한 틈에 백시아는 마을 앞 우체통에 꽂힌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아무 발신인도 없는 흰 봉투. 그 안엔 낯선 사진이 들어 있었다.시아가 성당에서 총을 든 모습.도윤이 그녀를 부둥켜안은 순간.그리고 그날 밤 도윤의 자동차 번호판이 찍힌 클로즈업.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런데 사진 뒷면엔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죄는 지워지지 않는다.”
آخر تحديث : 2026-04-15 اقرأ المزي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