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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련 : 사랑을 탐하다의 모든 챕터: 챕터 131 - 챕터 140

141 챕터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2화 : 부활(復活) (2)

경렬의 낮은 목소리가 동굴의 공기 속에 울렸다.“극한의 음기를 지닌 몸에, 너무 많은 양기가 한꺼번에 몰렸습니다. 몸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내부가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그의 말은 차갑고도 명확했다.달리 방도가 없다는 뜻은, 굳이 더 자세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러나 랑우의 심장은 이를 부인하듯, 더욱 거칠게 뛰었다.그 순간, 이완이 힘겹게 눈을 떴다.갈라진 입술이 바싹 메마른 채 열리며, 희미한 바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는… 완전히 더럽혀졌어….”그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소리였다.랑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낙심한 이완이 제 생명을 그대로 놓아버릴까. 두려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그는 망설임 없이 이완의 뺨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점점 식어가는 삶의 의지처럼 차가운 체온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아니야.”랑우는 이를 악물고, 마디마다 힘을 실어 단호히 말했다.“그 누구도, 그 무엇도 너를 더럽힐 수 없어. …이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넌 여전히,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해, 완.”말끝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속의 의지는 바위처럼 단단했다.이완이 천천히 눈을 들어 랑우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 속에, 망설임과 절망이 뒤섞여 흔들렸다.“…나를 씻겨 줘, 랑우. 네 손으로… 깨끗하게….”마치 마지막 같은 부탁 속에는, 한없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랑우는 대답 대신 강하게 이완을 안았다.그리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히 동굴을 나섰다.은월단 중 그 누구도 그들의 앞을 막지 않았다.***랑우는 이완을 안은 채로, 이제는 은어곡이라 불리는 둘만의 장소로 향했다.사랑하는 이의 연약한 숨결이, 품 안에서 겨우 이어지고 있었다.그 호흡이 그대로 멈춰버릴까 두려워, 랑우는 이완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계곡 위로 달빛이 부서지고, 은빛 조각들이 비단결처럼 흘러내리며 그들을 감쌌다.랑우는 물속에 그대로 앉은 채, 제 무릎 위에 이완을 조심스레 눕혔다.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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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3화 : 백호(白狐) (1)

상국 곳곳에 소문이 번지고 있었다.동북 변방, 사람의 눈이 쉽게 닿지 않는 깊은 산맥 속.그곳에 신비로운 흰 여우가 산다는 이야기였다.푸른 눈동자와 은빛 머리칼을 가진 사내.분명 사람이나, 마치 신수(神獸)처럼 신비로운 모습으로 전장을 지배하는 자.죽음의 벼랑 끝에서 보란 듯 다시 살아 돌아온 자.그리고 그 옆에는, 상국을 배신한 검은 늑대 한 마리가 있었다.한때 토벌군의 선봉장 중 한 명이었던, 상국 최고의 젊은 장수.그가 은빛 사내에게 무릎을 꿇고, 그를 대신해 검을 휘두른다는 소문.처음엔 모두가 비웃으며, 패배자들의 망상이라 치부했다.그러나 점점 더 많은 발걸음이 하나둘 그 산을 향했다.귀족의 횡포에 땅과 가족을 잃은 농부들, 역적의 누명으로 멸문당한 이들, 도망친 노예, 버려진 병사와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로 끌려온 이들까지.사람들은 입을 모아 속삭였다.“그 산에는 버려진 자들을 받아주는 흰 여우가 산다는군.”처음 그곳은, 그저 관군들의 눈을 피해 숨죽여 사는 이들이 모인 작은 공동체였다.그러나 그 중심에 ‘흰 여우’라 불리는 두목이 있었고, 그 곁에는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보필하는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있었다.이완은 버림받고 그에게로 피한 모든 이들을 기꺼이 받아주었고, 랑우는 그런 그의 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두 사람을 두려워했으나, 곧 모두가 알게 되었다.그들이 이끄는 무리는 무의미하게 피를 흘리지 않으며, 약자를 지키고 품는다는 것을.그렇게 ‘도망친 자들의 숲’은, ‘살기 위해 모인 자들의 성채’로 변모해 갔다.눈처럼 하얀 여우가 그려진 깃발 아래, 그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이름으로 불렀다.백호족(白狐族, 흰 여우 부족).달이 밝은 어느 밤.소나무 위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그림자.랑우가 조용히 말했다.“완, 모두가 널 믿고 따르고 있어.”이완은 달빛을 바라보며 잔잔히 미소 지었다.두 개의 푸른 눈동자에 달이 나란히 비추었다.랑우는 그의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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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3화 : 백호(白狐) (2)

상국 동북 변방의 산맥은 숨을 삼킨 듯 고요했다.한겨울 밤.차가운 산등성 위로 희뿌연 서리가 내리고, 가느다란 나무껍질 틈새마다 얼음 결정이 매달려 있었다. 저 멀리 골짜기에서 늑대 울음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 세상은 온통 은빛 정적에 잠겨 있었다.그 고요 속을, 검은 그림자들이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흑의로 전신을 감싸고, 날카로운 칼을 품에 숨긴 수십 명의 사내들.상국 군부 최정예 중의 최정예,그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했으며, 그 어느 성읍이든 하룻밤이면 무너뜨릴 수 있는 자들이었다.오늘의 목표는 단 하나.상국 황실의 오랜 치욕인, 저주받은 사생아.지금은 백호부의 주인인, ‘은발의 괴물’을 죽이는 것.“그놈의 머리를 베어, 이 밤에 황상께 올린다.”우두머리의 속삭임에, 나머지 그림자들이 눈빛으로만 대답했다.산길을 벗어나자, 어느새 그들의 시야에 하얀 성곽이 모습을 드러냈다.백호부.마치 빙설을 쌓아 올린 듯 매끈한 돌벽이, 달빛을 받아 서리처럼 반짝였다.높은 성루 위에는 횃불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그 너머에서는 희미한 인기척이 스쳤다.바람조차 얼어붙은 밤인데, 성곽에서 풍겨오는 공기는 묘하게 뜨겁고 단단했다.이 성은 단순한 방어 거점이 아니었다.‘백호족이 이 땅에 뿌리내렸다.’그 사실을 온 세상에 당당히 선언하는 상징 그 자체였다.자객들의 발끝이 굳은 눈밭 위에서 잠시 머무르는 순간, 갈고리가 성벽 위로 날아올랐다.쇠사슬이 성벽에 걸리자마자, 그림자들은 일시에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그때.성벽 귀퉁이의 망루 꼭대기.달을 가만히 등지고, 또 다른 그림자가 서 있었다.하얀 도포 자락.바람에 찬란하게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그 사이로, 푸른 불꽃 같은 눈이 노려보듯 번뜩였다.그 눈빛이 자객들의 몸을 훑는 순간…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었다.자객들의 팔과 다리가 무거워졌다.칼자루가 하나둘씩 손에서 미끄러졌다.마치 목울대를 보이지 않는 손이 움켜쥔 듯, 호흡이 가빠오기 시작했다.그 존재는 여전히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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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4화 : 염렬(炎列) (1)

백호부 경내 서편, 경렬의 처소.창호 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등불 심지를 가볍게 흔들었다.경렬은 나지막한 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한 손에 술잔을 쥔 채, 무겁게 처진 어깨 아래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술잔 속에 비친 얼굴은 잔뜩 피로해 보였다.“이런 제길… 이제 정말로 지치는구나….”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엔, 오래 묵힌 독기가 가득 배어 있었다.“저 미천한 것들이 감히 내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것을,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이완은 백호부에서 신분의 귀천이 다 사라졌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여기서 그는 ‘의원님’, 혹은 그저 ‘경렬’.그러나 그 이름은 그의 수많은 가면 중 하나일 뿐이었다.그의 진짜 이름은… 염렬(炎列).현 상국 황제 염위의 사촌 염평(炎玶)의 아들.어머니가 천한 기생이라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패였고, 궁의 대리석 바닥조차 제대로 한 번 밟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황족에게 받은 절반의 피는… 그에게 아무런 권리를 주지 못했다.밥상 위엔 찬밥.앉은 자리마다 된서리.그는 그때마다 잔잔히 웃었다.아버지라고 불러보지도 못한 친부의 적통이라는 그 반쪽짜리 형제들이, 자신을 사정없이 때리고 골방으로 내칠 때도 웃었다.언젠가는 반드시 그들을 무릎 꿇릴 날이 올 거라 믿었으니까.그는 사람 좋은 의원 행세로 환심을 사고, 현웅 같은 고아들을 어렸을 적부터 길러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산채 두목이었던 야귀를 이용해 사람 장사로 돈을 모았다.그러던 어느 늦은 밤.신비로운 능력으로 사람을 여럿 죽이고 탈출했다던, 후궁의 사생아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쓸모가 있을까 하여 수하들을 풀어 쫓던 중, 운 좋게도 연무곡 초입에 쓰러져 있던 그 은발과 벽안의 청년을 쉽게 손에 넣었다.냉궁 괴물, 염완.제 스스로 이름을 ‘이완’이라 바꾼 자.염렬은 그를 보자마자 직감했다.모든 것을 역전시킬 강력한 패.자신만을 위한 유일무이한 검이 될 존재.그의 힘을 손아귀에 넣으면, 상국 황실도, 자신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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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4화 : 염렬(炎列) (2)

차갑고 따뜻한 두 사람의 체온이 점점 더 닮아가기 시작했다.랑우의 숨이 입술 위로 내려앉자, 이완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다.입술 끝이 천천히 벌어지고, 숨과 숨이 더욱 깊게 얽혀들었다.“하아…”매끈한 이완의 등을 타고 내려오는 랑우의 손길이, 허리를 넘어 더 아래로 미끄러졌다.그 손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퍼지는 저릿한 감각에, 이완의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흐으… 아읏….”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 몸을 떠는 이완의 목덜미에 랑우의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아으… 랑우….”신음을 참아보려는 듯 낮게 울리는 소리.순간 랑우의 입술이, 한껏 예민해진 가슴의 돌기를 덥석 물어왔다. 동시에 거친 손이 사타구니 사이를 거머쥐자, 이완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아! …하읏!”등불 빛이 두 사람의 피부 위에서 잔물결처럼 떨렸다.이완은 눈을 감고 랑우의 손길과 품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어느새 차가운 제 몸 안으로 랑우의 따뜻한 몸이 단단하게 밀고 들어오자, 뱃속에서 심장까지 불이 붙은 듯 단숨에 달아올랐다.“…하아!”랑우의 까슬까슬한 손끝이 이완의 손을 찾아 단단히 쥐었다.창호 밖은 여전히 눈발이 흩날렸다.그 밤, 그들은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서로의 품이, 백호부가 영원히 건재할 것이라고… 그리 믿었다.***다음 날 아침.성벽 위의 깃발이 바람에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펄럭였다.눈은 멎었으나, 공기는 여전히 매섭게 차가웠다.“족장님, 의원님께서 조용히 뵙고 싶어 하십니다.”비원의 말에, 이완은 랑우와 함께 염렬의 처소로 향했다.문을 열자, 따뜻한 온기와 은은한 차향이 흘러나왔다.염렬의 눈빛은 여느 때처럼 온화했으나, 그 깊숙한 어딘가에는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이완. 드디어 현웅이… 당신이 그리도 찾던 사람의 소식을 보내왔습니다.”이완의 푸른 눈동자가 동그랗게 크기를 키웠다.“…제 어머니 말씀입니까?”“그래요. ‘옥비’라는 이름으로 불리시던 분이죠.”염렬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걸렸다.“비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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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5화 : 이별(離別) (1)

백호부의 산자락에는 늦겨울 바람이 부드럽게 흘렀다. 아이들이 눈밭 위에서 함성을 지르며 구르고, 장인들은 마당 한쪽에서 활시위를 고쳐 매고 있었다. 성문 앞에 서 있던 이완은 멀리서 병사들의 훈련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거칠게 들려왔다. 랑우와 경렬이 떠난 지 나흘째.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랑우가 돌아오면, 얼른 그와 함께 시험해 보고 싶은 병법이 수두룩했다. 그때 문루 위에서 울려 퍼진 급박한 종소리. 숨이 목까지 찬 비원이 그의 앞으로 급하게 뛰어왔다. “족장님! 랑우 님이… 상국 군에게 생포되셨습니다! 경렬, 그자가 배신을….” “…뭐라고?” 이완이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었다. “처형일이… 이틀 뒤 정오, 황성 앞뜰이라고…!” “…처형…?” 그 순간, 이완의 시야에서 주변 풍경이 모조리 사라졌다. 귓가엔 오로지 피가 심장에서 솟구치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곧 부족의 원로와 장수들이 모여들었다. “제가 가서 랑우를 데려오겠습니다.” 이완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주위 공기를 누를 만큼 차갑고 서늘했다. “안 됩니다, 족장님! 상국 황성은 사방이 군영입니다. 그것도 대낮에….” “맞습니다! 누가 봐도 함정입니다! 이건 분명 족장님을 노리는 적의 계략입니다!” 이완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 푸른 눈동자 깊은 곳에서 달빛이 번뜩였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가야 합니다.” 방 안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저 혼자 가겠습니다. 그 누구도 따르지 마십시오. 이건 명령입니다.” *** 겨울의 끝. 한낮의 태양이 오늘따라 무자비하게 내리꽂혔다. 성루와 석벽이 오래간만에 뜨겁게 데워지고, 처마 끝에 고였던 눈은 완전히 물방울이 되어 흘러내렸다. 황성 앞뜰 중앙에는 거대한 처형대가 세워져 있었고, 수백 명의 군사들이 빽빽하게 둘러싸 철벽을 이루었다. 그 위에, 두 손이 결박되고 족쇄가 채워진 랑우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재갈이 입을 틀어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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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5화 : 이별(離別) (2)

병사들이 일제히 창과 칼을 움켜쥐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이완은 조용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순간 돌바닥이 쾅 하고 울리고, 바닥 틈새로부터 균열이 번개처럼 퍼졌다.이완이 둘째 걸음을 내딛는 동안, 갈라지며 조각난 돌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병사들의 칼과 창날이 빛을 받아 번쩍였으나, 그 순간 바람이 방향을 바꿔 병사들의 시야를 찢어버렸다.이어진 셋째 걸음.폭발하듯 울린 진동과 함께, 수십의 병사들이 허공에 뜨며 몸이 부서졌다.갑옷이 찢어지고, 칼이 땅바닥에 부딪혀 쨍그랑 소리를 냈다.비명과 금속음, 그리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살아남은 병사들도,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목덜미를 짓눌린 듯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갑옷이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병사들이 떨리는 손으로 창검을 놓는 모습이 보였다.도망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백성들마저 무릎이 꺾이며 내려앉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들 모두, 그 은빛 파동 앞에 한 마디 소리도 내지르지 못했다.염렬은 발악하듯 손을 뻗었으나, 순간 알 수 없는 힘으로 단상 위에서 그대로 튕겨 나갔다.그 모든 혼란을 뚫고… 이완이 랑우에게 다가갔다.한 걸음.또 한 걸음.형틀의 두꺼운 쇠가 으스러지며 부서져 나갔다.랑우를 묶은 질긴 밧줄과 입에 물린 재갈이 절단되듯 풀리며 바닥에 흩어졌다.마침내.이완은 두 팔로 랑우를 끌어안았다.거친 숨결이 서로의 목덜미에 닿았다.“…내가 왔어, 랑우.”그 말에, 랑우가 희미하게 웃었다.그러나 이완의 호흡은 무겁게 쳐져 있었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은빛 파동 또한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그때.휘이이이익…!화살들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소리.성벽 위로부터, 수십 발의 쇠촉이 허공을 찢으며 몰려왔다.그 찰나의 순간, 랑우가 몸을 틀었다.아무 말도 없이 두 손으로 이완의 어깨를 감싸며 그의 몸을 온전히 가렸다.거침없이 날아온 화살 하나가 랑우의 부서진 좌측 어깨뼈를 다시 한번 꿰뚫으며 ‘퍽’하고 진득한 소리를 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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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6화 : 전설(傳說) (1)

바람은 고요했고, 숲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밤공기 속에는 이미 달빛이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산허리 위에 걸린 둥근 달이, 맑은 물결 위에 차갑고 밝은 빛을 한가득 부어주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시간과 숨결이 외진 계곡 안으로 모여드는 듯했다. 이완은 랑우를 품에 안고,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그 계곡 아래로 향했다. 그 발걸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길을 따라 걷듯 똑바로 이어졌다. 달빛이 물결 위에 고요히 내려앉아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겼다. 은어곡. 랑우와 함께한 짧은 추억이 고여 있는 은빛 물고기의 계곡. 이곳은 단순한 물줄기와 바위가 모인 곳이 아니었다. 그들이 처음 다시 눈을 마주했던 곳.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서로를 알아본 자리. 목숨을 걸고 서로를 탐하듯 부딪히며, 격렬히 사랑했던 밤의 숨결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이 식기도 전에, 서로의 얼굴에 맺힌 물방울을 닦아주던 기억. 밤새 망가지고 짓밟힌 몸을 다정히 씻겨주며, 따뜻한 어깨를 내어주던 순간. 이완은 이곳에서 랑우에게서 받았던 가장 진실한 위로와, 변함없이 고귀하다고 속삭여주던 그의 입술을 기억했다. 그 순간순간이 마치 달빛처럼 또렷했다. 마치 지금 눈앞에서 되살아나듯, 그 향기와 체온과 목소리까지 생생했다. 그러나 지금 품에 안긴 랑우의 몸은… 더 이상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돌처럼 굳어버려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고, 체온이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찬 물결이 발목을 스치더니, 곧 무릎까지 차올랐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물속에 천천히 잠겨 들었다. 흔들리는 은빛 물결 위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더는 구별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완은 랑우를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숨은 목구멍에 걸려 헐떡거렸고, 말라붙은 입술은 금방이라도 호흡이 멈출 듯 떨리고 있었다. 그 밝은 달빛 아래, 함께 사랑을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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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26화 : 전설(傳說) (2)

그날, 황궁 앞의 뜰은 무너진 세계의 심장처럼 고요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찢긴 깃발은 바람에 휘말려 망령처럼 울부짖었다.부서진 창과 칼은 사방으로 처절하게 뻗은 채, 더는 제 주인을 기다리지 않았다.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상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보는 앞에서 그 위용을 드러냈다.태양이 가득한 대낮.보이지 않는 기운이 하늘을 열었고, 햇빛을 가르고 몰아치는 달빛이 상국 황성을 흔들었다.그 빛은 서늘했고, 동시에 신성했다.그 순간… 낮과 밤, 생과 사의 경계가 무너졌다.그 알 수 없는 기운 속에, 은발과 벽안을 가진 청년이 서 있었다.그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땅은 진동하며 신음을 토했고, 먼지는 허공으로 피어올라 하늘에 기이한 무늬를 그렸다. 품에는 싸늘히 식은 시신을 안고 있었고, 그의 주위로 수백의 병사들이 마치 제물처럼 널브러졌다.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두 눈을 끝까지 뜨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눈을 감은 그 순간에도, 그 강렬한 빛은 모두의 뇌리에 새겨졌다.“한낮에 달빛이 걸어왔다.”“달의 포효가 태양의 정원을 무너뜨렸다.”“그 발걸음에 수십, 수백의 생명이 꺼졌다.”“그는 황궁마저 무너뜨릴 수 있었으나… 스스로 칼날을 거두었다.”불과 태양을 숭상하는 상국의 중심에서… 한낮에 떠오른 얼음 같은 달이 분노를 쏟은 일.황제는 그 사건을 역사에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남겨진 것은 단 하나의 어명.“반도 이완과 역적 랑우의 이름을 입에 담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그 말은 사람들의 입술을 일시적으로 봉하는 듯했으나, 오히려 그날의 일은 전설이 되어 온 대동 땅에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저녁 무렵, 백호부의 성곽 앞.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다.순찰병들이 떨리는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은빛의 그림자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혼자였다.핏빛으로 물든 옷은 낡고 닳아 빛이 바랬지만, 그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푸르고, 또 신비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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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운명을 거스르다 – 에필로그 1 : 성지(聖地)

달빛이 세상을 뒤덮은 밤이었다.하늘에서 흘러내린 은빛의 강물이 계곡을 감싸고, 그 빛 속에서 땅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졌다바위 절벽 사이로 흘러드는 물 위에, 달빛이 유리처럼 부서지며 흩날렸다.은빛 조각들은 강물 위를 따라 번져가다, 마침내 별빛과도 섞여 하나의 장막을 이루었다.그 장막 속에 두 그림자가 어렸다.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큰 그림자 하나, 그리고 그 곁에 기댄 작은 그림자.어른의 어깨는 산처럼 무거웠고, 아이의 앳된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무게와 빛이, 한밤의 계곡 위에서 고요히 겹쳐지고 있었다.아이는 숨결이 가늘었고, 조그마한 눈동자는 힘이 없어 보였다.그러나 달빛이 닿는 순간마다 그 뺨에는 미약한 생기가 스며드는 듯했다.남자가 아이의 두건을 벗기자…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카락이 고운 뺨 위로 흘러내렸다.그는 말없이 아이의 겉옷을 벗겨 바위 위에 올려두고, 자신도 천천히 두건을 벗었다.서늘하고 아름다운 얼굴,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은백색 머리칼이 달빛을 받아 찬연히 빛났다.그 순간, 마치 달빛이 사람의 형상을 빌려 내려온 듯… 계곡은 숨을 죽였다.남자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아이의 두 눈이 놀란 듯 깜박이며 떨렸다.“아버지… 여기서 뭘 하시려는 거예요?”“곧 알게 될 것이다.”그 품은 차가웠으나 동시에 부드러웠다.아이는 저절로 힘을 빼고, 가만히 몸을 맡겼다.남자는 아이를 안은 채 물가로 걸음을 옮겼다.찰박—차가운 물결이 발목에서 이내 허리까지, 또 어깨까지 스며들며 두 사람을 휘감았다.달빛은 물 위에서 번져 나와, 은빛 물결이 되어 그들의 살결을 타고 흘러내렸다.아이의 젖은 머리칼과 두 푸른 눈동자는 그 빛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였다.남자는 아이를 조금 높이 들어 올리며 물 위의 반짝임을 가리켰다.“이곳은 은어곡이라 한다. 계곡의 모습도 그렇지만, 빛이 반사되는 물결이 은빛 물고기를 닮아서, 내가 오래전에 붙인 이름이지.”그 말끝에, 남자의 시선이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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