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메의 아픈 다리를 치료한 것도, 황제에게 신분을 들킬까 봐 시라이엔 영애로 거듭나게 한 것도, 돌이켜보면 모두 여러 사람의 지혜가 합쳐져 나온 결론이었다.함께 모여서 황궁에서의 일을 복기하다 보니, 이 순간 지독하리만치 에스메가 보고 싶어졌다.“라이신, 표정이 좀 나아졌구나.”모두가 만나 의논을 하다 보면 자신이나 할 로드의 일도 결국 돌파구를 찾지 않을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그려진 덕분이었다.“어쩌다 어려움도 극복하고, 각하께 과분할 정도로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요. 너무 좋아서요.”제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이렇게 누군가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결혼’이라는 달콤한 미래를 기다리게 되다니. 행복하다는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꿈만 같다는 고백은 라이신의 진심이었다.그녀는 휘두르던 레이피어를 잠시 내려놓고 덤덤한 눈으로 대공저의 웅장한 전경을 바라보았다.“라이신, 걱정 마라. 각하께서 전부 해결해 주실 거다.”정말 바아르에게 온전히 기대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걸까.전쟁을 치르지 않고 레투니카 황가의 견제를 피하는 것, 그리고 구 도르하르 제국과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는 것. 아마 제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바아르가 에스메와 혼인하고, 라이신이 도르하르의 황태자와 결혼하면 모든 갈등이 깔끔하게 해결될 일이라고.하지만 바아르가 써 내려가는 정답은 정반대라는 게 문제였다. 그는 라이신과 결혼한 뒤 도르하르가 이를 빌미로 쳐들어오면 가차 없이 물리치고, 더 나아가 레투니카 황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전쟁을 치르는 것만이 비원을 이루는 길이라 믿고 있었다.“섀도우 형님. 실은 모두가 평화로울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그걸 거스르려고 하니 고민이 되네요.”씁쓸하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내며, 라이신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열어 물을 들이켰다. 이제는 제법 쌀쌀한 가을이라 얼음물까지는 필요 없었건만,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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