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닥치고 내게로 와(Submit to Me)!: Chapter 151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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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이 어둠을 견뎌내게 하소서

처절하게 흐느끼는 음성이 계영의 휴대전화 바깥으로 새어 나오자, 공기가 차갑게 굳어버렸다.“왜 그래, 리선아. 무슨 일이야.”계영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밀폐된 펜트하우스의 공기를 갈랐다.- 뭔가 이상해요, 계영 님. 흑흑······ 면회 허용 시간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여렌이 심정지가 왔었어요.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에 겨우 안도했었는데. 단순한 예후 악화가 아니라는 직감이 본능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계영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강무와 시선을 마주했다.“원인은.”- 의사 선생님도 납득을 못 하세요. 아무래도······ 외부인이 다녀간 뒤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흑, 경찰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게 분명해요. 완전히 손이 뻗어 있어요.계영은 벌떡 일어나 소파에 걸쳐둔 재킷을 낚아챘다. 그의 거친 움직임에 위스키 잔의 얼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아, 한비단 놈들이 이미 경찰 라인까지 장악한 게 분명해.”규련의 날 선 말에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먹잇감의 목줄을 죄어오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집요했다.“안 되겠어. 다시 가봐야겠다.”계영이 강무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뱉었다. 이미 그의 몸은 현관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규련과 강무 역시도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 상하이에 온 지 벌써 일주일, 12월도 벌써 둘째 주에 접어들었다. 푸동의 화려한 야경이 발밑으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와이탄 호텔 최상층 로열 스위트 룸.이곳에 따로 마련된 정보 통제실인 시크릿 룸에서 엘에프는 수많은 CCTV 화면 안에 비친 영상 중에 현신만 찾아 즐겁게 감상하는 중이었다.마카오를 탈출해 상하이로 귀환한 이후, 현신은 마치 제 목숨을 갉아먹듯 지하 넘버전에 광적으로 몰두했다. 그 위태로운 균열을 엘에프 역시 모를 리 없었으나, 그저 사냥 동물의 맹목적인 폭주를 관조하듯 내버려 둘 뿐이었다.“엘에프, 에스가 요즘 지나치게 넘버전에 매달리나 보군.” “더 하겠다는 걸 내가 강제로 제한을 두었어.”헤르만은 시크릿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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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악마에게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엘에프와 식사를 하고 평범하게 넘버전이 어땠냐는 이야기를 나누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먼저 잠이 들었다.그러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무휼’이라는 낯익은 단어가 귓전을 때렸다. 문고리를 잡은 현신의 손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엘에프와 헤르만, 저 거물들이 무휼을 언급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엘에프, 에스의 정보꾼 친구 코드명 휼이 왜 연락이 없지?]헤르만의 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뒤이어 엘에프가 특유의 냉소적인 웃음소리를 흘렸다.[그 한국 경찰처럼 다음 타깃이 된 거겠지. 켄즈 대표조차 모르는 깊숙한 정보에 손을 댔나 보군. ]현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일단 무휼이 꾸준하게 정보를 가계영과 엘에프에게 건네줬던 건 확실해 보였는데, 헤르만이 연락이 끊겨서 염려한다는 것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엘에프, 우리가 개입해서 도와줘야 하나?][켄즈 대표가 알아서 수습하겠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조만간 그쪽에서 먼저 필사적으로 연락이 올 테니까.]현신은 흘러나오는 비명을 막으려 거칠게 제 입을 틀어쥐었다. 무휼에 대한 걱정으로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이 쇄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감각조차 없었다.[그 녀석 꽤 능력 있잖아. 엘에프 그럼 나는 신경 끄고 기다리면 되나?][가계영 쪽에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간을 보는 것일 수도 있어. 꼬리를 잡기 위해. 기다려.]모든 세상일을 체스판처럼 내려다보는 엘에프의 말을 이번에도 믿고 싶은 그녀였다.무휼이 지금 몸을 숨기고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사람들과 거리를 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제발 이 지옥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 그날 늦은 밤.결국 현신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엘에프와 체스를 두게 되었다.둘이 머무는 거실 통유리창 너머로는 상하이의 야경이 아름답게 수가 놓여 있었다.어둠이 짙게 내린 황푸강의 수면 위로 대도시의 네온사인이 밤하늘의 별빛만큼이나 산란했다. 탁, 타아악-.고요한 정적을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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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내 손으로 모두를 지키게 하소서

상하이의 겨울밤은 차고 웅장했다.통유리창 너머로 몰아치는 12월의 강바람이 이곳 로열 스위트룸까지는 닿지 않을 텐데도, 맞은편에 앉은 현신의 가녀린 어깨는 유독 시리고 추워 보였다.‘더는 흔들리는 어린아이가 아니군.’처음 제 손아귀에 들어왔을 때의 현신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고 부서질 듯 연약한 아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가계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부딪치며 살아남은 현신의 눈빛은 몰라보게 성숙해져 있었다.뿐만 아니라, 어느새 제 눈에 너무나도 짙은 ‘여자’의 향취를 풍기는 현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자체가 엘에프에게는 생경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제 판 위에서 이토록 아름답게 진화하는 피스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대답해. 나의 에스.”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소유욕 짙은 음성이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찰나의 정적.현신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의 손이 거침없이 뻗어 나왔다.정적을 깨부수며 화이트 퀸(Queen)이 판 위를 강하게 내리쳤다. 엘에프의 블랙 킹을 정면으로 겨누는 완벽한 신의 한 수였다. “체크메이트(Checkmate).”사실 그에게 오늘 체스 게임은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지루한 시간 때우기용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번뜩이는 승부욕과 두려움을 지워낸 현신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어 괜히 즐거워졌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네가 이겨 버렸네?”엘에프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며 위스키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현신은 대답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는 손짓이 자못 초연했다.그녀의 입술이 열리며 흘러나온 대답은 서늘했다.“엘에프 선배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 제가 목숨을 걸고 기꺼이 살려줄게요. 대신, 잠자리 빼고요. 됐죠?”거침없는 거절과 선을 긋는 당돌한 조건들. 현신은 더 이상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무심하게 그녀는 뒤돌아섰다.“그럼 전 이제 잘게요.”용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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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무사함을 감사하게 하소서

12월 중순의 상하이는 제법 쌀쌀함을 품고 있었다.상하이의 뒷골목은 낮인데도 빛이 잘 들지 않아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낡은 건물 사이로 흙바닥의 먼지가 부유하여 시야가 흐릿하게 번져갔다.현신은 평소라면 호텔 밖으로 마음대로 나설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발걸음은 상하이의 거친 거리 한복판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역 토착 조직에 납치된 동료 넘버 두 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조직의 규율을 어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엘에프와 헤르만이 잠시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사태였다. 다른 상위 넘버들은 이미 구출 작전을 포기한 상태였고, 결국 현신은 자신 이하 하위 넘버들을 대동해 푸동 외곽의 낡은 건물 사이로 숨어들었다. 화려한 마천루가 일색인 와이탄 구역과 달리, 이곳은 음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우리 넘버 두 명은 이제 데려가겠습니다!”이곳을 점거하고 있던 지역 세력 20여 명은 현신이 이끈 무리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그리고 이곳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현신이 예를 갖춰 직접 상대했다.‘운동을 제법 한 사람이네. 하지만 전문 꾼은 아니야.’상대가 먼저 단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격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현신은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틀며 오른발로 허공을 찼다. 발끝에 정확히 맞았는지 둔탁한 파찰음이 공중으로 거칠게 튀어 올랐다. 뒤이어 명치에 꽂힌 뒤꿈치가 상대의 갈비뼈 사이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거구의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며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피비린내와 땀 냄새가 뒤섞인 거친 숨소리가 섞인 변명이 귓전을 파고들었다.“어린 분이······ 실력이 상당하시네요. 실은 저도······ 돈 받고 한 거라······.”현신은 그의 멱살을 움켜잡아 일으켜 세웠다. 피로 젖은 턱수염 사이로 남자의 진땀이 줄줄 흘러내렸다.“그럼, 이대로 마무리 지을까 싶은데요.” “······네, 죄송합니다. ······데려가십시오.”그들도 더는 저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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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진실의 문을 두드리게 하소서

‘······아. 다행이다.’현신은 이것이면 되었다고 여겼다. 무휼이 무사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었다.그녀의 극적인 안도감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효진은 신기하다는 듯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뭐야, 이게 뭐라고. 이상 없다니······ 그렇게 다행인 거야?” “네.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감사해요, 효진 님.”현신이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진심 어린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효진은 다시 특유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띠고 현신의 귓가로 살짝 다가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쉿. 더 있어. 잠깐, 이건 진짜 비밀 같아.”효진은 메신저 화면을 스크롤해 문자 하나를 더 현신에게 보여주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현신은 의문을 품은 채 효진의 영리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JJ그룹 창립기념일, 자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모든 사건의 열쇠 등장. ]화면 가득 박힌 문자를 현신은 보고 또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설날 마지막 날에는 항상 우리 집 행사를 하거든. 그게 아빠 회사 창립기념 파티인데······. 난 이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모든 사건의 열쇠라니.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사경을 헤매며 행방이 묘연한 무휼이 제 목숨과 맞바꿔 알아낸 정보가 분명했다.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단서였다.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상하이까지 직접 찾아와 정보를 전해준 효진이 진심으로 눈물겹게 고마울 뿐이었다.“이리 귀한 정보를 직접 전해 주시러 여기까지 오시다니······ 진심으로 감동이네요.”효진은 어깨를 가볍게 한번 으쓱거리더니, 다시 월병을 한 입 베어 물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어차피 상하이에 공연이 있었어. 그리고 나 왠지 007 작전의 언더커버 요원이 된 것 같아서 엄청 스릴 넘치네! 언제든지 나를 이용하라고. 기꺼이 막 이용당해 줄게!”천진난만하고 당당한 그녀의 성격에 현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스르륵 풀려나갔다.“하하, 네. 기꺼이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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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다시 거짓말쟁이가 되게 하소서

엘에프의 입가에 걸린 잔혹한 미소는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지만,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기묘하리만치 희미한 평온함이 깃들었다.“감히 내 명령을 어긴 못된 부하에게 이런 상을 주다니.”현신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셔츠 깃을 흠뻑 적시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네.”엘에프는 헤르만의 옆을 느릿하게 지나쳐 앞으로 걸어오더니, 땀에 젖은 현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선배······. 지금 제가 땀이 많이 나서 좀 지저분합니다.” “넌 특별하니 괜찮아.”금세 변덕스럽게 표정을 지워낸 엘에프는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손길로 현신의 얼굴과 목덜미를 깊게 쓸어내렸다.그리고 새 수건을 가져와 엘에프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하얗고 고운 얼굴과 달리, 그의 손에는 확실히 거친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크고 작은 흉터들이 가득했다. “왜 이리 친절해?” “선배도 제게 특별하니까요.”현신의 덤덤한 대답에 엘에프는 표정을 싹 지운 채,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기민한 눈빛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뭐 부탁할 거 있어?”역시 뱀처럼 촉이 좋은 엘에프였다. 현신은 침을 삼키며 본론을 꺼냈다.“선배, 한국에 잠깐만 보내주세요.”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를 참지 못한 헤르만이 성큼 다가와 기어이 현신의 멱살을 거칠게 쥐어잡았다.“미쳤어? 너, 우리와의 약속을 깰 셈이야?”멱살이 잡혀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현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덤덤하게 대꾸했다.“약속은 지킬 겁니다. 저, JJ그룹의 창립기념 파티에 가야 해요. 그곳에 모든 사건의 열쇠가 있다고 합니다.” “뭐?”엘에프는 흥미롭다는 눈치로 현신의 멱살을 잡은 헤르만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내렸다.“에스, 설명해 봐.”현신은 낮에 있었던 효진과의 만남과 그녀가 보여준 무휼의 문자에 대해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엘에프가 이윽고 환하게 웃으며 현신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왔다.“고작 검증도 안 된 소식 하나 때문에 한국으로 가겠다? 그냥 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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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빛나는 가면을 쓰게 해 주소서

같은 시각, 대한민국.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한규련의 회사 사장실에는 오랜만에 기묘한 침묵과 함께 팽팽한 온기가 감돌았다.대주주 총회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뒤 사장실로 자리를 옮긴 가계영, 한규련, 그리고 김강무가 한자리에 모여 조용히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어느덧 밤이 깊어 창밖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늦은 식사를 마친 직후였기에,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세 사람의 손길에는 여유가 스쳤다.“이렇게 셋이서 조용히 모이니까, 왠지 옛날 생각이 좀 나네.”한규련이 먼저 부드럽게 운을 뗐다. 그 말에 가계영은 들고 있던 찻잔 속의 맑은 액체를 가만히 응시했다.지난여름, 그 지독했던 계절에 현신이 제 곁을 떠나버린 이후로 세상은 벌써 시린 겨울로 접어들어 있었다. 홍콩에 워낙 오랫동안 머물다 온 탓인지, 그에게는 대한민국의 시간만이 유독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만 같았다.여전히 말문을 닫고 있는 가계영의 깊은 눈동자에 언뜻 새하얀 한기가 스쳤다. 감회가 새롭다 못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시려 오는 시간이었다.“그러게 말이야. 이맘때쯤 되니까 우리 마성의 알바생 생각도 좀 나고.”김강무 역시 찻잔을 입술에 대며 넌지시 한마디를 얹었다.가계영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경청할 뿐, 굳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다시 여름이 돌아오면······.’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편안해진 상태의 현신을 제 품에 안고 마주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가계영은 속으로 차갑게 되뇌었다.그때, 한규련이 품에서 고급스러운 재질의 붉은 봉투 두 개를 꺼내 테이블 위로 미끄러뜨렸다.“자, 다들 알지?”JJ그룹 창립기념 파티 초대장이었다. 한규련은 초대장을 내밀면서도 내심 신경이 쓰이는지 가계영의 눈치를 살폈다.“그런데 계영이 너, 이런 공식 행사에 등장하는 거 좀 부담스러우려나?”한규련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가계영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미련 없이 붉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 거침없는 움직임에 옆에 있던 김강무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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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저승사자의 동반자라도 되게 하소서

현신은 머리가 아찔했다.자신의 입으로 한국에 가겠다고 지르긴 했으나, 그곳에 안전하게 잠입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엘에프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분명 수많은 취재진이 몰릴 것이고,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가득할 터였다. 심지어 누구보다 주효진의 아버지가 개최하는 행사이니 그녀 또한 반드시 참석하지 않겠는가.“그건 불가능해요.”현신의 단호한 거절에 옆에 있던 헤르만이 웬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무심하게 방관만 하던 헤르만이 동조해 주자, 현신은 눈을 반짝이며 도와달라는 듯 그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냈다. “엘에프, 이 럭비공 같은 녀석을 파트너라고 데려가면 사람들이 비웃을 거다. 상류층 예법도 전혀 모른 채 쭈뼛거릴 게 뻔한데, 네 명성에 금만 가지 않겠어?”문제라는 게 그것을 두고 한 말이었나.현신은 황당함에 눈을 부릅떴다. “헤르만 선배, 말씀이 좀 심하시네요. 저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해요! 예법도 배우면 익힐 수 있다고요. 하지만······ 엘에프 선배랑 그렇게 가는 건 싫어요. 다른 방법으로 잠입할 거예요.” “하긴, 한국 최고 상류층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네가 어떻게 버티겠어. 차라리 웨이터로 위장하는 게 낫겠지.” “딱 그거예요. 전 거기 임시 고용된 인력으로 가고 싶어요.”그 사이 언제 잔을 비웠는지 바(bar)로 가 와인을 다시 채워 온 엘에프가 다가왔다. 그는 와인을 마시지는 않은 채 가만히 향만 음미하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아니, 웨이터는 더더욱 위험해. 네가 역으로 타깃이 되어서 소리소문없이 끌려갈 수도 있거든.” “선배, 그래도 그 방법은 싫어요.”투정을 부리듯 버티는 현신의 모습을 보며 헤르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신은 갑갑한 마음으로 엘에프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엘에프는 이 대치 상황이 진심으로 흥미로운지 얼굴에 화사한 웃음꽃을 피웠다.“그 방법이 가장 쉽고 확실해, 사랑스러운 에스.” “아무리 그래도 안 돼요. 이건 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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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게 해 주소서.

헤르만은 지금 너무 황당하다 못해 기가 차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어떻게 이 앙큼한 것이 이제는 자신까지 제멋대로 휘두르려 하는지. 자신이 대역죄인이 된 것은 아는지, 현신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소심하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헤르만 선배, 저를 파트너로 해 주세요. 선배는 소셜 포지션도 대단하고, 또······ 애인도 없으시잖아요.”보자 보자 하니 자신이 요즘 너무 물렁해져서 현신이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결국 헤르만은 참지 못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그냥 엘에프 옆에 서! 해 준다잖아, 파트너!”현재 대한민국으로 함께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엘에프의 명령도 기가 막힌 상황인데, 자신에게 현신의 파트너까지 맡으라니. 왜 하필이면 이번 임무의 불똥이 자신에게 튀어 이토록 사정사정을 해대는지, 헤르만으로서는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엘에프 선배는 효진 님 파트너잖아요.” “어차피 둘이 결혼할 사이도 아니야! 너희 둘, 갈수록 묘하게 닮아가는 거 아냐?”헤르만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현신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애초에 대한민국으로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게다가 제 옆에 파트너를 두는 일 따위는 평생 해본 적도 없는 그였다.“사람 험하게 굴리는 것도 그렇고! 무모한 생각만 골라서 해대는 데다가! 본인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일에 그저 몸을 풍덩 던져버리는 것까지!”엘에프와 현신은 폭풍처럼 화를 쏟아내는 헤르만을 도리어 덤덤한 눈으로 응시했다.헤르만이 마침내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을 지켜보던 엘에프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이윽고 장난기를 지우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현신을 향했다.“거봐, 헤르만은 배신한 놈을 처단할 때도 저만큼 화를 안 냈는데 말이야. 조만간 빅토리아 숙청 과정에서 난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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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이 지옥에서 눈물을 멈추게 하소서

“미션을 의뢰할까 하는데.”[ 기본 미션 착수금은 최소 1억부터 시작합니다.]엘에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소름 돋을 정도로 차분하게 울려 퍼졌다.그런데 ‘1억’이라니. 지금까지 자신이 목숨 걸고 처리했던 모든 미션은 천만 원, 이천만 원 수준이었는데.시작부터 몰려오는 배신감과 충격에 현신의 내면이 사정없이 흔들렸다.“나, 경찰청의 여렌 경위를 제거하고 싶은데 말이야.”엘에프의 충격적인 폭탄발언에, 현신은 두 손으로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한비단을 떠보기 위해 던진 미끼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전신에 힘을 주느라 가슴이 가쁘게 들썩였다.[해당 미션은 이미 타 의뢰인으로부터 1억에 접수가 완료되어 진행 중인 건입니다.]이런 미친 일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돈만 쥐여주면 이토록 쉽고 하찮게 의뢰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현신의 몸이 분노와 공포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곁에 서 있던 헤르만이 현신의 어깨를 묵직하게 꾹 눌러주며 진정시켰다.“그럼 그냥 생각이 바뀌었어. 여렌 경위, 살려.”그게 반대로도 가능한 일이었다니. 현신이 놀란 눈으로 엘에프를 빤히 바라보았다.[미션 취소 및 반대 의뢰의 경우, 수수료는 기존 금액의 두 배입니다.]두 배. 무려 2억이었다. 엘에프의 입꼬리가 매혹적이면서도 오만하게 호선을 그렸다.“2억, 지금 바로 입금해 주지. 대신 그 미션을 의뢰한 자와, 현재 수락한 놈의 이름을 대.”[두 가지 정보의 동시 확인 요청이군요. 건당 천만 원의 정보 이용료가 추가 발생합니다.]이제는 기가 차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부들거리던 몸은 오히려 맥이 탁 풀려버렸다. *** 돈, 그리고 또 돈. 한비단은 거액만 오간다면 정의도 불의도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는 추악한 집단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엘에프는 여전히 한 손에 와인잔을 든 채, 살랑살랑 여유롭게 붉은 액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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