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80

270 فصول

#170. 머릿속에는 꽃밭만 가득했는데

10월 1일.그야말로 온전하고 완벽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라이신과 바아르가 함께 눈을 뜬, 기적과도 같은 날이 밝았다.어제 침실에서 폭주하듯 마력을 구현하느라 사방이 엉망진창이었지만, 순식간에 본래의 형태로 복원한 뒤에야 평온한 밤을 맞이했었다. 혹여 눈을 뜨지 못하면 어쩌나 염려했던 불안이 무색하게도,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원초적인 민낯으로, 서로를 품에 안은 채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대공가의 기사 라이신이자, 루타스 캔돔가의 영애 시라이엔.이제 그 어떤 모습이라도 바아르에게 온전히 인정받게 된 라이신은 살다 보니 제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 가슴이 벅차올랐다.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4가지 속성의 마법을 모두 부리는 초월자가 된 라이신과 그녀가 가진 마법을 똑같이 구현할 수 있도록 각성한 바아르. 두 사람은 이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의 보유자가 되어 있었다. 지난 고통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축복과도 같은 진화였다.라이신은 혹여 제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닐까 잠시 서운할 뻔했으나, 오히려 한계 이상으로 늘어난 힘을 느끼며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네가 어제 또 무리해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했다.”“각하, 이래저래 대단한 각하의 모습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서 그런지, 유독 남다르게 보이네요.”바아르는 라이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꿰뚫어 보고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제 품으로 깊숙이 가두었다. 이마와 뺨에 다정한 낙인을 찍듯 부드럽게 입을 맞추던 그의 커다란 손이, 은밀하게 허리를 타고 올라와 어느새 가슴팍에 닿았다.“그래. 어제와는 다르겠지만, 내일부터는 매일 반복될 일과가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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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이번 생의 결말은 무엇일까?

그날 오후.바아르가 밀린 정무를 보러 집무실로 향한 뒤, 라이신은 홀로 그의 침실에 남겨져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전쟁이라니.바아르와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가슴을 짓누르는 묵직한 무게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캔돔 대공가가 레투니카 황가로부터 이토록 일방적인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에, 라이신의 안에서도 결코 가라앉지 않는 분노가 들끓었다.전생에 군인이었던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결국 만만하게 여겨져 처참히 짓밟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토막 난 생각들을 정리하던 그때, 침실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세이바로였다.“안녕하세요, 세이바로 님.”가신들을 모아 회의를 주재할 때, 바아르는 라이신에게 전담 호위 기사를 붙여 보호하겠노라 공표했었다. 그런데 그 호위 기사가 다름 아닌 세이바로라는 사실은 라이신에게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라이신 경, 아······ 아니, 시라이엔 님. 아,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하.”“그냥 예전처럼 라이신이라고 불러주세요.”라이신은 자신이 가장 낮은 하인 시절부터 바아르와 얽혔던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세이바로였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세이바로가 그런 그녀의 속내를 읽은 듯 싹싹하게 미소를 지었다.“라이신 경, 절 불편해하지 마십시오. 이제 공기처럼 그림자처럼, 뒤를 보필하겠습니다.”참 알 수 없는 게 사람 인연이었다. 누군가를 지키던 처지에서, 이제는 누군가의 호위를 받는 사람이 되다니.라이신은 묘하게 갑갑해지는 가슴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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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내가 종말을 막아 내고 싶은데

라이신은 답답한 가슴도 달래고, 할 로드와의 추억도 되새길 겸 연병장으로 향했다. 다가올 전쟁을 위해 대공가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그녀의 뒤를 세이바로가 그림자처럼 호위했다. 연병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느껴지는 공기는 미하엘의 데뷔탕트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숨 막힐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대공저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가장 큰 변화는 연병장에 감도는 분위기 그 자체였다. 누군가 강제로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훈련이 아니었다. 기사들과 병사들 모두가 스스로 자발적인 지옥훈련을 자처하고 있었다.치열하게 흙먼지를 일으키는 연병장을 둘러보며 라이신은 얕은 탄성을 흘렸다.“와, 정말 대단하네요.”“미하엘 공녀님의 데뷔탕트를 기점으로 평소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라이신 경 덕분이지요.”사실 라이신은 데뷔탕트 당시 황제를 속였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아 불안했던 그녀는 미리 페르도트와 렌스렌에게 철저한 위기의식을 가져달라 신신당부했었다. 결과적으로 그 대비 덕분에 황가의 기습을 잘 틀어막았으니, 생각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다행이네요. 예전에도 훈련한 분들을 위해 제가 우물에 얼음을 만들어 드렸었는데 이제는 다른 걸 해드리고 싶네요.”일순 라이신의 말을 듣던 세이바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냥 우물만 채워주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물이 한 방울도 없어서요.”***라이신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그녀는 세이바로를 재촉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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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사람 놀라게 하는 남자

캔돔 대공가의 연병장 한가운데, 그것도 우물가에서 불길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다니.이윽고 주변의 공기를 거칠게 집어삼키며 압도적일 만큼 순도 높은 마력이 일대를 감싸 안았다. 세이바로는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들며 벼락같이 소리쳤다.“이런! 대열을 정비해! 모두 라이신 경의 뒤로 물러서십시오!”기사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대상은 오직 라이신뿐이었다. 대공가의 군사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마른침을 삼키며, 서서히 걷히는 검은 연기의 정체를 빤히 주시했다.그 일촉즉발의 순간.라이신의 굳어 있던 얼굴이 단박에 환하게 펴졌다. 연기 너머로 은밀하게 드러난 형체가 누구인지 그녀는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형님!”“섀도우 경!”“어휴, 놀랐습니다. 하하!”자욱한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자는 다름 아닌 섀도우였다.“아, 라이신!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하하!”섀도우는 라이신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평소의 과묵함은 어디로 가고 평온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라이신에게 다가섰다.그제야 침입자가 아님을 확인한 주변 기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그머니 검을 거두었다. 긴장이 풀린 병사들이 두 사람의 해후를 방해하지 않으려 미소를 지으며 타석으로 돌아갔고, 눈치 빠른 세이바로 역시 별채에 다녀오겠다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해 주었다.***“형님, 걱정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해요.”“아니다, 라이신. 사과는 내가 해야 한다. 각하께서 너를 멈추라고 하셨을 때, 진작에 내가 나섰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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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이런 변화는 흔하지 않은데

“오셨습니까, 바아르 각하. 그리고 길 소르도 각하.”섀도우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뒤 한 걸음 물러서자, 길 소르도가 기다렸다는 듯 불쑥 라이신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러고 보니 아침에 보았던 그의 안색은 시작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야외의 밝은 햇살 아래서 마주한 길 소르도의 얼굴은 깊은 근심과 피로에 절어 아예 흙빛으로 탁하게 물들어 있었다.그럼에도 특유의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그가 가벼운 어조로 섀도우에게 말을 건넸다.“섀도우 경, 혹시 우리 귀요미와 금단의 벽이라도 넘으려는 건 아니겠지? 둘이 분위기가 너무 다정하잖아.”섀도우는 길 소르도의 짓궂은 농담을 유연하게 넘기며, 흔들림 없는 당당한 태도로 전공인 보고부터 올렸다.“저희는 남매라 그런 겁니다. 그건 그렇고 각하, 레이나 공녀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레이나를 찾았다고? 어디 사라지기라도 했던 걸까.라이신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아르를 바라보자, 그는 이미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듯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반면 레이나의 소식이 적잖게 반가웠던 모양인지, 이번에는 길 소르도가 섀도우의 손을 덥석 잡아 쥐며 황급히 다그쳤다.“진짜인가? 어휴, 살았네. 난 또 그 화상에게 큰일이라도 터진 줄 알고 심장이 떨어질 뻔했잖아? 고마워, 섀도우 경! 정말 애썼어!”평소에는 만나기만 하면 못 잡아먹어 안달인 남매였지만, 길 소르도가 레이나를 끔찍하게 아낀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했다.어느새 바아르 역시 날이 서 있던 분위기를 거둔 채, 라이신에게 더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다정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잠시 후, 라이신은 바아르와 함께 캔돔가 응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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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그 남자, 몹시 통제광

레이나가 대공령의 전염병에 걸린 아이들을 구했다는 사실도, 그녀의 몸에 기묘하게 이질적인 마력이 섞여 있다는 것도.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아 일단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마주했다.“어머나! 라이신, 정말 일어났구나!”반가운 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라이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달려오는 레이나를 꽉 안아주었다.“공녀님, 저 때문에 마음 쓰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해요.”“정말 다행이야, 라이신. 무사히 깨어나 주어서 고마워!”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반가워하던 것도 잠시, 라이신은 레이나의 눈가가 붉게 짓물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었다.“그런데 공녀님, 혹시 슬픈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눈가가 많이 부어 계세요.”“어? 아, 별거 아니야.”라이신의 말에 레이나는 깜짝 놀란 듯 몸을 눈에 띄게 움찔거리며 애써 헛기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수많은 사연이 담긴 복잡한 눈빛으로 길 소르도와 바아르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하기 곤란한 비밀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레이나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라이신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어? 잠깐만. 라이신, 너 눈동자 색이 바뀌었네?”역시 예리하고 눈썰미가 좋은 레이나답게 단번에 알아채는구나 싶어, 라이신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찰나, 레이나의 시선이 라이신의 풍성한 머리칼로 옮겨 가며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머리 색도 묘하게 신비로운 분홍빛이 감돌잖아. 라이신! 너 혹시 초월자로 각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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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숙명, 침묵하는 여자

 사방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깊은 밤, 대공저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오롯이 둘만의 숨결만 남은 침실 안이었다.라이신은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아, 제 곁을 단단히 지키고 선 바아르를 향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각하. 그렇다면 낮에 하신 말씀 말이에요. 제 마법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그런 설정으로 이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건가요?”바아르는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신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쓸어내렸다.“그렇다. 그러니 넌 앞으로 남들 앞에서 마법을 구현하는 건 철저히 조심하도록 해.”그의 깊고 진득한 눈동자에는 수많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라이신이 가진 초월적인 힘을 세상이 알게 되는 순간 사방에서 목숨을 노릴 거라는 경각심, 그리고 무엇보다 한꺼번에 마력을 쏟아내며 쓰러졌던 상황을 보며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었다.“일단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사실 우물의 물도 채우고 대공령의 어린 아이들도 구하고 싶은데.라이신은 고민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바아르가 걱정하고 있으니 일단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아르의 넓은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뺨을 기댄 채, 그녀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가만히 되짚으며 골똘히 고민에 잠겼다.‘그건 그렇고 레이나 공녀님의 몸에 다른 마력이 깃들어 있다니.’이것이야말로 비밀 중에 비밀인데.라이신 자신이 마법을 탐지하는 능력이 발현된 것 같아 그리 인지하게 된 것이니 이 역시도 반가운 능력이었다.누군가 사라지면 추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하다 문득 왜 마법의 색이 은빛이며 그것을 떠올리자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지 잠시 머릿속이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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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지옥에서 그대를 지켜

투명하게 흩어지는 할 로드의 잔상을 묵묵히 응시하던 세실리에의 뒤편,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한 여인의 형상이 걸어 나왔다.두 손을 가슴께로 꼭 모아쥔 채, 불안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마리였다.부스스한 갈색 머리칼에 주근깨가 박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얼굴.그녀는 과거 캔돔 대공저의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라이신과 할 로드를 무려 10년 동안이나 친구가 되어 지켜보았던 하녀였다.그 지옥 같은 대공저를 제 발로 버린 이유는 단 하나, 세실리에의 은밀한 제안 때문이었다. 이곳을 벗어나 자신을 따르기만 하면, 할 로드의 전속 시녀로 곁에 두어 주겠다는 감미로운 속삭임이었는데.할 로드라는 존재를 평생토록 곁에서 지켜볼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기꺼이 팔 각오가 되어 있는 마리에게는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거래였다.“······할 로드 님.”결계 안쪽으로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그의 등 뒤로, 마리가 잰걸음으로 다가서며 수줍게 투명한 유리병을 내밀었다.“저······ 제가 직접 만든 치유의 물이에요. 아까 맞으셔서······ 얼굴이 붉어지셨어요.”할 로드는 걸음을 멈추고 둔탁한 시선으로 마리가 내민 유리병을 내려다보았다. 투명한 액체 위로 일렁이는 기운을 감지한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마리, 마력이 대단한데? 평범한 물이 아니군. 정말 물에 치유의 마력이 가득 담겨 있어.”“아, 세실리에 님께서 제게 걸려 있던 봉인을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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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철저하게 날 길들이려 하다니

그날 밤, 침실은 은은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바아르에게 라이신의 존재는 제 욕망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게 만드는 불꽃이었다. 그녀의 살결에 남은 입맞춤의 흔적은 바아르의 갈증을 더욱 세차게 부채질했고, 집요한 손길은 그녀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았다. 보고 있어도 그립고, 품고 있어도 아쉬워 왜 이리 채워지지 않는 갈증만 생겨나는지. 그는 제 안의 욕심껏 1분 1초가 아까워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시간은 멈춘 듯했고, 그의 심장은 그녀와의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려 애썼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제 피부를 타고 번져올 때마다, 바아르는 그녀를 더욱 깊이 탐닉하고 싶다는 포식자 같은 욕망에 휩싸였다.라이신의 나신은 마치 조각상처럼 완벽하게 피어나 있었고, 바아르의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미끄러질 때마다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하지만 그 격정적인 교감 속에서도 라이신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고, 그녀의 사유는 다른 곳에 머물러 있다는 이질감이 들었다.“라이신, 고민 있어?”“······각하께서는 도대체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라이신은 자신으로 인해 상기되어 붉어진 그의 얼굴이 너무도 수려해, 우선 볼에 입을 맞추었다.오늘 아침에는 분명 괜찮았는데, 오후부터 그녀의 낯빛은 어두워져 있었다. 바아르는 자신이 추측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거칠게 몰아치던 몸짓을 다소 느긋하게 다스리며 낮게 속삭였다.“네 고민은······, 내가 네 능력을 숨긴 것?”“······맞아요.&r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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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그 레이디는 어떡해야 할까

침대 위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 바아르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라이신을 향한 갈증이 더해진 것처럼, 그는 더욱 집요하게 그녀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 탐닉했다.“라이신, 그리고 이건 명령이다. 네 능력이 전보다 훨씬 더 강대해졌다는 사실을 당분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이것이 진심이었고. 이게 바로 그의 바람이었다.“······각하. 그래도 좀······ 제가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눈앞에 있다면, 사람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아요.”라이신의 애절한 대답에 바아르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라이신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며, 그녀를 애틋하게 응시했다.그 누구보다 올곧고 다정한 라이신의 성정을 바아르가 모를 리 없었다.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영지도, 자신 역시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는 끔찍한 전염병의 실태도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모든 것보다 더 거대하고 절대적인 전제가 존재했다.“세실리에가 어쩌면 이번에는 너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 넌 이 대공저 밖을 절대 나가선 안 돼. 난 절대 널 잃고 싶지 않으니까.”바아르는 제 온 힘을 다해 솔직한 속내를 부딪쳐 왔다. 제 통제욕과 집착이 미쳐 날뛰어 라이신이 질려 도망간다고 할지언정, 허망하게 잃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바아르는 기어이 제멋대로 굴기로 작정하고 있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라이신이 바아르의 단단한 목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네, 이젠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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