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짐승 대공의 집착을 받은 사연:The Tale of the Beastly Archduke’s Obsessio: Chapter 201 - Chapter 210

269 Chapters

#200. 대체 대공저에서 무슨 짓을 벌인 걸까?

지하 5층.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 끝에서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중죄인들을 가두고 징벌하는 시설에 발을 들이자, 라이신의 등골이 단숨에 오싹해졌다.“라이신, 내가 내건 조건을 듣지도 않고 정말 괜찮은 건가?”“네, 무조건 들을게요. 그보단 하루라도 빨리 책의 구절들을 파악하고 싶어요. 그리고 도르하르 언어를 완벽히 배우고 싶어요.”라이신이 호기롭게 직진하자, 바아르는 더는 묻고 따지지도 않은 채 라이신과 레이나를 데리고 캔돔 대공저의 가장 깊은 지하로 향했다. 협상은 대성공이었다. 바아르는 자신이 내건 조건은 라이신이 절대 거부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가장 아쉬울 때 꺼내 쓰겠다며 짓궂게 웃고는 스레기니 남작 부인이 갇힌 곳으로 앞장섰다.참으로 오랜만에 발을 들이는 대공저 본관의 지하였다.1층부터 4층까지는 지난 10년 동안 라이신이 제 집처럼 뛰어다닌 곳이었다. 사실 지하는 그녀에게도 낯선 장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올봄까지는 바로 한 층 위인 지하 4층에서 하인들과 함께 살았던 기억이 선명했다.‘그런데 고작 한 층 아래인 5층은 어째서 이리도 분위기가 다른 걸까.’난생처음 발을 디딘 지하 5층은, 오직 죽어서야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절망과 수수께끼로 가득한 공간 그 자체였다.“레이나, 너도 참 의지가 대단하구나.”“감히 미하엘의 데뷔탕트를 망치려 한 그 여자는 꼴도 보기 싫지만, 도르하르어는 고대 마법서에 자주 등장하니까요. 저 역시 그 언어만큼은 반드시 배우고 싶네요.”사실 라이신은 과거 세실리에가 보냈던 저주의 향낭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라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도르하르어와 관련된 단서를 찾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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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오늘은 참아주세요. 대공 각하

남작 부인은 이 비밀스러운 문제에 완전히 매료된 듯, 한층 더 결연한 의지를 품고 라이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레이나가 차가운 쇠창살을 움켜잡으며 불쑥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부인! 미하엘 공녀의 데뷔탕트 날, 레투니카 황가는 이 대공저를 통째로 불바다로 만들려고 했어요! 게다가 세실리에라는 여자는 캔돔가의 기사 한 명을 납치해 키요리타 산맥의 결계가 쳐진 땅으로 데려가기까지 했어요!”“네? 세실리에······? 그 사람이라면 설마······.”순간 남작 부인의 초연했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메마른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달싹였다. 레이나는 분노로 두 주먹을 꽉 쥔 채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레투니카 황가에 붙어 황제도, 황태자도 한통속이 되어 세상을 뒤흔든 흉악한 범죄자라고요! 그 여자 때문에 지금······!”“그만해, 레이나.”바아르의 낮게 가라앉은 제지가 떨어지자, 분노로 폭발하기 직전이던 레이나는 그제야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무방비하게 쏟아진 거대한 정보들 앞에 남작 부인은 혼란을 감추지 못하고 당황해했다.잠시 후, 쩍쩍 갈라진 부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온몸에 수분이라도 전부 메말라 버린 것 같은 처참한 형색이었음에도, 그녀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왈칵 배어 나왔다.그녀의 울음은 지독하리만치 서글펐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려 바싹 마른 뺨을 가만히 적셨다. 숨이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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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기묘한 퍼즐이 완성된 순간

잠시 뒤.라이신은 시녀들의 일사불란한 시중을 받으며 몸을 씻고 화려한 치장을 받기 시작했다.이미 황궁에는 황태자도, 황제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연히 대공비가 될 고위 귀족의 신분으로서 투박한 남장 기사 차림으로 황궁을 방문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순순히 불편한 드레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기분 좋은 설렘과 팽팽한 긴장감이 동시에 밀려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하지만 정작 라이신이 아름답게 변신하는 전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바아르는, 그저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각하, 전 지금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각하는 뭐가 그리 즐거우신가요?”“아주 걱정이 태산이라 그렇다.”“네? 표정은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네가 이렇게 눈이 부시게 여성스러운 차림을 하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황궁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모든 눈동자가 너만 쳐다볼 텐데.”바아르는 슬그머니 라이신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고는,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 이 급박한 와중에도 이토록 느긋하고 능글맞을 수가 없었다.라이신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바아르를 향해 눈을 흘겼다.“지금 그게 문제세요? 우린 지금 캔돔 대공가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레투니카 제국과 도르하르 사이의 골치 아픈 문제를 협의하러 가는 거잖아요.”보통 한 세력의 수장이라면 누군가 소수를 희생해서라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되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었다. 혹시나 에스메 황녀조차 제국의 평화를 명분 삼아 자신에게 희생을 요구하면 어쩌나, 벌써부터 가슴 한구석이 무거웠다.그때, 바아르가 라이신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조용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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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벼랑 끝에서 발견한 숨겨진 구원

순간 라이신의 척추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물론 억지스러운 끼워 맞추기일 수도 있었고, 그저 농담처럼 가볍게 넘겨버릴 수도 있는 가설이었다. 바아르 역시 표정을 굳힌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철자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었다.“확실히 이 레투니카 제국에서, 도르하르 제국민을 무차별적으로 말살하지 않은 귀족 가문은 우리 캔돔 대공가뿐이긴 하지.”그 덕분에 대공령에는 이런저런 자유민들이 많이 흘러들었고, 버려진 아이들도 유독 많았다. 사실 라이신이 10년 전 대공저 지하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도, 그 어떤 하녀나 하인들도 그녀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또 간밤에 누가 불쌍한 아이를 버리고 갔군.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겠어.’ 하며 자연스럽게 거두어 키워주었을 뿐. 그리고 할 로드 역시 핏덩이 시절 그렇게 지하에 버려져, 로드 부부의 손에 자랐다고 전해 들었다.“도르하르 출신인 남작 부인도 그렇고, 할 로드를 거두어 갔던 황제의 여인 ‘시라이엔’이라는 그분도······ 어쩌면 신분을 숨긴 도르하르 출신의 강력한 마법사가 아니었을까요?”바아르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한 이야기지. 황가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는 도르하르 출신이라는 걸, 레투니카 땅에서 대놓고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문득 레이나에게 들었던 정보가 뇌리를 스쳤다. 황태자 아처린이 도르하르 반란 세력을 진압할 당시, 그 잔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그리고 그 패잔병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은 다름 아닌 도르하르 제국민들이 숨어들기 딱 좋은 키요리타 산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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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추진력이 폭발한 대공의 직진

마침내 도착한 황궁, 황녀의 거처.방문이 열리고 라이신과 레이나가 발을 들이자마자, 에스메를 향해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에스메 황녀님!”“라이신!”이렇듯 평화롭고 좋은 날에 환한 얼굴로 마주하게 되다니, 라이신의 감회는 실로 남달랐다. 그저 서로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눌 이야기가 산더미 같았고, 가슴 벅찬 기쁨이 밀려들어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환하게 웃음을 주고받았다.“황녀님, 오랜만에 뵙네요.”레이나가 그 뒤를 이어 싹싹하게 안부를 전했고, 바아르가 묵직한 걸음으로 따라 들어섰다. 레인은 반색하며 모두를 에스메가 기다리고 있는 아늑한 응접실 안쪽으로 정중하게 이끌었다.“하하, 반갑습니다. 대공 각하, 오셨습니까.”“레인 경, 안색이 좋아 보이는군.”“저만 좋겠습니까. 바아르 각하께서도 오랜만에 얼굴이 활짝 피셨습니다. 참, 길 소르도 공작 각하께서는 군수 사업 건으로 워낙 분주하시다 들었습니다.”무뚝뚝하던 레인이 저토록 말수도 늘고 밝은 표정을 지을 수도 있었던가.섀도우 역시 소리 없이 묵직한 인사를 건넸고, 모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온기를 나누었다. 에스메는 한층 부드러워진 안색으로 귀한 손님들을 지극히 환대했다.“이쪽으로 오세요. 따뜻한 차나 한잔 나누지요.”방 안은 여전히 군더더기 없이 검소했으나, 공간을 감싸는 공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늑하고 다정하게 변해 있었다.“오랜만이군.”“오셨습니까, 각하.”바아르가 가볍게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고, 호위 기사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는 섀도우는 예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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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빛의 속도로 행한 완벽한 반격

바아르가 법적 절차를 거침없이 채근하는 바람에, 에스메의 손길은 정신없이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다.“놀랍군요. 그런데 결혼 성사 날짜를 10월 1일로 하신다고요?”“나와 라이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날이니까.”정신이 반쯤 나간 채 일사천리로 흐르는 상황을 지켜보던 라이신은, 그가 나지막이 뱉은 날짜의 의미를 불현듯 깨달았다.10월 1일.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바아르와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확인하고, 두 사람 모두 온전한 기억을 간직한 채 같은 침대에서 함께 눈을 뜬 기적 같은 아침이었기 때문이다.“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아, 레인! 서랍에 있는 황실 인장 좀 가져다주겠어요?”“물론입니다, 황녀 전하.”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체 없이 황실 인장을 챙겨와 에스메에게 건넸다. 에스메는 그 자리에서 거침없는 손길로 서류에 사인을 남기고 묵직한 인장을 찍어 내렸다. 순식간에 법적 효력을 갖추게 된 혼인 인정 서류가 바아르의 손으로 매끄럽게 넘어갔다.“축하드립니다, 각하.”기쁨과 당혹감이 동시에 몰려온 라이신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어리둥절하게 중얼거렸다.“이게 이렇게나 빨리 결정될 수 있는 건가요?”“에스메 덕분에 훨씬 수월해졌어.”본래 고위 귀족들의 혼인 절차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안건 상정부터 시작해, 워낙 정무에 게을렀던 황제의 인장을 받아내기까지 몇 주씩 지체되곤 했었다. 그러나 에스메가 임시로 전권을 잡은 이후 레투니카의 공무는 몰라보게 신속해졌고, 역설적이게도 바아르와 라이신도 수혜자가 된 셈이었다.대신 자신이 도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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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불길하고 불안하지만 나아 가야지

피르닉스가 황녀의 방에 난입해 패악을 부리다 바아르의 묵직한 명령에 질질 끌려 나가니 그제야 공기가 정돈된 느낌이었다.황궁 지하 6층 감옥에 감금된 피르닉스의 처벌은 에스메에게 위임하여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라이신이었다.‘황녀님은 대체 그동안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오신 걸까.’그간 황궁의 간신배들에게 에스메가 어떤 모욕과 대접을 견뎌냈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히 그려져, 라이신의 가슴은 먹먹해졌다.그때, 길게 숨을 내쉬던 에스메가 나지막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동안 난······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어. 그저 레인 한 사람에게만 겨우 의지한 채 버텨왔지. 하지만 오늘의 내가 이렇게 당당히 일어설 수 있게 된 건, 라이신 전부 네 덕분이야.”차마 내뱉지 못했던 서러운 세월이 잇새로 배어 나왔다. 라이신은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가만히 다독였다.“······황녀님.”“지금······ 내 두 발로 당당히 서 있는 스스로가 미칠 만큼 좋아. 나를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줘서 진심으로 고마워······.”그렁그렁 고여 있던 눈물이 마침내 볼을 타고 후두둑 떨어져 내리며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적셔 놓았다. “라이신 경, 아니 대공비 전하. 그대는 지난번 대공가를 구한 일도 그렇고 그 능력 덕분에 많은 이들을 구원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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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가장 강력한 해결책 발견

황녀의 방은 검소하지만 아늑했다. 온도를 훈훈하게 높이는 따뜻한 마도구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고, 커튼을 뚫고 들어온 햇살은 방바닥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웠다.소박한 나무 테이블 위에는 손수 놓은 자수 덮개가 덮여 있었다. 라이신은 소파 가장자리에 앉자마자 포근한 쿠션에 몸을 기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가락이 긴장한 듯 찻잔 가장자리를 맴돌았다.“도르하르 제국의 황태자와 제가 결혼하면 제국에 평화가 올 거라는 이야기······ 다들 아시죠? 피르닉스 경의 말처럼 사실 이런 생각을 품은 자들은 제국 곳곳에 많을 거예요.”에스메는 조용히 찻주전자를 들어 라이신의 찻잔에 더운물을 부었다.손끝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주전자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잠시 방 안의 정적을 채웠다. 에스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평화라는 건······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기도 하죠. 그리고 그 평화가 깨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해요.”차분한 라벤더 향 같은 목소리였으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그늘이 스쳤다. 라이신이 시선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기도 전에, 에스메는 고개를 돌려 찻잎이 우러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바아르는 구겨진 청혼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았다.“황녀는 레인 경의 아이를 가졌으니 국혼을 피할 명분은 충분해졌군.”이것은 분명 커다란 축복이었다. 라이신은 에스메의 배를 바라보며 축하의 마음을 담아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에스메 역시 라이신과 바아르를 향해 해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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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대공 각하가 직진으로 가려 하던 순간

바아르가 제국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일을 마치 산책이라도 가듯 가볍게 흘려보내자, 좌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섀도우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각하, 그 결계는 지난 백여 년간 그 누구도 뚫지 못한 절대의 장벽입니다. 설령 결계를 뚫고 들어간다 한들, 도르하르의 잔당들이 외부인을 순순히 살려둘 리 없습니다.”섀도우의 우려에 수긍한 레인 역시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을 보탰다.“그들은 우리에게 지독한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목숨을 버리고 담판을 지으러 갈 필요가 없으십니다. 이미 라이신 대공비와 소중한 인연을 맺어버린 마당에 협상은 이미 물 건너간 셈 아닙니까?”레인의 말을 전적으로 공감한 라이신은 어떻게든 평화로운 접점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더 나은 해결책이 없어 가슴만 답답해져 왔다.바로 그때,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선 레이나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결연하게 입을 열었다.“여러분!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대공가와 결합했다는 확실한 '명분'이에요.”“그야 그렇지만······.”“결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그가 황태자이든 아니든 간에 할 로드 경을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레이나, 만약 황태자가 할 로드 경이 아니라면 목숨만 잃게 될 거야.”레인이 친구를 걱정하는 깊은 우려를 담아 물었다. 그러자 레이나는 떨리는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도르하르 제국의 사람들은 내가 만날게요. 죽어도 상관없어요. 난 정말 괜찮으니까, 나 혼자 갈게요.”라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덜덜 떨면서도 의지를 피력하는 레이나의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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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희망이라는 이름의 절망

마리는 할 로드를 힐끔거리며 살며시 눈치를 보았다.자신이 인생을 걸고 이곳까지 따라온 단 하나의 존재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한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버거울 만큼 행복했다.물론 캔돔 대공저는 갈 곳 없는 자신에게 살길을 열어준 고마운 터전이었다. 바아르 대공 역시 은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영지로 흘러들어갔다면 진작 험한 일을 당해 죽었거나 노예로 팔려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라이신처럼 눈부신 미모를 지닌 것도 아니었으니 시녀나 하녀로 안락하게 대접받기도 힘들었으리라.“마리, 수고했어.”소파 테이블에 차를 정성스레 차려놓던 마리는 창가의 할 로드를 가만히 눈에 담은 뒤, 세실리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차 준비 끝났습니다.”“알겠다. 제크 경이 돌아오는 대로 즉시 내 방으로 올려보내거라.”“예, 알겠습니다. 세실리에 님.”마리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차려놓았음에도, 할 로드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저 무겁게 닫힌 창밖만을 바라볼 뿐이었다.할 로드의 눈에 비친 창밖은 아득하게 펼쳐진 하얀 눈밭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산맥을 바라보아도 푸른 생명력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어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차나 드시지요, 조카님. 보시다시피 이 절대의 결계를 뚫고 들어올 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세실리에의 뼈 있는 말에 할 로드는 차마 반박하지 못한 채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마리 역시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숲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강력한 결계 속에 갇힌 거대한 영지라는 사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했다.&l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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