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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화 : 각성(覺醒) (1)

(다소 폭력적이고 비자발적 장면이 포함되어 있음)해가 채 지기도 전에 사냥은 시작됐다.그날은 ‘완(完)’이 비로소 성인이 된 날이었다.냉궁에 버려진 저주받은 사생아.황제의 성씨인 ‘염(炎)’은 고사하고, 왕족이나 귀족의 지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그에게 사실 이날은… 그나마 다른 아이들과 같은 보호라도 받을 수 있었던, 그 권리일의 마지막이었다.“스무 살이 되는 순간, 너는 내 것이다. 그땐 아무도 날 막지 못해.”비록 귀족이었으나 잡배만도 못했던 그가, 시시때때로 와서 완에게 속삭이던 말이었다.해가 중천에 떠 오른 한낮.그는 오늘도 부러 냉궁까지 찾아왔다.이제 긴 기다림은 끝이라는 듯 더욱 노골적인 표정으로, 기어이 사람들의 시선이 드문 회랑 끝까지 완을 몰아세운 그는… 떨고 있는 완의 은빛 머리카락을 슬금슬금 쓰다듬으며 추근댔다.“왜 자꾸 도망을 가려느냐? 이 얼마나 기쁜 날이란 말이냐! 네가 성인이 된 것을 그저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을 뿐인데….”완은 바짝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가 완의 손등을 핥듯 쓰다듬다 물러난 건, 때마침 냉궁 밖에서 들린 인기척 때문이었다.그 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바로 그 자리에서 더한 것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냉궁은 밤에도 문이 잠기지 않는 곳이었다.그 누구도 들여다보지도, 지켜주지도 않는 곳.은빛 머리채가 거칠게 잡히고, 목덜미가 짓눌리며 가슴팍이 차디찬 바닥에 내리 찍혔다.장포의 허리끈과 옷깃이 서걱거리며 풀어 헤쳐지는 소리.식은 손끝이 갈라진 옷자락 사이로 미끄러졌다.말갛게 드러난 살갗 위를 차가운 손이 더듬어오자… 완의 가냘픈 몸이 파르르 떨렸다.“널 처음 봤을 때부터 이날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네 몸에 아무 걱정 없이 손댈 수 있는 날을.”그는 진심, 상국의 방탕한 귀족 중에서도 최악이었다.몇 년 전, 호기심에 냉궁에 들어왔다가 완을 마주친 뒤, 이 은발의 미소년을 줄곧 사냥감처럼 바라보던 자.그러나 미성년자를 탐하면 중벌에 처한다는 상국의 국법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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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1화 : 각성(覺醒) (2)

(다소 폭력적이고 비자발적 장면이 포함되어 있음)냉궁에서 홀로 자란 완은, 성인이 되기까지 수음(手淫)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날 선 감각.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터지고 고개가 저절로 꺾였다.“오호… 여기가 이렇게 민감했나?”“으읍….”귓가에 감겨오는 축축한 목소리에, 완은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다시 한번 악물었다.사내는 완의 예민하고 연약한 몸을 틀어쥔 채로 전혀 힘을 풀지 않았다.그는 탁한 숨결을 내뱉으며, 거친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문질러댔다.“아… 하아…!”“매우 듣기 좋구나… 소리를 좀 더 내어 보거라!”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완은 도저히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아… 아으… 아읏…!”비명에 자극되어, 사내의 손끝이 더 무자비하게 움직였다.그렇게 완은, 온몸 구석구석을 속절없이 자극당하고 능욕당했다.자신을 뿌리까지 더럽히려는 그 손길을 몇 번이고 뿌리치려 했지만, 공포에 굳은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발끝까지 억지로 타고 내려오는 저릿한 감각에, 완은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져 버리고 싶었다.“…흐읏… 안돼…!”그는 절망했다.비참하게도 온몸이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에.수치심이라는 것이… 이렇게 몸과 마음에 영영 새겨지리라는 것에.그 사실이 너무 끔찍해서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내가 이리 만져주니, 너도 좋지 않으냐….”사내의 능글능글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완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폭력이었다.고통과 부끄러움에 온몸의 피부가 통째로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으으… 아으… 제발….”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그 강렬한 감각이… 완의 정신을 점점 잠식해 갔다.비열한 표정으로 그를 맘껏 농락하던 사내의 눈에, 문득 완의 하얀 목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는 푸르스름한 목걸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이런 게 아직 남아 있었군, 걸리적거리게!”사내는 가죽으로 된 줄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벽옥(碧玉)을 깎아 만든 목걸이의 중앙에 새겨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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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화 : 저주(咀呪) (1)

“이곳 상국의 명문가 여식들, 명기(名妓)들, 아니 황상의 여인들을 다 대어 봐도, 저 냉궁에 있는 황자(皇子)만 한 용모가 없지 않은가?”“그건 그렇지! 그 계집 같은 얼굴과 몸에 손댄 자가 아직 없다며? 그가 막 성인이 됐으니, 이젠 때가 온 거지.”“황자는 무슨…! 옥비(玉妃)가 어디서 굴러먹다 싸지른 사생아라며! 그러면 그놈 몸을 좀 맛본다고 한들, 아무도 신경쓰지 않겠군. 황상께서도 시체 취급하시는 놈인데.”귀족들은 한 번씩 모여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냉궁의 버려진 황자를 안주 삼아 떠들며 웃어댔다. 당장이라도 냉궁으로 가겠다고 떠드는 이들도 있었고, 어떤 자들은 차례까지 정하며 내기를 벌였다. 그중 몇은 그 아이의 은빛 머리칼과 푸른 눈이 너무나도 기괴하다며 무서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그저 입맛을 다시기에 바빴다.그들의 입에 함부로 오르내리는 버려진 황자의 용모는 사실…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누구도 직접 보기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아름다움.명장이 애써서 빚은 도자기 같은 청명한 윤곽.스스로 빛을 내는 은백색 머릿결.차갑게 치켜든 눈꺼풀 너머에는… 푸른 비취를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두 개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그 버려진 아이, ‘염완(炎完)’을 단 한 번만이라도 직접 마주친 자들은, 그저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목울대가 타들어 가는 기분을 느꼈다.누구든 처음엔 그저 놀라거나 입으로 조롱하다가, 남녀 할 것 없이 어느새 그의 옷깃을 벌리고 더듬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곤 했다. 그러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자신의 발 아래에 무릎 꿇리고 싶다는 기이한 충동까지 따라붙기 일쑤였다.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았다던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미색(美色).그것은 사람의 욕망과 공포를 동시에 일깨우는… 진정한 색(色) 중의 색이었다.“…그런데 저놈, 볼수록 사람이 아닌 것 같아….”“오죽하면 그 어미가 귀신이랑 놀아났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뭐가 문제야! 그런 특별한 놈이면, 꼭 한 번 맛봐 줘야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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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화 : 저주(咀呪) (2)

화호족(火狐族)과 현랑족(玄狼族)이 혈맹으로 세운 나라, 상국(上國).상국은 건국 이래 백여 년간, 중원(中原) 동편 대동(大東) 땅을 주름잡으며 번성해 왔다.그러나 황제 염위(炎衛)가, 그리도 총애하던 후궁 옥비(玉妃)에게 기다리던 황자를 얻었던 그날 밤… 나라의 질서가 단숨에 뒤집어졌다.붉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로 대변되는 상국 황제의 혈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 같았던 그 아기의 모습은… 한 마디로 기괴했다.달빛에 반사되던 은빛의 머리카락과 눈썹.붉은색은커녕, 검은빛도 섞이지 않은 두 개의 짙푸른 눈동자.그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한 마리의 흰 여우 새끼 같았다.어떤 이들은, 마치 달이 사람의 형상을 빌려 태어난 것 같다고도 했다.그러나 태양과 불을 숭배하는 상국에서, 그런 모습은 곧 ‘불길함’과 ‘재앙’ 그 자체였다.그리하여 그 아이를 직접 본 자들은, 황제의 노를 살까 봐 그저 입을 닫고 숨을 죽였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모습.그 아이의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훔치다가도… 또한 밀어내게 했다.가여운 옥비는 그런 아이를 낳은 죄로 황궁에서 즉각 추방당했다. 그리 이상한 모습을 한 아이가, 붉은 여우와 불의 기운을 계승한 황제의 친자일 리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황제가 옥비를 죽이지 못한 것은, 그녀의 친정이 오랜 기간 상국을 보필해 온 명문가이고, 또한 그녀가 사통(私通) 사실이 절대 없다며 완강히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다.…황제 염위는, 옥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울고불고 애원해도, 황제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다른 비빈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오롯이 총애한 만큼, 배신감 또한 컸다.그리고 황제의 진노는, 갓 태어난 아기의 작은 몸 위로 불같이 떨어져 내렸다.황제는 사실, 그 불길한 아기를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나라의 제사를 관장하는 경천대무녀(敬天大巫女)가 그를 만류하며 말하였다.“이 아이가 태어난 것 또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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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3화 : 랑우(狼雨) (1)

궁 후원에서는 밤늦게까지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많은 귀족과 문무 대관들, 또 그들의 직계가족들까지 초대된 성대한 자리였다.“랑우! 네가 그 대단한 북군 랑찬(狼燦) 대장군의 아들이라며? 그렇다고 네가 대장군인 건 아니지 않냐?”“이건 뭐 키만 멀대같이 크지… 어디, 저 냉궁 귀신이라도 잡아 와서 네 능력을 한번 증명해 보던가!”평소에도 버릇없기로 유명했던 귀족 자제들 몇이, 그렇게 뜬금없이 그를 자극하고 조롱하며 야밤에 냉궁 속으로 밀어 넣었다.그곳은 비록 황궁 경내에 있었지만, 황제의 거처와 한참 떨어져 있어, 평상시에도 경비를 잘 서지 않는 곳이었다. 설령 근처에서 궁인이나 보초를 마주친다 해도, 한두 푼 집어주면 눈감아주곤 했다.이름도 기억 안 나는, 아무 의미 없는 놈들의 장난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예까지 걸린 마당에,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랑우는 보라는 듯 호기롭게 나섰지만, 고작 열다섯 소년인 그로서도 사실 냉궁이 하나도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황궁 귀족 아이들 사이에 돌고 있는, 그곳에 산다는 존재에 대한 소문들은… 어찌 하나같이 으스스한 것들뿐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치기만 해도 심장이 얼어버린다던가, 너무 놀라서 죽게 된다던가.그러나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이 냉궁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조용했다.무너진 담장과 널브러진 기와들.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정원 위로 바삭하게 말라죽은 꽃나무들.이 모든 것들 위에, 얼마나 묵었을지 모를 잿빛 먼지가 잔뜩 덮여 있었다.바람조차 숨죽인 곳.랑우는 문득, 차라리 진짜 귀신이 있는 게 낫지, 사람이 정말로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게 더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그는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했다.정원 한가운데의, 구불구불하게 뻗은 소나무 위.그 나뭇가지 끝에… 유령처럼 희끗한 형체가 하나 걸려 있었다.랑우는 순간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다.달빛 아래에서, 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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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3화 : 랑우(狼雨) (2)

“어, 어어…!”랑우는 순간 너무 놀라 몸이 바짝 굳었다.킁, 킁.아이는 좀 더 바짝 다가오더니, 코로 연신 숨을 들이켰다.그 작은 머리통이 어느새 랑우의 가슴팍에 그대로 닿았다.“…야, 너 지금 뭐 해?”고개를 든 아이의 파란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랑우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지금 있는 곳이 소나무 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뭔가 이해할 것도 같았다.'아하, 얘가 지금 내 냄새를…?'현랑족 중에서는, 묵은 나무 향 같은 체취를 가진 이들이 가끔 있었다. 그중에서도 랑우는, 어렸을 때부터 특이하게 수십 그루의 소나무에서 동시에 나는 것 같은 진한 향이 몸에서 올라왔다.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느라 힘을 잔뜩 쓴 지금처럼, 특히 땀에 젖어 있을 땐 그 향이 더 강했다.이 아이는, 자신의 그 특이한 체취에 반응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 짐승이 본능적으로 어미에게 끌리는 것처럼 보였다.“…넌, 소나무가 그렇게 좋냐?”랑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물었다.아이는 대답 대신, 그의 품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며 코를 눌렀다. 그 자그마한 머리가, 연신 들썩이며 그의 체취를 깊숙이 빨아들이고 있었다.“그래, 대답이 필요 없겠구나….”그렇게 랑우는, 본의 아니게 냉궁 귀신, 아니, 그 작은 잿빛 여우를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에는 또한 알지 못했다.랑우 자신이 지금… 그 작은 아이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음을.“…야, 그런데 너나 나나, 좀 씻어야겠다….”랑우가 머쓱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아버지인 랑찬 대장군이 입궁할 때마다 그를 부러 따라나선 랑우는, 틈이 날때마다 냉궁으로 향했다.랑우는 그 아이 또한 자신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나무 아래로 다가가면, 이제는 제가 먼저 잽싸게 내려왔다. 그러고는 마치 어미의 숨결을 찾는 작은 짐승처럼, 또 한 번 랑우의 품에 거침없이 파고들었다.랑우는 처음엔 아주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뭔가 싫지가 않았다.…아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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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4화 : 각인(刻印) (1)

“이건, 하늘.”랑우는 조심스레, 땅바닥에 글자를 썼다.그러고는 손가락을 펴서 하늘을 가리켰다.“우리 머리 위에 있는 거 말이야.”아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위로 들었다.늘 혼자서 올려다보던 곳.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던 그곳.이제 그것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았다.랑우는 쭈그려 앉은 채로,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크게 글씨를 써주었다.“하, 늘.”그가 글자와 하늘을 번갈아 가리킬 때마다, 푸른 눈동자가 따라 움직였다.랑우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이 아이가 배우는 걸 매우 좋아한다는 걸.“이번엔, 네 이름이야.”랑우가 새 글자를 썼다.완(完).그는 완의 목에 걸린 벽옥 목걸이를 가리켰다.“여기에 쓰인 게 바로 이거야.”완은 조용히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언제나 몸에 걸려 있었던 그것.그런데 인제야 알게 되었다.이것 또한 ‘이름’이라는 것을.다른 것도 아닌, 바로 자신의 이름.랑우는 미소를 지은 채, 제 입을 톡톡 치며 말했다.“따라 해봐. 와…안. 완.”완의 손끝이 바닥의 흙을 움켜쥐었다.“흐….”온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숨이 거칠게 들이마셔졌다.“소리 내봐. ‘와…안’, 이렇게.”랑우는 아이의 조그마한 손을 제 손으로 가볍게 쥐었다.“괜찮아. 네가 어떻게 말하든, 난 듣고 싶어, 네 목소리.”긴장으로 잔뜩 굳은 손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내가 기다릴게, 언제가 되든. …완.”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제 입술을 가만히 열었다.“으… 아….”덜덜 떨리는 입술 사이로, 조금씩 터져 나오는 목소리.“…와…안….”그 한마디에, 랑우는 정말 기쁘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좋았어! 그래, 정말 잘했어!”랑우는 아이의 은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게 바로 네 이름이야.”아이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이며 흔들렸다.스스로 소리를 내었다는, 아니 ‘말’을 했다는 놀라움과 기쁨이, 그 떨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랑우는 다시 바닥에 글을 썼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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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4화 : 각인(刻印) (2)

어느덧 계절이 바뀌었다.랑우는 요즘 들어, 더욱 자주 냉궁 생각을 했다.군부에서 검술 훈련을 할 때에도, 활을 날려 과녁을 맞출 때도, 항상 머릿속엔… 완, 그 아이가 있었다.요즘, 완은 그야말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아니 사실, 그 이상이었다.어깨 위로 가지런히 흘러내리는 은빛 머리카락과 윤기를 머금은 하얀 피부.그리고 무엇보다, 짐승의 눈빛처럼 서늘했던 그 두 눈이… 이젠 자신을 보며 매번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랑우!”그 고운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랑우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언제부턴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 안쪽이 뭉근히 저려오기까지 했다.랑우는 이런 저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랑우, 안녕!”두 개의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보았다.그 아름다운 얼굴을 본 순간, 랑우는 다시 한번 마음 한구석이 뻐근하게 아파왔다.가슴 어딘가가 또 한 번, 가만히 무너져 내렸다.사실 랑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자신이 이미 이 아이에게,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는 무언가를 주어버렸다는 걸.그렇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잠깐 떠나야 한다는 것도.“뭐해?”넋이 나간 듯 멍해진 랑우를 보며 완이 물었다.순간, 그는 더는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텅 빈 가슴을 지금 당장 무언가로 채우지 않으면, 안에서부터 다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그래서 그 예쁘게 웃는 입술 위에… 제 입술을 가져갔다.짧지만 분명한 접촉.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바람조차 멎은 듯한 고요함.랑우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그때.“…좋아!”아이의 들뜬 목소리.…그리고 눈부신 미소.“랑우, 또 해줘!”랑우는 그 순수한 요청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마치 고장 난 듯 고개를 떨궜다.물론 완이 그 ‘입맞춤’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 리 없었다.그저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다시 원했을 것이다.사실 랑우 자신도, 제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칠 전.북군 출정 명령이 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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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5화 : 탈출(脫出) (1)

랑우가 그렇게 사라져 버린 후, 완은 냉궁에서 다시 혼자가 되었다.소나무 한 그루 만으로도 충분했던 그는 어느새… 누군가와 만나고, 부대끼고, 또 대화하고 싶어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다시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자신이 말을 더 잘하고, 또 더 예쁘게 웃으면, 언젠가는 랑우가 돌아와 줄 것이라고 믿었다.그래서 매일 같이 말과 글을 익히며, 좀 더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구석진 냉궁을 일부러 찾는 사람들의 발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냉궁에 버려진 그 사생아, 직접 본 적 있어? 엄청나게 잘생겼다던데.”“아냐, 단순히 잘생긴 게 아니라, 웬만한 여자들은 상대도 안 될 만큼 예쁘다고 하더라고!”“그래봤자 허연 머리, 푸른 눈깔이면, 뭐 그냥 귀신 꼴이겠지.”“까짓거 보러 가자, 가! 어차피 황상은 신경 쓰지 않으실 테고, 거긴 순찰도 없는 곳이라고.”냉궁에 대한 소문이 달라지고 있었다.처음엔 그저 의혹이었다.그러나 점점,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소년의 신비로운 외모에 대한 찬사로 바뀌었다.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는 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궁 안의 사람들은 이제 그 아이를 더 이상 ‘냉궁 귀신’이나 ‘나무의 아들’이라 부르지 않았다.궁인 중 누군가는, 그를 ‘달의 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완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사람들이 왜 이제 자신을 다르게 부르는지.왜 이렇게 갑자기 다가오기 시작하는지.그는 그저, 랑우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러면 언젠가 그가 돌아와서, 그 기분 좋은 ‘입맞춤’이란 걸 다시 해줄 거라 믿었으니까.그래서 그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며, 매일 깨끗하게 몸을 씻고, 또 머리카락을 곱게 빗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자신을 더러운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완은 전혀 알지 못했다.처음에는 낯선 궁인들과 내시들 몇몇이 냉궁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왔다.그들은 탄성을 지르며 완의 은빛 머리칼을 만져 보기도 하고, 아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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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5화 : 탈출(脫出) (2)

황궁 경내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무너진 벽과 버려진 정원뿐.그곳엔 분명, 사람이 아닌 괴물이 살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감찰관은 소문과 달리, ‘너무나도 아름다운 무언가’를 발견했다.달빛을 뿜어내는 듯한 머리카락.희고 가느다란 손목.차갑게 빛나는 푸른 눈.그것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장인이 만든 진귀한 공예품 같았다.황궁의 각종 보물을 다 뒤져봐도, 지금 눈앞의 이 존재에 감히 비교할 물건은 없을 것 같았다.“네가….”감찰관은 묘한 표정으로 그 존재에게 바짝 다가갔다.“…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건가.”그는 손을 천천히 뻗었다.“이토록 가는 팔로,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부러뜨렸다고?”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은발의 청년은, 일말의 저항도 없이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부러질 듯 가는 손목을 감싸 쥔 감찰관의 손끝에 얼음 같은 감촉이 스쳤다.손끝에 잡히는 맥박이 너무나도 느려서, 오히려 이 창백한 존재가 그대로 쓰러져 버릴까 두려울 정도였다.“…너무 약해.”그는 한숨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냉궁 괴물’이 ‘살인귀’일지도 모른다던 몇몇 궁인들의 말을 믿고 여기까지 온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네가 장정 몇 명의 목을 부러뜨려 죽였다고 믿는 자들이 있다.”손끝이 완의 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를 더듬었다.매끈한 목덜미에 닿자, 역시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타고 퍼졌다.감찰관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이 존재는 역시 전혀 사람 같지 않다고.그렇다면, 좀 더 함부로 해도 되리라고.“…네가 정말 냉궁 괴물이냐?”소문으로만 들어본 눈부신 은발을 매만지며, 그는 느긋하게 말했다.“웃는 얼굴을 보고 싶구나. 겁을 내거나, 소리 내 우는 모습도 보기 좋을 듯하다.”그러나 완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그를 외면했다.그 무반응에, 감찰관은 순간 분노와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당장 눈앞의 청년을 무릎 꿇리고, 그의 옷을 찢어발기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다는 욕구.반사적으로 그 하얀 목을 움켜쥐려던 순간, 문밖에서 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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