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炎常), 혹여… 백호족(白狐族, 흰 여우 부족) 순혈을 가까이서 본 일이 있나?” 랑하(狼河)의 말투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마치 금서(禁書)를 열어 보듯 조심스러웠다.시선은 연못을 향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현실을 비껴간 듯 꿈결처럼 흐릿했다. 여름 햇살이 현궁 뒤뜰의 정자를 넘어 붉은 연꽃 위로 흩어졌다.물결에 반사된 그 빛은 되돌아와, 잔뜩 굳은 랑하의 얼굴 위를 스쳤다.그의 등 뒤로, 묵직한 흑발이 진청색 장포의 허리춤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중원의 동쪽, 대동(大東).이 땅에서, ‘랑하’, 그의 이름 두 글자를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강인함과 차가움이 함께 깃든 존재감.많은 이들이 그를 상국(上國)에서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무장이라 칭했으나, 정작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다만 오늘, 그는 유난히 창백하고 허약해 보였다.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아직 부상의 여파를 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염상이라 불린 남자는 피식 웃으며, 원형 탁자 한쪽에 자연스럽게 걸터앉았다.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와 화려한 차림새는, 화호족(火狐族, 붉은 여우 부족) 특유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백호족 순혈이라면, 그 머리 허연 놈들 말이지? 그야 당연히 내 눈으로 직접 봤지! 그대들 현랑족(玄狼族, 검은 늑대 부족)이 여기서 궁이나 지키는 사이에, 변방에서 그놈들과 툭하면 부딪쳤으니 말이야.” 염상은 일부러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특히 '이영(李盈)' 놈이 나타난 날엔, 살아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라니까.” 랑하는 여전히 연못을 바라본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역시 위험한 자들이로군.” 염상은 그제야, 오랜 벗에게서 묘한 기색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그는 웃음을 거두고 랑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자네… 오늘 좀 이상한데. 왜 갑자기 그놈들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지?”“…….” 염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랑하를 주시했지만, 그는 입을 다문 채였다.염상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 듯, 다시 말을 쏟아냈다.
Last Updated : 2026-04-0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