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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련 : 사랑을 탐하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51 - チャプター 60

117 チャプター

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5화 : 선묵(善默) (1)

언제부터인가 습관처럼, 벽운은 대나무 숲 너머로 고개를 기울이곤 했다.그런데 요 며칠, 이상하게도 명인이 보이지 않았다.‘…이제 오지 않을 건가.’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러 무심한 척 연못가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합장하며 가부좌를 틀었지만, 묘하게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그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집요하게… 벽운의 마음 어딘가를 계속 비워내고 있었다.‘내가 설마, 지금 그를…기다리는 건가….’스스로에게 묻다 말고,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승려처럼, 맹인처럼 살아온 시간.그 안에는 스스로 세운 수많은 경계선이 있었다.때때로 감정조차도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다뤄야만 했다.그러기에 성인이 되도록,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이 ‘명인’이라는 자의 모든 것은, 모조리 각인되고 있었다.그가 이곳 후원을 찾는 때면, 바람의 결마저 달라졌다.공기를 가로지르는 향이 달라지고, 온기가 달라졌다.가끔은 그가 무심하게 건넨 짧은 말들이, 벽운의 하루를 환하게 밝히곤 했다.하지만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대숲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마저도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다.‘…참 이상하다.’그야말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어머니를 잃은 뒤로는… 처음 마주하는 누군가의 빈 자리.벽운은 마음 어귀 어딘가에 엉긴 감정을 풀어내 보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는 홀로 절의 다실(茶室)로 향했다. 그리곤 괜히 찻잔 몇 개를 어루만지며 뒤적거리다, 하나를 골라 찻물을 따랐다.서늘하게 식어가던 마음에, 따뜻한 차향이라도 닿길 바라며.한 모금 찻물을 머금은 순간…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심장이 저도 모르게 철렁 내려앉았다.‘…혹시…?’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기다리던 사람은 아니었다.“스님. 벽운 스님.”익숙하지만, 뭔가 불쾌한 느낌.미소와 냉기를 동시에 머금은 말투.“혼자 이런 평범한 차를 들고 계셨습니까? 제가 좋은 것으로 한잔 대접해 드리지요.”목소리의 주인공은,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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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5화 : 선묵(善默) (2)

청운사의 주지는 어린 벽운에게 틈틈이 약초에 대해 가르쳤다. 벽운이 성인이 된 후로는, 약초방 관리 업무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이날 밤에도 벽운은, 새로 들여온 마른 약초 더미를 하나하나 풀어 향을 맡으며 열심히 상태를 확인했다. 손끝으로 잎사귀, 줄기와 뿌리를 만지며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었으나, 두 눈은 여전히 꼭 감은 채였다.부지런히 습기 먹은 것을 조용히 골라내고, 버릴 것들은 따로 바구니에 담았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라, 약초를 만질 때는 차라리 눈을 뜬 게 더 어색했다.그때.무언가 흔들리는 기척이 느껴졌다.벽운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누구십니까.”대답은 없었다.하지만 공기 속에, 무언가 이곳 약초방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다.어느새 상대의 숨소리와 파고드는 시선마저, 감은 눈 사이로 생생하게 느껴졌다.“누구시냐고 여쭈었습니다.”그제야 문틈 너머에서 낮고 탁한 목소리가 흘렀다.“벽운 스님은 혼자 계실 때에도 이리 조용하시군요.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되더이다.”익숙한 목소리.그러나 이번엔, 뭔가 노골적인 갈증이 섞여 있었다.“오늘 낮에 다실에서 뵈었던 스님의 모습이, 눈앞에서 자꾸 아른거려서 말이지요. 혹시나 여기에 계시는가 하여 와봤습니다.”벽운의 손끝이 그대로 굳었다.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한밤중에 주무시지 않고 약초를 손질하시는 이유라도…?”선묵이 약초방 문을 넘어 바짝 가까이 다가왔다.“낮에 새로 들여온 약재를 정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오늘 밤 안으로 끝내두려고요.”벽운의 목소리는 평온했으나, 손끝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역시 책임감 있는 분이시군요.”선묵은 부드럽게 웃었지만, 왠지 모르게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그러니 그토록 아름다운 몸을 지니고도, 규율에 묶여 계신 거겠죠.”탁.벽운은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조심스레 입구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내일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선묵 스님.”그러나 선묵은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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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6화 : 위기(危機) (1)

며칠 후, 절의 다실.햇빛이 저물어가는 저녁이었다.기왓장 너머를 넘나드는 노을빛이 다실 안을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향로에선 얇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선묵은 느긋한 웃음을 머금은 채 다관을 들고 있었다.벽운은 선묵과 단둘이서 마주 앉은 이 상황이 정말로 내키지 않았다.그러나 이 넓지 않은 절에서 마주칠 때마다, 선묵은 귀찮을 만큼 수도 없이 만남을 청하였다.벽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다시 이곳 다실까지 오게 되었다.이제는 이럴 필요 없다고, 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벽운 스님, 저번엔 제가 무례했습니다. 스님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서 그만, 장난이 과했습니다.”선묵이 빈 잔을 ‘탁’하고 탁자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기분 나쁘셨다면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차는, 스님과의 오해를 풀기 위해 제가 특별히 준비한 것입니다."그는 잔에 천천히 찻물을 따랐다."그런데 벽운 스님. 항상 안색이 좀 창백해 보이던데, 무슨 지병이라도 있으신지요?”“…그렇습니까? 사람의 안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바가 없어….”선묵이 ‘훗’ 하고 웃었다.마치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암튼 요즘은 기력도 좀 딸려 보이시기에, 허한 기운을 보충하는 데 좋은 차로 준비했습니다.”벽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찻잔을 받아 들었다.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향이었다.은은한 듯 달콤한 것이, 묘하게 끌리는 느낌.“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잘 마시겠습니다.”그는 두 손으로 찻잔을 감싸 쥐듯 들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차향이 입천장을 타고 코끝으로 번지더니, 곧장 가슴께를 휘감았다.첫 모금은 달콤했지만, 두 번째를 넘기자, 혀끝이 미묘하게 저릿해졌다.한잔을 그렇게 다 비워내자 어느새 입술 안쪽이 뜨거워졌고, 두 뺨이 안쪽에서부터 발열하듯 달아올랐다.‘…이상하다….’벽운은 살짝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눈을 감고 있었지만, 선묵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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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6화 : 위기(危機) (2)

선묵은 비릿하게 웃으며 속삭였다.“이 약은 쉽게 이겨내실 수 없으실 겁니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만, 아주 특별한 효과를 나타내니까요….”“…나 같은 사람? …약이라고?”“이걸 쓰면 당신이, 쉽게 제 품에 안기리라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맞았군요….”그 말에, 벽운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심장이 가슴을 두드리며 거세게 뛰었다.들끓는 열기와, 벗어나야 한다는 이성의 외침….두 감각이 갈라지며, 두통과 현기증을 일으켰다.작은 다실 안에는, 어느새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창문으로 겨우 스며들던 햇살마저 모두 희미해졌다.벽운은 그를 억지로 뿌리치려다 저도 모르게 중심을 잃고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그러고는 두 무릎을 꿇은 채로, 어지러운 머리를 두팔로 감싸 쥐었다.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이기지 못해, 그는 점점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그 빈틈을 파고들 듯, 선묵의 뜨거운 몸이 그의 위로 덮쳐왔다.여전히 숨결은 탁했고, 이글거리는 체온이 연약한 팔과 허리에 감아 붙였다.“하…벽운…!”거칠게 달라붙는 입술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축축한 숨과 함께 피부에 닿은 혀끝이 끈적하게 살을 훑자, 벽운의 등줄기를 따라 전율이 흘렀다.“…아읏…!”“아아, 벽운… 그대를 이렇게 가질 날 만을 기다려왔소….”“싫, 싫어…!”그는 선묵에게 무자비하게 눌린 채로… 떨리는 손을 뻗어 허공을 더듬었다.그것은 마치, 이 숨 막히는 접촉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아윽…흑…!”입안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거의 기도에 가까웠다.“흐으…제발…누가 좀…!”그 순간.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무언가가 들이닥치는 소리."이 짐승 같은 자식이…!"분노로 짓눌린 목소리와 함께, 곧이어 묵직한 주먹이 선묵의 턱을 정확히 후려쳤다.그의 몸이 벽운에게서 떨어져 나가며 그대로 바닥에 굴렸다.다기가 와장창 깨져나가는 소리.어두운 방 안이 일순간 폭발하듯 요동쳤다.선묵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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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7화 : 벽안(碧眼) (1)

겹겹이 덧댄 창호 사이로 가벼운 빛이 스며들었다.벽운은 창백한 얼굴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속옷은 물론이고 이불까지 잔뜩 젖어 있었다.그는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 후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푸르른 두 개의 눈동자가 아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선명하게 빛났다.순간, 어젯밤의 잔상이 차디찬 물처럼 밀려들었다.자신을 감싸안던 든든한 어깨.떨리는 몸을 꼭 잡아주던 손."…명인."그 이름이,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얼굴이 저절로 달아올랐다.아무래도 약기운이 완전히 다 빠져나가지는 않은 듯했다.‘…내가 그에게 먼저 손을 뻗었지. 스스로 안기려 했고….’그는 눈꺼풀을 천천히 다시 닫았다.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아직 방 안에 남아 있는 그의 체취가 느껴졌다.진한 소나무 향기.청량한 온기.‘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내게… 끝내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순간 부끄러움이, 안도감이, 그리고 알 수 없는 깊고 복잡한 감정이 가슴 언저리에서 소용돌이쳤다.‘…나를 지켜줬다.’자신이 그를 부여잡고 어떤 말을 하며 매달렸는지, 얼마나 민망한 모습을 보였는지, 하나하나 떠올라 그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그 모든 장면의 끝엔…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함께 버티어주던 이의 그윽한 눈빛이 생생하게 기억났다.벽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못난 모습을 보였구나…."들켜서는 안 될 마음.점점 또렷해져 가는 감정.벽운은 자신이 지금 그에게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어젯밤의 일이, 비단 약기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그리고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두렵게 다가왔다.…그에게 흔들리고 있다.방문을 열자, 신선한 아침 공기가 그대로 밀려들었다.벽운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얇은 옷자락을 스친 바람이, 아직 새벽 기운이 다 빠져나가지 못한 복도 위로 서늘하게 불어 내렸다.그는 마치 범행 직후의 죄인처럼,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낯설게 느껴졌다.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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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7화 : 벽안(碧眼) (2)

랑헌은 순간 바로 대답할 수 없어 머뭇거렸다.그가 해맑게 건네는 질문 하나에, 그간 정체를 숨기고 해온 모든 일들이 중죄처럼 느껴졌다.‘내 이름은 명인이 아니라 랑헌이다. 나는 군부 감찰부 소속의 감영사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너와 네 아버지 랑하를 감시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는… 그런 시선으로 너를 바라볼 수가 없다.’그러나 이런 말들을 그의 앞에서 있는 대로 꺼낼 수는 없는 일.“당신은, 왠지 지켜드려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랑헌은 결국,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벽운은 그런 그의 말에 아주 작게 웃었다.햇빛이 감긴 눈꺼풀 위로 내려앉자, 속눈썹 사이에 순간 빛이 찰랑였다.“그 말씀… 그대로 믿어도 될까요?”잠시의 정적.“믿으셔도 됩니다.”벽운이 가만히 멈춰 서더니, 손을 그에게로 조금 내밀었다.허공을 짚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랑헌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자기 손을 가져가 맞닿게 했다.그러자 벽운은 그의 손을 가만히 당겨 쥐었다.순간, 바람이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부끄럽게도 어젯밤… 저는 자신을 잃고 완전히 무너질 뻔했습니다.”벽운은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명인 시주께서 저를 단단히 붙잡아주셨습니다. 저를 지켜주셨습니다.”랑헌은 순간 그에게 더욱 솔직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조여왔다. 그러나, 입안에 머금은 제 진짜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고통스러워하시는 스님을 그저 외면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고맙습니다, 진심으로.”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맞닿은 손을 통해,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연못 위에 흩어진 아침 안개처럼 조용히 번져갔다.그 아침.둘은 그렇게 같은 풍경 속에 함께 존재했다.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 그 순간 처음으로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그리고 그 길지 않은 시간이… 서로에게 영원히 남았다.***어김없이 해가 저물고 청운사에 어둠이 드리웠다.랑헌은 약초 창고에서 마주친 벽운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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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8화 : 각성(覺醒) (1)

“저, 저게 뭐야…!” “…뭐야, 저 눈!” 순간, 벽운의 팔을 잡았던 자들이, 돌연 무언가에 밀린 듯 차례로, 벽으로 튕겨 나갔다. “벽안… 백호족이다!” “저건, 저주받은 흰 여우의 자손!” “사람 살려!” “어어어어억!” 공포에 질린 외침이 연달아 터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방 안을 휘감은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공기가 사정없이 뒤틀리고 여기저기에서 번개 치듯 갈라졌다. 벽운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과 푸른빛의 기운은, 일순간 좁은 방 안을 완전히 삼켰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힘에, 나머지 왈패들도 하나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이리저리로 고꾸라졌다. 몇몇은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꽂혔다. 어떤 자는 마치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 혼자 머리로 벽을 치고 나가떨어졌다. 놀라서 뒷걸음치다 휘말린 사내 하나는, 맨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 거센 폭풍이 멈췄을 때… 방 안은 완전한 침묵에 휩싸였다. 오직 두 개의 푸른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눈동자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랑헌은 바닥에 쓰러진 채, 넋을 완전히 놓은 얼굴로 벽운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엄청난 기운에 떠밀려 바닥을 몇 번 구른 뒤였다. 그가 알고 있던 그 연약한 맹인 승려 벽운은… 그 순간, 전혀 다른 존재였다. 랑헌의 눈빛이 조금씩 초점을 찾으며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올려다본 벽운의 눈동자에는… 당당함보다는 공포와 경악,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일렁이고 있었다. “…벽운… 대체, 당신…?” 랑헌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나왔다. 그 안에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애써 밀어내려는 몸부림이 어려 있었다. 벽운은 그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왜 이런 건지….” 그러나 그 말은 허공 속으로 맥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랑헌의 눈동자에도 불꽃이 일렁였다. “…정말이야? 당신이 정말… 백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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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8화 : 각성(覺醒) (2)

‘이제 더는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갈 수 없겠구나.’ 그가 바랐던 것은, 그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 옆에 당당하게 서는 것뿐이었다. 아버지처럼 강해지고 싶었고, 전장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그를 곁에 두지 않으셨다. 사람들 앞에서 아들인 자신을 단 한 번도 자랑하지 않으셨다. 벽운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자신이 숨겨져야 마땅한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주받은 괴물이기 때문이라는 걸. ‘아버지도, 사실은… 나를 두려워하셨던 거야.’ 그 깨달음은… 그 무엇보다도 가혹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지 못하게 막고 계셨던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벽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더는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품을 내어줄 이도 이제 없었다. 이젠… 정말 혼자다. 그는 이윽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말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쓰러진 왈패들의 신음. 이리저리 끊어진 밧줄이 나뒹굴고 있었다. 랑헌은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목과 손등엔 피가 그대로 맺혀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쑤셔왔지만, 진짜 아픈 건 가슴 안쪽이었다. ‘벽안… 백호족이다!’ ‘저주받은 흰 여우의 자손!’ 그 비명들이, 아직도 귓속에서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자기 심장을 쑤셔대는 건… 다름 아닌 랑헌, 바로 자신의 말이었다. ‘당신이 백호족 순혈이 맞냐고!’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이미 믿고 나서 던진, 거칠고 무례한 선언. ‘…그에게 그렇게 말해버렸구나. 그런 눈빛으로.’ 순간, 벽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잔뜩 웅크린 어깨, 당황하며 고개를 떨구던 모습. ‘그러나 정말 순혈의 백호족이고, 또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거라면, 왜 그런 얼굴을 했던 거지? 그리고, 왜 나를 살려 준 거지?’ 정말 다 알고도 속여왔던 거라면, 정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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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9화 : 귀환(歸還)

청운사 경내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먹구름으로 잔뜩 흐려져 있었다. 산 아래서부터 스며든 짙은 안개가, 절 마당과 기와지붕 사이를 조용히 훑고 지나갔다. 랑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검게 그을린 피부 위에 패인 주름마다, 세월과 전장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한때 흑단처럼 검푸르던 머리와 수염에는 군데군데 은빛이 스며 있었고, 무겁게 묶은 상투 끝은 바람결에 느리게 흔들렸다. 짙은 눈매에는 피로가 잔뜩 서려 있었지만, 그 깊은 곳엔 사냥꾼 같은 예리함이 번득였다. 며칠 전, 그는 비로소 전장을 떠나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이 고찰(古刹)의 문턱에 섰다. “벽운이라는 승려를 찾고 있습니다. 젊고 말수가 적으며, 맹인입니다.” 절을 지키고 있던 늙은 행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벽운 스님이라면… 거의 한 달 전부터 보이지 않으십니다. 본래도 다른 분들과 별로 왕래가 없이 조용한 성품이긴 하셨죠. 한 번씩 절을 오래 비울 때도 계셨지만요. 그런데 지금은 방도 깨끗하게 비어 있고, 어디로 가셨는지 아는 이도 없습니다.” 랑하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상국에서도 존재 자체가 저주이거니와, 같은 백호족들에도 살해당할 뻔했다던, 그야말로 완벽하게 버려진 아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머리까지 직접 깎아서 몇 번이고 절에 들여보냈던 날들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는 아이의 법명도 직접 지어 주었다. ‘벽운(碧雲)’. 평생 숨어 살 팔자인 그 아이에게 딱 어울릴만한, 특별할 게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념(李念)’. 그 아이의 진짜 이름을, 단 한 번도 떳떳하게 불러준 적이 없었다. 그것이 두고두고 랑하를 가슴 아프게 했다. “혹시 최근에, 절 주변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랑하는 관복 차림 그대로 주지를 찾아가 조용히 물었다. 주지는 잠시 머뭇대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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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그리움에 입 맞추다 – 10화 : 단성(丹城) (1)

벽운이 청운사를 떠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발끝에 엉겨 붙은 흙먼지는 좀처럼 마를 틈이 없었다.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드리우면 밤안개를 가르며 걷고, 밝은 대낮엔 숲의 바위 사이에 숨어 있었다.파랗게 깎였던 머리 위로, 어느새 은빛 머리카락들이 삐죽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그는 급한 대로 버려진 옷가지와 거적때기를 주워 몸과 머리를 대충 감쌌다.쉽게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먼지투성이가 된 얼굴 위의 너저분한 천 조각들.이는 마치, 망자의 혼이 산길을 헤매는 듯한 모습이었다.처음엔 그저, 청운사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자의든, 타의든, 백호족 순혈에게 거처를 제공한 사실이 알려지면, 절에 있는 모두에게 큰 화가 미칠 게 분명했다.키워주신 아버지에게도 누가 될까 봐, 월성 쪽으로 갈 생각도 아예 하지 않았다.그는 그렇게 물 위를 떠도는 낙엽처럼, 길 위에 정처 없이 홀로 놓여 있었다.어쩌다 마을이라도 나타나면, 그는 그저 그림자처럼 잠시 어른거리다 사라졌다.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고, 구걸도 하지 않았으며, 산에서 열매를 따거나 시장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으면서 연명했다.그래도 밤의 텅 빈 거리 위에서는, 더 이상 맹인인 척할 이유가 없었다.그는 두건을 더욱 깊이 눌러쓰고, 입은 굳게 다문 채로 재빨리 지나갔다.그가 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끈은, 숨어 있는 동안에 길 위에서 간간이 들리는 사람들의 말뿐이었다.“청운사에서 저주받은 흰 여우의 자손을 봤다는 소문 들었소?”“설마, 그 귀신들이 아직도 상국 땅에 남아 있겠소. 뭔가 착각한 거겠지.”“관군이 움직였다는 말도 있더이다. 무슨 엄청난 놈이 진짜 나타나긴 한 모양이오.”“내가 들은 말로는, 단성(丹城)이라던가… 백호족 잔당이 그 근방에서 어슬렁거렸다는 말도 있소.”벽운의 두 파란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단성이라….’붉은 흙먼지로 뒤덮인, 상국 동남쪽 변방 도시.그 이름은 마치 수면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처럼, 그의 가슴 속에 파문을 만들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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