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짐승 대공의 집착을 받은 사연:The Tale of the Beastly Archduke’s Obsessio: Chapter 221 - Chapter 230

268 Chapters

#220. 그녀를 지켜보는 남자의 마음

라이신은 순간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미하엘의 데뷔탕트 때처럼 마력을 한계까지 모조리 소진해 버리면 깊은 잠에 빠져 버린다는 사실을, 이제야 '아차' 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네가 아침에도 눈을 뜨지 않을까 봐······ 내심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그 오랜 시간 동안 바아르가 혼자서 얼마나 속을 끓였을지 짐작이 가서 가슴이 뭉클해졌다.“각하, 죄송해요. 이제 마력을 쓸 때는 꼭 조심할게요.” “네 몸은 나 역시 한없이 아끼는 몸이다. 그러니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 “네, 꼭 그럴게요.”라이신은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침대 곁에 켜켜이 쌓아 둔 서책을 들었다. 혹시 이곳에 잠이 늘어나는 증상에 관해 언급된 대목이 있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요즘 라이신은 초월자에 관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만큼 꼼꼼히 정독하고 있었다.특히 제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아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라이신, 글을 읽으며 배움을 청하려는 네 의지는 참으로 대단하구나.”바아르는 라이신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귓가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라이신은 자신이 바아르의 아내이자 대공비가 된 탓에 캔돔 대공가가 위험에 처하게 된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그것이 도르하르이든 레투니카이든, 언젠가는 전쟁을 마주해야 할 필연이자 운명이었다.“제가 더 강해지고 싶어요. 그래서 각하를 온전히 지켜드리고 싶어요.”하지만 라이신의 다짐에도 바아르의 얼굴에는 한층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라이신의 손을 꼭 잡은 채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너는 더 이상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된다.”이것은 간절한 부탁이자 다정한 명령이라는 것을 라이신 역시 너무 잘 알고 있었다.라이신은 바아르를 꼭 품에 안으며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할수록 각하의 걱정만 커지겠지. 당분간은 조용히 책에만 집중해야겠어.’당분간은 바아르에게 심려를 끼칠 만한 행동도 삼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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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결계 너머 시작된 균열

잠결에도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중얼거림을 되뇌는 에스메를 바라보는 레인의 마음은 찌릿하게 아려왔다.아무래도 황제와 황태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어린 나이에 제국을 홀로 지탱하느라, 심리적인 부담이 극에 달해 악몽을 꾸는 것이라 여겨졌다.“에스메, 넌 충분히 잘해 내고 있어. 죄송할 것 없다. 지금의 레투니카는 너 덕분에 훨씬 더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 되어 가고 있는걸.”레인이 옆에서 다정하게 소리를 얹어 보아도 에스메는 깊은 꿈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미안함과 죄책감이 섞인 혼잣말만 줄기차게 내뱉고 있었다.몸도 성치 않은 임산부인데 이런 지독한 악몽이 아이와 그녀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 레인은 결국 에스메를 깨우기로 마음먹었다.“에스메, 이제 일어나자.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었다가 다시 자는 게 좋겠어.”침실 한쪽의 조명을 조금 더 밝히고, 물잔에 미지근한 물을 채워 건네주려 에스메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던 레인은 순간 동작을 딱 멈추고 말았다.“······으윽, 윽. 난 그래도 죄가 없어. 세실리에, 당신이······ 너무 나쁜 거야.”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에스메의 잠꼬대는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말이었다.“난 아버지와 오라버니도······ 너무 싫었으니까. 이건 죄가 아니야. 그저······ 정의일 뿐이야. 그리고 라이신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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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기묘하게 발생하는 징후들

이 깊은 밤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라이신은 통신 내용이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바아르를 배려해 살포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소화도 시킬 겸 다중 결계 구경 좀 하고 올게요. 편하게 통화하세요.”“네가 들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다.”에스메의 데뷔탕트 연회가 얼마 남지 않아 민감한 제국의 사정이 오갈 것 같았기에, 라이신은 호기심을 뒤로하고 기꺼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슬그머니 돌아본 바아르의 표정은 아니나 다를까 무거운 대화가 오가는 듯 굳어져 있었다.라이신 역시 요근래 할 로드를 찾아 나선 하르트가 사람들도 신경 쓰였고, 제국의 극심한 가뭄 탓에 캔돔가에서도 매일 수량을 점검하느라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게다가 법적인 부부가 되었다고는 하나, 과연 자신이 캔돔가의 안주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인지.혹시 갑자기 전쟁이 터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라는 욕심은 컸지만, 정작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고민만 나날이 늘어갈 뿐이었다.쓸어 올린 이마 위로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던 라이신은, 문득 손가락에 끼워진 바아르의 반지를 바라보았다.칠흑 같은 검은 바탕 위로 붉은 무늬가 소용돌이치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기분 좋게 일렁이는 아름다운 징표.그래도 언제든 자신을 지켜 줄 든든한 바아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불안하게 굳어가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어져 내렸다.생각에 잠긴 채 결계 내부를 서성이던 라이신은 어느새 결계의 끄트머리인 경계선까지 다다르게 되었다.그런데 순간 묘한 이질감이 벼락처럼 스쳐 지나가며 라이신의 발걸음이 멈칫거렸다.이 서늘한 감각은 도대체 무엇일까.‘저건 은빛 연기인가? 아니면··&mid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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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경계선 저편에서 너를 기다려

길 소르도가 설마, 진짜로 다른 결계 입구를 찾아낸 걸까.레이나는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보았다. 투명한 공기 벽에 막혀 손끝이 튕겨 나오자,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나! 오라버니, 정말 찾아낸 거예요?”“아, 결계 입구가 맞군요! 각하, 정말 대단하십니다.”섀도우 역시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길 소르도를 향해 경탄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냥 직감이었어. 그나저나······ 여기 분위기가 제법 살벌하네.”길 소르도는 서둘러 가방에서 4속성의 마력이 빽빽하게 축적된 마도구를 꺼내 들었다.레이나 역시 마도구와 보조 약제를 세밀하게 점검한 뒤 길 소르도와 시선을 맞추었다.이제 이 결계만 가르고 들어가면 마침내 할 로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과 설렘으로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후, 이곳의 살기가 보통이 아니네요. 오라버니, 그럼 이제 시작해 주시겠어요?”길 소르도는 손부채질을 해대며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더니, 먼저 손끝에서 초록빛 마력을 피워 올렸다.그리고 나지막이 영창을 읊조리기 시작했다.“대지의 은총이여, 모두의 빛을 잠시 가두어 두소서. 영혼의 눈부심으로 존귀한 뜻을 받드나니, 풍요의 힘으로 이 공간을 잠시 잊게 하소서!”길 소르도의 영창이 이어지자, 레이나는 자신의 몸을 감싸는 공기의 결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오라버니? 이건 또 뭐예요?”“각하, 혹시 저희 주변으로 보호 결계를 세우신 겁니까?”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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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단호한 통보, 우리의 내일은?

뿌연 연기가 사방을 가득 메웠음에도,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할 로드 특유의 은은한 마력 향은 실로 대단했다.아지랑이처럼 몽환적인 은빛 마력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낸 할 로드의 붉은 눈동자가 레이나의 시선과 똑바로 마주쳤다.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무심하게 얽혔다. 어색한 정적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다 먼저 조용히 눈길을 거둔 쪽은 할 로드였다.“혹시나 했는데, 결계를 미리 다른 지점으로 옮겨 두길 잘했군요. 그 까다로운 결계를 파훼하고 들어오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할 로드는 덤덤한 눈빛으로 일행을 둘러보며 주변의 은빛 연기를 가볍게 거두어내고 말을 건넸다.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길 소르도였다.“할 로드 경? 우리가 찾아올 줄 알고 있었나? 그렇다면 잘되었군. 그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여기까지 온 거야. 경이 정말 도르하르의 황태자가 맞아?”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치고 들어가는 길 소르도의 질문에 레이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을 안은 채 할 로드의 입술만 빤히 바라보았다.할 로드는 나지막이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가만히 숨을 가다듬고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이럴 수가.순간 숲 전체에 거대한 정적이 감돌았다.라이신의 추측이 정확한 사실로 밝혀진 순간이었다. 일행은 저마다 머리를 짚으며 참았던 탄식을 내뱉었다.레이나 역시 두 손을 가슴 앞에 꼭 모아 쥐고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딱 막힌 듯 입술만 벙긋거릴 뿐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그때 섀도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모두의 의구심을 대표해 할 로드에게 질문을 던졌다.“할 로드 경, 그 청혼장의 진위는 대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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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내 남자의 뜨거운 시선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한 정적이 흐른 지 얼마나 지났을까.“그대, 눈 떠. 다 왔어.”할 로드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그는 안고 있던 레이나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레이나가 천천히 눈을 뜨자, 눈앞에는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작은 오두막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조금 전까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던 시야가 이제는 눈이 부실 만큼 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이 기묘한 풍경을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어 발을 굴러보자,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끝이 푹푹 눈밭 속으로 내려앉는 감각이 전해졌다.“여기 눈은 진짜 잘 밟히네······. 그나저나 너무 춥다.”벌벌 떨고 있는 레이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할 로드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묵직한 망토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걸쳐 주며 입을 열었다.“그래, 여긴 정말 추운 곳이야.”레이나는 그제야 비로소 키요리타 산맥의 경관을 느긋하게 둘러보았다.절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높고 웅장한 빙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태어나서 본 산 중 가장 높고 높게 솟아 있는 산이 바로 이 키요리타 산맥임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었다.“하얗게 눈으로 덮인 산이 하늘 끝까지 맞닿아 있는 것 같아.”“나도 처음에 이 풍경을 보고 놀랐지.”할 로드는 고개를 깊게 젖혀 구름 속에 가려진 흰 산봉우리를 복잡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레이나는 그런 할 로드의 팔에 조심스럽게 팔짱을 끼고는, 자신 역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다시 훑었다.“저 멀리 마을도 형성되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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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상상 이상을 꿈꾸게 하는 그대

“이만 물러가라.”바아르의 무심한 명령에 서아리노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네? 각하,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서아리노는 고개를 젓고는 자신의 고집을 관철하듯, 보석처럼 가공된 마도구를 라이신의 드레스에 세심하게 부착하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바아르의 눈동자가 칼날처럼 번뜩였다.“뭐가 말인가? 이 정도면 충분히 완벽한데.”“이제 겨우 시작인걸요.”바아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베어버릴 기세로 서아리노를 노려보았다.라이신이 살며시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두 사람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하하, 뭐 제가 내일의 주인공도 아닌데요. 적당히 마무리해 주세요.”그러자 서아리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한술 더 떠 살롱에 달린 종을 딸랑거려 시종들을 더 불러들였다.“정화 마도구도 드레스 밑단에 부착해야 하고요, 만에 하나 대공비 전하의 마력이 저하될 때를 대비한 보충용 마도구도 달아 드려야 제 마음이 놓입니다.”“하긴, 그건 확실히 필요하겠군. 5분 내로 끝내. 이왕이면 완벽하게.”바아르의 재촉에도 서아리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신의 옷에 더 많은 마도구를 덧붙여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다 안전을 위한 조치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50분은 더 걸립니다.”“······뭐라고?”서아리노는 눈에 불을 켜고 손을 저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아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순간 바아르도 시간이 지체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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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과연 미래는 파멸뿐일까?

레이나는 하르트 가문의 산업을 일구는 공작령 외곽인 토르문트에 할 로드와 살 별장을 이미 구축해 둔 상태였다.특히 이곳은 캔돔 대공령과도 그리 멀지 않은 데다 제국 군수품의 절반을 책임지는 대규모 공장과 마정석 광산이 자리한 요충지였기에,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자부했다.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할 로드와 이곳에 숨어 지내도 될 것 같아 레이나는 그에게 함께 도주하자 제안했던 것이다.잠시 깊은 고민에 잠겼던 할 로드는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나를 살며시 끌어안았다.“음······ 그쪽이 자꾸 이렇게 귀엽게 굴면 내가 흔들리잖아.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정답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거야.”“할 로드는 내가 싫지 않잖아.”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오두막 안을 채운 포근한 온기. 사랑을 나누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였다.하지만 할 로드는 더 이상 레이나에게 정염이 담긴 뜨거운 몸짓을 보내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눈으로, 오히려 조용히 거리를 둘 뿐이었다.그는 로브를 걸쳐 입고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차분히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그대가 뭘 하든 내 눈에는 미워 보이지 않거든. 싫어할 리가 없지.”다정한 말에 레이나는 가슴이 울컥 소용돌이쳐 서러운 심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렸다.오늘만큼은 어린아이처럼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었기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할 로드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오두막 내부에는 그저 그윽한 차향만이 조용히 번져갈 뿐이었다.***할 로드는 자신을 위해 인생마저 던지려 하는 레이나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애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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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걸까

라이신은 옷을 미처 추스를 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 위에 흐릿하게 떠오른 붉은 마법진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렸다.혹여 세실리에나 도르하르 측에서 쏘아 올린 위협적인 주술이 아닐까 가슴을 졸였으나, 가까이 다가가 살필수록 기운의 결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피부에 스치는 마력의 감촉은 서늘할 정도로 맑고 청량했다. 굳어 있던 가슴 깊은 곳까지 맑게 정화되는 기분마저 들 만큼 선명한 궤적이었다.‘저주나 악의가 아니야.’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밤새 한층 더 가공할 만큼 기함할 마력을 뿜어내던 바아르가, 그녀를 완벽히 보호하기 위해 결계의 밀도를 극상으로 끌어올린 것이 틀림없었다.라이신은 안도의 숨을 얕게 내쉬며, 곁에서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늘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눈매가 느슨하게 풀린 채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자, 천상 선이 고운 미려한 얼굴이었다. 어제 살롱에서부터 가르남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쥐락펴락하던 그 지독한 애정을 펼치던 바아리였기에 보고 있기만 해도 입꼬리가 간질거렸다.“각하? 우리 이제 대공저로 갈까요?”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마력을 지나치게 소모해서일까, 바아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설마, 예전에 자신처럼 몇 날 며칠 잠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내일은 황궁에서 열리는 에스메의 데뷔탕트가 있는 날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라이신은 서둘러 얇은 슈미즈만 걸쳐 입고는 바아르의 큼직한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전신의 혈관을 따라 마력을 끌어올렸다.이왕 이렇게 된 것, 성장한 자신의 마력으로 그를 데리고 대공저로 일단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그 순간, 바아르의 단단한 팔이 벼락처럼 라이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시야가 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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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전투적인 대공 각하

드디어 12월 1일.레투니카 황성에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아침이 열렸다.오전부터 황궁 주변은 에스메 황녀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제국민들에게 곡식을 배급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혹독한 식량난이 예견된 이 겨울, 백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에스메의 선심은 백성들에게 눈물이 날 만큼 눈부신 은혜였다.장장 10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독한 가뭄으로 제국 전체가 피폐해져 있었으나, 오늘만큼은 에스메가 황국에 작은 웃음을 찾아준 셈이었다.그간 묵직하고 처참한 소식만 전하던 소식지들도 오늘만큼은 일제히 화려하고 밝은 헤드라인을 쏟아냈다.[드디어 제국의 빛나는 별, 에스메 황녀님의 탄신일! 황궁은 손님맞이로 분주한 가운데······.][에스메 황녀의 데뷔탕트 기념, 1인 1가마니 곡식 배급 순조롭게 이어져······.][사재를 털어 곡식을 하사한 에스메 황녀, 22번째 생일을 맞아 중대 발표 예정······.][캔돔가의 바아르 대공, 영지민 대상 올겨울 세금 전액 면제 전격 단행······.][바아르 대공, 12월 1일 타르치르 강의 신규 댐 수문 개방! 캔돔 영지 외 백성들에게도 용수 공급······.]황녀의 은혜로움과 더불어, 바아르 대공이 펼친 파격적인 치세 소식은 시름에 잠겼던 제국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안겨주었다.이러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캔돔 대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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