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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평온함 뒤에도 그림자는 존재하지]

정민은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매만졌고, 기범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서늘한 눈으로 창밖만 응시했다.조수석의 현수 역시 제 코가 석 자라 슬쩍 도윤의 눈치를 살폈다. 도윤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여느 때와 달리 흉포하기 짝이 없었다. 감히 말조차 붙일 엄두가 나지 않는 현수는 결국 다시 룸미러로 뒷좌석의 정민을 바라보았다.정민의 표독스러운 눈빛이 현수에게 꽂혔다. 마치 이 대환장 파티가 전부 현수 때문이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현수는 억울함에 갑자기 속에서 열이 밀려 올라왔다. 밴의 창문을 먼저 내린 건 자신이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전부 경신 그 여자 때문이 아니던가.“도윤 씨랑 기범 씨도 그 여자랑 얼마나 친한지는 몰라도 좀 너무하네요.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차갑게 굴다니, 정말 섭섭하게.”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투덜거림에 현수는 찔린 듯 두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정민이라도 제 말에 동조해 주길 바라며 백미러를 보았으나, 돌아온 것은 정민의 한심하다는 듯한 비웃음이었다.상황이 꼬였다 싶어 현수가 도윤을 빤히 바라본 순간,“현수 씨, 나 열 받으니까 입 좀 다물어 줄래?”도윤의 나지막하고 서늘한 한마디에 현수는 헉 하고 숨을 삼키며 다시 백미러를 넘겨보았다.정민은 ‘거봐라’ 하는 눈빛으로 현수를 고소해하듯 입매를 꼬아 올리더니, 옆자리의 기범에게로 슬그머니 몸을 기울였다. 기범의 팔을 천천히 감싸 쥐는 정민의 표정은 불쌍한 척 애원하는 자의 그것이었다.“다들 미안해요. 셋이서 너무 다정해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나서 그만······.”정민이 사람을 살살 녹이듯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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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나만 모르는 위험한 기운]

이곳을 오롯이 즐기겠노라 마음먹은 덕분인지, 경신의 마음은 이보다 더 푸근할 수 없었다.“기사님, 정말 눈과 마음이 호강하네요.”“이 절이 그리 소문나진 않았어도 아주 영험한 곳이야. 소원도 빌고, 산속 맑은 공기도 원 없이 마시다 가.”“네. 사람이 붐비지 않는 조용한 곳이라 훨씬 좋네요. 산책로도 걸어보고, 반야도 만나고 절도 천천히 구경하다 갈게요.”그러자 택시 기사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희한하네. 세상을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데를 다 좋아하고. 허허!”실제로 현재의 나이보다 훨씬 오래 살아본 것이 맞았기에 경신은 그저 배시시 웃어 보일 뿐이었다.이동장 안에서 하도 난리를 치는 통에, 우선 강아지들에게 흙길을 밟게 해주려 문을 열어주었다. 꼬물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흙바닥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택시 기사가 떠날 채비를 했다.“귀엽구만. 사람도 없으니 강아지들 운동시키기에 딱 좋네.”“참, 기사님! 요금 계산해 주세요.”“차가 막혀서 임산부 몸으로 오는 동안 고생 많았지?”“아니에요. 기사님 덕분에 정말 편하게 왔습니다. 고맙습니다.”경신의 인사를 들으며 카드를 받아 든 기사는 싱글벙글 웃어 보였다.“나도 마음이 답답하거나 힘들 때 가끔 찾아오는 곳이야. 여기 서 있으면 속이 뻥 뚫리거든. 하하, 좋아해 주니 나도 기분이 좋네.”경신은 기사가 건네는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받아 지갑에 넣으려다 멈칫했다. 제법 멀리 온 것 같았는데 계산된 택시비가 너무 적었다.“기사님, 혹시 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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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위기! 소름 끼치는 순간]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던 화야의 말이 비로소 가슴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사찰에서 500m쯤 떨어진 산기슭에는 높이 3m가 넘는 석불좌상이 위엄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통일신라시대 제작]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경신은 사찰 경내를 천천히 거닐다 문득, 반야가 숨어있을 만한 그늘진 곳을 찾아 산자락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꼬물이를 키우게 되면서 이것저것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생각보다 반려견 출입이 제한되는 관광지가 많았다. 해안가의 주요 해수욕장이나 도심 근린공원은 물론,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국립공원에서도 반려견 동반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경신은 혹여나 실례가 될까 사찰 법당이나 경내 깊숙한 곳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언제든 강아지들을 이동장에 넣을 수 있도록 목줄을 손에 꼭 쥐고 대비를 마쳤다.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새로운 것을 접하며 열린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역시 반려견의 보호자가 되는 길도 쉬운 게 아니야. 아, 반야도 보고 싶은데.”그나저나 이곳 어딘가에 숨어있을 반야를 꼭 만나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개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가방에 애들 간식도 엄청 많이 챙겨왔기에, 새끼를 잃고 침울해 있을 반야한테 주고 싶었던 경신이었다. 그냥 포기해야 하나. 설마 반야가 사람들을 피해 일부러 도망친 걸까 싶기도 했다.새끼를 잃은 반야가 꼬물이들을 본다면 마음이 더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경신의 머릿속을 스쳤다. 인연이 아니라면 억지로 찾아 헤매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 나름 관광을 마친 경신은 강아지들을 다시 이동장에 무사히 집어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웅장한 절경을 감상했고 맑은 공기도 원 없이 마셨으니 이것으로 충분했다. 혹시 내려가는 길에 합승할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관광객은커녕 동네 주민 한 명조차 보이지 않았다. ‘절간처럼 조용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결국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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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나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요?]

‘뭐야? 잠깐만······ 이 몸뚱이, 대체 과거에 무슨 죄를 짓고 살았던 거야? 정말 큰일 났잖아! 대체 어떤 삶을 산 건데?!’경신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머릿속을 쥐어뜯었다. 속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자신을 이토록 증오하는 사람이 현수나 서정민 말고 또 있었다니. 기억조차 없는 자신의 과거가 심각하게 죄로 얼룩져 있었다는 사실이 뼈아픈 확신으로 다가왔다.배를 찌르는 극심한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저들의 사악함이 너무나 무서워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그럼에도 단 한 자의 정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경신은 온 신경을 귀로 집중시켰다. 다행히 그녀들은 해우소 근처를 지나쳐 산길 위쪽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여기 해발 400m라며? 미치겠네. 한 시간 내내 걸었어! 임산부가 이런 으스스한 데 등산을 올 리가 없잖아? 그냥 내려가자!][그래도 풍경은 좋네, 팔자 좋게 구경하나 보지 뭐! 어디 눈에 띄기만 해봐. 이번엔 절대 가만 안 둬!][게시판 보니까 그 여자 번호 또 바꿨다며? 번호만 알았어도 밤마다 전화 걸어서 제대로 미치게 만드는 건데.]세 번째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띵한 충격이 경신을 덮쳤다.그 순간, 머릿속에서 전등 스위치가 탁! 켜지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그러고 보니 자신은 지금 핸드폰 번호가 세 번째 바뀐 상태였다.‘과거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화야가 꼭 번호를 바꾸라고 당부했었어. 우연이 아니야! 분명 무슨 이유가 있는 거라고!’경신은 떨리는 두 손을 가만히 둥근 배 위에 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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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도와줘! 부탁이야!]

경신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다스리며 경찰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저는 서울에 거주하는······ 21세 경신입니다. 작곡가 T.K.의 K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입니다. 제가 죄를 지었을 수도 있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껴 신고합니다. 도와주세요.”신고는 즉시 접수되었고, 수화기 너머의 경찰관은 경신의 떨리는 음성을 감지한 듯 차분하면서도 신속하게 응대했다.-······네, 신고자분. 너무 겁내지 마시고 마음 가라앉히세요. 현재 위치로 경찰관들이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여성 3명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저를 추격하는 인원 외에도 동네에 조력자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경신은 깊게 숨을 내쉬며 현재 상황을 떨리지만 명확하게 전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점, 그리고 과거에도 휴대폰 번호를 수차례 바꾼 정황으로 보아 이런 위협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는 사실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 집단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경신 씨를 노리는 걸까요?“······저는 올해 2월 28일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조금 전 그 여성들의 음성을 녹음한 파일을 첨부하여 전송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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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소나기는 피해가야 하는데]

[어휴! 괜히 헛걸음만 한 거 아니야?][그러게. 꼭 오늘은 잡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도망쳤나 봐.][정말 이번엔 얼굴 보고 눈앞에서 따지려고 벼르고 벼려서 왔건만, 쯧!]세 여성은 독기를 품고 투덜대며 절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인터넷과 전화가 먹통인 것이 답답한지 계속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만 지켜보고 있었다.[그런데 아까 택시 내려서 계속 걸어 올라가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게시판에 글 올렸더니, 어떤 애가 음료수 쿠폰 쏴준 거 있지?][진짜? 나도 지금 개고생하고 있다고 써야겠다. 핸드폰만 터지면 바로 접속해야지.][우리 카페에는 왜 이리 천사 같은 애들이 많냐? 다들 너무 멋져!]그때, 번쩍!하늘이 쩍 하고 갈라지는 불빛이 번쩍였다. 어느새 먹구름이 서쪽 하늘에서 칠흑처럼 몰려오고 있었다.잠시 후, 귀청이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가 산울림을 탔다.쿠르릉, 쾅쾅쾅!번개와 천둥이 쉴 새 없이 몰아치자 세 여성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지며 목소리도 날카롭게 곤두섰다.[어우, 오늘 진짜 재수 없네! 어제 비 왔으니까 오늘은 맑을 줄 알고 우산도 안 챙겼는데!][전화도 안 터지는데 비까지 오면 어떡해! 콜택시도 못 부르잖아! 아, 짜증 나!][그럼 이 산길을 한 시간 동안 빗속에서 걸어 내려가야 하는 거야? 하늘도 무심하지!]세 여성은 하늘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며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후드득, 후드득.이미 굵은 빗방울이 대지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경신은 그들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으며, 아랫배를 움켜쥔 채 반야의 뒤를 따라 산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촉박하게 옮겼다.***그 순간, 한 여성이 나머지 둘을 급하게 불러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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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식스센스, 자꾸 불길해]

놀이동산에서 예정되어 있던 미니 콘서트는 갑작스러운 우천으로 인해 전격 취소되었다.어지간하면 출연진도, 관객도 비를 맞으며 공연을 강행하곤 했으나, 가수들의 건강과 수천 명 입장객의 안전을 고려해 주최 측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어차피 행사는 오늘과 내일 이틀간 예정되어 있던 터라, 아쉬움 속에서도 모여든 관중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흩어졌다.갑작스레 하루 스케줄이 붕 떠버린 가수들은 여유롭게 보문단지 특급 호텔로 이동해 오랜만의 휴식을 즐기게 되었다.에스트렐라 멤버들 역시 H호텔로 이동했다. 간단한 잡지사 인터뷰와 경주에 온 김에 촬영할 개별 브이로그 영상 정도를 마친 뒤 곧장 객실로 올라갔다. 트윈 베드 방 두 개와 욕실 두 개가 딸린 전망 좋은 펜트하우스 룸을 배정받은 그들은 오랜만의 한가로움을 만끽했다.“이거 진짜 하늘이 도운 거 아니냐? 다행이다, 진짜.”서먹했던 대기실 분위기를 허무는 건 언제나 막내 시온이었다. 기범은 시온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객실 미니바에서 맥주 네 캔을 꺼낸 도국이 소파 쪽으로 걸어왔다.“그래, 가수가 스케줄 펑크 내는 건 치명적인 사고인데······ 현수 씨도, 정민 씨도 다행이지 뭐. 기범아, 시원하게 한잔하자.”“어. 그나저나 그 둘은······ 제발 엉뚱한 사고는 안 쳐야 할 텐데.”“현수 씨랑 정민 씨도 잠깐 삐쳐서 도망친 거겠지. GPS 위치는 잡힌다고 아까 경찰한테 연락 왔다잖아? 조금만 기다려봐.”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범은 도윤과 함께 그녀들을 찾으러 경주 시내로 나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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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결단, 절박한 경고에 응답하다]

기범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자신이 경신에게 쿠키를 나누어 준 사실마저 이미 사생들 중 누군가가 빠짐없이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꼭 우리 동선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지켜본 사람 같네.”세용의 예리한 지적에 기범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유독 기범이 너한테 온 것 중에 이런 게 많아 보여. 정민 양도, K님도 당분간 조심시키는 게 좋겠다.”“기범이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렇지, 뭐. 도 넘은 사생이 꼬인 것 같으니까 앞으로 다 같이 주의하자.”멤버들의 한마디는 기범에게 그 어떤 위로도 되지 못했다. 이건 단순히 '앞으로 조심하자'며 넘길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이미 늦은 건 아닐까.깊은 한숨을 뱉은 기범은 서둘러 휴대폰을 들어 경신에게 전화를 걸었다.[귀하가 거신 국번은 없는 번호이거나······.]기계적인 차가운 음성만 돌아올 뿐,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아······ 이런. 제발······.”그렇게 그냥 보낼 일이 아니었는데. 경신의 뒤를 쫓으며 눈을 번뜩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토록 거슬렸음에도 왜 더 강력하게 잡지 못했을까.기범은 휴대폰을 꼭 쥐고 멤버들에게서 슬그머니 떨어져 침실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아걸고 이번에는 정민의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여전히 수화기 너머는 무음이었다.무어 하나 개운하게 풀리는 것이 없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기범은 마지막으로 태하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깊게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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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위태로운 시선이 얽혀]

창밖에서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간지러운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흩어졌다. 하지만 태하의 신경은 그 싱그러운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수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파블로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 오로지 그 소리만이 그의 세계를 지배했다.― 티아고, 나는 지금 네 도움이 필요하다.단순한 청이 아니었다. 태하가 스페인에 더 머물러야 한다는 명백한 통보였다."홍콩 쪽 보고는 이미 받으셨겠군요."― Me alegra saber que el rescate de la compañía ha pasado de 1.500 millones a 2.000 millones de euros. (회사의 몸값을 15억 유로에서 20억 유로까지 띄워 놓았다니, 아주 흥미롭구나.)수화기 건너편의 파블로는 카를로스 회사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을 꽤나 흡족해하고 있었다. 태하는 그 속내를 너무나 쉽게 읽어 냈다."Limpiar es un desperdicio. (이쯤 되면 털어내기엔 아깝죠.)"― ······그래서?"경신이 덕분입니다."경신을 제 품에 두기 위해, 그녀를 돌보느라 한국에 묶여 있던 시간 동안 모든 계약을 동결시켰던 것이 뜻밖의 한 수였다. 그 사이 호재성 언론 보도가 잇따르며 기업 가치는 상상 이상으로 치솟았으니까.― ¿Tanto odias casarte con la mujer que yo decido? (내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하는 게 그토록 싫은 거냐?)파블로는 태하의 의중을 단번에 파악하고는 칼같이 주제를 틀었다. 당초 태하의 부모는 그가 아직 젊어 일시적인 연정에 휩싸인 것이라 여겼고, 경신이라는 존재를 그저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치부했었다."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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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나쁜 남자에게 전하는 차가운 진실]

[JJ소속사 여자 가수들 불성실 논란이 들끓어][국내 유명 작곡가 K모양, 왜 경찰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신고를 했나][한창 인기가 상승 중인 모 여자 가수 2명 사라진 것과 K작곡가 실종의 연관성은?][곧 듀엣 앨범 출시를 앞둔 모 여자 가수, 작곡가 K와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나][대히트 유명 작곡가 K양, 현재 경주 남산 수색에도 실종 상태······ 범죄 연관성 수사 모아져]도윤은 정말로 현수가 이 지독한 사태를 저지른 것인지 실감하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봉선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자신의 앞길을 막으려 드는 현수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이 어찌 저토록 즉흥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단 말인가.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쇼케이스를 앞두고,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이에 대한 질투에 눈이 멀어 이런 짓을 벌이다니.빨리 현수나 찾아내어 무대에 차질이 없도록 수습해야 마땅하거늘, 서정우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지금 정민과 현수가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보다 JJ엔터의 추락할 이미지를 더 걱정하는 대표의 태도에 도윤은 진저리가 쳐졌다."최 실장! 당장 틀어막아! 우리 회사 이름이 더 이상 기사에 오르내리지 않게 하라고!""네, 아······ 그리고 현수랑 정민이가 정말 사고라도 친 거 아니겠죠? 아무리 경신 양이 미웠기로서니 원······ 어휴, 정말 속이 터져 죽겠네요!"서정우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수병을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던졌다.그 살벌한 광경을 지켜보던 도윤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겨우 열어 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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