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짐승 대공의 집착을 받은 사연:The Tale of the Beastly Archduke’s Obsessio: Chapter 61 - Chapter 70

268 Chapters

#61. 평화로운 일상을 뒤흔든 기척

레이나의 하얀 가슴 위로 한입 베어 물 듯 아처린의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그와 동시에 레이나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신음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달뜬 열기가 방 안을 가득 메웠으나, 레이나의 정신만큼은 서늘하게 이성적이었다.“······아처린 전하. 제가 전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 아시죠?”“후, 후······. 그럼, 알고말고.”“나중에 제게 황태자비가 되라는 말도, 안 하실 거죠? 아흑!”“물론이지. 휴······.”레이나는 환하게 웃으며 아처린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닿을 듯 말 듯 은밀하게 속삭였다.“어쨌든 저는 전하께서 결혼하실 때까지는 기꺼이 뜨겁게 몸만 즐기는 친구가 되어 드릴게요. 아흣!”아처린은 더 이상 이 도발적인 유혹을 견딜 수 없다는 듯 레이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단단한 나무 테이블 위로 그녀가 눕혀졌고, 펼쳐져 있던 마법 서적들이 바닥으로 맥없이 추락했다. 아처린은 거칠게 레이나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선 채로 몰아붙이는 그의 열망이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의 아래를 파고들었다.단숨에 끝까지 밀어닥친 묵직한 포만감에 레이나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전하, 제발 좀 살살······.”“그대가 나를 이토록 자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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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흑역사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윽!”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단발마의 비명이 정적을 깼다. “거기 서!”라이신은 자신이 내던진 책에 맞은 인영이 주춤거리는 사이, 손바닥을 펼쳐 지면의 습기를 끌어올렸다. 흙먼지를 잠재우기 위해 기화 마법을 시도하자, 순식간에 하얀 수증기가 장막처럼 피어올랐다.“윽! 이게 대체 뭐야!”자욱한 수증기 너머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라이신이 잔뜩 날을 세운 채 상대를 빤히 바라보던 순간, 그녀의 몸이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레인?”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레인은 적잖게 경악한 듯 뻣뻣하게 몸을 돌렸다. 당혹감에 사로잡힌 그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하아······ 이런.”레인은 제 이마를 짚으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찰나의 마력이 부족해 순간이동을 하지 못한 여파가 이토록 뼈아플 줄이야.“아-, 라이신.”그는 뻣뻣한 자세로 한숨을 쉬며 라이신의 눈치를 살폈다. *** 레인은 지금 황당하게도 라이신과 함께 근처 사과나무 그늘 아래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사과를 아삭 소리 나게 베어 물면서도 레인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신이 던진 두꺼운 마법 책에 맞은 어깨가 욱신거렸고, 무엇보다 잠입 정찰 중에 정체를 들켰다는 사실이 뼈아픈 골칫거리였다.캔돔 대공가에 몰래 잠입한 것을 들킨 것만으로도 목이 달아날 일인데, 정작 라이신은 적을 만난 게 아니라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고 있으니 상황이 지독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레인의 인생에서 이토록 처참한 흑역사는 없다고 자부했다.‘그나저나 대공이 얼마나 애지중지 아껴줬으면 얼굴에 이리도 귀티가 흐르지? 그건 그렇고 나한테 날린 게 책이었다고?’레인은 지금 라이신의 출중한 추격 능력과 흙과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법적 재능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대공가에 이런 괴물 같은 인재가 숨어 있었다니, 아처린에게 보고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놀랐잖아요. 하하, 레인인 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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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우연이 겹치면 필연인 것을

 레인은 난처하다는 듯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전 이 캔돔가의 하인 라이신의 친구입니다. 사과를 얻어 가는 중입니다.” 레인은 그 말을 뱉고 기사의 표정을 살폈다.  바아르 대공의 관심을 듬뿍 받는 라이신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을 터. 그는 상대 기사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자 기사는 경계심을 풀기는커녕 검을 고쳐 잡고 레인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레인은 이게 아닌데 싶어 손바닥으로 뒤로 물러나라는 몸짓을 하며 한 걸음 뒷걸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라이신은 내 친구야! 너 같은 놈 친구로 둔 적 없어! 너 황궁에서 온 첩자지!” ‘아, 이런 젠장!’  레인은 뭐가 이리도 오늘은 일이 꼬이나 싶어 욕지기가 속에서 일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왜 하필 라이신의 친구까지 만나 일이 이렇게 되었나 싶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레인은 바구니를 열어 사과와 꽁꽁 얼려진 가죽 물주머니를 보여주었다.  “아···,  조금 전에 라이신을 만났습니다. 다음에 이 캔돔가에 오면 이 사과를 준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십시오. 여기 비밀인데 가죽 주머니를 얼려 주었습니다!” 상대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구니를 확인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어? 진짜네!“   “난 얼마 전 황태자 전하와 황녀 전하께서 캔돔가에 방문했을 때 함께 왔던 사람입니다. 그때 우연히 연병장에서 라이신을 만났습니다. 맛있는 밀빵을 나눠 주기도 하였습니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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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감당할 수 있겠어?

주변을 두리번거린 라이신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레인은 정말 사과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던 걸까. 우연치고는 뭔가 이상했다.그리고 별채나 헛간, 혹은 평범한 창고로 보이는 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다.“······이곳에 그런 시설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저 사실 마법을 좀 실험하느라······.”그러다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벙커인가? 캔돔 대공가는 지하 감옥이나 숙소조차 요새처럼 견고하게 짓는 건축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지하 무기고가 숨겨져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라이신은 자신의 무지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네 눈엔 그저 평범한 공터로 보였겠구나.”바아르가 이토록 날카로운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만약 아까 마법을 잘못 써서 지면에 큰 진동이라도 일으켰다면, 대공가의 전략적 요충지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혹시라도 지면에 균열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저 멀리 흙더미에 파묻힌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잠시만요! 대공 각하, 저기 책이 있어요!”바아르의 시선이 닿는 사이, 라이신은 잽싸게 달려가 책을 집어 들었다. 흙먼지에 수증기까지 뒤집어쓴 책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어느새 바아르는 말을 몰아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아이고, 이런. 소중한 책이 이렇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바아르는 대답 대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훑었다. 그의 미간은 아까보다 더 깊게 패어 있었고, 안색은 눈에 띄게 파리해졌다.“마법 연습을 한 건가?” “네. 대신 무기고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거예요! 불꽃이 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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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한계에 이른 뜨거운 열기

마침내 말을 멈춘 바아르가 먼저 지면에 내려섰다. 그는 라이신의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받쳐 안아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주었다.자그락, 자그락. 라이신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크고 작은 보석들이 마찰하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수천 평 대지 위에 끝없이 펼쳐진 보석의 바다는, 하늘을 찌를 듯한 검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마치 신이 숨겨놓은 요새 같았다.그 어두운 장막 안에서 오직 이 보석 밭만이 스스로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사람 키만 한 거대 결정부터 손톱만한 조각까지, 빨강, 노랑, 보라, 금색과 은색 등 온갖 색상의 빛이 지천으로 널려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하하! 대공 각하, 여기가 정말 보석 밭인가요?” “보석보다 귀한 마정석이다. 너는 지금 이 돌들이 뿜어내는 마력으로 형성된 천연 결계 안에 들어와 있어.”라이신은 홀린 듯 마정석 밭을 둘러보았다. 이토록 음산한 산맥 한복판에 이처럼 눈부신 낙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이렇게 예쁜 장소는 생전 처음 봐요! 공기조차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네요.”좋아 어쩔 줄 모르는 라이신을 보며, 바아르는 땀에 젖은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그래. 이곳은······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곳이지.”라이신은 마법 책을 커다란 마정석 바위 곁에 내려놓고 아이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발밑에 닿는 감촉은 단단했지만, 마정석의 모난 곳 없는 둥근 표면 덕분에 아프기는커녕 기분 좋은 자극이 발바닥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짜릿하고 간질간질한 생명력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마정석을 한 움큼 파내 보았다. 파고 파도 끝이 없었다. 흙 한 줌 섞이지 않은 채, 오로지 순수한 마력의 결정체만이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가득 차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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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타오를 듯한 갈증과 탐닉의 시간

황궁에 도착한 레인은 조금 전 샤워를 마쳤음에도 멀미가 날 듯 온몸이 지근거렸다.공간 이동을 할 때 물품의 질량이 커질수록 신체에 가해지는 부하도 정비례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실감 났다.‘사과 두 개도 힘들더니, 한 바구니는 역시 무리였나.’진통제를 삼켰음에도 깨질 듯한 두통에 미간을 좁히며 사과 바구니를 내려다보았다. 본래라면 기르키르 산맥에서 잔당을 토벌 중인 아처린에게 즉시 보고해야 했으나, 그의 발길은 이미 자석에 이끌리듯 에스메의 침실로 향하고 있었다.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복잡한 걸 보니, 오늘 일진은 영 사나운 모양이었다.“황녀님의 상태는?” “좋지 않으십니다, 레인 님.” “이런! 모두 물러가. 내가 직접 돌보겠다!”시녀들을 물린 레인은 테이블 위에 손대지 않은 음식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사과 바구니를 내려놓고 침대맡에 걸터앉아 잠든 에스메를 살폈다.“전하, 레인입니다.”희미하게 눈을 뜬 에스메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만졌다.이미 그녀의 시선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고 몸의 고통이 시작되었는지 괴로움에 떨고 있었다.“레인······ 머리가 젖었네?” “오해하지 마. 정찰 갔다가 샤워했을 뿐이야.” “이마가······ 부어올랐어. 다쳤잖아.”이 와중에 자신의 이마를 걱정하다니. 에스메의 시선이 레인의 이마에만 닿아 있었다.라이신이 던진 책에 맞았던 부위를 손가락으로 더듬던 레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힘겨워하는 에스메에게 기력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사과 하나를 집어 들며 짐짓 가볍게 말을 건넸다.“사과 훔치러 캔돔가에 다녀왔어. 그러다 라이신에게 들켜서 한 대 맞았지.” “······푸흡.”에스메의 얼굴에 순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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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정욕의 끝에 피어난 거대한 야심

본능은 이성보다 정직했고, 갈증은 도덕보다 치명적이었다. 바아르는 굶주린 포식자처럼 라이신을 갈구했고, 라이신 또한 기꺼이 그를 향해 제 모든 성벽을 허물어뜨렸다.‘이 세계의 주인공. 1년 뒤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나의 다정하고도 잔인한 바아르 각하.’짐승의 본성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붉은 눈동자 속에 오직 자신만이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이 라이신의 심장을 들끓게 했다. 발작의 고통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그의 안면 근육조차 반가울 정도로, 라이신의 감정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쾌락의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었다.그는 여전히 잔인할 정도로 다정한 남자였다. 라이신의 몸을 부서뜨릴 듯 거칠게 탐하려 하면서도, 제 밑에서 가냘프게 떨리는 그녀가 영영 망가져 버릴까 봐 연신 낮은 신음 섞인 사과를 토해냈다.“······미안.”마정석의 푸른 빛이 일렁이는 두 사람의 나신 위로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하지만 맞닿은 살결은 화상을 입을 듯 뜨거웠다. 바아르는 라이신의 위를 덮치듯 올라와 단단한 무릎 사이에 그녀를 가둔 채, 가느다란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을 거칠게 묻었다.“전 괜찮아요. 오랜만이네요, 나의 다정한 대공 각하.”“난······ 전혀 다정하지 않은데.”바아르가 밭은 숨을 내뱉으며 라이신의 젖은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고 강박적으로 쓸어내렸다. 라이신도 용기를 내어 그의 도톰하고 열기 어린 입술을 지그시 눌러보았다. 말캉하면서도 탄력 있는 감촉 위로 그의 거친 숨결이 손가락을 축축하게 적셔왔다.포식자의 본능이 완전히 깨어난 것일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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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광기를 머금은 제국의 칼날

바아르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전쟁’이라는 단어는 라이신의 머릿속을 하얗게 태워버렸다.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에 라이신은 숨 쉬는 법조차 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각하, 그게 무슨······. 그래도 평화롭게 해결할 방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 전쟁이라니요. 전쟁이 터지면 얼마나 많은 영지민과 기사들이 무의미한 피를 흘려야 하는지 아시지 않나요?”라이신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의 가슴팍에 가닿았으나, 바아르의 시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심연을 향해 있었다. 그는 차가운 마력이 서린 눈으로 라이신을 응시하며, 단호하고도 처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평화라니, 그건 승자의 여유일 뿐이다. 지금까지 황가는 대공가에 그보다 더한 피를 흘리게 했고, 내 혈육들을 차례로 죽음으로 몰아넣었지.”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으며 억눌린 살기를 뿜어냈다. 몸은 뜨겁게 라이신을 품고 있지만, 그가 짓는 표정만큼은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황가의 저열한 계략 때문에 나와 길은 부모님을 잃었다. 이미 한계다. 더는 참아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어. 그러니 너는······ 더는 신경 쓰지 마라. 이것은 내가 짊어져야 할 업보니까.”라이신은 슬픔이 가득 찬 눈으로 바아르를 응시했다. 이 남자가 품은 증오의 깊이가 너무나 깊어서, 제 안의 온기로는 도저히 녹여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원작의 흐름대로라면 이 전쟁은 결국 바아르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터였다.‘어떻게 해야 바아르를 말릴 수 있을까? 이대로 그를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어!’광증. 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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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그대는 딱! 내 취향인 것을

라이신이 읽어 내려간 책의 글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른 세계로 당도한 초월자는, 그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 물, 불, 흙, 바람의 4원소 마법을 온전히 다스리게 된다. 또한 자신과 타인을 치유하는 성스러운 힘을 지니나, 단······.》라이신의 눈동자가 경련하듯 파르르 떨렸다. 쏟아지던 잠기운은 순식간에 달아났고, 그녀는 홀린 듯 다음 문장에 시선을 고정했다.《······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다. 초월자의 마나는 심연처럼 방대하며, 드래곤의 혈통을 계승한 자와의 다양한 교감을 통해 그 잠재된 마력을 완성시킬 수 있다.》라이신은 숨을 멈춘 채 입술을 지그시 짓씹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온 초월자. 그것은 명백히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었다.‘봉인이 제대로 풀린 건가? 흙과 물은 이제 익숙하지만, 불과 바람은 아직 느껴지지도 않는데.’게다가 ‘드래곤의 혈통’이라니. 이 소설 속에서 드래곤의 피가 흐르는 가문은 단 하나, 지금 여기서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바아르 대공의 가문뿐이었다.‘드래곤의 핏줄을 가진 자와 다양한 경험이라니······ 설마 그 경험이라는 게, 방금 우리가 했던 그런 거라고?’라이신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저 멀리 누워 있는 바아르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앞으로의 운명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다는 불길하고도 기묘한 예감이 엄습했다.그때 조금 전의 정사 장면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민망함을 이기지 못한 라이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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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람 정신 하나도 없게

바아르는 분명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제정신이었다. 라이신을 데리고 왔던 기억이 선명했기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설마 발작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 짓을 저지른 건 아닐까. 당혹감에 휩싸인 그가 다급히 라이신을 찾았다. 그때 저 멀리, 거대한 마정석에 기대어 잠든 라이신이 눈에 들어왔다. 엉망이 된 옷차림이 바아르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아, 이런······!”라이신에게 달려가려 벌떡 일어나던 바아르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제 옷차림 역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겉옷은 앞뒤가 맞지 않게 걸쳐져 있었고, 바지는 흘러내릴 듯 위태로웠으며 허리띠 매듭은 난생처음 보는 방식으로 묶여 있었다.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바아르가 떨리는 마음으로 라이신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마법서를 품에 안고 곤히 잠든 라이신을 확인한 순간, 바아르의 입에서 처절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이럴 수가······ 설마 내가 라이신을 저렇게 만든 건가?”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라이신의 상태는 처참했다. 드러난 목덜미와 뺨, 쇄골과 팔에 이르기까지 짐승에게 습격이라도 받은 듯 울긋불긋한 흔적이 가득했다. 그 순간, 이 공간에서 라이신과 나누었던 대화가 환청처럼 귓가를 때렸다.발작이 일어나기 직전, 고통에 몸부림치던 자신을 향해 라이신이 외쳤던 말들.[···제가 발작을 막아 드릴게요···.][···전 치유를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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