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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5화 : 과거(過去) (2)

단성 시내의 한 기루(妓樓).햇빛도 들지 않는 비밀의 방.은은한 촛불 하나만이, 어둠 속에서 깜빡이고 있었다.그 앞에, 연강이 혼자 앉아 있었다.책상 위에는 이념에게서 받아온 약초 꾸러미들이 놓여 있었다.그는 조심스레 약초 묶음을 펼치고, 향을 음미하듯 깊은숨을 들이키며 눈을 감았다.“…정말 닮았더군요, 이후 님. 하마터면, 그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했습니다. 마치 당신이 다시 제게로 돌아온 것만 같아서….”마치 누군가의 숨결을 더듬듯, 젖어 있는 울림이었다.문득 떠오르는 오래되고 아픈 기억.분홍빛 연꽃으로 치장된 백호부 월전(月展).옥색 가림막 뒤로 가득히 늘어선 사람들의 환호성.무지갯빛 진주와 은색 자수로 장식된 하늘빛 혼례복으로 치장한 이후와 연화가 나란히 섰던 그날.“…당신은, 결국 내 것이 아니었지.”모두가 축하하며 즐거워하던 바로 그날에, 연강은 그늘 속에 혼자 서 있었다.연화의 곁에 선 이후를, 핏발 선 눈으로 오래도록 바라보고 바라보았다.사촌 누이인 연화는, 분명 그 어떤 여인보다도 아름다웠다.하지만, 연강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언제나 ‘그’였다.백은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눈이 마주칠 때마다 말없이 미소 짓던 그 아름다운 얼굴.그 웃음이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자신을 향한 적이 없었음을… 연강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그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이 서서히 뜨거워졌다.그 감정은… 단순한 동경이나 미련이 아니었다.더는 가두거나 눌러둘 수 없는… ‘열기’, 그 자체였다.그리고 어느 밤.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연강은 이후와 연화의 처소인 월지(月池) 뒤편 뜰에 숨어들었다.열린 창 너머로 희미한 등불 빛이 새어 나오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얇은 비단 이불 아래 몸을 움츠린 연화.그리고, 그녀를 조심스레 끌어안던 이후.하얗게 드러난 여인의 목선 위로 내려앉은 이후의 입술.그가 연화에게 닿는 자리마다, 서서히 열기가 번졌다.결국 완전히 겹쳐지던 두 사람의 그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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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6화 : 초야(初夜) (1)

해는 이미 진지 오래였다.장터 옆 오래된 골목길.랑헌은 어둠을 뚫고 홀로 걷고 있었다.손에는 조심스럽게 싼 죽과 따뜻한 물병, 그리고 정과(正果)가 담긴 보퉁이가 들려 있었다.그런데 길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느껴지는 낯선 기척.랑헌이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자마자, 어깨 위로 시퍼런 칼날이 휙 하고 스쳐 지나갔다.“누구냐!”곧이어 어둠 속에서, 변복(變服)을 한 그림자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몸놀림과 무기 운용을 보아선,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아주 익숙한 놈들.칼날이 쉴 새도 없이 다시 날아들었다.랑헌은 보퉁이를 안쪽 벽으로 던지고, 허리에 찬 단도를 뽑아냈다.철과 철이 만들어 내는 마찰음.그리고 곧바로 섬광 같은 공격이 이어졌다.스르르…챙!랑헌은 첫 번째 그림자의 손목을 꺾고, 연이어 두 번째 그림자의 목덜미를 내리쳤다.그러나 순간, 세 번째 그림자의 칼이 옆구리를 그대로 파고들었다.“크읏…!”옷자락이 뜨겁게 젖는 느낌.그리고 날카롭게 퍼지는 통증.하지만 적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랑헌은 정신을 가다듬고 소리쳤다.“…누가 보냈느냐!”그러나 놈들은 말없이 퇴로를 차단하며 거리를 좁혀왔다.랑헌은 이를 악물었다.‘이대로 잡힐 순 없어. 난 그에게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그는 죽을힘을 다해 솟아올라 담벼락을 밟고 초가집 지붕 위로 도약했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뛰어내린 후에 달리기 시작했다.누군가가 쏜 화살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그는 몸을 비틀며 겨우 피한 후, 다시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옆구리는 비록 찢겨 나갔지만, 그의 발걸음은 단단하고 거침이 없었다.***창밖은 어둑하고,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이념은 한줄기 등불 아래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문간에, 왠지 지쳐 보이는 랑헌이 서 있었다.“랑헌?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그냥… 당신이 잘 있나 해서요….”랑헌은 뭔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하지만… 평소의 나무 향과 다른 비릿한 냄새.심지어 그의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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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6화 : 초야(初夜) (2)

“읏…!”진하고 향긋한 소나무 향이 온몸에 감겨오자… 이념은 아찔함을 느끼며 그의 가슴팍에 그대로 기댔다.랑헌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어왔다.이념의 푸른 눈동자가 순간 반짝이다… 긴 속눈썹에 서서히 가려졌다.조심스레 시작된 입맞춤은 곧 갈급한 탐닉으로 바뀌었다.입술이 이빨 사이를 파고들고, 혀끝이 스치고,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애써 여며둔 옷자락이 허리로 흘러내리자, 차가운 피부 위로 닿은 손길이 불처럼 달아올랐다.복부를 스쳐 옆구리로, 어깨로, 목선으로 이어지는 탐색.랑헌의 입술이 이념의 매끈한 쇄골 위를 타고 내려가다, 새하얀 가슴팍 위의 분홍빛 돌기를 지그시 물었다.“…하읏…!”생전 처음 느껴보는 자극적인 감각에, 이념의 신음이 터질 듯 새어 나왔다.온몸이 오그라들고, 손끝이 본능처럼 랑헌의 젖은 머리칼을 움켜쥐었다.랑헌은 그의 허벅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 무게를 실었다.이념의 여린 몸은 다시 한번 움츠러들었으나… 곧 서서히 열리며 그를 받아들였다.“…처음이죠?”랑헌이 숨 가쁘게 속삭였다.이념은 부끄러운 듯 눈을 돌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처음이에요.”랑헌의 움직임은 처음엔 느리고 조심스러웠으나…, 곧 박동을 타듯 깊어지고 강렬해졌다.부드럽게, 그러나 거침없이.피부가 부딪히고, 숨결이 점점 더 격렬하게 얽혔다.그렇게 간절히 탐하다, 서로에게 완전히 잠식되었다.두 사람은 상처도, 과거도, 이름조차도 잊은 채… 오직 열기와 갈망에만 몸을 맡겼다.랑헌은 눈앞에서 이토록 애절하게 자신을 갈구하는 이의 은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가… 그저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평생을 괴롭혀온 그 살인귀의 그림자는, 어느새 뇌리에서 완전히 걷혔다.그 순간 이념 또한 랑헌의 품에서 몇 번이고 전율하며, 제 머리를 짓누르던 과거와 혈통의 무게를 완전히 잊었다. 그저 처음으로… 온전히 누군가의 것이 되고 싶다고 느꼈다.등불이 바람에 흔들리다 마침내 완전히 꺼졌다.어둠 속에 남은 것은… 서로의 마음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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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7화 : 월초(月草) (1)

랑헌은 창백한 숨을 가쁘게 토해내고 있었다.그 숨결은 뿌연 김처럼 흐릿했고, 마치 금방이라도 끊길 듯 가늘었다.이념이 그의 손을 맞잡았지만,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렇게 랑헌의 체온은, 이념의 눈앞에서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왜.”기어이 터진 목소리.그 속엔 어지러운 혼란이 깃들어 있었다.“왜 당신이… 이렇게….”대답 대신, 폐 깊은 곳에서 끓는 듯한 거친 숨소리만이 올라왔다.이념은 조심스럽게 랑헌의 옷깃을 젖혔다.옆구리의 상처는 언뜻 보기엔 괜찮아 보였다.그런데… 자신이 손수 짓이겨 바른 약초 향 사이로, 한 줄기 이질적인 향이 코끝에 맺혔다.은근하고 묘한, 무언가 낯익은 냄새.이념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쌉싸래한 약초 냄새, 피비린내, 창밖의 바람 냄새.그리고.…월초.순간, 기억이 물결처럼 밀려들었다.그 밤의 객잔.연강이 건넨, 연한 먹빛의 찻물.그가 가볍게 흘리듯 내뱉었던 말.“…월초라고 합니다. 음기가 강해서, 당신 같은 순혈인의 기운을 돋우는 데는 이만한 약재도 없지요.”그땐 몰랐다.아니,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별생각이 없었다.그 차를 마셨을 때 머리가 맑아지고, 뭔가 기운이 도는 듯했던.어젯밤까지만 해도, 랑헌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그러나 정말 그를 중독시킨 것이 ‘월초’라면.그것이 단순한 약초가 아니라면.향으로 감싸고, 기운을 교란하며, 음기를 틔우는 ‘독’이라면.음기가 강한 자에게는 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랑헌처럼 태생적으로 양기가 강한 현랑족에게는, 서서히 내부를 파괴하는 독성으로 변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정말 그럴 목적으로… 누군가가 일부러 칼에 월초를 발라 그를 찔렀다면.“…연강.”이념은 바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그 부드러운 손짓.조용한 음성.“우리는, 당신을 간절히 원합니다.”그 모든 말들이… 이제야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그땐, 믿고 싶었다.이름도, 과거도 불분명하던 시절이었다.흔들리는 자신에게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기에, 붙잡고도 싶었다.하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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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7화 : 월초(月草) (2)

“이런 식은 원치 않습니다.”단호한 목소리.연강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하지만 우리는, 이후 님의 피를 받은 당신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백호족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이념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러나, 어째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를 원한다면서, 왜 제가 아끼는 사람을 죽이려 하신 겁니까?”연강은 그 말에 작게 웃었지만, 어딘가 어긋난 감정이 그 눈 속에서 일렁였다.“당신이 저를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죠. 그 현랑족은 당신에게 큰 해가 될 겁니다. 이후 님도 그랬습니다. 고작 현랑족 하나 때문에, 파멸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셨죠.”“지금 무슨 말을…!”이념의 눈동자에 순간 혼란스러움이 번졌다.“그런 꼴을 다시 볼 순 없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사람은, 그 현랑족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동족을 지키는 것! 그것이 순혈의 백호족, 이후 님의 아들인 당신의 숙명입니다.”연강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이념을 마주 보고 섰다.“그러니 이제라도 정신 차리십시오.”서늘한 손끝이 이념의 턱에 가볍게 닿았다.“지금 뭐 하자는 거요!”이념은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떨치고는, 가만히 눈썹을 찌푸렸다.연강이 이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이후 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아십니까?”이념이 흠칫하며 몸을 세웠다.“이십 년 전, 백호 대전 때 돌아가셨다 들었습니다. 그때 백호족은 모두 극동으로 쫓겨났고요.”“네, 그렇습니다. 그게 직접적인 이유지요. 그러나 족장 후계자가 일부러 나서서 그렇게 전사할 이유는… 사실, 전혀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이념의 동공이 점점 크기를 키웠다.“그는 절망감을 안고 스스로 사지(死地)로 갔습니다. 검은 늑대의 자손을 품었기에,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정화할 길이 없어, 스스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전장에 선 것입니다.”“…뭐요?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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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8화 : 추적(追跡) (1)

안개가 낮게 깔린 산길.이념은 말고삐를 천천히 당기며 걸었다.그의 등에는, 숨이 붙어있는 것만으로 다행스러운 한 사람이 위태롭게 기대어 있었다.바람은 뼈를 파고들 듯 거칠게 불었고, 온도는 가차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이념의 목덜미에 닿은 랑헌의 호흡은 너무나도 약했다.그의 몸이 맥없이 옆으로 기울 때마다, 이념은 팔을 들어 매번 붙들어주어야 했다.“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혼잣말처럼 낮게 읊조린 말.랑헌을 향한 위로인 동시에, 자신을 다잡는 절박한 바램이었다.저 멀리 설산의 윤곽이 보였다.월초가 자란다는 곳.그러나 저리 손에 잡힐 듯 보여도… 그곳까지의 거리는 절대 가깝지 않을 터.극동.백호족이 사는 땅.그리고… 어린 아기의 목숨마저 원할 만큼 무자비하다는, 친부의 이복형이 다스리는 곳.그럼에도 이념은 그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오직 랑헌을 살리기 위해.지금,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없기에.“반드시 월초를 해독하는 법을 찾아낼 겁니다.”이념은 조용히 속삭였다.“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텨줘요, 제발.”랑헌의 손은 이념의 허리에 느슨하게 얹혀 있었다.그 손을 세게 붙들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차가운 기운이 그를 더 해할까 두려웠다.“당신이 이리 아프게 된 건, 역시 제 탓입니다….”다음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당신이 나와 만나지 않았다면, 그가 당신을 중독시킬 일도 없었을 텐데….’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흐려졌다.그 어둠 아래, 이념은 입술을 꾹 다물고 조용히 다짐했다.‘절대로, 당신이 죽게 하지 않겠습니다.’어느새 아름다운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왔다.극동 설산과 단성의 중간에 있는 표함산(豹咸山) 자락.버려진 듯한 암자 하나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지붕은 기울어져 있고, 여기저기에 이끼가 끼어 있었다.그러나 차가운 밤 비를 피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이념은 조심스레 랑헌을 부축하며 안으로 들어섰다.그는 그곳에 랑헌을 눕혀두고, 바삐 장작을 주워 불씨를 피웠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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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8화 : 추적(追跡) (2)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희뿌옇게 올라오는 안개의 틈을 뚫고, 검은 그림자 수십 개가 암자로 조용히 다가갔다.변복 차림의 연강은 눈앞의 낡은 암자를 원망하듯 노려보았다.발밑으로는 젖은 낙엽과 이끼가 촉촉하게 깔려 있었다.그의 뒤편으로 환월단의 무사들이 민첩하게 자리를 잡았다.연강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이후 님의 아드님은 이미 달빛의 힘을 각성했다. 그러니 각별히 조심하라. 그가 다치는 건… 절대로 원치 않는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다.”단호한 말끝 아래 묻힌 감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그분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 현랑족의 목숨부터 끊어놓아야 한다.”그 무리 중 셋이 먼저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나머지 무사들은 반원으로 둘러 암자를 감싸기 시작했다.연강은 여전히 갈라진 문틈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안에… 이념이 있었다.오랜 세월 갈망하며 찾아온, 순혈의 백호족.…이후의 아들.그러나 이후가 그랬듯, 그는 자신을 완전히 저버렸다.또한 그의 곁엔… 여전히 현랑족 하나가 있다.저리 죽어가면서도 이념을 놔주지 않는 더러운 짐승."들어가라!"연강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림자 셋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문은 가볍게 젖혀지고, 기척이 거의 없는 발소리가 돌바닥을 스쳤다.창백한 등불 아래, 이념은 랑헌의 이마와 맥을 번갈아 가며 짚어보고 있었다.랑헌의 호흡은 여전히 불규칙했고, 손끝은 마치 눈사람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조금만 더 버텨요, 랑헌. 이제 비가 그쳤어요.”이념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랑헌의 숨결을, 어떻게든 제 곁에 붙들어 두려는 간절함이었다.하지만 그 순간.찰나처럼 기류가 뒤틀렸다.차디찬 소름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그때 랑헌의 손끝이, 갑자기 움찔했다.“…이…념….”랑헌의 몸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며 급격히 굳었다.입술이 파랗게 질렸고,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다.“랑헌!”그 순간, 이념의 감각이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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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9화 : 랑하(狼河) (1)

팟…!두 푸른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달의 빛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갔다.자객들의 몸이 낙엽처럼 공중으로 날리며 벽에 이리저리 부딪혔다.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그러나 이념은 랑헌을 여전히 감싸안은 채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오히려 달빛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마치 빛의 장막을 두르듯 주위를 감쌌다.그 빛에 걸려 무수한 그림자들이 튕겨 나갔다.그러나 다가오는 이들을 아무리 물리쳐도, 더 많은 그림자가 다시 몰려왔다.이념은 차마… 동족인 그들의 목숨까지 끊을 순 없었다.쓰러진 무사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일어나서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이념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몰려오는 무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달빛이 한 줌도 닿지 않는 새벽.손끝에 퍼지던 빛이 점점 탁해졌다.그때 연강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렸다."결국, 당신은 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군요."이념의 눈이 다시 한번 푸르게 빛났다.“나는 이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이것이 내 선택이다!”그가 힘을 끌어모아 손끝을 뻗자, 달의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다시 한번 적들을 튕겨내었다.하지만 그 틈을 타고, 칼날 여러 개가 랑헌에게로 몰려왔다.이념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다급히 시선을 돌리는 순간… 어느새 연강이 이념의 뒤로 바짝 파고들었다.촤라락…!검은 천이 이념의 눈을 가리며 얼굴을 덮자마자, 미약(迷藥)의 기운이 순식간에 파고들었다.“으… 연, 연강, 네 이놈….”고통스러워하는 이념의 귓가에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정말로, 당신에게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그는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이념을 뒤에서 부드럽게 껴안았다.“잠시만 쉬십시오, 이렇게….”이념의 품에서 떨어져 나간 랑헌이 비틀거리며 몸을 다시 일으키려 했지만, 다른 무사의 발길질에 그대로 벽으로 날려졌다.“…크윽!”그의 입에서 진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이윽고 다른 자객 하나가 검을 뽑아 그대로 그의 목에 들이댔다.“이 자는 지금 바로 끝내겠습니다.”그 순간.…펄럭!“그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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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9화 : 랑하(狼河) (2)

남은 자객들을 거침없이 베어버린 후, 랑하는 다시 암자 안으로 들어와 피에 젖은 청년을 부축했다.그는 랑하의 품 안에서 거품 섞인 차가운 피를 연거푸 토했다. 그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손끝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넌 누구냐? 념이와는 대체 무슨 관계냐? …대답을 들으려면, 먼저 널 반드시 살려야겠구나.’바람이 부서진 문짝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싸늘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랑하는 청년을 모닥불 옆에 눕힌 후, 그 맞은 편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장작이 타들어가며 따뜻한 온기를 뿜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년의 숨결은 가늘게 꺼져가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맥박과 혈색이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그러나 아들은… 완전히 사라졌다.그 아이를 데려간 자들이 누군지, 랑하는 아직 알지 못했다.“…아으….”청년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랑하는 곧장 그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 몸을 숙였다.“정신이 드느냐?”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렸다.초점 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떠돌다, 겨우 랑하의 얼굴을 포착했다.“…당신….”입술이 바싹 말라 목소리가 갈라졌다.랑하는 재빨리 물을 떠다 그의 입에 가져다 댔다.“나는 현랑족 랑욱 대장군의 아들, 랑하라 한다.”청년의 눈썹이 순간 일그러졌다.랑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벽운, 아니, 념이의 아비다.”몇 차례 물을 넘긴 후에야 그 청년은 겨우 입을 열었다.“그는 결국… 그놈들에게 잡혀간 거군요….”창백한 얼굴에 슬픔이 어렸다.“…대체 어떤 놈들이냐? 그 아이를 데려간 무리의 정체를 아느냐?”청년은 기억을 더듬듯 잠시 침묵하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단성에 근거지를 둔, 백호족의 잔당 무리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념에게 줄곧 접근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데려간 자를 ‘연강’이라고 불렀습니다.”순간, 랑하의 잿빛 눈동자가 요동쳤다.“지금…‘이념’이라고 했느냐?”랑하는 복잡한 표정을 채 숨기지 못했다.아이가 드디어 제 진짜 이름을 찾았다.혼자서도 기특하게… 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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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20화 : 유혹(誘惑) (1)

좁고 답답한 방이었다.검은 천이 단단히 눈을 가리고 있었고, 두 손은 등 뒤로 묶여 차디찬 의자에 고정되어 있었다.그런데 어디선가 향불 타는 소리가 났다.타닥.타닥.그리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짙고 끈적한 향이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이념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몸이 느리게 가라앉고 있었다.기운이, 감각이, 마치 안에서부터 녹아내리는 듯했다.탁. 탁. 탁.느리게 다가오는 발소리.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스며 있었다.“…기분이 좀 어떠십니까, 이념.”그의 기척이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이곳은 겉으론 평범한 기루이지만, 사실 우리 환월단의 본부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 방은, 당신과 저, 우리 둘만의 은밀한 공간이고요….”이념은 숨을 고르려 했지만, 등 뒤에서부터 저릿하게 퍼지는 기이한 감각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흐으….”“차로 연하게 드셨던 때와는, 향이 또 전혀 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 …월초는 분명, 순혈인 당신에겐 명약이지요.”연강의 손이 이념의 턱을 천천히 감쌌다.이념은 거칠게 고개를 돌리며 그를 떨쳐냈다.“하지만, 그 기운이 넘치면… 몸도 마음도, 모두 다른 쪽으로 흐르게 됩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이념은 비로소 기억해 내었다.청운사의 다실.사라져가던 노을과 진한 차 한잔.그리고 그 앞에 앉아 있던 자의… 끈적한 손길.“…선묵?”“그를 아직도 기억하시는군요, 이념.”연강이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그 이름이 썩 반갑지는 않지만 말입니다.”“설마, 아는 사람입니까?”연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자가 우연히 당신의 정체를 알아차렸음에도 딴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당신과 나는 훨씬 더 빨리 만났을 겁니다. 몰래 월초에까지 손을 댈 정도로 대범한 자인지는 정말 몰랐지만….”“그게 무슨…!”“선묵… 그자는 아주 오래전에, 제가 직접 청운사로 잠입시켰습니다. 당신은 전혀 몰랐던 것 같지만, 그곳 청운사는 우리 백호족과 인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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