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짐승 대공의 집착을 받은 사연:The Tale of the Beastly Archduke’s Obsessio: Chapter 271 - Chapter 280

284 Chapters

#270. 날 구원해 준 그대에게 경의를

마리의 웃음이 너무나 희미해서, 라이신은 황급히 바아르 옆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마리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끌어안고는 몸 안에서 무지갯빛 마력을 연신 피워 올렸다.여전히 말할 힘조차 없는지, 마리는 고개를 저으며 아득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라이신은 손끝에서 마력을 더욱 거세게 피워 올렸다.“마리! 정신 차려! 난 이대로 안 멈춰!”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로 겨우 숨을 쉬어 가면서도, 마리는 너무나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눈을 크게 뜨는 것조차 힘겨운지 초점을 잃은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어린 시절부터 라이신이 보아왔던 수수한 캔돔가의 하녀 복장 그대로였다. 잠시 고개가 옆으로 툭 떨어진 마리를 제대로 안아 올리며 다시 허벅지 위에 올리려던 그때.숨이 막혀와 입만 크게 벌린 마리를 바라보았다.[전······ 할 로드······ 님을······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어요.]이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눈으로 입모양만 뻐끔거릴 뿐이었다.마리가 몸을 울컥 흔들었다. 그 순간, 마리의 깃옷 뒤편이 짙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마리! 제발 힘을 내줘!”그제야 드러난 마리의 등은 전혀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살점이 터져 핏덩이가 엉켜 있었고, 상처는 기괴하게 비틀려 더욱 커져 있었다.[······이 저주는······ 점점······ 생명을 앗아가는 흑마법이에요.]턱 막혀버린 숨에 라이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눈에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지금부터······ 마지막······ 마력을 쓰려고 해요.]달싹이는 입모양과 희미한 숨소리만이 아득하게 이어졌다. 마리는 잔여한 혼신의 힘을 쥐어짜내어 라이신에게 의지를 전달하고 있었다.“흐윽······ 마리! 그, 그게 무슨 소리야!”[······저를 치유하시느라······ 마력을 다······ 쓰셨지요?]사실이었다. 의식을 겨우 유지할 만큼의 마력만 남겨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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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죽음이 기다려도 달려가는 대공 각하

바아르는 오감을 가다듬으며 어둠 속을 노려보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인물의 형체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할 로드 경!”제크가 깜짝 놀라 외친 소리가 지하 미궁의 벽을 울렸다. 할 로드가 레이나를 등에 업은 채, 바아르가 있는 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깊이를 향하던 바아르에게, 할 로드의 등장은 비록 라이신은 아니지만 칠흑 속에 비친 구원의 빛과도 같았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라이신 역시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레이나를 업은 채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며 힘겹게 달려오던 할 로드 역시 바아르를 발견하자 눈을 크게 뜨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각하! 각하!”라이신이 분명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을 터였다. 마력을 쓸 수 있다면 이미 가르남으로 먼저 이동했을지도 모른다.얼굴과 마음에 단번에 화색이 돈 바아르는 솟구치는 기대감을 주체하지 못한 채, 지하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할 로드! 라이신은 무사한가!”그러나 할 로드의 표정은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당황해 하였다. 바아르가 그토록 갈망하던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입을 떼지 못했다.“······바아르 각하. 저, 저기······.” “빨리 말해!”할 로드가 침묵하는 단 1초, 2초의 시간이 바아르에게는 억겁의 지옥처럼 조여왔다. 바아르의 채근에도 할 로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라이신은 아직 지하 깊은 곳에 있습니다. 세실리에 이모님을 상대하느라 마력을 전부 소진하여 순간 이동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지상에서 전쟁이 일어난 줄 알고, 저에게 먼저 각하를 만나 전쟁을 멈춰달라 부탁했습니다!”죄책감에 얼룩져 가는 할 로드를 바라보며, 바아르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라이신을 향한 할 로드의 진심과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당장 가야겠군! 라이신은 어디에 있지? 말해! 곧 이곳 전체가 무너질 거다! 어서!”순간 절망에 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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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역발상의 기적을 꿈꾸며

눈보라가 몰아치는 키요리타 산맥 중턱.당초 집결했던 인력은 캔돔가의 기사단과 병사 1만 5천, 하르트가의 마법사 군대 5천. 그리고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도르하르 제국민들이었다. 외곽 지휘를 맡은 페르도트의 4천 총괄부대와 렌스가 지휘하는 4천의 정찰부대까지 포함된 대규모 인원이었으나, 다행히 전체의 80%가 질서정연하게 이곳을 빠져나간 상태였다.남아 있는 사람 역시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 덕분에 순조롭게 벗어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기적과도 같았다. 대규모 인원이 전열을 정비해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으며, 신분이나 가문을 따지지 않고 오직 살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마음으로 힘을 모은 결과였다.그 전열의 최선봉에는 길 소르도가 서 있었다. 바아르의 명을 받아, 그는 이 혼돈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서둘러라! 에밋 경! 얼마나 남았지!”길 소르도의 다급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순간이동이 가능한 자들이 속속 복귀해 사력을 다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이제 약 20% 정도 남았습니다! 기사단은 키요리타 산맥을 자력으로 탈출하기 위해 신속히 이동 중입니다!” “땅울림이 심상치 않다! 속도를 더 올려라!”그때, 길 소르도의 목에 걸린 통신 마도구에서 맑은 빛이 피어올랐다.“각하! 통신 마도구에서 빛이 납니다!” “뭐?”마도구를 감싼 것은 초록빛 울림이었다.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그 빛은, 지쳐가던 길 소르도에게 비친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아!”-······오라버니!길 소르도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혀 숨을 헐떡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레이나! 무사했구나! 어, 어디냐!”-저 지금 잘······ 탈출했어요. 할 로드가 라이신 대공비보다······ 저를 먼저 탈출시켜 줬어요. 그리고 바아르 각하께서······ 순간이동으로 지하 입구까지 데려다주셨어요. 흑흑······. 걱정 끼쳐 죄송해요.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려 했으나, 길 소르도의 두 눈에서는 불가항력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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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심장과 심장이 맞닿은 전율

“어? 뭐지?”저주가 감지되는 것도 아니었고, 오감을 아무리 곤두세워도 근처에 생명체의 기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하지만 목에 걸린 반지는 마치 미세한 혈맥처럼 뛰며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결코 기분 나쁜 울림이 아니었다. 이 지하 깊은 곳, 절체절명의 절망 속에서 오직 자신만을 향해 사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을 단 한 사람. 그 간절함과 본능이 마력의 끈을 타고 닿았음이 틀림없었다.잠시 새로운 마법을 구현하려 손을 뻗었던 라이신은 천천히 손을 거두며 주변을 살폈다. 붉게 물든 반지는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요동치며, 어둠을 가르는 아련하고 뜨거운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그 순간.위잉—!라이신의 몸을 중심으로, 칠흑 같은 공중에 붉은 마법진이 하나, 둘, 셋, 넷…… 사방에 선명하게 피어올랐다.단순한 마력의 잔상이 아니었다. 서늘하게 식어버린 그녀의 얇은 피부와 옷자락을 거칠게 감싸 안는, 지독하게 익숙하고도 태양처럼 뜨거운 특유의 마력 파동이었다.“어머, 아가! 너도 느껴지는 거니?”뱃속의 아기마저 어미처럼 외부의 마력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와 연결된 마력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울컥거리는 기운이 온몸으로 휘감겨 들었다. 폭발할 듯한 생명력이 솟구치며, 차갑게 식어가던 혈관마다 불길을 지피듯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붉은 마법진은 라이신뿐만 아니라 그 품 안의 조그만 생명까지 겹겹이 감싸 안으며 찬란한 방어막을 형성했다.그때였다.우르르르쾅—!미궁이 무너져 내리는 불길한 굉음 사이로, 작지만 명확한 떨림이 라이신의 고막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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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지옥을 찢고 나타난 구원자

쩍! 쩍! 우르르르!발밑에서는 수십 센티 깊이의 균열이 거미줄처럼 기괴하게 갈라져 나갔고, 산 위에서는 기분 나쁜 굉음과 함께 대규모 눈사태가 일어났다. 할 로드는 이 정도의 재앙이라면 바아르와 라이신, 그리고 자신들조차 전멸할 것이라는 절망에 짓눌렸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어떻게 하나! 지상이 온통 엉망진창이야! 헉, 헉! 이제 진짜 한계다! 지하도 전부 무너지고 있던데, 바아르도 큰일이야!”길 소르도가 참았던 푸념을 쏟아냈다.마법사들과 남아 있던 이들은 순간이동으로 간신히 한 명씩 탈출시키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중간중간 마도구에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쥐어짜 넣었다. 말들조차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늪 같은 진흙에 빠져 허우적대자, 편하게 도망치도록 고삐를 풀어준 상태였다.섀도우와 에밋, 페르도트와 렌스 등 상급 기사들마저 이곳에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캔돔가 영지로 한꺼번에 수만 명의 백성이 몰려들었기에, 그 혼란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관리하도록 미리 지상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마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남은 이들은 오직 제 두 다리로 이 붕괴하는 산맥을 탈출해야만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있었다.“각하! 손바닥에서 피가 나지 않습니까! 헉, 헉! 이제 마력은 잠깐 쉬십시오! 아직 2천 명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할 로드의 다급한 말에 길 소르도는 그제야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을 멍하니 응시했다. 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데도, 마음이 너무나 다급하고 상황이 위태로워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에휴······. 평생 내가 저지른 나쁜 짓들······ 오늘 그 벌을 다 받는 모양이군! 알았어, 조금 쉬었다가 써야겠다! 헉, 헉! 임신 중이라는 라이신 대공비는 매몰된 건 아니겠지? 에잇!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말아!” “각하! 이 사람들 어서 구하고 제가 지하 수색에 나서겠습니다! 그래도 라이신을 믿습니다!”이곳 역시 조금만 더 지체하면 화산 폭발에 휘말려 모조리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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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압도적인 각하 등장

그 순간, 저 멀리서 섀도우와 제크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길 소르도가 서 있는 곳을 향해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왔다.“길 소르도 각하! 살았습니다! 헉, 헉! 이제 살았습니다!”“하하! 할 로드 전하! 헉, 헉! 믿기지 않는 분이 깨어나셨습니다!”누가 깨어났다는 말인가.그때, 수백 명의 백성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빈 공간 너머로 한 사람의 묵직한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캔돔 대공가의 칠흑 같은 제복을 입은, 30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훤칠하고 젊은 남성이 손끝에서 압도적인 마력을 피워 올리며 사람들을 계속해서 공간 너머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저분은 대체 누구지?”길 소르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쭉 빼며 아연해하자, 섀도우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지하 깊은 곳에 봉인되어 계시다가 막 깨어나신 카이우스 키요르 폰 캔돔! 바로 선대 대공 각하이십니다!”경악이 장내를 지배했다. 어찌 수십 년 전 사경을 헤매다 봉인되었다던 캔돔 대공가의 선대 대공이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단 말인가.“할 로드 전하! 이제 살았습니다! 도르하르 제국민과 남은 기사단, 하르트가의 군사들을 조금 전부터 대규모로 순간이동시켜 주고 계십니다!”과거 캔돔가의 기사였다가 지금은 할 로드의 곁을 지키고 있는 제크 역시 믿기지 않는 감격에 젖어 상황을 덧붙였다.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상급 대마법사조차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교하고 대규모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카이우스의 웅장한 모습에 다들 탄식을 흘릴 뿐이었다.그는 확실히 바아르의 아버지였다. 세월을 비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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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닿아

카이우스 선대 대공 각하라니.바아르의 눈동자가 경련하듯 크게 흔들렸다. 라이신이 가리킨 지하 입구를 훑어내리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뭐? 아버지를 찾았다고? 바로 저기에 계신단 말이냐?”갈라져 나온 바아르의 목소리는 마치 쇳소리처럼 거칠었다. 어깨가 단단히 굳어지고, 순간 숨결마저 멎은 듯 석상처럼 굳어버린 그였다.라이신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그녀는 마치 흐려지는 시간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버리기라도 할까 서두르듯 바아르의 팔을 강하게 잡아끌었다.“마리가 도와주었어요! 어서요!”“라이신, 설마······ 아버지가 맞단 말이냐? 확실한 거냐?”바아르는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사람처럼 라이신에게 끌려가면서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라이신은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설명을 덧붙였다.“지하 깊숙한 감옥에 갇혀 눈을 감고 계셨는데······ 너무 젊어 보이셔서 놀랄 정도였어요. 캔돔가만의 검은 제복을 입고 계셨고요. 틀림없어요!”“제복까지 갖춰 입고······?”말끝을 흐리는 바아르의 표정에 이전에 없던 긴장감이 서렸다. 라이신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혈색도 좋으셨고 숨도 쉬고 계셨어요. 게다가······ 바아르 각하와 정말 많이 닮으셨는걸요. 어서 가요! 지하 입구까지 마리가 보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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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절망을 뒤로 하고 희망 속으로

추격자인가?“에잇!”레인은 놀라 어느새 차고 있던 검을 번개처럼 뽑아들며, 다른 손으로는 에스메의 허리를 안아 끌어당겼다.그리고 몸에서 푸른 연기를 피워 올리며 공간을 이탈하려던 바로 그 순간!“나야, 레인 경!”검은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상기된 얼굴로 숨을 가쁘게 내쉬는 섀도우였다.그리고 그의 표정은 다급했고, 그가 전하는 진실은 더욱 대단해 보였다.***키요리타 산맥은 쏟아지는 눈사태와 연이은 지진으로 시야조차 가늠하기 힘들 만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가 감돌던 현장에는 묘한 환호와 들뜬 기운이 번져나가고 있었다.마력이 완전히 바닥난 길 소르도는 레이나와 할 로드, 그리고 남아 있던 2천여 명의 백성과 함께 이 재앙의 최후를 맞이하리라 절망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절체절명의 순간, 캔돔가의 옛 주인이었던 카이우스가 나타났다. 그가 압도적인 대마법으로 수백 명씩 순간이동시키는 장면을 목도하자, 감격에 겨운 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감사합니다! 카이우스 대공 각하!”길 소르도와 레이나, 그리고 한때 캔돔가의 기사였던 할 로드까지 벅찬 희망을 안고 카이우스가 서 있는 곳으로 가파른 진흙밭을 헤치며 달려갔다.길 소르도의 심장은 터질 듯 고동쳤고, 눈시울은 이미 뜨겁게 젖어 있었다.과거 대마법사로서 명성을 떨치던 하르트 공작 부부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제국 전체를 흔든 비극이었다. 하마터면 하르트가 자체가 흔들려 멸문의 위기에 처할 뻔했으나, 어린 길 소르도와 레이나를 감싸 안고 그 누구도 하르트가를 엿보지 못하도록 완벽한 울타리가 되어 준 이가 바로 카이우스였다.그렇기에 길 소르도에게 카이우스라는 존재는 반가움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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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죽어도 함께, 살아도 함께

잠시 뒤.할 로드는 카이우스의 거대한 마력에 휩싸여 순간이동을 마쳤고, 마침내 땅 위에 단단히 발을 내딛게 되었다.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한 절망 그 자체였다.“······어떻게, 이곳이······.”분명 도르하르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거대한 황궁이 서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성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깨어지고 부서져, 흉물스러운 석재 잔해 더미로 쌓여 있었다. 일대를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아수라장이었다.카이우스는 미간을 깊이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이미 늦은 것 같구나······.”카이우스의 개탄에 길 소르도는 잔해 더미를 멍하니 바라보며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바아르 각하와 라이신은······. 마법력이 실로 대단하여 결코 이리 허망하게 사라질 분들이 아닙니다······.”충격에 빠진 할 로드는 망연자실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흑흑······ 라이신 대공비는 아이를 품고 있는데······.” “마력을 쓸 수 있다 한들······ 지하에서는 이동조차 쉽지 않다며······.”레이나와 길 소르도가 끝내 눈물을 터뜨리며 절망하자, 카이우스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너희는 그만 돌아가거라. 나 혼자 이곳을 수색해 본 뒤 캔돔가로 가겠다.”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마력을 피워 올리는 카이우스에게 길 소르도가 허겁지겁 다가가 소리쳤다.“각하! 그래도 무엇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그냥은 못 가요. 제발요!”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떠나지 않겠습니다!”그러자 카이우스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절망에 빠진 길 소르도와 레이나, 할 로드를 제지했다. 그리고 담담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나는 어차피 한 번 죽었다가 깨어난 몸, 다시 숨이 끊어진다 한들 미련이 없다. 하지만 너희는 레투니카로 돌아가 다스려야 할 영지와 백성이 있지 않느냐.” “그래도 모두 힘을 합쳐 수색하면 훨씬 빠르지 않겠습니까!”답답한 마음에 길 소르도가 소리치자, 카이우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동요가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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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지옥에서 거머쥔 찬란한 선물

라이신은 떨리는 마음으로 흩어지는 연기 너머를 조심스레 지켜보았다.아니나 다를까.“모두······ 어떻게 이쪽에······.”바아르의 나직한 탄식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하나같이 라이신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소중한 인연들이었다.“어이, 바아르! 여기서 뭐 하는 거야!”“라이신! 하하! 내 직감이 맞았어! 대공비, 또 혼자 세상을 구하려는 거야?”“라이신, 내가 너 때문에 정말 제 명에 못 살지! 야, 같이 해! 우리도 도울 테니까 같이 해!”사람들은 자신과 바아르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면서 반갑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라이신은 가슴이 벅차올라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렇게 길 소르도와 레이나, 할 로드까지 산꼭대기 분화구 곁으로 모여들게 되었다.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시선이 그들 뒤에 조용히 서 있는 한 남에게 닿은 순간, 문장이 툭 끊겨버렸다.그때, 바아르가 홀린 듯 한 걸음, 두 걸음 그 남자를 향해 걸어 나갔다. 묵직한 입술 사이로 야윈 탄성이 픽 새어 나왔다.“아······ 아버지······.”시간과 공간의 법칙조차 두 사람에게만 다르게 흘러간 것일까. 부자(父子) 사이에 감도는 공기는 미묘하고도 묵직하게 일렁였다.라이신은 바아르의 손을 잡고 있던 온기를 조심스레 거두고,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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